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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49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6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49화

48화. 이길 수 있는 기회

 

 

 

 

소청과 혁련휘가 마주한 곳은 초옥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단강구의 모래사장이었다.

달빛에 강물이 반짝이며 주위를 밝혀 주었다.

“이런 운치 있는 밤에, 이런 멋진 상대와, 이런 흥분되는 싸움이라니.”

혁련휘가 팔을 펴고 달빛을 음미하듯이 중얼거렸다.

“…….”

역시나 좀 이상한 놈이었다.

사파인이면서 사파인스럽지 않은 성격을 가진 그는 사파의 후계자였고 먼 미래에 무림을 구하는 영웅이었다.

“뭐 해? 안 해?”

소청이 손깍지를 끼어 ‘우두둑’ 소리를 내자 혁련휘가 핀잔을 주었다.

“거, 메마른 감성하고는……. 원래 이렇게 멋스럽게 시작하는 거라고.”

“…….”

소청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양손을 펼쳤다.

그리고 단번에 두 손에 각기 다른 기운을 모아 담았다.

파앙!

순식간에 혁련휘의 면전에 나타난 소청이 사악하게 웃으며 박수치듯이 양손을 부딪쳤다.

“천뢰충파.”

“……!”

우르릉. 꽈광!

기운의 폭발이 연안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연안에 닿았던 강물이 충격파에 밀려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하지만 좀 전까지만 해도 여유를 부렸던 상대의 반응이 빨랐다.

괜히 사도삼위에, 괜히 사도련의 소련주가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 주었다.

폭발에 삼켜졌던 혁련휘가 애도 참작을 수직으로 내려쳤다.

눈을 찡그린 소청은 재빨리 내디뎠던 발을 지지대로 삼아 훅 하고 뒤로 물러났다.

콰콰콰콰.

일도에 생겨난 기운이 만 이랑의 해일처럼 천뢰충파의 폭발력을 밀어내었다.

‘태월식!’

창이 없던 소청이 두 손을 교차시키며 만든 회오리가 모든 기운을 빨아들여 흩어 버렸다.

쿠우우우.

천뢰충파에 밀려났던 강물이 제자리를 채우다 만경창파에 또다시 밀려 나갔다.

입고 있던 옷이 넝마가 되어 버린 혁련휘가 눈을 치켜뜨며 소청을 째려보았다.

“야! 죽일 셈이었냐?”

“안 죽었잖아.”

소청이 피식 웃었다.

“뭐? 이런 씨…….”

혁련휘는 뭐 이런 놈이 다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생전 처음 보는 공격법이었다.

두 가지의 기운을 손에 모아 부딪치고 그 충격파로 공격했다.

너울에 담긴 힘이 상상을 초월했다.

난전에서 사용한다면 간격 안에 있는 적은 모조리 작살내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더구나 파천도의 일 초식 만경창파의 기운을 통으로 빨아들여 흩어 버렸다.

아무리 이전의 충격파를 밀어내며 힘이 상쇄되었다고 해도 처음 보는 기운이었다.

‘이 친구 정말 사기스럽구먼그래. 근데…… 너무 마음에 들어!’

“어?”

갑자기 소청이 놀란 표정을 짓더니 감격하고 있는 혁련휘에게 말했다.

“조심해.”

“뭘?”

소청이 ‘팍’ 하고 지면을 박차고 솟구쳤고.

콰콰콰콰.

밀려 나갔던 강물이 거대한 파랑을 만들며 되돌아와 연안을 덮쳤다.

“…….”

강물이 모래사장을 때리고 일 합을 겨룬 둘의 흔적을 쓸어버렸다.

물론 혁련휘는 물에 빠진 생쥐처럼 변했다.

“거 조심하라니까.”

“…….”

소청의 빙글거리는 얼굴을 왠지 으깨 버리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하, 하하하!”

그런데 웃음이 났다.

근래에 이렇게 당해 본 적이 있었던가?

“그래! 좋아. 이런 기분이지.”

혁련휘가 한참을 웃고는 참작을 고쳐 잡았다.

그저 비무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그가 마음을 바꾸어 먹자 기세가 바뀌었다.

우웅.

참작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떨렸다.

물론 소청에게는 무척이나 신경이 거슬리는 소리였다.

혁련휘의 몸에서 느껴지는 투기가 세 배 정도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의 온몸에서 뿜어지는 투기가 점차 범위를 넓혀 소청의 간격을 잡아먹었다.

경천기개(驚天氣槪).

파천도의 이 초식이라 명명된 그것은 초식이라기보다는 호신강기와 비슷했다.

투기를 유형화하고 온몸에 두르는 방법은 공기마저 두려움을 느끼도록 바꾸어 놓았다.

