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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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41화
40화. 당가, 진격하다
와장창!
정천맹 서남 지부의 문이 부서질 듯이 열리고 무인이 바닥을 뒹굴었다.
“아, 뭔 일이야!”
서남 지부장 고일태가 동경을 보며 코털을 정리하다가 신경질을 부렸다.
“지, 지부장! 당구독이 죽었습니다.”
“…….”
고일태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지금 당태위가 온량거(轀輬車, 상여)를 이끌고 당가타를 떠났다고 합니다.”
“온량거?”
“그뿐 아닙니다. 당가타에서 나온 무인의 수가 이천에 달합니다.”
“망할 방계까지 모조리 끌고 나왔구먼. 무슨 장례식을 그리 크게 해? 그래서 장지는 어디냐? 당가의 씨족 묘더냐?”
“그게…… 간양으로 가고 있습니다.”
“뭣이!”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간양이라면 다름 아닌 진가였다.
둘의 싸움, 당가의 복수심에 대해서는 중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젠장! 맹으로 전서구를 띄워라! 지부 내의 무인들을 모두 완전 무장시키고 간양으로 간다!”
“예? 그건 왜?”
“이런 멍청이! 당가의 뜻을 모르겠냐! 제 아비의 영전에 진가를 바치려는 거야!”
* * *
딸랑.
딸랑.
종구쟁이는 엄숙하게 종만 칠 뿐 어떠한 재담도 늘어놓지 않았다.
오방색으로 세운 깃발을 꽃은 대나무가 앞서고 묘한 연기를 뿜어내며 혼백을 모신 영여(靈輿)가 뒤를 쫓았다.
종구쟁이의 종소리에 맞춰 향도꾼들이 한 걸음씩 옮기며 앞으로 나아가니 사방에 북망가(北邙歌)가 울려 퍼졌다.
온량거를 장식해야 할 오방천과 꽃술은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검은 천 하나만을 덮어 두었다.
온량거의 가장 앞줄에는 상복을 입은 당태위가 걸었고 그 뒤로 당가의 수뇌들과 방계의 주인들이 줄을 이었다.
문제는 그들의 손에 잡혀 있는 서슬 퍼런 무기에 있었고 얼굴에 떠오른 차디찬 분노에 있었다.
당가의 직계뿐 아니라 방계의 무인들까지 상복을 입고 뒤따르니 그 행렬이 해넘이 산까지 이어졌다.
“뭔 일이랴?”
“당 가주가 죽었다는구먼.”
“그려? 잘됐구먼. 잘됐어. 살아서 못된 짓을 얼마나 많이…….”
행렬을 바라보던 마을 어귀 노인들이 수군거렸다.
스걱.
“허헉!”
아무도 모르게 한 귓속말에 노인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피를 사방으로 뿌려 적신 당가 무인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고 함께 대화하던 노인을 귀기 어린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더 이상의 수군거림은 없었다.
입을 떼고 당가에 대해 손가락질한 자는 팔이 떨어져 나갔고 입을 뗀 자는 목이 잘렸다.
놀라 달려왔던 관인들도 그 서슬이 퍼런 모습에 감히 제제하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멈추시오!”
장례 행렬이 밤새 걸어 간양의 하루 거리 전인 자양에 도착했을 때, 정천맹 서남 지부의 무인 오십이 앞을 가로막았다.
고삐를 잡아 멈춘 말들이 거칠게 투레질하며 쉬지 않고 달려온 티를 내었다.
고일태는 행렬을 이룬 어마어마한 숫자에 잔뜩 위축되었지만 지금은 당가를 막아야 함을 알았다.
아무리 분노가 극에 이른 당가라 할지라도 정천맹의 힘을 믿었기에 두려움을 덜어 낼 수 있었다.
“정천맹 서남 지부장 고일태라고 하오!”
그가 신분을 밝히자 행렬이 걸음을 멈추었고 종소리가 그쳤다.
“당가에 애도를 표합니다. 하지만 이쪽 길은…….”
“비켜나시오!”
만독전주 당욱이 분이 가득 찬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아니 됩니다. 더 이상은 아니 됩니다. 이러시면 곤란…….”
푸하학!
목이 날아가 버린 고일태의 몸이 폭포 같은 피를 솟구쳐 올렸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지부의 무인들은 물론 당가의 인물들까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걸음을 멈추어도 좋다고 했는가?”
잔인하게 깔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태위였다.
십 장이나 떨어진 곳에서 그저 손을 휘저어 버린 것만으로 서남 지부장 고일태의 목이 날아가 버렸다.
“가, 가주!”
당욱이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으로 당태위의 앞에 섰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는 정천맹의 서남 지부장입니다. 아무리 진가에 혈채를 물으려 간다 하지만 정천맹과 척을…….”
파악!
머리가 터져 나갔다.
당구독의 숙부이며 자신에게 조부뻘인 당욱의 몸뚱이가 속절없이 바닥을 뒹굴었다.
