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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45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3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45화

44화. 목숨을 훔치다

 

 

 

 

섬서성 진령 산맥의 줄기인 남산(南山)에는 오래전부터 한 문파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라져 버린 전진교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곳으로 사람들은 종남파라 불렀다.

정천맹을 구성하는 구파의 하나로 도가의 한 갈래였으나 세월이 흐르며 도맥이 끊어져 검공만이 명맥을 유지했다.

비록 검존을 배출한 화산파로 인해 섬서에서의 위세가 줄었지만 백대 고수를 둘이나 보유한 막강한 문파였다.

종남파 인근의 작은 마을.

모두가 잠든 시간, 짙은 어둠을 틈타 허름한 초옥 안으로 의문의 인물이 숨어들었다.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

“산서로 이동해 잔마(殘魔)님을 도우라는 전언입니다.”

으슥한 곳에서 한 사내가 손에 쥔 서찰을 종남파의 복장을 한 무인에게 공손하게 내밀었다.

봉인을 찢은 사내는 서찰을 펼쳐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이 시간 이후 나를 제외하고 종남에 잠입했던 환영들은 외부 활동을 접고 잔마께 합류시키겠다.”

“예.”

종남파의 무인은 품에서 부싯돌을 꺼냈다.

읽은 서찰을 불태우기 위함이었다.

그때.

“종남, 집법 장로 혁세기. 마천 환영곡 소속.”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고 숨겨진 신분까지 정확히 말했다.

그가 흠칫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서신을 가져왔던 인물이 바닥을 참과 동시에 검을 뽑아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차악!

뚜두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조용해졌다.

“…….”

혁세기의 눈 끝이 살짝 떨렸다.

저벅, 저벅.

상대는 몸을 숨길 생각도 없이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그의 손에는 목이 꺾여 절명한 수하가 잡혀 있었다.

털썩.

수하를 그의 발 앞으로 던진 자는 피풍의와 방립으로 모습을 감춘 소청이었다.

혁세기는 상대를 노려보며 검병을 잡아 갔다.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특이할 정도로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초옥 인근에 은신해 있던 수하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질문할 필요는 없었다.

굳이 통성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상대가 누구든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었으니 죽이는 수밖에.

척, 쉬이익!

잡는 순간 뽑혀 나온 검.

종남의 쾌검식과는 달리 마기를 잔뜩 머금은 검술이 펼쳐졌다.

바닥을 낮게 쓸며 뻗은 일보에 간격이 좁혀졌고 찔러진 검격은 전광석화와 같았다.

순식간에 열여섯 개의 검격이 생겨나 소청의 전신을 노렸다.

하지만 검격이 닿았다 생각하는 순간 소청의 모습이 흩어지듯이 사라졌고 혁세기의 뒤편에서 나타났다.

뚝, 뚝.

소청의 손에 들린 투박하기 짝이 없는 검의 혈조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챙그랑.

푸하학!

손목의 근맥이 잘려 버린 혁세기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요전에 봤던 학사 놈은 목숨을 끊더군.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지.”

소청은 비릿하게 웃으며 혁세기의 앞으로 다가왔다.

“네놈은 누구냐?”

“네놈에게 들어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이랄까?”

“…….”

혁세기는 소청이 자신보다 뛰어난 강자임을 깨달았다.

“흐흐흐, 네놈이 강한 건 인정하지. 하지만 아무것도 듣지 못할 게다.”

까드득.

무언가 깨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 ‘아차’ 싶었던 소청이 뛰어들었지만 혁세기는 이미 칠공에서 검붉은 피를 토하고 있었다.

“제길, 이번엔 독단이냐?”

잔인한 자들이었다.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자살을 하는 것은 보통의 각오로는 턱도 없었다.

그만큼 훈련이 잘된 자들이라는 뜻이었다.

첫 번째는 제 목을 그었고, 혁세기는 독단을 물어 절명했다.

“뭐 상관없지. 정보가 좀 더 필요했지만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으니까.”

검면에 묻은 피를 바닥에 뿌린 소청은 혁세기가 쥐었던 서신을 집어 펼쳤다.

이미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와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산서? 잔마? 하긴 환마 혼자서 두 세력 모두를 책임질 순 없겠지. 잔마의 세력이라면 편살원이었나?’

마천 십이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환마의 환영곡, 잔마의 편살원.

