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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62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1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62화

61화. 의혹이 풀리다

 

 

 

 

남궁천위의 모습으로 변한 소청은 은밀하게 원로원주의 전각으로 숨어들었다.

방유현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는 전 맹주이자 사사로이 제갈휘문의 외숙이었다.

또한 남궁천세가 ‘마천’이라는 정보를 이용해 정천맹을 장악했지만 여전히 방유현을 지지하고 있는 무인들이 많았다.

지금의 정천에는 자신을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제갈휘문과 함께 정천을 만들어 온 그라면…….

그에게 남궁천세와 오대 무가가 변절했음을 알리고 검존과 연합해 소림, 무당, 아미, 청성, 화산을 규합한다면 일거에 적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남궁천세?’

막 그를 격리한 원주전으로 다가서는 순간 남궁천세가 찾아왔다.

“이번 일은 모처럼 잘 처리되었다. 정천이 한순간에 우리 손아귀에 들어왔어.”

“몇몇을 빼곤 모두 우리 세력이 아닙니까.”

방유현이 기분 좋게 분재의 마른 가지 하나를 잘라 내었다.

“그나저나 눈엣가시 같은 진가의 둘째를 호법부장이 직접 심문을 하고 있다고?”

“예.”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이는 방유현의 물음에 남궁천세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흠, 상관없겠지. 그도 아들을 잃었으니 분풀이라도 해 두면 좋을 게야. 어차피 결론은 나 있으니.”

“예.”

방유현이 분재를 손질하며 피식 웃었다.

“하나 아직 죽이진 말라 해. 진가에 대한 공작이 끝나기 전에는 살아 있어야 나머지도 엮을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낮에 멸절사태와 마찰이 있었다지?”

“예. 그년의 제자가 진가 놈의 역성을 들고 나섰다고 합니다.”

“그래. 잘되었어. 진가를 마천으로 몰고 나면 아미와 청성, 소림과 무당까지 하나씩 무너뜨릴 수 있을 게야.”

“검존을 비롯한 나머지 오존들이 참고 있을까요? 저들이 규합한다면…….”

“걱정 마라. 실리보다 명분을 중요시하는 놈들이 쉽게 움직일 리 없지. 다 생각이 있다. 그보다 진가의 일이 잘되어야 할 것인데.”

“진가로 향한 감찰단 모두가 우리 측 인물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좋군. 진가가 우리에게 명분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보다 검후의 제자는 어찌 되었지?”

“지시하신 대로 천위가 모종의 장소에 구금하였습니다.”

“검후를 옭아매기 전까진 함부로 대하지 말라 다시 한 번 주지시키도록 해. 마기에 빠지면 탐욕을 주체할 수 없으니까.”

“예.”

“좋아. 사도련의 공작이 실패한 덕분에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오히려 덕이 되었어. 좋아, 좋아.”

“모두가 환마님의 덕분입니다.”

방유현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부터는 사도련의 움직임인데, 마천에 대해 알게 된 위도혁이 어찌 나올지 모르겠군.”

“그야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상관이 없다?”

“예. 제갈휘문이 몰래 키우던 세력은 무너졌고 고작해야 진소청뿐입니다. 구파가 회의적인 것은 우리뿐 아니라 그들에게도 악재가 될 것입니다. 개방주가 흑선의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있으니 저들은 현 정천맹의 상황을 꿈에도 모를 것입니다. 포로들과 진소청이 돌아오면 그때 처리하면 될 일입니다.”

“흠, 그래도 말이야, 왠지 불안해. 뭔가 미심쩍거든. 제갈휘문이 맥 놓고 당할 리는 없는데…….”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방유현이 턱 언저리를 쓸며 눈을 가늘게 떴다.

“어쨌든 진가의 일이 끝나면 서둘러 오대 무가와 종남, 곤륜, 해남을 규합해서 하나씩 처리한다. 구파의 이름을 지우는 게야. 검존과 검후, 소림의 신승, 무당의 태존까지.”

