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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53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53화

52화. 미끼

 

 

 

 

“이 정도면 되겠느냐?”

위도혁의 말에 소청이 만중을 쳐다보았다.

그의 의도를 깨달은 위도혁은 피식 웃으며 눈짓을 보내자 만중이 혈랑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이제 본 좌와 휘아뿐이다. 또한 기막을 펼쳐 두었으니 지금의 대화가 새어 나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소청은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일단은 먼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무얼 말인가?”

“제가 막야입니다.”

“…….”

순간 위도혁의 눈에 이채가 어렸고, 혁련휘는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방금 말은 충분히 본 좌의 흥미를 끌었다.”

“송구스럽습니다. 모자란 재주였습니다.”

“…….”

소청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위도혁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설마? 정말로 자네가 파천도를 사용했단 말인가?”

혁련휘가 물었고 소청은 대답하지 않고 위도혁만 바라보았다.

무언은 곧 긍정이었고 혁련휘는 소청이 함부로 허언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보여 보라.”

“예?”

“네가 사용했다는 파천도. 본 좌에게 보여 보라.”

“어찌 보일까요?”

소청의 물음에 위도혁이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겠군.”

 

얼마 뒤 그들이 자리 잡은 곳은 뇌령도문에서 한참 떨어진 산자락이었다.

위도혁은 혈랑들에게 이백 장 밖을 지키며 어떤 이도 접근시키지 말라 명했다.

차라락.

소청이 피풍의를 벗어 휘감듯이 돌리고 기를 주입하자 이번에는 마치 날이 세워지지 않은 칼처럼 변했다.

“호오? 특이한 무기로구나?”

위도혁의 말에 소청이 빙긋이 웃었다.

피풍의는 결국 천으로 만들어진다.

어떻게 말아 내는가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진기를 주입하면 그 강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해진다.

비마대를 교육(?)할 때 창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소청은 도의 형태로 만들어 낸 것이다.

“하면 미흡하나마 보여 드리죠.”

소청은 피풍의로 만든 도를 잡고 파천도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 순간 위도혁의 눈가가 씰룩거렸고 혁련휘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소청은 단전에 태극의 기운을 만들었다.

어차피 위도혁의 눈에 들어야 했다.

대화는 그때부터 시작일 테니…….

파천도의 초식은 총 세 가지였다.

직도 만경창파.

투기 경천기개.

압도 붕산진곤.

세 초식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다른 무엇도 필요하지 않았다.

우웅!

첫 번째 태극의 기운이 실리자 손에 들린 칼이 미친 듯이 울어 대었다.

천천히 내리그어지는 도에 수천 가지 변화가 어리고 기운이 해일처럼 뻗어 나갔다.

콰콰콰콰.

만경창파가 산자락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또다시 태극이 모이고 사지백해로 퍼져 나가자 사방이 소청의 존재감으로 물들었다.

거대한 투기와 함께 도가 역으로 잡혀 지면에 박혔다.

만경창파가 밀어내는 것이라면 붕산진곤은 모든 것을 짓누르는 힘이었다.

으적. 으드득.

세 번째 태극을 이루어 펼친 붕산진곤에 거대한 소나무들이 꼭대기부터 짜부라지다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사방 삼십 장이 한 자나 되는 깊이로 움푹 파여 들어갔다.

파천도법.

위도혁과 혁련휘만이 익히고 있는 무공이 소청의 손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태극의 기운을 담았기 때문인지 소청이 막야의 이름으로 남궁가에서 사용했던 것보다 더욱 위력적인 흔적을 만들었다.

“허! 정말로 파천도라니…….”

혁련휘가 경악한 표정으로 소청을 바라보았다.

“제법이군. 하지만 그것은 파천도가 아니다.”

위도혁이 언짢은 투로 말했다.

“압니다. 기껏해야 형(形)을 흉내 내었을 뿐이죠. 본 공의 무수한 변화와 깊이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흠.”

순순히 인정하는 소청의 모습에서 위도혁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혹, 본각에 숨어들었더냐?”

“예.”

“본각을 지키는 곡 장로의 귀령살문에 혈랑들의 눈을 피해 숨어들다니.”

“하고자 하면 련주님의 눈도 속일 수 있습니다. 완벽하진 않겠지만.”

“…….”

위도혁이 소청을 가만히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흥미가 더욱 돋는구나.”

어이없게도 진심 어린 소청의 표정이 싫지만은 않았다.

범은 범을 알아보는 법이다.

위도혁이 보기에 소청은 장성한 범은 아니었지만, 제법 발톱이 자란 범 새끼는 되었다.

사도련 본 전각을 지키는 곡반정의 수하들은 하나같이 초절정의 살수였다.

귀령살문.

귀신의 영혼마저도 죽일 수 있다 자부할 만큼 뛰어난 그들이었다.

더욱이 파천도법을 보관하고 있는 곳은 본전각의 최심처인 사도련주의 연공실이었다.

