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38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38화
37화. 악인은 악인답게
“남궁무한, 네가 마천의 주구였나?”
“아니, 어, 어떻게?”
환영곡 십삼 위의 정체는 다름 아닌 오검 남궁무한이었다.
“멍청하긴. 괜히 흔적을 남겨 놓은 줄 알아? 덕분에 손쉽게 따라오긴 했지만.”
“…….”
십삼 위, 아니 남궁무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넌 누구냐?”
“나? 막야.”
“막야?”
“그래. 내가 지금 화가 많이 났거든. 저 새끼 죽여 버리고 싶었는데, 너 만나려고 꾹꾹 눌러 참았다. 이제 그 보상을 받아야겠지?”
소청의 눈에 서서히 살기가 떠올랐다.
칠 척의 거한이 붉은 눈동자로 남궁무한을 바라보았다.
턱.
“아니…… 왜…….”
폭마는 망설임도 없이 남궁무한의 아귀를 잡아 벌리고 입안에 작은 구슬 하나를 집어넣었다.
“멍청하게 길 안내나 해 주다니.”
강제로 입을 닫은 거한은 남궁무한을 발로 찼다.
꽈릉!
남궁무한의 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화기가 뿜어졌고 폭발음과 함께 육편이 사방으로 솟구쳤다.
“어이쿠 잔인하네.”
차갑게 가라앉은 소청의 목소리에서는 한기가 풀풀 날렸다.
“너는 마천의 주구겠지?”
“뭐?”
폭마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아, 대답 안 해도 돼. 살려서 마천에 대해 알아보려 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 널 죽여야겠어.”
“웃기는 놈이군. 마천 십삼세의 주인 중 하나인 나를 죽인다고?”
“그래. 죽일 거야.”
싸늘하게 다가서는 소청의 단전으로 회음의 기운이 몰려들어 태극을 이루기 시작했다.
폭마라는 자는 강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피부를 따갑게 찔러 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 상관이 없었다.
죽인다.
소청은 애초에 진다는 생각 따위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새롭게 얻은 힘이 그의 자신감을 더해 주고 있었다.
“현 정천맹의 세작들, 그대의 작품인가?”
“응? 어떻게 그걸?”
“그것도 대답 안 해도 돼. 이젠 주저리주저리 네놈들 말 따위 듣고 싶지도 않아.”
“…….”
“그러지 말았어야 해. 아이들…… 한창 뛰어놀 나이잖아? 네놈들 목적을 위해서 그 많은 아이들을 폭멸마동을 만들기 위해서 희생하다니 말이야.”
폭마의 붉은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놈.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냐?”
“봤거든. 오래전에. 넌 그래서 죽는 거야.”
“뭐? 크핫핫핫!”
폭마가 대소를 터트렸다.
“재미있군.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뭐? 나를 죽여? 좋아. 광오하군. 하지만 상대가 틀렸다. 너는 여타의 쓰레기들처럼 몸을 숨기고 지켜보기만 했어야 했다.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 오만함으로 인해 너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남궁가의 이 버러지처럼.”
폭마는 비릿하게 웃으며 가볍게 손을 떨쳤다.
그 순간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살기가 유형화되어 소청을 향해 쏘아져 나왔다.
“고작, 나를 둘러싸고 더러운 살기를 피워 대는 이따위 것들을 믿는 거야?”
순식간에 뒤덮는 마천의 무인들에 의해 소청의 모습이 감춰졌고 소청의 양손에 각기 다른 기운이 어렸다.
“멍청한 놈이군. 설사 백대 고수라 할지라도…….”
폭마가 소청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며 몸을 돌리는 순간, 막대한 기운과 함께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
우르릉!
천둥소리가 세상을 뒤흔들었고 소청을 향해 거멓게 달려들었던 마천 무인들 틈새로 새하얀 빛 무리가 사방으로 뻗어져 나와 세상을 뒤덮었다.
꽈광!
거대한 폭발이 산자락을 집어삼켰다.
나무뿌리가 통째로 뽑혀 휩쓸려 나가고 대지가 뒤집혔다.
거대한 용의 아가리가 지면을 물어 뜯어낸 것처럼 십 장여의 지형이 보기 흉할 정도로 변해 버렸다.
폭발에 휩쓸려 버린 마천의 무인들 중 눈을 뜨고 있는 자는 채 열을 넘지 못했다.
“이, 이런…….”
섬광이 뻗어 나올 때 급히 물러났던 폭마와 그의 뒤에 있던 수하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차자자작!
금속성이 울렸다.
피윳!
그 순간 한 줄기 섬광이 쏘아져 폭마의 어깻죽지를 꿰뚫었다.
“큽!”
어깨를 꿰뚫은 섬광은 한 자루의 창이었다.
패월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데 분명 어깨를 꿰뚫었다 생각했는데 허상에 불과했다.
잔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차아악!
지면에 쓸리듯이 멈춰 선 소청은 창극을 슬쩍 바라보았다.
창날에 옅은 핏자국이 있었다.
소청은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폭마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그래. 제법이네. 그 정돈 해 줘야지. 그래야 죽일 맛이 나지.”