방유현이 자신만만해하는 남궁천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저만 믿으십시오. 이번에야말로 제가…….”

“좋아. 알아서 잘해 봐. 마천의 세상이 열리면 남궁가는 제법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남궁천세가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물러났다.

 

‘방유현?’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였다.

원로원에 은신했던 소청의 얼굴에 싸늘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 새끼들 봐라?’

정천맹주의 임기는 십 년이었다.

마천이 사라진 것은 십 년 전.

방유현이 정천맹주가 된 것도 십 년 전이었다.

제갈휘문이 방유현을 정천맹주로 만든 것은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사람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저 자신이 기억하는 것과 과거가 달라졌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연결되듯이 머릿속이 정리되어 갔다.

풀릴 듯하면서도 갈피가 잡히지 않았던 이야기의 중심에 방유현이 있었다.

검존이 마기에 빠지고 변절자인 남궁천세가 방유현의 뒤를 이어 맹주가 되었다.

화산이 아무리 감추려 했다 해도 차기 맹주가 확실시되던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확인부터 했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 확인도 없이 차기 맹주는 남궁천세에게 넘어갔다.

분명 방유현의 입김이 작용했을 테고 그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제갈휘문이 옆에서 도왔을 것이다.

‘병신같이 십 년 동안 이용당하며 남 좋은 일만 한 거군. 제갈휘문…….’

소청은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어둠 속에 스며들었다.

 

* * *

 

“풀어.”

남궁천위의 명령에 무인들이 소강의 팔목에 묶인 줄을 풀었다.

정신을 잃고 있던 소강의 몸이 통나무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뇌옥으로 간다.”

감찰단으로 배정받은 호법부의 무인들은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오늘따라 남궁천위의 표정이 더욱 살벌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정천맹에 숨어든 마천 세력의 조사는 남궁천위에게 전권이 내려졌다.

그의 손가락질 한 번에 정천맹의 장로든 삼단의 무인이든 바로 목이 잘려 나갈 판이었다.

“여기서 대기해라. 내 직접 심문하겠다.”

“알겠습니다.”

남궁천위가 소강을 어깨에 짊어 메고 뇌옥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호법부의 무인들이 문을 닫고 밖에서 대기했다.

 

뇌옥의 깊은 곳으로 들어간 소청은 제갈휘문을 찾을 수 있었다.

소강처럼 그 역시 모진 고초를 겪고 있었다.

찢어지고 해어져 버린 학창의는 핏자국이 가득했고 풀어 헤쳐진 머리는 산발이 되어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은 그는 남궁천위로 변한 소청이 다가가자 힘없이 눈을 떠서 바라보았다.

“남궁……천위…….”

“잘나신 군사께서 꼬라지가 말이 아니네.”

“…….”

피식 웃는 남궁천위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소청의 얼굴로 변했다.

“하아, 진소청…….”

“기다려. 일단 이 녀석부터 살려 놓고 꺼내 줄 테니까.”

제갈휘문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힘없이 주저앉았다.

소청은 어깨에 둘러메었던 소강을 내려놓고 혈맥을 보듬기 시작했다.

상처를 낫게 할 순 없었지만 쇠약해진 기력을 회복시킬 수는 있었다.

“으으음…….”

얼마 가지 않아 소강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정신이 들어?”

익숙한 목소리에 소강이 힘겹게 눈을 떴다.

흐릿했던 시야에 소청의 얼굴이 선명하게 잡히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형님!”

“또 우는 것이냐?”

소청이 피식 웃었다.

소강을 부축해 앉힌 소청은 제갈휘문이 갇혀 있는 뇌옥의 앞에 앉았다.

“오는 길에 원로원에 들렀다.”

“…….”

“남궁천세라고 생각했었는데 방유현이 환마였더군.”

“그래…….”

너무도 담담한 반응에 소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재미없게.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나를 이곳에 가둔 것이 방유현이니까.”

“…….”

꽤 놀라는 얼굴을 기대했던 소청이 김빠진 표정으로 웃었다.

“충격이 컸겠군.”