일백명의 혈랑들이 잠도 자지 않고 지키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들마저 뚫고 숨어들었다 말하고 있었다.

파천도를 보였으니 이미 증명한 셈이 되었다.

물론 소청이 사도련에 숨어들었던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생에 수도 없이 숨어들었었고, 후생에서는 소강을 위해 설삼을 훔치기도 했다.

그가 본 위도혁이라면 설삼은 혁련휘를 위해 준비해 둔 것이 틀림없었다.

굳이 그 사실까지 밝혀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설삼을 훔쳤을 때 막야라는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 것은 정말 다행이군.’

모든 것을 밝히려던 소청은 조금 찔리는 구석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만중이 이 사실을 알면 죽여 달라 소란을 피우겠군.”

사실 위도혁에게 파천도를 누가 사용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제자를 제외한 타인에게 대놓고 가르치지는 않았다.

단지 훔쳐 배웠다 한들 그자가 원주인보다 더 강하다면 그뿐이었다.

자신의 무공이니 아니를 따지는 것은 패배자들의 변명일 뿐이다.

그것이 중원 최강이라 불리는 무황 위도혁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밝히는 이유가 무엇이냐? 파천도를 사용했다는 이유와 내 거처에 숨어든 사실만으로 너를 죽일 수도 있음인데?”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려야 할 것은 앞으로 사도련의 행보를 결정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해서 한 점의 속임도 없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또한 죽이시려면 기수식을 취했을 때 죽이셨겠죠.”

“흥, 당돌한 놈이군.”

위도혁이 소청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조금도 위축됨 없이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휘야.”

“예. 스승님.”

“너도 보았겠지?”

“예…….”

“그저 흉내 낸 것에 불과하였지만 실린 기운이 너와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더 정진하겠습니다.”

“암, 그리해야지. 나는 나의 제자가 모자라다는 소린 듣고 싶진 않구나.”

그것이 질책임을 혁련휘는 모르지 않았다.

또한 소청이 펼친 파천도를 보았고 그 흔적에서 진득한 기운이 느껴졌다.

굳이 위도혁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혁련휘의 눈동자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제자의 표정에서 만족스러움을 느낀 위도혁이 다시 소청을 바라보았다.

‘좋은 친구를 사귀었구나. 그동안 비슷한 상대가 없어 걱정이었는데. 이로써 휘아는 더욱 강해질 터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천재는 지치기 마련이다.

잠시만 노력해도 남들의 수배 이상 성과를 얻는다.

자신은 사도련의 통일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혁련휘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뛰어난 놈이기는 하지만 목표가 약했다.

스승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리 가르쳤지만 그는 언제나 한계를 정해 두고 있었다.

하지만 진소청이라는 상대가 천재가 노력하게끔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좋다. 파천도에 대한 건은 불문에 부치도록 하겠다. 그리하지 않으면 너는 둘째 치고 곡장로와 귀령살문, 만중과 혈랑들의 모가지를 모조리 쳐야 하니까.”

위도혁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말해 보라. 나에게 독대를 청한 이유가 무엇인가?”

“마천 때문입니다.”

“마천?”

위도혁 역시도 마천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소청은 혁련휘에게 말했던 것처럼 마천에 대해 자신이 아는 바를 말했고, 현 정천맹의 상황을 설명했다.

“오위합취, 마천혈세라…….”

위도혁이 소청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편살원이라는 녀석들이 사도련 에 숨어들었단 말이냐?”

“예. 정황상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남궁가의 무인들과 협상단을 노릴 것이란 말이냐?”

“저라면 그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편이 정사에 혼란을 일으키는데 최적의 방법이 될 테니까요.”

“흠…….”

위도혁이 말없이 턱을 쓰다듬었다.

“내 생각에는 뇌령도문에 침입할 것 같지는 않다만?”

“맞습니다. 쉽지 않겠지요. 더욱이 무황께서 발걸음을 하신 덕분에 용담호혈이 되어 버렸습니다. 조심스러운 자들이니 쉽게 움직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생각이 있는 모양이로군.”

“예.”

“말해 보라.”

“미끼를 쓸 생각입니다.”

“미끼?”

“예. 풀어놓아야지요. 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풀어 놓는다?”

“예. 인육에 취한 범을 잡는 착호꾼이 되어 볼 생각입니다.”

사악한 표정으로 변한 소청을 위도혁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착호(捉虎).

범을 잡는 것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미끼를 쓰는 방법이다.

범이 다니는 길목에 거대한 구덩이를 판다.

그리고 그 안에 상처를 입은 아이를 집어넣는다.

조심성이 많은 범이지만 인육의 맛을 보아 버린 터라 탐욕을 참지 못하고 구덩이 안으로 뛰어들기 마련이다.

착호꾼들의 희생도 줄이고 가장 손쉽게 범을 잡는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끼로 쓰인 아이의 생사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죽든 말든 애초에 미끼였기에 상관없는 일이었다.