“꽤, 꽤나 빠른 놈이군. 나의 속도를 쫓아오다니.”
태연한 척했지만 소름이 돋아 올랐다.
너무 빨랐다.
눈이 아닌 기운의 흐름을 느낄 새도 없이 창대가 폭사하듯이 찔러 왔다.
마천 십삼세에 오른 이후로 자신을 상대할 자는 몇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놀랐지? 좀 더 놀라게 해 줄게.”
또다시 몸 안에 두 개의 기운을 모아 태극을 이룬 소청이 발을 굴렀다.
그의 신형이 갑자기 공간을 뛰어넘어 눈앞에 나타나 창을 뻗어 오자 폭마는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소매를 떨쳤다.
피피픽!
눈앞에 심지가 끝까지 타 버린 구슬 모양의 작렬탄 열 개가 나타났다.
꽈과과광!
일보월하로 쭉 하고 뒤로 물러났지만 폭발의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어깨에 상처를 입었다.
치이이-.
강렬한 폭발음에 귀가 먹먹해졌고 불길이 옷자락을 태웠으며 피부에 옅은 화상 자국이 생겨났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런 자잘한 상처 따위야 아무렇지 않았다.
이전보다 더 강한 타격의 느낌이 창대를 통해 느껴졌었다.
“크윽…….”
휘두르고 있던 피풍의로 몸을 가리며 나타난 폭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져 있었다.
옆구리에 짐승이 뜯어 먹은 듯한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몸을 뺀 소청과 달리 폭발의 영역 안에 있었음에도 화상이 없었다.
“호오? 신기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네.”
소청이 창을 비틀어 잡으며 또다시 움직였다.
“이 젠장할 놈!”
열이 뻗친 폭마가 허공에 가득하게 폭뢰를 뿌리기 시작했다.
꽈과과광!
이전과는 다른 폭발.
허공에서 터진 폭뢰는 수십여 장에 불비를 쏟아부었다.
소청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불길에 휩싸여 버렸다.
“큭큭큭, 멍청한 놈. 알량한 무공으로 나 척세경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더냐?”
폭마 척세경.
원래 그는 뛰어난 무인이었다.
지닌 무위만으로도 능히 정천맹 백대 고수 서넛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고수였다.
하지만 마천이라는 곳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백대 고수 정도 되는 무인들은 셀 수 없이 많았고, 마천 십삼세의 주인이 되자면 오존에 필적하는 힘을 지녀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폭뢰였다.
연구와 연구를 거듭해 폭뢰 사용법을 무공에 접목한 그는 비록 말석이라 할지라도 마천의 열세 번째 자리를 얻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다.
“수하들이 아깝긴 하지만 또 구하면 될 일이지. 힘을 가지고 싶어 하는 낭인들은 넘쳐 나니까.”
그는 소청에 의해 죽은 수하들에게 일말의 동정도 느끼지 않았다.
죽었으리라 생각하며 몸을 돌리는 순간.
“응?”
갑자기 불길 속에서 새하얀 궤적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궤적은 점차 빨라졌고 순식간에 주변을 빨아 먹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
작은 바람이 점차 그 속도를 더해 가더니 주변의 대기가 모조리 빨려 들어갔다.
“이, 이게…….”
소용돌이처럼 주변을 빨아들이는 힘에 대항하기 위해 두 발을 지면에 박아 넣은 폭마의 미간이 잔뜩 좁아졌다.
“씨발, 얍삽한 새끼.”
창대를 멈춘 소청의 모습은 마치 타다 만 장작 같았다.
그을려진 머리칼에 타다 남은 옷이 그의 중요 부위를 겨우 가리고 있었고 드러난 피부는 화상 자국이 선명해져 있었다.
“…….”
“구경 잘했다. 이 개자식아.”
창극을 바닥으로 세운 소청은 잔뜩 열이 오른 얼굴로 기운을 역행시켰다.
우우웅!
갑자기 지면을 향했던 창대가 깊은 울음을 토하며 떨리기 시작했고 단전에 두 개의 기운이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다 두 번째 태극을 이루었다.
이전보다 단전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더욱 강해졌다.
“자, 간다…….”
픽.
순간 소청의 모습이 꺼지듯이 사라졌다.
놀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폭마는 사방에 폭뢰를 뿌려 대었다.
“기폭!”
피풍의로 몸을 가리며 손가락을 한 번에 튕기자 수십 갈래로 나뉜 지풍이 폭뢰를 때렸다.
콰과과광!
‘감월식 수월의 잔영!’
몸에서 빠져나온 기운이 거대한 막으로 변해 폭발로부터 소청을 보호했다.
‘팔괘합일 천뢰충파!’
내지른 소청의 창에서 ‘지지직’ 하는 전극이 튀어 오르며 섬전과 같은 기운이 불길을 뚫고 쏘아져 나갔다.
“크으윽!”
폭발의 여파에서 새하얀 기운이 쏘아져 나오자 폭마가 급히 몸을 빼내었지만 소청의 속도는 예상을 넘어섰다.
이전의 속도와는 비교할 바가 되지 못했다.
결국 완전히 피하지 못해 팔 하나가 전격에 닿으며 떨어져 나갔다.
