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60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60화
59화. 남궁천세의 정체
“끄아아악!”
살이 지져지고 손톱 아래에 바늘이 수도 없이 박혔다.
종현자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있는 이 악독한 놈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고통만 주었다.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아도 돼.”
“…….”
“듣고 싶은 생각 없어. 말하면 살려 줄 거라는 생각도 하지 마.”
“으으으으…….”
“들었어. 남궁진린을 죽였다며? 아마 그 전에도 많이 죽였겠지. 곤륜을 위한다든지, 목적을 위해서라든지……. 이해해. 어차피 무림이 그런 곳이잖아.”
소청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애초에 너희를 용서하니 마니를 생각해 본 적 없어. 그냥 하나씩 찾아내서 다 죽일 거야. 그러니까 네가 남에게 준 고통만큼 느껴 보도록. 그러다 죽으면 되는 거겠지.”
스산한 목소리와 함께 다시 고문이 시작되었다.
“끄아아아악!”
비명을 질러 대다 정신을 잃은 종현자를 무심하게 내려다보던 소청은 상처에 금창약을 바르고 내력으로 그의 몸 안을 어루만져 주었다.
“죽여라! 죽이란 말이다!”
깨어난 종현자가 산발이 된 머리를 흔들며 악다구니를 썼다.
“끄아아악!”
또다시 새로운 고문이 시작되었다.
종현자의 손가락이 천천히 꺾였다.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열 개가 꺾이고 손톱이 하나씩 뽑혀 나갔다.
고문을 하고 치료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 사흘 밤낮 동안 잠도 자지 못하고 반복되었다.
그리고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고 죽음이라는 것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종현자에게 생의 의지가 찾아왔다.
어떻게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고 제가 살아온 삶을 하나도 빠짐없이 읊조렸다.
그리고.
“환영곡이다. 정천맹 안에 수백 명의 변절자가 있다.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다.”
“…….”
“끄아아악! 남궁천세, 남궁천세 역시 변절자 중 한 명이다. 제발 살려 다오. 제발…….”
“…….”
고문이 멈췄다.
일말의 희망이 생긴 종현자가 생각나는 모든 말을 쏟아 내었다.
살기 위해, 고통을 줄여 보기 위해 소청이 듣고 싶어 할 만한 모든 이야기를 쏟아 내었지만 그뿐이었다.
그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뭐? 남궁천세가 겨우 변절자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였다.
‘그가 환마가 아니었단 말이야?’
소청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모든 시발점에 남궁천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남궁천세가 아니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오존에 올라 정천맹주가 된 남궁천세가 겨우 변절자라면?
“패월.”
“왜?”
“가 보셔야겠습니다.”
“…….”
“흑비가 찾아왔습니다.”
“흑비?”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생겼다.
“지금 혁련 소련주에게 잡혀 있습니다.”
“알았다.”
소청이 밖으로 나가려는데 초사가 물었다.
“이자는 어찌합니까?”
종현자를 바라보는 초사의 얼굴에 분노가 어려 있었다.
마천에 죽어 간 수많은 동료의 죽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그의 분노와 살기를 느낀 소청이 피식 웃었다.
“어쩌긴…… 죽여.”
사도련으로 잠입한 흑비는 혁련휘의 앞에 무릎이 꿇린 채 앉아 있었다.
은형섬전보의 주인인 흑비였지만 그동안 소청과 비마대로 인해 은신자에 대한 감각에 익숙해져 있었던 혁련휘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
탈을 벗긴 혁련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윤기 흐르는 새카만 흑발에 사슴 같은 눈망울로 자신을 노려보는…….
예쁘다.
지금까지 본 여인들 중 가장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혁련휘는 멍한 얼굴로 실실거리기만 했다.
술, 여자, 무공.
그의 세 가지 관심사 중 하나가 아닌가?
흑비는 따로 포승에 묶이지 않았지만 혈도가 제압되어 있었기에 도망칠 수가 없었다.
“흑비.”
소청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패, 패월!”
흑비가 소청의 얼굴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소청이 눈살을 찌푸렸다.
수많은 상처.
그리고 핏자국이 선명한 의복까지…….
마치 전장을 헤쳐 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 내가 그런 게 아니야.”
“누가 뭐래?”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 혁련휘는 급히 흑비의 곁으로 다가가 사과를 했다.
“크흠, 소청의 수하이신 줄도 모르고…….”
누굴 높이는 거냐?
“이거 실례가 많았소. 나는 사도련의 소련주 혁련휘라오.”
혈도를 풀어 준 혁련휘는 마치 화화공자처럼 부드럽게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내 살면서 당신처럼 아름다운…….”
“비켜라, 쫌.”
혁련휘를 밀어낸 소청은 피식 웃으며 흑비를 향해 물었다.
“어찌 된 일이지? 이곳으로 오라 명한 적이 없었는데. 제갈휘문이 전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군사께서 감금되었습니다.”
“뭐?”
“현재 마천이라는 누명을 쓴 채 군사께서 지하 뇌옥에 감금되셨고 원로원주님마저 구금되었습니다.”
“…….”
잇따른 충격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날 저희는 군사님의 명령에 의해 남궁가를 치기 위해 정천맹 인근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궁천위와 호법부의 무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흑비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고운 눈망울에 습막이 어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죽었습니다. 저만 겨우 도망쳐서…….”
“…….”
자신이 아는 제갈휘문은 그리 허술하게 움직일 사람이 아니었다.
남궁가를 치고자 했다면 분명 그들을 옭아맬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가 잡혔단 말인가?
그리고 방유현이 그리 쉽게 구금되다니…….
“만나 보지 못한 거냐?”
“경계가 삼엄했습니다. 제 능력으로는 도무지 잠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길…….”
남궁천세가 너무 빠르게 움직였다.