“정파라더니 생각하는 것이 사파보다 더 잔인하군.”

“착호꾼은 잡아야 할 범만 생각하지 미끼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마천을 잡을 생각입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희생은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흠, 착호꾼이라……. 허약한 정파 나부랭이들 중에 너 같은 놈은 처음이군. 하나 만약 저들이 그 과정에서 죽는다면 정사의 반목이 더욱 깊어질 터인데?”

“걱정되십니까? 정사의 반목이 깊어질까?”

소청의 담담한 눈이 위도혁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도발하는 듯한 눈빛에 위도혁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저 혁련휘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의 기세가 자신과 대등한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걱정이 되냐고? 나는…… 위도혁이다.”

위도혁의 눈에 처음으로 짙은 안광이 서렸다.

짙은 패기와 함께 거대한 존재감으로 짓눌렀지만 소청은 조금도 당황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좋다. 네놈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도록 하마. 크크크. 하나 만약 네놈의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단단히 각오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위도혁이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일어났다.

 

* * *

 

철컹.

뇌령도문의 지하 뇌옥의 문이 열렸다.

옥장(獄長)이 피투성이가 된 무인을 끌고 와 뇌옥에 던져 버렸다.

뇌옥에 갇혀 있는 남궁가의 무인들과 협상단으로 파견된 청룡단의 무인들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으으으…….”

산발이 되어 버린 머리카락이 덮고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널브러진 사내가 힘을 쓰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는데 옥을 지키는 무인들이 분풀이라도 하는 것처럼 마구 짓밟았다.

“이런 개자식이! 감히 너 따위가 련주님의 심기를 건드려?”

“죽어라. 죽어!”

무인들의 발길질에 사내가 흘린 핏물이 뇌옥 바닥을 넓게 적셨다.

“그만!”

옥장의 제지에 무인들이 헐떡거리며 물러났다.

“쯧쯧, 하룻강아지 같은 놈. 고작 이름 좀 날렸다고 련주님께 내기를 청해? 정파 놈들은 다 이런 건가?”

옥장의 말에 협상단의 수좌이던 청룡단 일 조장 종현자가 넌지시 물었다.

“이보오, 그도 정천맹 소속이오?”

“뭐야? 서로 몰라?”

“어찌 아오. 우리는 뇌옥에만 있었는데…….”

“진혼창이라는 자식이야. 이름은 들어 봤지?”

“진혼창?”

순간 뇌옥에 갇혀 있던 인물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진혼창, 진소청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가 어째서?”

“정천맹에서 또 다른 사자로 보낸 모양이던데? 네놈들 꺼내 달라고 말이야.”

“한데 어찌?”

“흥, 이 후레자식이 련주님과 독대를 했다. 아무리 소련주의 친구 자격으로 왔다지만 감히 련주님께 내기를 걸었다는군.”

“무슨 내기란 말이오?”

“비무를 청해 자신이 이기면 풀어 달라 했다더군. 하여간 정파 놈들 제 실력도 모르고 나대는 꼴이라니. 그나저나 불쌍해서 어쩌나?”

“…….”

“소련주님께서 간곡히 부탁을 올렸었지.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화가 되었어. 련주님께서 과할 정도로 역정을 내며 돌아가셨거든. 그리고…….”

옥장이 싸늘하게 웃으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너희를 본성으로 압송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모조리 목을 잘라 성벽에 걸어 놓으시겠다고 말이야. 크크크.”

“…….”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감히 무황 위도혁에게 승부를 걸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 인물이었다.

그 미친 언사 때문에 자신들의 모가지까지 날아가게 생긴 것이다.

무인들은 건너편 방에 감금되어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소청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날 밤, 식사는 없었다.

구금된 정파인들 모두가 진소청 때문이라 말했고 모두가 그를 욕했다.

그렇게 모두들 허기가 진 채로 잠들었을 때 한 인물이 깨어났다.

“옥장! 옥장!”

“이런, 씨팔. 오밤중에 왜 부르고 지랄이야!”

“뒷간엘 좀…….”

“뒷간 같은 소리 하네. 곧 뒈질 놈이 무슨 뒷간이야!”

“부탁하오.”

“이런 씨팔. 나와!”

옥장은 짜증스럽게 문을 잠근 사슬을 풀어내고 사내를 잡아당겼다.

철퍼덕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진 그가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옥장을 따라 뇌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뇌옥의 조그마한 창으로 전서구 한 마리가 조용히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마천의 세작은 뇌령도문이 아니라 협상단에 있었나? 정말 대단한 친구로군. 이쯤 되면 그의 무공뿐 아니라 지모까지 인정해야 하는 건가?’

눈을 감고 있던 소청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 뒷간에 갔던 사내가 옥장에게 끌려와 다시 하옥되었다.

그리고 소청은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청룡단 일 조장, 곤륜파 종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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