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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56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2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56화

55화. 미끼 속의 미끼

 

 

 

 

낭인 시장의 정문을 통과하는 소청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어렸다.

날 세워진 그의 손이 정문 기둥을 파고들었다.

콰득!

“커억!”

단말마의 억눌린 비명과 함께 기둥에서 피가 흘러 소청의 손을 적셨다.

그리고 원래 없었던 곳에 목줄기가 꿰뚫린 작은 흑의인 하나가 힘을 잃고 쓰러졌다.

언뜻 보자면 십오륙 세 정도의 아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칼날의 예기까지 감췄어야지.”

소청의 걸음이 다시 이어졌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손과 발이 어김없이 움직였고 사방에서 핏물이 튀어 올랐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는데 그의 손길이 스쳐 간 곳마다 시체가 생겼다.

그리고 소청의 걸음이 시장의 광장 중앙에서 멈췄다.

차라락!

끌러진 피풍의가 소청의 손안에서 회전하며 반 장이 넘는 창의 모습으로 변했다.

휘릭! 콰앙!

휘돌려 찍어 버린 창대를 따라 기운이 뿜어지고 전방의 대지가 부채꼴 모양으로 터져 나갔다.

“크에엑!”

일 장 근처에서 폭발하는 대지와 함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짓이겨진 시신 세 구가 생겨났다.

자신이 만든 광경을 잠시 음미하던 소청이 한곳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진소청이다. 잔마, 네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안다. 나서라.”

 

“…….”

소청의 말에 건물 안에 앉아 있던 잔마 오세독의 외눈깔이 살짝 떨렸다.

이미 수하들의 죽음에서 주변 상황을 깨달았다.

자신들이 포위되었음을…….

생각했던 대로 정천의 포로들은 ‘함정’이었다.

자신들을 끌어내기 위한 미끼였음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곳에 나타난단 말인가?

분명 낭인들을 보냈음인데…….

그리고 자신들이 숨어 있는 곳은 어찌 알았을까?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귀식이 절정에 달한 나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

삼십 장이나 떨어진 소청의 시선이 자신이 있는 곳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건물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고 은연중에 펼쳐진 귀식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어야 했다.

‘제법이군.’

잔마는 굳이 은신을 하지 않아도 타인의 이목에서 자신을 감출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자였다.

일정 거리만 떨어져 있다면 마천의 열두 주인들마저도 그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런데, 삼십 장.

그 먼 거리에서도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잔마는 완만하게 휘어진 소태도(小太刀)를 등 어림에 메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잔마의 모습은 여타의 인물과는 달랐다.

오 척 단구의 노인.

등에 소태도를 메고 허리에 얇고 완만하게 휜 도를 비스듬하게 차고 있었다.

긴 머리를 정수리에 묶어 늘어뜨리고 팔뚝 아래와 종아리에는 징이 달린 검은 쇠 각반을 차고 있었다.

“제법이군.”

“…….”

“함정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한데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어찌 알았지? 공격이 시작된 후에나 습격자들이 낭인 시장과 연결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텐데?”

잔마의 물음에 소청은 매우 친절하게 품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톡.

약병에서 나온 단약이 바닥에 떨어지자 톡 쏘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찍, 찍찍.

그리고 어디선가 붉은색 쥐가 쏜살같이 달려와 단약을 삼켰다.

“적서라고 하지.”

“…….”

“내단이니 하는 것은 없지만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 영물이지.”

“…….”

“종현자라는 놈이 옥에서 희한한 수를 쓰더군. 환술이었나? 어쨌든 옥장이 현혹된 틈을 타서 몰래 숨겨 둔 전서구를 보내더군. 그래서 전서구를 잡아 적서가 좋아하는 단약을 심었었지. 아, 아마 지금쯤 너희에게 전서를 가져왔던 비둘기는 깃털까지 뜯어 먹혔을 거야.”

“…….”

잔마의 외눈이 씰룩거렸다.

망할 곤륜파의 멍청이가 자신들의 위치를 드러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함정으로 눈을 가리고 진짜 미끼를 숨겼구나. 어린놈이 심계가 제법이군.”

“뭐, 칭찬으로 듣지.”

소청이 손사래를 치며 웃어 주었다.