당태위는 눈 하나 찡그리지 않고 당욱을 죽였다.
“이 무슨 짓인가!”
원로원의 노회한 무인들이 노성을 터트리며 당태위를 질책했다.
“늙은이들…….”
“뭐라?”
시커먼 독기가 당태위의 손을 따라 휘저어졌고 채찍처럼 원로원 노인들의 모가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크어억!”
순식간에 독에 중독되어 버린 원로원의 노인들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졌다.
녹빛으로 물든 그들의 얼굴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고 경련하듯 온몸을 떨다 숨을 거두었다.
“또 있느냐?”
“…….”
당가를 향해 묻는 물음이 그 긴 행렬의 끝까지 울려 펴졌다.
미친 짓이다.
제 아비의 죽음으로 미쳐 버린 것이다.
정천맹의 무인도 모자라 인척까지 제 손으로 죽인 당태위는 분명히 미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가에 겁쟁이는 필요하지 않다. 당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당가는 두려워하지 않으며 당가는 막아서는 모든 것에 당당히 맞선다. 지나간 길에는 피가 강을 이루고 시체가 산이 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이 당태위의 당가다.”
당태위의 눈동자가 점점 더 검게 변해 갔다.
당가의 인물들은 당태위의 말이, 행동이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한마디의 말도 신음도 내뱉지 않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사천의 왕이었다.
네 살배기 꼬마라 할지라도 칠십 노인에게 호통을 치고, 자신이 잘못했다 해도 되레 피해자가 고개를 숙여야 하는 곳이 당가였다.
“나의 당가에 패배자와 겁쟁이는 필요하지 않다.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웬일인지 피를 보고 난 이후부터 당가의 무인들의 눈동자에 몽롱함이 서려 있었다.
당태위는 고개를 돌려 겁에 질린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죽어 버린 고일태를 바라보는 지부의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당가의 앞을 막은 자들이다. 목을 잘라 온량거의 꽃으로 쓰라.”
당태위의 잔인한 말이 떨어지고 기겁하며 도망치는 무인들을 향해 당가의 무인들이 그 뒤를 덮쳤다.
비명 소리와 고통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쏟아진 핏물이 들판에 고랑을 이루어 흘렀다.
잘린 머리는 당구독이 누운 관에 꽂혔고 덮었던 검은 천은 붉게 변해 갔다.
당태위는 그렇게 사천을, 지나는 길을 지옥도로 만들고 있었다.
* * *
푸드득.
“어? 이건 뭐야? 서남 지부의 적구(赤鳩) 아냐?”
정천맹 흑선 통이각(通耳閣).
전서구의 관리를 맡고 있던 철량개는 갑자기 날아든 붉은 비둘기를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통칭 적구라 불리는 붉은 비둘기는 일반 전서구들과 달리 하루 오백 리를 나는 긴급한 내용을 전달할 때 사용되었다.
“거참, 적구가 날아온 지가 언제인지. 사도련이라도 쳐들어온 건가?”
전서구의 발에 매달린 작은 통을 열어 본 철량개는 정지한 듯 멈춘 채 눈을 부릅떠야 했다.
“다, 당구독이 죽어? 간양으로 갔다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개방 사천 지부를 비롯한 사천의 곳곳에서 적구들이 통이각에 줄지어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이게 뭐야!”
철량개는 전서들을 정리할 틈도 없이 구겨 쥐고 청초각을 향해 달렸다.
흑선에서 분류하고 말고 할 시간이 없었다.
“야! 지금부터 오는 전서는 모조리 청초각으로 들고 와!”
철량개가 들고 온 전서의 내용에 제갈휘문은 휘청거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당구독을 실은 온량거 이동
@자양, 서남 지부장 고일태 피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적힌 전서를 읽어 내리는 와중에도 통이문에서 전서들이 줄지어 도착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제갈휘문은 조금도 예측하지 못한 움직임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군사, 서둘러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이러다가는 간양이 쑥대밭이 될 겁니다.”
철룡개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 제갈휘문은 매서운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재 간양 진가의 상황은?”
“이 공자 진소강의 성년식 관례가 치러지고 있습니다.”
이미 개방 사천 지부에서 그에 관한 내용이 수도 없이 전해져 있었다.
“참가인은 누구누구인가?”
“아미의 멸절사태를 비롯해 청성의 명진자, 운남 대족장…….”
청초각 학사의 입에서 쟁쟁한 고수들과 사천을 대표하는 이들의 이름이 쏟아져 나왔다.
다행히 성년식 중이라 이름난 고수가 있으니 초반의 방비는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 장의 전서가 그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당태위, 출관 후 만독해를 대성한 것으로 보임. 오존에 근접한 독성을 이룬 것으로 판단]
“망할!”
전서가 그의 손에서 와락 구겨졌다.
‘진소청이 진가로 돌아갔다는 사실은 흑비가 전해 왔다. 심마에 빠진 검존을 깨어나게 했다면 그의 무위는 최소 오존급. 하나…….’