처억.
물러나 무릎을 꿇은 폭마는 팔이 사라진 어깨를 부여잡고 얼굴을 찡그렸다.
“크으…….”
하지만 멈춰 선 것은 소청도 마찬가지였다.
급격한 기운을 사용한 후유증 때문인지 팽팽하게 당겨진 근육들이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어디서 저런 놈이……. 장차 마천에 큰 장애가 될 것이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폭마는 자신을 서늘하게 노려보고 있는 소청을 보며 품에서 피리 하나를 꺼내 불었다.
삐이-익!
또 무슨 짓을 꾸미는지 염려가 된 소청이 급히 단전에 기운을 채워 넣고 몸을 날렸다.
꽈앙! 쾅! 콰앙!
하지만 도대체 몸에 얼마나 많은 폭뢰를 감추어 둔 것인지 사방에 폭발이 난무했다.
‘젠장!’
다시 태극의 기운을 쓰다가는 몸의 근육이 버텨 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소청은 폭발의 범위를 이곳저곳으로 피해 다녔지만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보월하를 펼쳐 보았지만 그때마다 뿌려진 폭뢰로 인해 제대로 된 공격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턱.
‘어?’
무언가에 부딪쳤다.
어린아이.
막 아홉 살이 되었을 것 같은…….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폭마가 피리를 입에 물고 스산하게 웃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이 개새끼야!”
삐리-릭!
폭마의 피리 소리가 날카롭게 변했다.
아이의 눈에서 화광이 일었고 온몸이 붉게 달아오르며 터져 나갔다.
꽈르르릉!
그 어떤 폭뢰보다 강렬한 폭발이 천목산을 뒤흔들어 놓았다.
휘오오오.
바람이 지나가며 드러난 천목산의 한쪽 산자락 절반이 통째로 날아가 있었다.
폭멸마동.
열 살 전후의 아이를 폭뢰로 바꾸는 저주받은 술법이었다.
살아 있는 폭탄이 된 아이는 거대한 전각 서너 개쯤은 통째로 날려 버릴 만큼 강했고, 그저 어린아이의 모습일 뿐인 폭렬마동으로 인해 정사파는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 했다.
아무리 무인이라도 아이를 무턱대고 의심하거나 칼을 들이밀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크으으으으…….”
뿌리째 뽑힌 나무에 겨우 몸을 지탱한 소청의 몸은 피투성이였다.
기운으로 고막을 보호했음에도 귀가 먹먹하고 세상이 빙글거리며 도는 것 같았다.
“이 개자식. 결국…….”
소청의 잘게 떨리는 눈동자에 짙은 분노가 피어올랐다.
폭멸마동이 된 아이는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뛰놀며 해맑게 웃어야 하는 아이는 저주받은 술법에 의해 그저 살상 무기로 삶을 마감했다.
“큭큭큭. 미완성이긴 해도 마동의 폭발에서 살아남을 줄이야. 정말 대단해. 하지만 그 때문에라도 너를 반드시 죽여야겠다.”
폭마가 품에서 폭뢰를 꺼내 들었다.
우웅.
그 순간 소청의 몸 안에 또다시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세 번째 태극.
근육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단전이 터져 버릴 것처럼 위태로웠다.
“죽어…….”
팟!
소청이 사라졌다.
폭마의 손에서 폭뢰가 사라졌다.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 자신했던 소청이 그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푸욱.
명치를 뚫고 나온 창.
투두둑.
바닥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창에 꿰여 주저앉아 버린 폭마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폭뢰와 작렬탄이 아닌가?
“내가 예전에 배수였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나 스스로도 참 나쁜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정말 잘 배운 기술이란 생각을 해.”
소청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폭마의 아가리를 벌렸다.
“어떤 아픔인지 모르지? 나도 몰라. 그런데 적어도 너는 알아야지. 아이들을 죽인 너라면 꼭 알아야 해.”
소청은 땅에 떨어진 폭뢰와 작렬탄을 폭마의 아가리에 집어넣었다.
턱이 빠지고 입가가 찢어지도록 쑤셔 넣었고 몇몇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으읍! 으으읍!”
“왜? 고통스럽나? 아파? 잘됐네.”
소청은 싸늘하게 웃으며 폭마의 피풍의를 벗겨내 둘렀다.
“저승에 가서 기다려. 네 친구들 하나씩 찾아내서 죄다 모아서 그 곁으로 보내 줄 테니까.”
어린아이가 곤충을 괴롭히듯이 소청은 폭마의 나머지 한 팔을 강제로 뜯어내고 두 다리를 꺾어 버렸다.
그리고 그의 몸에 창대를 쑤셔 박아 지면에 고정시켜 버렸다.
“아깝네. 쓸 만한 물건이었는데. 기념으로 주지. 어차피 수명이 다 됐거든.”
소청은 폭마의 입가로 빠져나온 폭뢰에 불을 붙이고 비틀거리며 빠져나왔다.
심지가 모두 타기도 전에 소청은 과도한 기운을 한 번에 사용해 버린 충격으로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졌다.
‘제길…….’
치이이익.
꽈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