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64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64화
63화. 그물을 찢어 놓다
수십여 명의 추적자가 강변을 훑었다.
무성히 자리를 채운 갈대를 살피는 그들의 눈에는 조금의 방심도 보이지 않았다.
풀이 누운 방향, 갈대 줄기가 꺾인 모양.
그리고.
“찾았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호각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흔적은?”
날 듯이 이동해 온 적호단주 팽만기의 말에 추적자의 손가락이 바닥을 향했다.
발자국.
은밀하게 남겨진 발자국이 갈대숲 속에 묻혀 있었다.
“한데 발자국의 방향이 이상합니다. 이쪽이라면 하남성 방향입니다.”
“하남?”
“예.”
“흠.”
팽만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북동쪽 방향에 위치한 하남성.
현재 무한을 중심으로 펼쳐진 천라지망의 일 열은 청룡단, 적호단, 황봉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이 열 이후의 세력이 바로 하남성이었다.
소림이 협조를 하지 않았기에 오대 무가와 중소 방파 무인들을 추가로 배치한 곳이었다.
“미쳤군. 이쪽 방향이라니.”
“그러게 말입니다. 부상자 둘을 데리고 천라지망의 가장 탄탄한 곳을 선택하다니…….”
“좀 더 살펴봐라. 놈들의 일행 중에 제갈휘문이 있다. 갑호비상령 시 발동되는 천라지망은 그가 직접 계획한 것이다. 그리 허술하게 도망칠 리가 없어.”
“예!”
팽만기는 개떼처럼 몰려 있는 무인들을 눈으로 쓸었다.
그는 제갈휘문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쫓기고 있다고 해도 허투루 행동할 자가 아니었다.
‘내가 만약 그라면…….’
문득 팽만기의 시선이 자신을 따르는 수하들의 시선을 훑었다.
‘응? 열둘?’
강변을 수색하는 자신의 조원들은 분명 열하나였다.
다시금 수하들을 하나씩 살피는데 첫 번째 보았던 수하가 마지막에도 있었다.
“너…….”
촤아악!
지목하려던 손가락이 잘려 나갔다.
“크윽!”
취리릭! 쩌저정!
무언가 휘돌려진다는 느낌과 함께 수하 열한 명이 모조리 바닥에 뻗어 버렸다.
“제법 눈치가 빠르네.”
“커억!”
하지만 싸늘하게 미소 짓는 소청의 얼굴을 보았을 때 팽만기의 얼굴에 창대가 틀어박혔다.
뻐어억!
이빨이 몽땅 나가 버린 팽만기는 눈을 까뒤집으며 주저앉았다.
삐이익!
소란이 생기자마자 사방에서 무인들이 개떼처럼 몰려들었다.
“저쪽이다!”
“놈이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외침에 소청이 스산하게 웃었다.
“큭큭큭. 좋아. 일 열의 북서쪽 맥을 끊었다.”
그리고.
우르릉. 콰쾅!
거대한 충격파가 강변을 휩쓸었고 접근해 오던 무인들이 모조리 튕겨 나갔다.
스스스.
바람이 불었지만 흔들릴 갈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소청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시체 하나에 학창의를 입혀 들쳐 메었다.
그리고 북서쪽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쫓아라! 놈들이다!”
“제갈휘문은 진소청이 업었다!”
제일 진의 시선이 모조리 북서쪽을 향해 집중되었다.
푸우.
푸우.
스무 개 남짓한 대롱이 숨을 뽑아내며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은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 * *
“단주! 적호단이 맡고 있던 북서쪽 일진의 연락선이 붕괴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접점이 끊어지는 바람에 보고가 늦어졌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일진의 남동쪽을 맡고 있던 청룡단 일 조장 남궁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멍청한 적호단 새끼들!”
“적의 이동 경로가 북서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젠장! 방비는 어찌 되어 가고 있나?”
“예. 일진의 축이 뒤늦게 북서쪽으로 따라붙었습니다.”
“좋아! 무당에 전서구를 띄워라! 우리도 재빨리 합류…….”
그때 남궁한은 수풀을 뚫고 솟구쳐 오른 두 개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뭐?’
대낮에.
하늘에 달이 떠올랐다.
그리고.
콰콰콰콰!
