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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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61화
60화. 개 먹이
짜악! 쫘아악!
채찍질 소리가 청룡단의 연무장을 거세게 울렸다.
죄인을 지켜보는 이들의 눈에는 동정심 대신 분노가 떠올라 있었다.
기둥에 손목이 묶여 매달린 청년의 등에는 뱀처럼 구불구불한 핏자국이 낙서처럼 빼곡하게 새겨졌다.
묶인 청년은 다름 아닌 소강이었고 매질을 하고 있는 것은 호법부의 수장인 남궁천위였다.
수사가 급물살을 타듯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정천맹 내부 감찰의 임무를 맡은 호법부는 마치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의심되는 자들을 추려 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너무도 빠른 탓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대놓고 반발하는 이는 없었다.
소강도 조사 대상 중 하나가 되었다.
그들이 제갈휘문과 진소청 간의 은밀한 관계가 밝혀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른 이들과 진소강을 처리하는 절차가 너무나 달랐다.
청룡단에 들이닥친 호법부의 무인들은 곧바로 소강을 형틀에 묶었다.
“단주님,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심문이 아니라…….”
승혜의 말에 청룡단주 반구옥이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저놈을 두둔하려는 것이냐?”
그의 말에 주위에 있던 청룡단의 무인이 모조리 그녀를 쏘아보았다.
“두둔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려는 겁니다. 의심되는 자들은 대부분 자파에서 데려갔습니다. 한데 어찌 진공자만 바로 형을 집행하는 것입니까?”
“사실? 무엇이 사실이냐?”
“청룡단 무인 진소강은 아직 어떠한 의혹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의혹? 말을 삼가거라!”
“…….”
“연이 있다 하여 감히 동도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의 동생을 두둔하다니!”
“누가 누구를 죽음으로 몰았단 말입니까?”
“닥치거라!”
“…….”
“자운과 명환은 지금 당장 승혜를 연공당에 감금하라! 반성의 기미가 보일 때까지 절대 문을 열어 주지 말라!”
청룡단주의 말에 자운과 명환이 승혜의 팔을 잡았다.
“이것은 정도에 어긋남입니다.”
“닥치라 했거늘!”
지지 않고 노려보는 승혜의 말에 청룡단주가 노성을 지르자 매질을 멈춘 남궁천위가 다가왔다.
“아미의 은승혜?”
“…….”
스산하게 가라앉아 있는 남궁천위의 눈빛에도 승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불가에선 단장의 아픔을 웃어넘기라 가르친 모양이오?”
“호법부장님. 아직 혐의가…….”
턱!
남궁천위가 승혜의 고운 턱 아래를 움켜쥐어 일그러뜨려 놓았다.
바위마저 으깨어 놓을 손아귀 힘에 승혜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무엇이 혐의인가? 네년이 지금 내 조카의 죽음 앞에서 저 쓰레기 같은 놈의 역성이라도 들어 볼 참이냐?”
“…….”
턱을 잡혀 말을 하지 못한 승혜는 쏘아보기만 할 뿐이었다.
“왜? 저놈의 형과 친했다 하더니 가랑이라도 벌려 주었더냐? 그래서 이리 나서는 게야?”
서슬 퍼런 그의 살기가 승혜의 전신을 옥죄어 놓았고 승혜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물들었다.
“지금 무엇 하는 게요!”
때마침 청룡단의 연무장으로 멸절사태가 들어왔다.
감찰단이 사천으로 파견되었으니 서둘러 승혜와 아미파의 무인들을 데리고 돌아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한달음에 뛰어온 멸절사태가 가볍게 소매를 떨쳐 남궁천위의 손목을 잡아채려 했다.
“흥!”
승혜의 턱을 놓아 버린 남궁천위가 멸절사태의 손을 피해 물러나며 검병을 잡았다.
“이놈들! 놓지 못할까!”
그녀의 호통에 승혜의 팔을 잡았던 자운과 명환이 찔끔하며 물러났다.
“남궁 시주, 어찌 나의 제자를 핍박한 것이오?”
멸절사태의 매서운 눈과 함께 짙은 투기가 뻗어 나왔다.
하지만 남궁천위는 오히려 그녀를 비웃었다.
“핍박? 아미 장문인께선 제자를 잘 가르쳐야겠소. 패역한 무리를 두둔하다니 말이오.”
“두둔?”
멸절사태의 시선이 매질을 당한 소강과 턱 언저리에 벌겋게 손자국이 남은 승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언짢음이 잔뜩 어렸다.
승혜가 어찌 나선 것인지 대충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남궁 시주, 아직 밝혀진 죄상이 없다고 들었소. 하면 응당 뇌옥에 가두고 사실 관계를 심문해야 함인데 어찌 태형을 행하고 있소?”
“하아, 스승이나 제자나 생각 없이 똑같은 말을 하는군?”
“무엇이?”