둘 모두 마천에 소속된 집단이었다.

“결국 사도련으로 가 보는 수밖에 없나?”

소청은 서신을 갈무리하고 품에서 꺼낸 작은 병에서 단약 하나를 꺼내 던졌다.

공기와 닿으며 녹아내린 단약에서는 톡 쏘는 냄새가 확 하고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잠시 기다리자 어디선가 붉은 쥐 한 마리가 나타나 찍찍거렸다.

묵영단의 붉은 쥐, 적서(赤鼠).

적서는 만 리(里)를 퍼진다는 그 향기를 찾도록 훈련되었다.

적서가 움직였으니 곧 종남 인근에서 대기하는 묵영단의 인물들이 나타날 것이었다.

 

“패월을 뵙습니다.”

어둠에서 나타난 이들이 소청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묵영단 처리조 무흔 소속의 우철과 그 휘하의 조원들이었다.

“음독으로 자결했나 보군요.”

“그래. 독단을 깨물더군.”

고개를 끄덕인 우철은 무흔 소속의 무인들에게 시신을 수습하고 흔적을 지우게 했다.

그것이 바로 처리조인 무흔의 임무였다.

묵영단은 크게 네 개의 조직으로 나뉘어 있었다.

흑비가 조장으로 있는 곳이며 필요한 정보를 모아 배달하는 은신자, 둔영(遁影).

모아 온 정보를 분석해서 결론에 도출하는 검은 학사, 현학(玄鶴).

현학들이 확정 지은 정보를 통해 확인하는 무인 집단, 비마(秘魔).

그리고 비마의 후처리를 담당하는 우철의 처리조, 무흔(無痕).

진가를 떠난 소청은 제갈휘문을 통해 마천과 관계가 있어 보이는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 묵영단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폭멸마동을 만들기 위해 최근 몇 년 동안 유괴된 아이들의 정보에 주목했다.

삼 년간 섬서성에서는 총 삼백이 넘는 아이들이 사라졌다.

대부분이 눈에 띄지 않는 빈민가나 부랑촌의 아이들이었기에 관이나 무림에서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둔영의 정보에 의하면 아이의 유괴는 꽤나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상자가 물색되고 돈을 노린 지방 파락호가 실행에 옮긴다.

유괴된 아이들은 대부분 유룡관이라는 섬서 남부의 명망 있는 학관으로 이동되었다.

시일이 다르고 행로가 달랐기에 정보를 취합하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청은 그들의 발자취를 뒤쫓으며 유룡관의 주인을 만났다.

마기를 수련한 자들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기운.

마천의 무인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놈은 제압하기도 전에 자신의 목을 그어 버렸다.

그리고 종남파에 닿았다.

종남파의 집법 장로이자 정천맹에서도 꽤나 입김이 강한 유운쾌검 혁세기.

혁세기를 찾았을 때 소청은 하루 종일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의 가족, 식습관, 금전 관계, 자는 시간, 성격에 이르기까지 하루 열두 시진을 어찌 보내는지 상세하기 파악하고 조사했다.

모든 시간 그의 곁에서 그림자처럼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닷새에 한 번 사람들의 눈을 피해 종남파의 인근 마을로 내려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청은 그가 종남파를 떠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꼬리를 잡았다.

전생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원래 도적이라는 사람들은 훔치기 전까지 모든 것을 파악하고 준비를 한다.

완벽한 준비를 끝내지 않으면 실수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소청은 훔쳐 내었다.

단지 이제는 물건이 아니라 상대의 목숨을 훔치게 된 것이 달랐다.

‘그래, 이편이 내겐 더 잘 어울려. 훔치는 건 똑같으니까.’

혁세기가 가지고 있던 서신에는 보낸 이에 대해서는 적혀 있지 않았다.

단지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섣불리 몸을 드러내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섬서로 가서 잔마와 합류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소청이 혁세기의 얼굴에서 얇은 인피면구를 뜯어내고 있는 우철을 향해 물었다.

“흑비는?”

“둔영조와 함께 강남 칠패의 영역에 들었습니다.”

“그렇군. 폭멸마동 하나에 필요한 아이는 모두 일천 명. 그 아이들이 유괴된 흔적을 찾으면 분명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전해.”

“예.”

짧게 대답을 끝내고 면구를 벗긴 우철이 소청을 향해 내밀었다.