이제부터는 그의 흔한 주먹 한 방, 발길질 한 번이 모두 강렬한 초식이었다.

그리고 경천기개를 끌어 올린 채로 이어진 수직일도, 만경창파.

만 이랑의 파도가 거대한 투기를 머금고 칼날로 변했다.

검존과 싸우고, 폭마를 죽이고, 독기를 두른 당태위의 목까지 베어 낸 소청이었지만 경시할 수 없는 기운이었다.

일보월하로 공격권을 벗어나 버리면 될 일이었지만 피하고 싶지 않았다.

마기에 빠진 검존을 제외하고 오존의 경지에 오른 사람과 처음으로 맞이한 정상적인 승부.

정면 승부를 하고 싶었다.

자신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알고 싶었다.

‘섬전보. 우중거.’

공간을 뛰어넘는 대신 소청이 모래 위를 다지듯 촘촘하게 발자국을 새겨 넣었다.

하나에서 둘. 둘은 넷이 되고 여덟이 되어 순식간에 수백 개의 환영으로 나뉘었다.

도무지 어느 것이 실체인지 알 수 없는 소청의 모습이 백사장의 모래만큼이나 많아졌다.

파하학!

모두가 같은 동작으로 앞을 향해 걸었고 만경창파의 기운에 닿는 즉시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리고 거대한 파도의 틈으로 쑥 하고 하나의 모습이 빠져나오자 환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파아아악!

혁련휘의 만경창파가 강물을 수백 갈래로 쪼개 놓았다.

“…….”

혁련휘는 놀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옷이 넝마가 되도록 찢어지고 몸에 수많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만경창파를 건너온 소청은 비틀거림 없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손을 말아 쥐며 마보세를 취했다.

그리고 그의 손에 실처럼 하얀 기운이 뻗어 나와 겹치고 겹쳐 하나의 모양을 만들었다.

‘기의 창?’

백색의 기운은 점차 창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기운을 응축해 검으로 형상화하는 것을 기검(氣劍)이라 했다.

순수한 기운으로 만들어진 기의 검은 세상의 그 어떤 보검보다 날카롭고 강했다.

그런데 기의 창이라니?

기검이 있으니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본 적은 처음이었다.

소청은 단전의 기운을 뽑아내 창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또 다른 혈의 기운을 단전에 채웠다.

일명 천뢰충파의 응용 같은 것이었다.

기의 창을 유지하는 데 지속적으로 기운이 소모되긴 했지만 꽤나 유용한 방법이었다.

‘기의 창에 기운을 담아 위력을 배가시킨다. 합기창술(合氣槍術). 월식연환.’

기의 창을 통해 패월 창법의 여덟 초식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 위력은 하나의 기운일 때보다는 비교할 바 없이 강맹했다.

건월식에서 곤월식까지의 초식이 남김없이 펼쳐져 혁련휘의 참작과 맞부딪쳤다.

지면에 꽂힌 창이 모래사장을 모조리 터트려 올리자 참작을 역으로 잡은 혁련휘의 붕산진곤(崩山鎭坤)이 펼쳐졌다.

솟구친 기운이 내리누르는 기운과 한 장 높이에서 만나 폭발했다.

꾸아아앙!

강물이 그들의 기운을 따라 요동쳤고 산이 들썩였다.

 

목숨을 걸었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치열한 둘의 비무가 한 시진을 넘어가고 있었다.

강변의 풍경이 뒤바뀌고 지형이 흉물스럽게 바뀌어 갔다.

소청의 공격은 화려하고 날카로웠다.

초식을 잘게 자르고 잘라 상대의 허점을 뱀처럼 물어뜯었다.

반면 혁련휘의 참작은 삼 초뿐인 도법을 강맹하고 진중하게 펼쳐 내었다.

“하아아, 하아아…….”

길게 뻗은 참작의 끝이 천천히 숨을 고르는 소청의 목 어림에 멈추었다.

혁련휘는 자신의 심장 방향을 향해 뻗은 소청의 손을 응시했다.

무언가를 잡고 있는 것처럼 말아 쥔 손에 기의 창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

혁련휘의 눈 끝이 살짝 찡그려졌다.

손과 자신의 심장까지의 거리는 한 자 반, 저 손에 기의 창이 아니라 창의 실물이 들려 있었다면…….

그리고.

‘아직도 저런 기운이 남아 있었단 말이냐? 그만한 위력의 초식들을 펼쳐 놓고?’

소청의 몸에서는 여전히 매서운 기운이 가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쳇, 졌네.”

소청이 피식 웃으며 손을 내리자 진득했던 투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단전에 그만한 내공을 모아 놓고는…….”