진소청이 있어서 일단은 다행이었지만 당가가 작심한 듯 길을 나섰다.
“진가에 있는 자들 중 전투를 할 수 없는 자들을 제외한 무인들의 수는 얼마인가?”
급해진 물음에 청초각의 학사가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건 정확하지 않습니다. 적도로 구분된 것이 아니기에…….”
“괜찮다. 추정하라.”
“진가의 본 무인과 표사들까지 포함했을 경우 진가신을 포함해 이백. 기타 연회에 참석한 자들을 포함하면 무인들의 수는 약 육백에 못 미칩니다.”
“젠장…….”
이천 대 육백.
진소청, 멸절사태, 모자겸, 진소강까지…….
그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너무나 약한 전력이었다.
“현재 당가의 위치는?”
“자양을 지나 진가의 반나절 거리에 있습니다.”
“미치겠군. 알겠다. 계속해서 전서를 모아 오라. 취합은 필요 없다. 날아오는 정보를 모조리 가져와라!”
“존명!”
명을 내린 제갈휘문은 온 힘을 다해 맹주전을 향해 달렸다.
지금도 충분히 머리가 복잡했다.
얼마 가지 않으면 맹주위의 승계가 있을 예정이었다.
또한 남궁세가에 대한 의심, 천목산에서 일어난 일들, 그리고 유괴된 아이들에 관한 정보와 마천의 주구로 의심되는 세작들에 대한 조사까지.
수많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근래에 잠도 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당가라니.
머리가 아프다 못해 깨질 것만 같았다.
‘일단은 무마해야 한다. 최대한 빨리 삼단의 무인들을 파견해야 해! 지금으로서 진가는 무조건 살려 내야 한다. 제발…… 제발, 버텨 주기를…….’
제갈휘문은 맹주전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거세게 열어젖히고 뛰어들어 갔다.
“오, 군사께서 어쩐 일이신가?”
“…….”
그를 처음 반겨 준 것은 차기 맹주인 남궁천세였다.
새로운 의심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그를 대하는 것은 껄끄러웠지만 제갈휘문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와 계시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근자에 업무가 바빠…….”
“괜찮…….”
웃으며 손을 내미는 남궁천세를 무시한 제갈휘문은 방유현을 향해 다가갔다.
“맹주!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방유현은 제갈휘문의 얼굴에 시급함이 떠올라 있는 모습에 그가 내민 정리되지 않은 전서들을 받아 들었다.
“이건?”
“삼단의 무인들을 급파해야 합니다. 맹주령을 내려 주십시오.”
“음…….”
방유현이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다가와 전서를 읽은 남궁천세가 끼어들었다.
“안 될 말이오.”
“…….”
방유현과 제갈휘문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남궁천세가 느긋한 얼굴로 말했다.
“당가와 진가의 마찰은 이미 몇 해 전부터 있어 온 일. 또한 당 가주가 죽었다면 이는 당가와의 원한 관계가 아닌가?”
“물론…….”
“물론! 당가가 서문 지부의 무인들을 죽인 것은 과한 처사이며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겠지. 하지만 군사께서 삼단의 무인을 급파하자는 이유는 진가를 돕기 위함이 아닌가?”
“…….”
“해서 동의할 수 없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사로이 오대 무가에 소속된 당가일세. 진가 역시 엄밀히 따지자면 무가의 한 갈래. 서로의 원한 관계마저 맹에서 제지한다면 이는 반발을 불러 올 수 있는 일이야. 맹주님과 군사의 독단으로 처리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네. 마땅히 맹의 수뇌들이 논의한 다음에 결정을 내려야 하지.”
욕설이 나올 뻔했다.
“맹주, 전권으로 명을 내려 주십시오.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당가가 이동하는 병력이 무려 이천입니다. 진가로서는 역부족입니다. 또한 청성과 아미, 운남의 대족장까지 있습니다. 이 일로 새로운 문제가 생길지도 모를 일입니다.”
“반대합니다.”
방유현이 맹주령을 내어 주려는데 남궁천세가 또다시 반박했다.
“이는 당면한 문제이지만 차기 맹주로서 안고 가야 할 문제. 저는 반드시 맹의 회의를 열어 공론화한 뒤에 결정을 내려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망할…….’
제갈휘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남궁천세의 반대로 결국 맹주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쾅!
거칠게 문을 열고 청초각으로 돌아온 제갈휘문은 지체 없이 묵영단을 찾아갔다.
“초사(初沙).”
“대기 중입니다.”
“흑비가 없는 이 시점에서 네가 묵영단을 이끌어라. 진가는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존재다. 묵영단 비마대 일백을 이끌고 지금 즉시 사천을 도와라. 만약, 여의치 않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흑비와 진소청 둘만은 반드시 구해야 한다.”
“존명!”
‘초사’라 이름 불린 무인은 대답과 동시에 사라졌고 제갈휘문은 제 손톱을 물어뜯었다.
‘제발…….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