“맞아. 생각도 못 했다. 모두를 의심했지만 그는 아닐 줄 알았지. 돌이켜보면 제일 먼저 의심했어야 할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제갈휘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마천의 꼬리조차 잡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진소청이 등장하고 모든 일들이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마천에 대해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그의 능력이 너무나 뛰어나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꼬리를 잡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방유현은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리고 힘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진가의 일이 끝나면 오대 무가와 종남, 곤륜, 해남을 규합해 나머지 정천의 세력을 칠 생각이더군.”

“음…… 대충은 예상했었지. 방유현이 환마라면 오대 무가의 주인들은 모두 변절자이거나 대체자일 것이다. 아미와 청성은 세가 약하니 제외되었을 거야. 도가와 불가의 최고봉인 소림과 무당에 대놓고 세작을 심긴 힘들었을 것이고. 아마 속가 정도겠지.”

“그곳엔 신승과 태존이 있으니까.”

“그래, 검존, 신승, 태존, 검후. 방유현은 계속해서 그들을 경계해 왔을 거야. 그들뿐 아니라 백대 고수의 태반이 그곳에 있으니까.”

“그러니 함부로 마각을 드러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서 대책은 선 거야?”

“보이지 않는 적은 상대하기 어렵지만 이미 드러난 적이니까.”

“하지만 쉽진 않을 거야. 의심받고 있는 죄인 신분이 아닌가?”

“생각해 둔 방법이 있어. 뇌옥 안에서 시간만 때운 건 아니니까.”

“좋아. 그럼 일단 나가야겠지?”

소청이 제갈휘문이 갇힌 뇌옥의 철문을 뜯어내었다.

“자, 그럼 어떻게 도망친다?”

소청은 소강을 응시했다.

깨우긴 했어도 기력이 상했고 내력이 불안정했다.

제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였다.

혼자라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필요하면 환마의 거처에 숨어들어서 모가지를 따 버릴 자신도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도 심각한 피해를 입어 위험해질 수도 있었지만…….

“청초각에 비밀 통로가 있다.”

소청의 고민에 제갈휘문이 말했다.

“청초각?”

“그래.”

“호오, 역시 음흉해.”

소청이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바라보자 제갈휘문이 피식 웃었다.

“비밀 통로는 무한 외곽의 나루터까지 연결되어 있네.”

소청이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했다.

“문제는 여기서 청초각까지 어떻게 가는가 하는 거군.”

“문제 될 것 없네.”

“뭐?”

“자넨 지금 남궁천위니까.”

“아!”

소청의 얼굴이 밝아졌다.

“좋아. 좋은 생각이네. 어떻게 생각은 정리됐어? 함께 갈 거야?”

제갈휘문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출발하자고.”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 뇌옥의 문 앞에 도착했다.

“소강.”

“예?”

“아파도 참아라.”

“그게 무슨…….”

어느새 소청의 얼굴은 남궁천위로 바뀌어 있었다.

꽉.

“아악!”

남궁천위의 손이 우악스럽게 소강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사정없이 뇌옥의 문을 향해 던져 버렸다.

콰앙!

소강이 부딪히자 밖을 지키던 호법부의 무인들이 급히 문을 열었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 같으니! 감히 마천을 두둔해!”

남궁천위는 제갈휘문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아 당기더니 복부를 걷어찼다.

“청초각으로 끌고 가라! 놈이 비밀 통로를 만들어 둔 모양이다!”

“예!”

서슬이 퍼런 남궁천위의 모습에 호법부의 무인들이 서둘러 대답하며 소강과 제갈휘문을 끌고 갔다.

 

“이런 개자식들, 빨리 걷지 못해!”

제갈휘문의 머리채를 잡아 흔드는 남궁천위의 모습에 청초각을 지키던 무인들이 재빨리 문을 열었다.

“들어가!”

발길질에 제갈휘문과 소강이 나동그라졌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놈도 들어오지 마라!”

“예!”

사나운 눈초리에 무인들이 찔끔하며 청초각의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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