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144화
무료소설 혈하마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144화
혈하-第 144 章 아버지 존함이 뭐요?
“책임자라면 주인?”
“그냥 가영이라고 불러 주세요.”
“여기는 뭐하는 곳이오?”
“뭐라 그럴까……그냥 일종의 휴양소라고 해두죠, 뭐.”
“휴양지?”
“방주님의 각별한 분부가 있었어요. 당신을 극진히 보살피라고……”
배가영은 야릇하게 웃었다.
“이상하게 생각할 건 없어요. 당신이 방주의 은인이나 마찬가지니까 당연히 그 정도 대우를 받아야겠죠. 하지만……”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방주가 당신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요.”
“마음에 들어 한다?”
“하긴 나 같아도 당신처럼 멋있는 남자에게는 끌리고 말았을 거예요.”
사군보는 배가영을 한 번 힐끔 쳐다본 뒤에 상체를 움직이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한데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배가영이 섬섬옥수로 그의 가슴을 살며시 눌러 다시 자리에 눕히며했다.
“아직 움직이면 안돼요.”
사군보는 쓴 입맛을 다셨다.
‘움직이지 못하는 신녀방주를 움직이게 해준 대신 이번에는 내가 누어 움직이지 못하는 꼴이 되어 버렸으니……’
아무튼 사군보는 정말 오랜만에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휴식이 아니라 고역이었다.
나 어때요?
내 몸매 괜찮죠?
나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나는 왜 당신처럼 멋있는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꼭 백마탄 왕자가 아니라도 괜찮은데 말이에요.
저 말이죠, 우리 사랑 한 번 해보지 않을래요?
방주 몰래 한 번만 안아 줘요. 그리고 시치미 뚝 떼는 거죠, 뭐……
재잘재잘……
종알종알……
하루 종일 옆에 붙어서 떠들어대는 그녀 때문에 사군보는 정말이지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다.
그냥 재잘대면 말도 안 한다.
사랑하고 싶다느니, 당신은 참 멋있는 남자라느니……
유혹도 아니고 장난도 아닌 어중간한 행동을 보여 가면서 사람을 달달 볶아대는 것이었다.
저걸 그냥 한 번 꽉 눌러줘서 입을 다물게 만들어 버려?
그러나 그랬다가는 재잘거리기 좋아하는 그녀가 신녀방 전체에 소문을 퍼뜨릴지도 모른다. 나 누구하고 어떻게 했다고 말이다.
그런 점만 빼놓는다면 그녀는 정말 괜찮은 여자였다.
아무튼 요양하러 들어온 사군보는 그녀 때문에 병이 도질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
달빛이 소리 없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정말 살만한 날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하루 종일 배가영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군보는 팔베개를 하고 침상에 누운 채 우두커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내일부터는 움직여 봐야겠다.’
사군보는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띠리링…… 띠링……
그가 생각에 잠겨있는데 어디선가 감미로운 금음(琴音) 소리가 들려왔다.
금음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사군보는 흠칫했다.
‘상당히 뛰어난 솜씨를 가진 음률이구나.’
눈을 감고 잠시 금음을 듣던 사군보는 입가에 돌연 한 가닥 미소가 번져 올랐다.
‘후후훗…… 꽤나 운치 있는 유혹이로군. 나를 만나고 싶다고?’
갑자기 무슨 소린가?
‘계류 앞 정자로 나오라고?’
그렇다면 누군지는 모르지만 음률에 사연을 담아 편지처럼 띄우고 있단 말인가.
정녕 놀라운 일이었다.
사군보는 팔다리를 한 번 움직여 보았다.
“괜찮군. 이 정도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가 남자를 부르는데 안 가면 안 되지.”
***
맑은 물이 흐르는 계류의 한쪽 숲가에 한 채의 정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정자 안에는 한 여인이 무릎 위에는 금(琴)이 놓여 있었다.
음률은 거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여자는!’
정자 안의 여인을 보며 사군보는 한 줄기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는 며칠 전 만났던 환희였다.
밤도 아름답고.
정자와 음률이 조화된 분위기도 아름답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그 속의 여인, 환희였고 그녀와 하룻밤 맺은 환상적인 정사였다.
환희는 칠흑 같은 수발을 묶지도 않은 채 내려뜨리고, 하얀 얼굴은 조금 숙인 채였다.
감은 듯 뜬 듯 지긋한 두 눈에 길고 긴 속눈썹이 몹시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더욱 매혹적인 것은 그녀의 분위기였다.
약간은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밤에 동화되어 있었다.
마치 밤의 정화로 태어난 밤꽃처럼 그녀의 분위기는 참으로 특이했다.
그 때문일까?
‘분위기 죽여주는군.’
이런 생각을 하며 사군보는 정자 안의 환희를 향해 다가갔다.
환희는 인기척을 느낀 듯 손가락을 멈추며 천천히 눈길을 돌렸다.
사군보는 정자로 올라서며 웃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잘 지냈어요. 공자님은요?”
“나도 푹 쉬엇답니다.”
“다행이네요.”
“근데 날 부른 사람이 낭자요?”
“그래요.”
환희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섬섬옥수로 쓸어 올리며 조금은 음울한 눈빛으로 사군보를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와주셔서……”
사군보는 어깨를 으쓱했다.
“미녀가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오.”