달이 거대한 기운과 함께 바닥을 짓눌러 놓았다.
‘크으으윽!’
남궁문은 온몸이 바스러지는 듯한 충격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함께 있던 수하들은 피 떡이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제일 진의 두 번째 맥.”
남궁문의 멱살을 움켜쥔 소청이 스산하게 웃으며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
제갈량이 썼다고 전해지는 진법인 팔진은 태고의 시대부터 전해진 것, 풍후, 손자, 오기가 만든 것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그 대부분의 장점을 모으고 단점을 줄여 만든 것이 ‘천망팔진(天網八陳)’이었다.
오십 인으로 구성된 일 개 대를 기준으로 여덟을 모아 한 개의 진이 되고 다시 여덟씩 모으는 것을 반복해 부, 장, 군의 형태로 구성한다.
이를 팔진 혹은 육십사진이라고 하는데 동서남북을 기준으로 여덟 개의 진이 형성되니 가히 하늘의 그물이라 불릴 만했다.
하지만 이를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그물의 연결점인 ‘맥(脈)’을 만들어 두어야 하는데 이것이 끊어지면 유기성이 떨어지고 변화가 더뎌졌다.
소청이 공격한 곳은 제일 진에 구성된 예순네 개의 맥 중 두 개의 맥이었다.
“허술하네. 이전에 경험했던 천망팔진이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역시나 소림과 무당, 화산의 부재 때문인가?”
소청은 이미 전생에 두 번이나 서로 다른 천망팔진을 빠져나온 적이 있었다.
“더욱이 제갈휘문이 없어서 상황대처가 늦어. 큭큭큭 성글어진 그물이라……. 찢어 놓기 더없이 쉽겠군.”
* * *
“어찌 된 일인가!”
제갈휘문의 실각 이후 흑선을 맡게 된 개방주 취선개가 통이각에 앉아 노성을 질러 대었다.
“일진 열두 개 맥이 끊어졌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묻지 않는가?”
“천망팔진의 제일 진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리되면 대응이 늦어질 것입니다.”
“시끄럽다. 고작해야 백여 명의 피해인데 어찌 일진이 무너졌다 할 수 있느냐! 일진을 구성한 무인이 물경 천을 헤아리거늘!”
“…….”
통이각의 책임자였던 철장개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한 지역에 국한된 소규모 천라지망일 경우에는 간단한 호각과 수기에 의한 신호만으로도 통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그 범위가 넓어질수록 그 통제가 어려워지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갈휘문이 ‘맥(脈)’이라는 접점을 고안했다.
때로는 화살을 쓰기도 했고 그 거리에 따라 전서구나 봉화를 쓰기도 했다.
각 지점에 미리 정해진 ‘맥’이 천라지망의 그물이 더욱 촘촘해질 수 있게 만들었다.
현재 무한 외곽에 펼쳐진 것은 갑호의 천망팔진이었다.
안 그래도 소림, 무당, 화산이 빠져 버린 터라 무인들의 수가 부족한 판에 그 중간 지점을 담당하는 맥이 끊어졌다.
더욱이 상황을 대처해 명령을 내려야 할 제갈휘문이 없었다.
제갈세가가 모조리 돌아가 버렸으니 이를 대체할 인물도 없었다.
정보를 수집하고 첩보에 능한 개방주가 전략적인 면을 맡기에는 애초에 어려웠다.
일진이 우왕좌왕해서 제대로 된 경로를 밝혀내지 못하면 이진의 힘이 집중되지 못하고 삼진에서 팔진까지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
연결점이 끊어진 천망팔진은 아무리 많은 무인들을 때려 붓는다 해도 장님처럼 바닥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철장개가 개방주에게 욕을 들어먹으며 신세 한탄을 하는 사이, 일진의 맥을 모조리 끊어 버린 소청은 통이각의 천장에 은신해 있었다.
모두가 빠져나간 정천맹의 본진으로 숨어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 이쯤 하면 대충 흔들어 놓았으니 도망치는 데는 문제없겠지.’
소청이 일진을 공격해 적의 시선을 돌린 것은 제갈휘문 일행과 소강에게 도주로를 만들어 주기 위함이었다.
‘천망팔진의 모든 정보를 취합하는 곳은 바로 이곳, 정천맹의 통이문. 천망팔진의 머리를 부순다.’
