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7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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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76화
75화. 황학루(黄鹤楼)
동정 악양(岳阳), 남창 등왕(滕王) 그리고 무한 황학(黄鹤).
사람들은 그곳을 중원 삼대 루라 불렀다.
황학루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동호(東湖)의 창강(长江)가의 사산(蛇山) 자락에 위치한 오 층짜리 누각은 멀리서도 볼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
크기만큼이나 화려하기 짝이 없는 누각은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패월, 주루로 모실까요?”
초사의 물음에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혁련휘가 옆에서 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주루라니! 그 무슨 전혀 고마움이 느껴지지 않는 소리인가!”
“뭐? 술을 마시고 싶다면서?”
“거참. 이 친구 풍류를 모르는구먼.”
“…….”
“황학비경이란 말을 들어 보지 못했는가?”
“황학비경?”
“당연하네. 주루는 황학의 겉모습일 뿐! 진정한 황학루는 황학비경에 있네.”
혁련휘가 가슴을 들이밀며 황학루의 전설에 대해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오래전 작은 주점(酒店)에 선인(仙人)이 지나가다가 벽에 한 마리 학(鹤)을 그렸는데, 그 모양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황학과 선인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누각을 짓고 이름을 황학루라고 불렀다고……. 그리고 그 벽이 위치한 곳이 바로 황학비경이다 이 말이야!”
“…….”
“진정한 주도가라면 응당 황학비경에 들러 술을 마셔야지. 여인들도 그곳이 더…….”
목적이 술인지 여인인지 모르겠지만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음흉하기는. 술만 마시자더니…… 속셈이 있었군.’
소청은 과장되게 행동하는 혁련휘의 마음을 눈치채고 피식 웃었다.
소청은 황학루가 어떤 곳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또한 황학의 정체도…….
“알겠네. 황학비경이라는 곳으로 가지.”
“크흐흐흐.”
음흉한 웃음을 지은 혁련휘가 발걸음을 돌리는데 초사가 난감하게 말했다.
“저, 소련주. 혹, 그 비경이라는 곳이 후원 천향당입니까?”
“어? 자네도 아는군. 헛헛. 이 친구 숨어 다니는 줄만 알았더니 제법 풍류가 있구먼!”
“그게…….”
초사의 모습에 소청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초사는 말없이 황학루의 한쪽 편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길게 늘어선 줄.
무인, 상인, 관인 할 것 없이 제법 있어 보이는 자들이 거드름을 피우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향당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알아.”
“예?”
초사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소청이 혁련휘를 바라보았다.
“크핫핫핫! 걱정 말게. 고작 예약 때문에 온 길을 물릴 수야 없지!”
“술은 저곳에서도…….”
“잠자코 보고 있어! 내 다 방법이 있으니까!”
초사의 말을 잘라 버린 혁련휘가 행렬을 지나치더니 입구로 다가갔다.
입구에는 제법 단련된 무인 둘이 신분을 확인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혁련휘가 방긋이 웃으며 손짓을 해 불렀다.
그들은 줄을 선 이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정문을 들어섰다.
“어찌하신 겁니까?”
“최고의 방법을 사용했지.”
“최……. 예?”
“소청, 자네가 오늘 이곳에서 금 한 관을 쓰고 갈 것이라 했네.”
‘이, 이 자식이…….’
마치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혁련휘의 얼굴에 고마움이 싹 가시는 것 같았다.
금 한 관이라니…….
자신이 아는 황학루라면 혁련휘는 굳이 예약 같은 번거로운 절차 없이 그냥 들어갈 수 있었다.
“야, 이…….”
소청이 얼굴을 찡그리는데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 민망함에 시선을 회피하게 만드는 나의(羅衣) 여인이 나비처럼 하늘거리며 달려 나왔다.
“상고옹~!”
그러고는 혁련휘의 품에 파묻히듯이 안겼다.
혁련휘는 여인을 으스러질 듯 끌어안고 소청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
“핫핫핫, 향아 가자. 그동안 잘 지냈니?”
“암요 상공. 그동안 왜 이리 뜸하셨어요?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리 재신을 끌고 왔잖니.”
“재신요?”
혁련휘를 따라 향이라 불린 여인이 고개를 돌리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랐다.
“어맛! 저, 야성미. 탄탄한 몸매! 너무 잘생겼다!”
“…….”
여인의 직설적인 말에 소청이 얼굴을 찡그렸다.