사군보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좋은 밤이군. 미녀와 음률…… 거기에다 술까지 있다면 금상첨화겠네.”
환희는 웃었다.
“술도 준비되어 있어요.”
“오! 정말 분위기를 아는군.”
환희는 무릎 위에 있는 금을 살며시 내려놓고 뒤쪽에서 소반 하나를 집어 들어 앞에 놓았다.
술과 간단한 안주였다.
“역시…… 당신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더니 계속 마음에 드는구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에요.”
한희는 살며시 웃으며 술병을 들었다.
그녀의 웃음은 극히 희미해서 사실 웃음이라고 보기에는 어딘지 어색한 점이 있었다.
하나 그 역시 대단한 매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사군보는 잔을 받아 약간 입술을 축인 다음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낭자의 아버님은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뜻밖의 물음이었는지 환희의 눈이 의아한 빛을 띠었다.
“그건 왜 묻죠?”
“대답부터 해요.”
“소강웅(蘇崗雄)이라 합니다만?”
“그럼 낭자의 성은 소씨고…… 부친께선 낭자의 이름을 뭐라고 지어주셨죠? 아, 환희라는 가명 말고 진명.”
“그게 가명이란 걸 아셨어요?”
“그걸 모르면 바보죠. 난 멍청이가 아닙니다.”
“그럼 제가 멍청이네요. 그런 가명을 만들었으니.”
“내 질문에는 아직 대답안했는데.”
“소(素)라고 지으셨어요.”
“소소…… 낭자의 부친은 정말 대단한 작명가가시구려. 그런 아름다운 이름을 짓다니.”
“풋……!”
사군보의 너스레에 여인 소소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웃을 때의 그녀에게서는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군보는 말했다.
“한 가지만 더 물어 봅시다.”
소소는 아름다운 눈빛으로 사군보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군보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낭자는 10년 전의 일을 기억할 수 있어요?”
묻는 말마다 엉뚱하기 그지없었다.
“10년 전? 어느 정도는 기억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그 당시 가장 기억에 생생한 일을 꼽으라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죠?”
소소는 의아했으나 천천히 대답했다.
“10년 전…… 그렇군요.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올해가 꼭 10년째 되는데……”
“쯧쯧…… 부모님을 일찍 여의셨군. 그걸 보고 조실부모라고 하는데, 낭자는 조실부모라는 말을 아시오?”
소소는 웃었다.
“알아요.”
“음…… 그렇게 어려운 말을 아는 것으로 보아 무식한 편은 아니군.”
“푸훗……!”
소소는 허리를 굽히며 웃었다.
사군보가 물었다.
“그건 그렇고…… 부모님이 10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그때 낭자의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 모르겠군. 아주 어린 나이였을 것 같은데……”
“아홉 살 때였어요.”
“고마워요.”
말이 끝나자마자 사군보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무엇인가 열심히 헤아리는 것이 아닌가.
“열 더하기 아홉은…… 에, 그러니까 열아홉……”
숫자를 계산하던 사군보는 슬쩍 소소를 쳐다보았다.
“열아홉, 낭자의 나이는 열아홉이군? 그러나 미안하지만 내 나이는 가르쳐 드릴 수가 없군.”
소소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사군보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장황하게 물어본 이유가 겨우 자신의 나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란 말인가.
소소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여자 꼬시는 것이 수준급이군요. 호호호호! 재미있어요.”
사군보는 씩 웃었다.
“재미? 성질나면 무서운 사람인데.”
“성질나서 무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사군보는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본 뒤에 소소의 얼굴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꺼냈다.
“그런데 나를 이곳으로 오라고 한 이유는 무엇이오?”
“그냥이요.”
“그냥?”
“네, 그냥요. 그냥 얼굴이나 한 번 보려고요.”
사군보는 정말 황당한 사람은 바로 낭자라는 듯한 시선으로 한참동안 소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술을 병째 집어 들고 나발을 불기 시작했다.
“화나셨어요?”
소소가 약간 침울해진 음성으로 묻자 사군보는 움찔하며 대뜸 어깨를 폈다.
“하하하…… 화가 나다니? 나를 뭘로 아는 거요? 여자보다 뭐가 달려도 더 달린 사내대장부가 그까짓 걸고 화를 내다니……”
“그런데 화난 얼굴 같아요.”
“잘못 보셨군.”
“술병도 통째로 들고 신경질적으로 마시고……”
“윽!”
사군보는 입으로 쑤셔 박았던 술병을 재빨리 빼내며 또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핫핫핫! 나는 원래 술을 이렇게 마시는 버릇이 있는 놈이오.”
“점잖은 자리는 못 가겠네요?”
사군보의 얼굴은 졸지에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버리고 말았다.
소소의 그 다음 말이 사군보의 기를 완전히 죽여 놓고 말았다.
“됐어요. 이제 그만 가보세요. 탄주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사군보는 멍하니 그녀만 바라보았다.
‘이런……이러면 안 되는데……’
혹시 전과 같이 뜨거운 밤을 보내는 게 아닐가 은근 기대했지만.
완존 헛 다리 잡았다.
***
배가영은 정말 연구 가치가 있는 여자다.
어떤 때는 세상에서 둘도 없이 정숙한 여인처럼 보였다가도, 어떤 때는 뭐 이런 여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황당하게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