“역시나 전처럼 본 얼굴은 알아볼 수 없게 뭉개져 있군요.”

그의 말에 힐끗 바라본 혁세기의 얼굴은 사람의 그것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역용을 위해서는 인피면구만으로는 부족했다.

어떤 인물로도 변하기 위해서는 원래의 얼굴의 근육을 뒤틀고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야 했다.

거기다가 위급 시 자결하도록 훈련받았다.

무섭도록 치밀한 놈들이었다.

소청이 내민 서신을 받아 든 우철이 넌지시 말했다.

“정천맹주 이취임식이 끝났습니다.”

“남궁천세가 맹주가 되었겠군.”

“예. 퇴임식은 수수했지만 취임식은 꽤 화려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진가에서도 축하 사절이 다녀갔고, 동생분이 청룡단에 정식으로 입단했다고 합니다.”

우철은 소청이 관심 있을까 하여 소식을 전했지만 전혀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그 외 전할 말은?”

“현재 남궁세가에서 사도련에 항의하기 위해 보낸 사절이 구금되었습니다.”

‘막야’라는 이름으로 비롯된 사건이었다.

“알겠다. 초사(비마대주)에게 단강구 안가에서 만나자고 전해라.”

“사도련의 영역으로 가실 생각입니까?”

“그래. 제갈휘문에게 전해. 사도련에는 잔마라는 자의 손이 뻗어 있다고.”

“음, 사도련은 우리의 영향력이 부족한 곳입니다.”

“상관없어. 그게 어디든 개를 두들기기다 보면 주인이 나올 테니까.”

“참, 이번에 비마대를 처음 보는 것이지요?”

“…….”

“그들을 만나도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원체 대가 센 인물들이라.”

우철의 말에 소청은 피식 웃었다.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후후, 알았다.”

다음 접선 장소를 정한 소청은 사도련의 영역인 단강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초옥 안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치워졌다.

 

* * *

 

종남에서 돌아온 우철로부터 조사 결과를 보고 받은 제갈휘문은 새로 맹주가 된 남궁천세의 호출을 받았다.

“군사, 사도련의 문제는 어찌 되어 가고 있소?”

“아직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망할 놈들 같으니…….”

“그보다 조금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상한 사건?”

“예. 종남의 혁세기가 실종되었습니다.”

“…….”

“혁세기뿐만 아니라 섬서에서 네 명의 인물이 실종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남궁천세는 제갈휘문이 올리는 문서를 받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현재 파악 중에 있습니다만 사라진 인물 모두 행적이 묘연합니다. 종남의 장로가 거처도 밝히지 않고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하여 흑선의 조사단을 파견하였습니다만 별다른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제갈휘문은 담담하게 보고를 올리며 남궁천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별 큰 문제도 아니구먼.”

“…….”

“종남의 혁세기 장로야 잠시 어딜 다녀올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오?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은 굳이 정천맹에서 신경 쓸 일도 아니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종남파의 장로가 관여된 문제라…….”

“됐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사도련과의 마찰을 해결할 해법을 내놓아야 할 것 아니오!”

언짢은 표정으로 호통을 치는 남궁천세의 모습에 제갈휘문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선후를 판단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천하제일의 기재라더니 명성만 못한 모양이오. 방 맹주께서 사람이 좋은 게지. 쯧쯧.”

“죄송합니다.”

대놓고 타박하는 말이었지만 제갈휘문의 표정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이미 장로회의 허락을 받아 삼단의 무인과 함께 적절한 인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맹주령을 내어 주시면 조속히 출발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제갈휘문은 짜증스러운 눈치를 받으며 맹주령을 받아 들었다.

맹주의 집무실을 빠져나온 그의 표정에는 싸늘함이 떠올라 있었다.

‘남궁천세. 미끼를 던졌으니 마천과 관련이 있다면 반드시 움직이겠지. 하지만 조심스러워야 한다. 상대는 지지자들을 규합해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오존이니까.’

제갈휘문이 맹주를 찾아간 것은 반응을 보기 위함이었다.

승계 의식이 끝난 이후 조심스레 감시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호법부의 사람들이 교체되는 바람에 맹주전에 접근하기가 더욱 어려워졌어.’

그때 멀리서 제갈휘문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드는 사람이 나타났다.

“휘문, 이 녀석.”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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