멸절사태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봐, 아미 장문인. 지금 사태 파악이 안 되나 보지?”
“뭐라?”
“사도련에서 남궁의 무인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죽었어. 감찰단이 사천에 도착하면 진가와 관련된 모든 문파를 조사하기 시작할 거야. 그들이 마천과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다면 아미라고 무사할 것 같은가?”
“이, 이자가 감히…….”
“닥치고 돌아가서 죽을 자리나 봐 두는 게 좋아. 아니면 저놈을 위해 지금이라도 싸워 보든가?”
눈에 살기를 품은 남궁천위를 노려보던 멸절사태가 승혜의 손목을 잡았다.
“스승님.”
승혜의 말에 멸절이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었다.
방유현이 억류되었고 제갈휘문이 감금되었다.
소림과 무당은 한발 물러나 있었고 아미와 청성, 화산, 제갈세가는 맹주의 말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그 외의 대부분이 남궁천세를 지지하고 있었다.
자식을 잃고 독이 잔뜩 오른 그들이 정천맹을 쥐어흔들고 있었다.
만에 하나 사달이라도 만든다면 사방에서 물어뜯을 것이 분명했다.
때가 아니었다.
진가와 제갈세가의 상황은 안됐지만 그녀는 장문인이었다.
무엇보다 자파의 보호가 우선이었다.
“남궁 시주. 오늘을 꼭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게요. 나 멸절은 절대로 그대의 언사와 행동을 잊지 않을 터이니…….”
“흥, 꽁무니를 빼려는 모양이군. 좋다. 기억해 두지. 그대도 기억하라. 마천과 연관성이 밝혀지면 내 반드시 아미의 주춧돌을 파내고 승복을 입은 년들을 모조리 개 먹이로 줄 것이다.”
“…….”
참기 힘든 언사였지만 멸절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남궁천위와 싸워 봐야 도움 될 것이 없었다.
남궁천위를 노려보던 멸절사태는 휙 하니 몸을 돌렸고 그녀의 손에 이끌린 승혜와 청룡단 소속의 아미제자들이 뒤따랐다.
“흥, 미친년들. 걱정 마라. 네년들도 곧 저 꼴이 날 터이니. 청룡단주! 저놈을 잘 감시하게.”
“예!”
* * *
컹컹! 컹컹!
허기에 지친 개들의 울음이 밤하늘을 향해 미친 듯이 울어 대었다.
무한에서 제법 떨어진 곳의 한 촌락.
해가 지기를 기다려 정천맹을 빠져나온 남궁천위는 허름한 초옥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탁자를 밀어내자 지하로 통하는 토굴이 드러났다.
“흐흐흐.”
남궁천위가 음흉하게 웃으며 다가오자 여인은 수치심에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재갈을 물려 두고 손과 발이 묶인 그녀는 옷이 찢어져 드러난 뽀얀 허벅지를 어떻게든 감추려 했다.
스윽.
턱을 잡아 들어 올린 남궁천위의 탐욕스러운 시선이 그녀의 가슴과 허벅지를 쓸었다.
“예쁘군.”
은소혜.
은가장의 둘째이자 보타문 검후의 제자였다.
소강의 구금에 대해 반감을 가진 그녀는 검후에게 도움을 청하려 무한을 떠났었다.
“네 언니라는 년도 쓸 만하더군. 아쉬워. 환마께서 네년을 검후를 압박할 미끼로 쓸 때까지 잡아만 두라 했으니……. 하지만 모든 일이 끝나면. 흐흐흐흐.”
남궁천위는 다시 한 번 그녀의 몸을 쓸어 보고 수혈을 짚었다.
토굴에서 올라온 남궁천위는 독주를 거칠게 목구멍으로 들이붓고 소매로 입술을 닦았다.
“크으으…….”
울대를 태워 버릴 듯이 넘어가는 술은 그의 정신을 더욱 말짱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아들인 남궁무한이 막야, 아니 진소청에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환마에게서 역천의 진언을 얻은 이후 계속해서 끓어오르던 살심은 하루 종일 소강을 매질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잠들어 있는 촌락 사람들의 피 냄새라도 맡아야 진정될 것 같았다.
스릉.
허리께에 매여 있던 남궁가의 창궁검이 뽑혀 나왔다.
살기로 물들어 버린 남궁천위가 마을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쓰레기 새끼. 뭘 어떻게 해? 누굴 노예로 삼아?”
“……!”
누군가의 외침에 남궁천위가 멈칫하며 돌아보았다.
느끼지 못했다.
고작 일 장 옆에 떨어져 앉아 있었음에도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어둠을 닮은 방립에 흑색 피풍의를 걸친 사내.
그리고 그의 옆에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구금해 두었던 은소혜가 쓰러져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남궁천위의 몸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누구긴 누구야? 너지.”
사내가 이죽거리며 방립을 벗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헉!”
순간 남궁천위는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물러났다.