“자, 감탄만 하지 말고 들어가자! 내 오늘! 참았던 회포를 모조리 풀어낼 것이야! 저 친구의 돈으로! 크핫핫핫!”
힐끗거리며 돌아보며 배시시 웃는 향을 부둥켜안은 혁련휘가 안으로 들어갔다.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청이 피식 웃었다.
저 유쾌함 속에 음흉함을 감추고 있었지만 그마저 싫지 않은 친구였다.
“자네들도 모처럼 쉬도록 하지.”
“예?”
“한잔하라고. 그동안 고생했으니 한잔 사도록 하지.”
“저희는…….”
머뭇거렸지만 그의 얼굴에 참을 수 없는 욕구가 끓어넘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사내였으니까.
“됐어. 이쯤에서 자네들이 빠져 주는 것이 좋아. 저렇게 과장되게 연기하면서 여기까지 끌고 와 준 저 친구의 성의를 생각해야지.”
“예?”
소청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던 초사의 표정은 여전히 의문스러웠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지나는 여인들을 훑고 있었다.
“즐기도록. 비마대 전원 모두.”
“알겠습니다. 그럼 가볍게 술만…….”
고개를 숙이는 초사와 비마대의 모습에 소청이 피식 웃었다.
‘잘도 그러겠다. 쯧쯧. 그래도 걱정 마라. 돈값은 톡톡히 받아 낼 테니까. 크크크.’
초사와 비마대를 뒤로한 소청은 혁련휘를 따라 천향단에 마련된 비각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마치 올 줄 알았다는 것처럼 그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산해진미가 가득히 차려져 있었고 술은 종류별로 자기에 담겨 있었다.
이미 혁련휘는 향이라는 여인과 또 다른 여인을 양옆에 끼고 있었고 발을 친 건너편에서는 여인이 금을 켜고 있었다.
“어? 혼자 온 건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
담담히 말하며 앉는 소청의 말에 혁련휘가 물끄러미 바라보다 쓴웃음을 지었다.
소청은 이미 자신의 생각을 읽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젠장.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
“천향당을 고집할 때부터.”
“망할 친구 같으니. 애쓴 보람이 없네. 보람이 없어.”
혁련휘가 짜증스럽게 술을 들이켰다.
그가 소청을 황학루로 데려온 것은 사도련 예하의 한 세력을 소개시켜주기 위함이었다.
분위기를 눈치챈 기녀들이 혁련휘를 향해 다소곳이 인사를 하고 물러나 앉았다.
“원래부터 정체를 알고 있었나?”
소청은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자네 정말 신기하군. 이곳이 본 련의 예하임을 아는 자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래. 모를 거야.”
소청이 술병을 잡자 기녀가 다소곳이 다가왔다.
“됐어. 혼자 하지.”
“손님께서…….”
“쓸데없는 위험거리를 만드는 성격이 아니라서.”
당황한 여인이 물러났다.
“자, 이쯤 하면 되었고 대충 다 봤으면 그만 합석하는 게 어때? 휘와는 모르는 사이도 아닐 텐데?”
소청의 눈이 대나무 발 건너편에서 금을 켜던 여인을 향했다.
금음이 멈췄다.
그리고 발이 걷히자 절세가인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의 아름다운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러가거라.”
그녀의 말에 나의를 입은 시녀들이 공손하게 절을 하고 뒷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제법 눈썰미가 좋군요.”
“눈썰미라. 눈썰미가 좋은 걸 알았으면 내 머리 위를 지나다니는 쥐새끼도 좀 치워 줬으면 좋겠는데?”
“…….”
여인의 아미가 곱게 일그러졌다.
천장 위의 감시자들.
그녀가 아는 한 단 한 번도 은신을 들킨 적이 없는 고수였다.
“거봐. 알 거랬잖아. 괜한 시험은…….”
혁련휘가 안줏거리를 집어 먹으면서 핀잔을 주었다.
“소개를 해야 하나?”
“아닙니다. 진소청 공자의 위명은 이미 귀가 따갑도록 들려오고 있으니까요.”
“그럼 다행이고…….”
“저는 하오…….”
“됐어. 넌 몰라도 저 벽 뒤에 있는 분에 대해선 잘 알고 있으니까.”
이번엔 혁련휘마저 눈을 찌푸렸고 여인의 아미는 더욱 일그러졌다.
“상당히 무례하시군요.”