참작을 거둔 혁련휘가 투덜거렸다.

“아, 눈치챈 거야? 봐주느라고 힘들었는데.”

“…….”

태연한 표정의 소청을 보며 혁련휘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봐줘? 놀고 있네. 한 치만 더 갔으면 죽었을 텐데?”

“못 왔을걸? 내 손에 창이 들려 있었다면 칼을 뻗기도 전에 죽었을 거야.”

“무슨 소리, 난 사고가 유연한 사람이라고. 창이 있었다면 다른 방법을 썼을걸?”

“피차일반이야. 창을 들었으면 시작할 때 끝났어.”

둘은 한마디도 지지 않고 서로가 이겼다고 우기다 마주 보며 웃어 버렸다.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는 소청을 향해 혁련휘가 물었다.

“혹시 더 강한 것도 남겨 두었나?”

“보여 줄까?”

“…….”

자신감 넘치는 소청의 얼굴에 혁련휘가 멍한 표정을 짓다가 코웃음을 터트렸다.

“허세는.”

“진심인데?”

“됐다. 삭신이 쑤셔서 더는 못 하겠다.”

혁련휘는 참작을 집어넣어 버렸다.

“어디가?”

“자러. 살기가 없는 걸 보면 내 손님은 아니고 네 손님 같은데?”

“…….”

“웬만하면 다음부턴 숨어서 지켜보는 짓거리는 하지 말아 달라고 해. 나 그런 거 싫어하거든. 다음에 또 그러면 죽일 거야.”

웃으며 돌아선 혁련휘가 멀어져 갔다.

“그래. 전해 두지.”

소청 역시 이미 느끼고 있었다.

혁련휘와의 비무 중반부터 지켜보던 눈이 있었다.

아마도 단강구에서 만나기로 한 비마대인 모양이었다.

적서를 부르지 않았는데 용케도 자신의 위치를 찾아내었다 생각하는데 모래사장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긴 이 난리를 쳤으니 사도련에서 조사단을 보내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니.’

혁련휘가 완전히 사라지자 소청이 엉덩이를 대고 털썩 주저앉았다.

“어이, 다 들킨 것 같은데 그만 나오지.”

소청의 말에 숲에서 귀신 탈을 쓴 흑의인이 걸어 나왔다.

“비마대의 초사요.”

간략한 인사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말투.

분명 혁련휘와의 비무에서 자신의 실력을 알았을 텐데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굳이 인정받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마천을 잡을 때 조금 더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했다.

내린 명령만 잘 따르면 되었다.

“고작 스물을 데려온 건가?”

“…….”

초사의 눈동자에 작은 떨림이 생겨났다.

멀게는 삼십여 장이나 되는 거리에 있었는데 숲에 숨은 비마대의 수를 정확히 읽어 내고 있었다.

그가 강하다는 사실은 이미 수차례 들었고 눈앞에서 본 것만으로 충분했다.

단지 정천에 목숨을 바치고 있는 자신들과 달리 정사의 경계가 모호한 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더욱이 사도련의 후계이자 장차 자신들의 가장 큰 적 중 하나가 될 혁련휘와 오랜 벗처럼 보였다.

“난 분명히 우철에게 비마대 전부가 오라고 명한 것 같은데?”

“정천의 아래에서 수행해야 될 임무도 많소. 사파 따위에 숨은 세작을 위해…….”

초사는 끝까지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앉아 있던 소청이 어느새 자신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한테 판단하라고 한 적 없어. 나는 명령을 내렸고, 너흰 따르면 되는 거야.”

“…….”

눈동자가 마주치는 순간 초사는 심장이 옥죄이는 것 같은 느낌을 느껴야 했다.

손가락 하나만 까닥해도 목이 떨어져 나갈 듯이 지독한 살기가 그의 몸을 짓눌러 왔다.

“제갈휘문이 전하는 말은?”

“…….”

탈 속에 감춘 초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소청이 싫은 두 번째 이유였다.

오랫동안 묵영단을 이끌어 온 제갈휘문에 대한 언사.

그들에게 있어서 제갈휘문은 스승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제 막 수장이 된 자가 예의 따윈 어디에 팔아먹은 것인지 함부로 하대하고 있었다.

“사도련에 구금된 남궁가의 무인들을 구하라 하셨소.”

“…….”

“군사께서 보낸 협상단마저 구금되었으니 속히 처리해야 하오. 필요하면 우리가 나서서 직접 구…….”

소청의 손이 초사의 목울대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숲에 은신하고 있던 비마대가 검을 뽑은 채로 튀어나와 소청을 겨누었다.

“꼬라지 잘 돌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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