“뭘 그리 놀라? 네 얼굴인데.”
자신이었다.
늘 동경으로 보아 왔던 자신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너, 너는 누구냐!”
“너라니까.”
입가에 진한 비웃음을 지은 사내가 어둠에 스며들듯이 사라졌다.
“헛!”
그리고.
등 뒤에서 느껴진 살기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백대 고수라더니 고작 이 정도냐?”
뜨끔.
따끔한 느낌과 함께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리고 사내, 아니 자신의 얼굴을 한 사내는 그의 몸을 들쳐 메고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찌지직!
아름드리나무에 자신을 묶은 사내는 그의 상의를 모조리 찢어 내었다.
“무엇 하는 짓이냐!”
자신과 꼭 닮은 모습을 한 괴인에게 잡혀 있는 그는 미친 듯이 고함을 질러 대었다.
무슨 짓을 당할지 몰랐으니 두려움이 생겼다.
“아팠겠더군.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지켜보는 내내 가슴이 미어졌어.”
짜악!
“끄아악!”
가시를 훑어 내지 않은 탱자나무 껍질이 그의 피부에 틀어박혔다.
짜악! 짜아악!
채찍이 쉬지 않고 그의 등을 후려쳤다.
“끄아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러 대었다.
마혈을 제압한 것도 모자라 괴인은 자신의 내력까지 막아 둔 터였다.
생살이 찢어지고 가시가 박히는 고통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발버둥이라도 치면 아픔이 조금이라도 가시질 않을까?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한 괴인은 마혈을 풀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벌써 수백 대가 넘는 채찍질에 피가 흘러 바지춤을 축축하게 적셔 놓았다.
“끄으으으…….”
정신을 잃어 고개를 꺾으려 하면 다가와서 내력으로 어루만져 깨웠다.
맨정신으로 고통을 버티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채찍질이 멈추자 더한 공포가 느껴졌다.
계속될 때는 아픔이지만 기다림이 생기면 아픔을 머릿속에 그려야 했기에 두려움이 함께 찾아오는 법이었다.
컹! 컹컹!
개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킁킁거리며 피 냄새를 맡더니 무언가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귓가에서 괴인의 숨소리가 느껴졌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 나, 진소청이야. 네가 괴롭힌 소강이의 형.”
“네, 네놈!”
남궁천위의 눈이 찢어져라 부릅뜨였다.
그는 다름 아닌 ‘천변만화’의 역용공으로 남궁천위로 변한 소청이었다.
진소청의 이름을 들으니 고통 속에서 분노와 살심이 치밀었다.
“널 뒤따라 다니는 동안 죽여 버리고 싶은 걸 내내 참았어. 어째서 내 동생을 핍박했지? 나나 내 동생이나 너한테 잘못한 게 없는데…….”
“닥쳐라! 네놈이 막야라는 이름으로 행세하며 내 아들을 죽였고 얼마 전엔 내 조카조차 죽였지 않느냐!”
“뭐?”
소청이 묘한 눈빛을 띠었다.
“네 아들이 누구지? 난 남궁가의 인물을 죽인 적이 없는데?”
“닥쳐라! 네놈이 폭마를 죽일 때 내 아들이 그곳에 있었다.”
“네 아들이라……. 그렇군. 남궁무한이 네 아들이었군. 그런데 말이야. 남궁무한은 폭마라는 놈이 죽였고, 네놈의 조카인 남궁진린은 곤륜의 종현자라는 놈이 죽였는데…….”
“…….”
순간 남궁천위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개소리 마라.”
“개소리는 네가 하고 있지. 더러운 변절자 새끼.”
“…….”
진소청은 이미 자신이 변절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네놈들은 그 어린아이들을 유괴해 폭멸마동을 만드는 데 일조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죽을죄야. 그런데, 감히 진가를 노려?”
짜아악! 짜아아악!
매질이 다시 시작되었다.
“끄아아악!”
비명이 쉬지 않고 이어졌지만 소청의 채찍질은 쉬지 않았다.
“너를 따라다니는 내내 생각해 봤다. 내 동생에게 그 같은 고통을 준 놈을 어떻게 죽일까?”
“…….”
“느껴 봐. 생살이 뜯어 먹히며 죽는 고통이 어떤 건지.”
말을 마치고 멀어지는 소청의 걸음 소리가 스산하게 들려왔다.
으그르르르르.
목줄이 풀어진 개들이 뛰었다.
피 냄새를 향해서…….
“끄아아악!”
남궁천위의 비명이 가득히 울려 퍼졌다.
“우진.”
소청의 부름에 비마대의 무인 하나가 뛰어내려 왔다.
“예. 패월.”
“다 먹히고 나면 개 새끼들까지 죽여. 그리고 소혜 소저를 데리고 묵영단 안가로 가서 초사와 합류해.”
“알겠습니다. 패월께선?”
“구하러 가야지. 내 동생이랑, 제갈휘문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