콰아아앙!
통이각의 한쪽 면이 처참하게 날아갔다.
갑자기 나타난 소청은 다짜고짜 창대를 휘둘렀다.
쾅! 콰앙!
통이각이 안쪽에서부터 부서져 나갔다.
갑작스런 적의 출현에 통이각을 구성하고 있던 개방의 무인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무, 무너진다!”
통이각 안에서 개방의 거지들이 참새 떼처럼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흐흐흐. 결정타를 날려 주지!”
우르릉.
태극의 기운이 폭발했다.
콰아아앙!
천뢰충파의 기운이 통이각을 집어삼켰다.
땅! 땅! 땅!
비상종 소리가 울리고 갑작스러운 폭발에 정천맹 곳곳에서 남아 있던 무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삼단과 호법부의 대다수가 천망팔진으로 빠져 버렸다.
고작해야 초절정 몇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판에 상황 대처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멈춰라! 이놈!”
벼락같은 웅혼한 외침과 함께 개방주 취선개가 한걸음에 삼 장씩을 도약하며 쏘아져 왔다.
“개방주?”
“오만한 놈! 감히 도주하지 않고 정천맹으로 올 줄은 몰랐구나!”
취선개가 허공으로 솟구쳐 소청을 향해 작은 막대기를 휘둘렀다.
개방이 자랑하는 타구봉법.
화려하게 허공을 수놓은 수백 개의 막대기가 소청의 전신을 노리고 들어왔다.
“놀고 있네. 이 변절자 거지새끼.”
휘저은 손이 쑥 하고 막대기의 사이로 들어가더니.
쉬익!
취선개의 공격을 화경으로 모조리 흘려 버렸다.
“이놈!”
취선개 역시 백대 고수에 오른 몸이었다.
헛손질함과 동시에 몸을 비틀어 황룡장을 날렸다.
“흥!”
소청은 한가하게 무공이나 겨루러 온 것이 아니었다.
태극의 기운을 모은 일 장을 내질렀다.
쩌엉!
“크윽!”
부딪히는 순간 손바닥이 터져 버린 취선개의 신형이 십 보 가까이나 밀려나며 피를 뿜어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쩍!
취선개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일보월하로 단숨에 거리를 좁힌 소청의 오른발이 취선개의 복부를 파고들었고.
와작.
수직으로 올려진 왼발이 그대로 떨어져 정수리를 강타했다.
으드득!
쓰러진 그의 머리를 짓밟아 버리는 소청의 모습에 모두가 질린 표정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이노옴!”
차앙!
멀리서 장내를 쩌렁쩌렁하게 울린 남궁천세가 검을 뽑고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약이 바짝 올라 봐라. 이 개자식아.”
파앙!
소청의 신형이 갑자기 공간을 뛰어넘으며 성벽 위로 도망쳤다.
단번에 수십 장을 뛰어넘는 일보월하의 경공을 쫓아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경공과 은신만큼은 사도련주 위도혁보다 뛰어나다 자신했다.
애초에 싸울 생각으로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오존에 오른 남궁천세, 그보다 더 강할지 모르는 환마 방유현.
그리고 주력이 아니라 해도 정천맹의 무수한 무인이 모여 있는 곳이다.
자신 홀로 싸우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그가 노린 것은 정보의 차단이었다.
그 핵이나 다름없는 통이각을 부숴 정천맹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으니 목적한 바는 이루었다.
적은 집중될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각개 격파 하며 적을 무너뜨리면 될 일이었다.
성벽에 선 소청이 피식 웃다가 멀리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인물에게 시선을 두었다.
‘방유현…….’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꽤나 멀리 떨어진 원로원.
‘진소청?’
소청과 시선이 마주친 방유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네놈도 제갈휘문을 구하러…….’
순간 방유현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네놈이?’
제갈휘문을 구해 간 것이 남궁천위가 아니라 그로 변장한 진소청이라면?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리고.
방유현은 그 먼 거리임에도 분명히 보았다.
소청의 입가에 지어진 싸늘한 미소.
그리고 천천히 변하는 그의 입 모양이 보였다.
-조금만 기다려. 다시 와서 모가지를 따 줄 테니까.
그러곤 소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