“다른 건 없었나?”
“감찰단이 사천으로 출발했습니다.”
“뭐?”
순간 사고가 정지되는 것 같았다.
감찰단이 사천으로 갔다면?
아미, 청성…… 그리고,
“진가?”
남궁천세는 변절자가 확실했다.
종현자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은 말이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적을 치려는 생각이라면 제갈휘문 다음은 바로 자신이었다.
“설마 본가를 노리는…….”
그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소청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고 눈꼬리가 치켜뜨였다.
“이런 개자식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감찰단의 조사 결과는 뻔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당장에 달려가서 모가지를 꺾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소청!”
뛰쳐나가려는 소청을 혁련휘가 잡아 세웠다.
“일단 진정하게.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란 말일세.”
“닥쳐!”
소청의 몸에서 살기 어린 기세가 피어 나왔지만 혁련휘는 친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가족이 위험해 처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누구나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었다.
“소청!”
“…….”
강한 어조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혁련휘의 목소리에 흥분되었던 마음이 살짝 가라앉았다.
하지만 냉정해질 수는 없었다.
흥분된 소청을 대신해 혁련휘가 흑비에게 물었다.
“감찰단이 떠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제가 이곳으로 출발한 시기와 비슷하니 사흘 정도 되었습니다.”
“사흘…….”
급했다.
정천맹이 있는 무한에서 진가가 있는 간양까지는 이천오백 리 길이다.
준마를 타고 낮 동안 쉬지 않고 달린다면 최소로 잡아도 닷새, 혹은 이레가 걸린다.
“남아 있는 시간은 최소 이틀에서 최대 나흘 정도인가?”
혁련휘의 말에 소청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사천의 정천맹 지부는 남궁천세의 세력일 터. 이미 늦었을 수도…….”
소청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감찰단이 도착하는 시간에 여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전서구를 보냈다면 이미 서남 지부의 무인들이 진가에 들이닥쳤다고 봐도 무방했다.
“젠장!”
“혹시나 해서 오면서 묵영단의 사천 지부에 전서구를 보내었습니다. 진가에 위험을 알리라고…….”
흑비의 말에 한 줄기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정천맹 사천 지부의 무인이라면 그리 무공이 낮지 않다.
최소로 봐주어도 초절정의 무인들이었다.
소강이 청룡단에 입단한 이상 진가신, 진가성, 진무월창의 무인 이백여 명으로는 상대가 되질 못했다.
그리고 은신이 주력 무공인 묵영단의 무인이라고 해 봐야…….
“초사!”
그의 부름에 종현자를 죽이고 대기 중이던 초사가 천정에서 뛰어내렸다.
“말씀하십시오.”
“묵영단의 무인들이 각 지역에 퍼져 있다고 했다.”
“그렇습니다.”
“운남에도 있나?”
“예.”
“지금 즉시 운남에 전서구를 날리는 데 얼마나 걸리겠나?”
현재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운남의 모자겸이었다.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묵영단 지부는 섬서입니다. 하루면 충분합니다.”
“가라! 운남의 대족장을 찾아서 진가가 위험하다 알리라고 해.”
“존명!”
명을 받은 초사가 황급히 사라졌다.
“소청.”
“…….”
“맹에 너의 동생도 있다 하지 않았나?”
“…….”
청룡단에 소강이 있었다.
“그 녀석은…….”
“가서 구하게. 진가는 내가 가도록 하지.”
“자네가?”
“당연한 말일세. 내가 정천에 가서 자네 동생을 구할 순 없어. 아무래도 은신이 뛰어난 자네가 가는 게 좋아. 그리고 잊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네의 친구라네.”
소청이 혁련휘를 쳐다보았다.
“고맙다.”
진심이었다.
혁련휘가 나서 준다면 어느 정도 피해를 입겠지만 충분히 그들을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문제는 묵영단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사이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진가와 동맹을 한 사천의 세력은 도움이 되지 않아. 이해관계로 묶인 관계인 이상 정천맹의 뜻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잠시 아미의 승혜가 떠올랐지만 그녀 역시 청룡단에 입단해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망할! 결국은 묵영단에 모든 걸 거는 수밖에 없군.’
소청의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진가도 구해야 하고 소강도 구해야 했다.
하지만 무한, 간양, 그리고 자신이 있는 곳은 삼각형의 형상이었다.
둘 다를 구할 수는 없었다.
혁련휘가 나서 준다는 것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았다.
참작을 들고 제 스승에게 허락을 구하기 위해 련주전으로 달려간 혁련휘는 만중과 혈랑대 일백을 데려왔다.
사도련주 위도혁은 소청을 위해 그가 보유한 한혈마 백여 마리를 기꺼이 내어 주었다.
소청은 혁련휘에게 다시 한 번 진가를 부탁했다.
“꼭…….”
“걱정 마. 내가 죽어도 너의 가족들은 구한다. 대신 제대로 술 한잔 사게.”
히죽 웃으며 말에 오른 혁련휘는 혈랑대를 이끌고 지체 없이 간양을 향해 내달렸고, 소청과 비마대는 무한을 향해 달렸다.
경공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지만 어떤 싸움이 벌어질지 몰랐다.
조금 시일이 걸리더라도 내력을 아껴야 했다.
“흑비!”
“예, 단장님.”
“나는 무한으로 가겠다. 너는 초사와 합류해 무한 외곽의 안가에 대기해라. 반드시 그곳으로 가겠다.”
“존명!”
흑비가 대열을 이탈했다.
내려쳐지는 말채찍에 흑혈마들이 미친 듯이 투레질을 했다.
그리고 소청의 눈에 진한 핏발이 돋아 올랐다.
“이 개새끼들…… 내 가족들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상하게 했다가는 모조리 씹어 먹어 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