“나는 친구와 술을 마시러 온 사람이야. 저 친구의 얼굴을 봐서 참은 것이지. 숨어서 시험하는 이들에게 갖춰 줄 예의 따위는 없어.”
소청은 처음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여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것이 여인의 신경을 더욱 거스르고 있었다.
까득.
앵둣빛 입술이 곱게 일그러지고 고운 눈에 전의가 일어났다.
“그만!”
그그그긍.
짧은 질타와 함께 벽이 열리자 여인이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그리고 나이를 추측하기도 힘든 노파가 시비의 부축을 받아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소청은 이전과 달리 조심스럽게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진가의 소청이 하오문의 여제를 뵙습니다.”
“홀홀, 이미 중원을 떠들썩하게 하는 영웅이 그 같은 예를 갖추니 내 기쁘기 한량없소.”
“과찬이십니다. 황학께서 몸소 오셨으니 고개를 빳빳하게 들 수야 있겠습니까.”
소청이 빙긋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눈앞에 선 노파의 정체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황학(黃鶴) 예여화.
하오문의 첫 번째 여주인이자 섬뢰, 소련주 혁련휘와 함께 사도삼위의 또 다른 주인이었다.
“홀홀, 섬뢰가 그리 칭찬하길래 궁금하여 잠시 무례를 범했소. 앉읍시다.”
“…….”
그녀가 자리를 청하자 소청이 말없이 앉았다.
그녀의 나이는 알 수 없지만 무황이나 섬뢰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온 존재였다.
그리고 훨씬 더 오래 살아갈 존재였다.
신투로 이름을 날리던 때도 그녀가 있었으니까.
유일하게 자신의 은신을 찾을 수 있는 귀신같은 여인.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과 비슷한 은신술을 가진 여인이었다.
“나의 위치를 눈치챈 사람은 무황, 그분 이후론 처음이었소.”
‘무황이 눈치를 채었다고?’
소청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자신이 숨고자 한다면 무황마저 찾을 수 없으리라 자신했었다.
한데 아마도 오산이었던 모양이다.
“황학께서 숨고자 하셨다면 발견하지 못했겠지요.”
“…….”
자신을 낮추는 소청의 자세가 마음에 들었음인지 예여화의 얼굴에 주름이 더해졌다.
“소련주께서 좋은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좋은 일이에요.”
그녀가 마치 손주를 보듯이 바라보자 혁련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좋긴요. 저리 눈치가 빨라서 놀려 먹는 재미가 없는 친구입니다.”
“그런가요? 내가 보기에는 소련주께오서 더욱 좋아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쳇!”
혁련휘가 입을 삐죽거렸다.
“하면 인사는 대충 나누었으니 그대를 좀 알아야겠는데.”
“…….”
“그대는 누군가?”
소청이 예여화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같은 질문을 그같이 날카롭게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미소를 띤 얼굴이었지만 주름으로 인해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탁하기만 한 눈빛인데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진가의 소청이라 말씀드렸습니다만.”
“내 질문의 의미를 몰라 하는 말은 아닌 듯한데…….”
웃고 있음에도 진한 살기가 느껴졌다.
혁련휘 역시 갑작스러운 그녀의 분위기 변화를 눈치챈 모양인지 안색이 딱딱하게 변해 있었다.
“간양 진가의 대공자 진소청. 현재 무위 오존급.”
“…….”
“자네가 살아온 환경을 말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언제 어디서부터 달라졌는지 말해야 하는 것인가?”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만?”
“알 텐데?”
미소가 짙어진 만큼 살기도 더해졌고 오랜 삶을 살아온 노인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황학. 강하다. 이 정도면 거의…….’
구자겸까지는 아니어도 이제까지 만났던 마천의 세주들이나 오존보다 훨씬 강했다.
“문주, 어찌 이러십니까? 그는 제 손님입니다.”
보다 못한 혁련휘가 나섰지만 황학은 멈추지 않았다.
“물러나오. 소련주라 해도 련에 위협이 된다면 벨 것이오.”
“정말 이러실 겁니까?”
혁련휘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여차할 때는 소청을 구해야 했지만 예여화에게 칼을 들이밀 수는 없었다.
그녀는 사도삼위 중에서도 가장 강했고 소련주라는 지위에 버금갈 정도로 사도련 내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이미 금을 타던 여인까지 자신을 향해 검을 뽑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태연한 것은 소청뿐이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저를 죽이실 생각인 모양입니다?”
“그대의 대답에 따라 다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