“하나, 네놈 혼자서 되겠느냐? 편살원이 어떤 곳인 줄 모르는 모양이구나. 지금이라도 밖에 있는 섬뢰를 불러오너라. 죽는 것은 매한가지일 테지만…….”

잔마가 소청을 비웃었다.

“지랄하네. 모르긴 뭘 몰라? 그리고 죽는 건 너야.”

“뭐라?”

“물론 십삼세라는 폭마를 본 건 처음이었어. 하지만 너를 포함한 나머지 열두 세력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어.”

하나밖에 없는 잔마의 눈깔이 부릅뜨였다.

“동영(東瀛), 아니 부상국(扶桑國)의 살수들.”

“…….”

잔마의 눈동자에 진한 떨림이 생겼다.

마천에서도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자신을 제외한 열한 명의 존자들뿐이었다.

“그, 그걸 네놈이 어찌?”

“왜 모를까. 네놈들이 한 짓을 보고 듣고 경험해 봤는데.”

“…….”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가 어찌 자신들을 경험해 보았다는 말인가?

그들이 마천에 귀의한 것은 불과 오십 년밖에 되지 않았고,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고작 십 년이었다.

막부의 역습으로 패퇴해 도망쳤다.

그들이 닿은 곳은 광서성의 해안, 그곳에서 마천의 살수 가문을 만났다.

그들은 중원인들이 늘 그랬던 것과 달리 자신들을 왜인(矮人, 키 작은 인간)이라 얕잡아 보지 않고 자신들을 극진히 대접해 주었다.

첩보, 파괴, 침투, 음모, 암살 등에 특화되어 있던 그들은 마천에서 엄청난 쓰임새를 발휘했다.

잔마는 동영살법이라는 자신들만의 무공으로 마천의 열두 자리 중 하나를 꿰차게 된 것이다.

특히나 마종이 나타난 이후에 그들은 중원 정벌의 선봉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신들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듯이 말하는 그의 행동과 말투, 그리고 저 자신감까지…….

잔마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폭마를 만났다 했다.

‘어째서 폭마를? 파군은 폭마를 죽인 자가 막야라는…….’

순간 시선이 소청이 들고 있는 창을 향했을 때 잔마의 눈이 부릅뜨였다.

“네놈…….”

휘말려 창처럼 변한 검은 천.

“지옥혈잠(地獄血蠶)의 보포.”

“…….”

잔마의 말에 소청은 조금 놀라고 있었다.

황제외경, 영물과 잡학 편.

지옥혈잠이라는 생물이 있었다.

말 그대로 지옥에서 살법한 놈은 생물에 붙어 기생하며 그 정기를 빨아 먹고 살아간다.

정기를 빨아 내단을 만드는 대신 실을 뽑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실은 그 강도가 만년한철에 비교될 정도로 강하고 질겼다.

만약 지옥혈잠의 실로 옷을 만든다면 능히 역사에 남을 보물이 될 것이라 했다.

하지만 외경에는 그것이 발견된 적이 없다고 적혀 있었다.

‘그랬군. 발견된 적이 없다더니 지옥혈잠이 마천에 있었나? 어쩐지 때깔부터 남다르더라니.’

소청이 제 손에 들린 창을 휘저어 검으로 변화시키며 미소 지었다.

“네놈이 막야였군.”

“그래. 뭐, 딱히 감추고 싶지도 않고, 이제 와서 알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네놈들은 오늘 다 죽을 거니까.”

소청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리는 순간.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스걱!

핏물이 튀어 올랐다.

그것도 십 장이나 떨어진 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 이토록 빠른!’

살수.

흔적을 잡기도 각기 다른 곳에서 나타났고 동시에 여러 곳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인법! 살풍동막(殺風動幕)!”

잔마의 외침과 함께 은신해 있던 편살원의 살수들이 썰물처럼 물러났다.

“…….”

막 또 하나의 목을 꺾어 버린 소청의 눈이 찡그려졌다.

인기척이 사라졌다.

좀 전까지 눈에 보이듯이 훤했던 은신술이 보이지 않는 막에 가려져 버린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발 앞으로 느껴지는 이질감에 소청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파학!

지면에 칼자국이 새겨졌다.

조금만 느렸으면 발가락이 모조리 잘릴 뻔했다.

피피피핑!

마치 물러날 것을 예상했던 것처럼 네 개의 날을 가진 표창이 박혀 들어 소청의 잔상을 꿰뚫었다.

일정한 경계에서 벗어나자 공격이 멈췄다.

그리고 소청의 눈앞에 전에 없던 새로운 건물이 만들어져 있었다.

살풍동막(殺風東幕).

그것은 살수들이 만들어 낸 환영진이자 죽음의 마을이었다.

그리고 그 마을 안에 잔마가 소태도를 빼어 들고 마치 들어 올 테면 들어오라는 듯이 소청을 노려보고 있었다.

살기가 한여름의 습기처럼 진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소청은 오히려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잔마는 그의 비웃음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큭큭큭. 멍청한 원숭이 새끼들…….”

“…….”

비웃음.

은신(隱身)이라는 것은 상대가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게 회피하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수없이 많은 것들이 고려되어야 했다.

인간이 느끼는 오감 중 미각과 촉각을 제외한 세 가지 감각.

숨더라도 적의 사각에 숨어 시각에서 벗어나야 했고, 바람을 등짐으로 후각을 피해야 했다.

귀식으로 숨소리와 맥이 뛰는 소리마저 죽여 청각에서 멀어지고 기운을 감추어 느끼지 못하도록 했을 때 은신이 완성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감과는 다른 그저 불안감과 같은 설명할 수 없는 감성.

즉 육감에 벗어났을 때 은신은 극한의 효과를 발휘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의 감각에서 벗어나 버린 은신을 느끼기 위해서는 오감을 벗어난 초감각이 동원되어야 했다.

바람이 부딪히는 소리를 통해 사물을 인지하고 공기의 흐름이 변하는 모습을 느껴 적의 형체를 마음에 그려야 했다.

그것이 살수의 자세였고 살수를 대하는 자의 자세였다.

그런데.

초감각 따위를 동원할 필요도 없었다.

편살원의 살수답게 인기척을 숨기는 데는 성공했지만…….

“너 같은 놈들이 마천을 대표하는 살수 집단이라니.”

소청이 비릿한 웃음을 삼키며 칼처럼 변했던 피풍의를 풀어 등에 걸쳤다.

“숨었어야지. 이렇게 모여 있으면 어쩌나?”

“…….”

“그것도 너희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상대 앞에서 말이야. 큭큭큭.”

소청의 양손에 각기 다른 힘이 모여들었다.

우우웅!

대기가 들끓었다.

“한꺼번에 때려잡아 주마!”

우르릉!

뇌성이 울리고.

핏!

소청이 일보월하를 펼쳤다.

그리고 살풍동막의 중앙에 나타났다.

두 개의 기운이 뻗어 거세게 충돌하는 순간.

“피, 피해라!”

늦었다.

꽈과광!

천뢰충파의 기운이 원형을 이루며 퍼져 나갔다.

환영진을 이루었던 편살원의 살수들이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모조리 터져 나갔다.

‘이, 이런!’

수하들을 불러들였던 잔마는 폭발의 기세에서 재빨리 몸을 피했다.

휘이잉!

바람에 먼지가 날리고 처참하게 변한 광경이 드러났다.

환영은 사라졌고 낭인 시장의 건물들이 모조리 쓸려 나갔다.

남은 것은 건물의 잔해와 살수들의 시체들뿐이었다.

“…….”

폭발의 여파에서 피했던 잔마는 눈앞의 상황에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한 번의 판단에 편살원이 몰살당했다.

자신의 그릇된 판단으로 인해 수하들을 지옥의 아가리에 보기 좋게 넣어 준 꼴이 되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살기에 잔마가 재빨리 목을 꺾었다.

날카로운 예기가 그의 볼을 스치며 생채기를 만들었다.

길게 뻗어져 온 뾰족한 창극.

지옥혈잠의 보포로 만들어진 창이었다.

“…….”

잔마의 얼굴이 악귀처럼 변했다.

등 뒤에 매여 있던 소태도가 저절로 빠져 나왔고, 그의 손에는 어느새 허리춤에 있던 태도(倭刀)가 쥐였다.

“멍청한 원숭이 새끼…….”

바람에 흩날린 먼지와 함께 모습을 감춘 소청의 목소리가 잔마의 가슴을 후벼 파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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