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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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94화
93화. 새로운 경지
자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날짜를 셀 수가 없었다.
잠이 오면 자고 배가 고프면 먹고.
일상의 반복이었다.
여전히 보이는 건 어둠과 독물뿐이었다.
“개새끼들, 반드시 살아 나가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 줄 테다.”
소청의 퀭한 눈에 시퍼런 살기가 어렸다.
살기와 함께 기운이 일어나자 소청이 한숨을 내쉬었다.
“괜스레 힘 뺄 필요 없지. 근데 어떻게 나가야 하나?”
소청이 차근히 고민을 이어 갔다.
자신이 위치한 곳은 제법 깊은 곳이었다.
대충 정황을 유추해 보면 출구보다는 입구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 거리가 정확하지는 않았다.
“분명히 독진이 깔렸던 곳은 동굴을 들어와 오십 장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소청의 시선이 독물들을 향했다.
도망쳐 온 독물들이 얼마나 더 안으로 들어왔을까?
“이 새끼들 속도를 알 수 없으니…….”
소청이 째려보자 독물들이 본능적으로 한쪽 구석으로 피했다.
방금 먹었는데, 벌써 배가 고픈 거냐?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대충 오십 장 이상의 흙더미가 막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오십 장이나 되는 흙더미를 자력으로 뚫을 수는 없었다.
또한 그만 한 힘을 낼 수 있는 무공은 천뢰충파뿐인데 잘못하면 동굴이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지반이 너무 약해져 있어.”
하지만 생각해 내야만 했다.
남아 있는 독물들을 하루에 한 마리씩 잡아먹는다고 해도 꽤 많은 양이 남았으니 식량은 충분했다.
하지만 공기가 문제였다.
만리향의 단약을 놓았음에도 적서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공기가 통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숨을 쉬기 힘들어질 것이다.
은신할 때처럼 귀식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그 역시 그리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방법이 없을까? 무황 정도의 무공으로 한순간의 틈만 만들면…….”
그러다 고개를 숙이는데 구겨지는 앞섶에서 무언가 거치적거렸다.
“이건…….”
옥갑.
곤륜 장문인이 빚을 갚는 것이라며 준…….
“태청신단!”
소청이 당장 품에서 옥갑을 꺼냈다.
그리고 손에 든 옥갑을 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먹어야…….”
꿀꺽.
침이 넘어갔다.
배고픔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땐 받아만 두겠다고…….
“이런 씨발! 당장 죽게 생겼는데!”
소청은 옥갑을 열어젖혔다.
청색 단약이 고운 자태를 뽐내며 청량한 향기를 확 하고 뿜어내었다.
소청은 고민할 것도 없이 단약을 입안에 집어넣고 좌정했다.
운기를 통해 태청신단의 영기를 흡수할 생각이었다.
혀에 닿은 태청신단이 물처럼 녹아 목구멍을 넘어갔다.
그리고.
강렬한 한기가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우우웅!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온몸이 쩍쩍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은…….’
그 순간 살아야 한다는 생의 의지에 잊고 있었던 ‘황제외경 영단 편’의 구절이 떠올랐다.
@[태청신단(太淸神丹)은 하늘 아래 가장 강한 극음지기를 모아……. 양강의 무공으로 그 힘을 조화롭게……. 능히 천하를 오시…….]
‘젠장…….’
태청신단의 음한지기를 흡수하려면 반드시 몸 안에 양강의 무학을 익히고 있거나 만년화리의 내단같이 화기가 있는 영약과 함께 흡수해야만……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아, 좆 됐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쩌적!
치밀어 오른 한기가 소청의 단전을 파고들고 세맥과 독맥을 모조리 파고들었다.
쩌저적.
그 영기는 대환단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으나 양강의 기운을 익히지 않은 소청에게 그 음기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쩌저적!
‘이대로는 안 된다. 무언가 수를 내야 해. 열기가 있어야…….’
소청의 몸 안에는 두 가지 기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짐조와 소림 대환단의 기운.
‘짐조는 봉황이 되지 못한 새다. 봉황은 불의 상징.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짐조는 봉황이 되지 못한 한이 사무쳐 독조가 되었다.
하지만 그 내단에는 필시 강렬한 화기를 담았으리라.
소청의 기운 어느 곳에는 분명 화기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소청은 한기가 자신의 머리마저 얼려 버리기 전에 서둘러 팔괘공에 따라 내공을 일주천시키며 화기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임맥과 독맥, 세맥은 물론 몸 안을 흐르는 피까지 꽁꽁 얼어 버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소청의 몸에서 묘한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우우웅!
소청의 몸 안에 잠들어 있던 짐조의 잠력이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태청신단의 기운에 반응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끓어오른 기운은 홍수처럼 불어나 온몸의 팔맥을 돌아다니며 태청신단의 한기를 뒤쫓았다.
쾅!
콰쾅!
소림의 대환단이 짐조의 기운과 섞였을 때와는 달랐다.
대환단은 그 영력보다는 몸을 재구성해 단전과 세맥을 탄탄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이었지만, 태청신단은 짐조의 기운에 버금갈 정도로 강렬한 영기를 품고 있었다.
콰앙!
“크으윽…….”
두 기운이 백회에 도달해 부딪치는 순간 거대한 충격에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생사대적을 만난 것처럼 음과 양으로 나뉜 두 기운이 미친 듯이 싸워 대었고 그때마다 소청의 몸이 들썩거렸다.
그리고.
둘의 싸움을 보다 못한 대환단의 잠력이 정신을 잃어버린 소청을 대신해 중재하기 시작했다.
하나씩 하나씩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둘을 떨어뜨려 놓았다.
대환단의 이끌림에 의해 음과 양의 기운이 소청의 몸에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다.
반은 차갑고 파랬고 반은 뜨겁고 붉었다.
다시 합쳐졌다 좌우를 번갈아 가며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 경계가 불분명하게 사라졌다.
대환단은 둘을 조금씩 합일시키고 있었다.
푸름과 붉음, 음과 양이 흩어져 몸의 중심을 따라 붉지도 푸르지도 않은 기운이 자리를 잡았다.
우우우웅.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던 소청의 얼굴이 편안해지고 잔떨림이 멈췄을 때, 소청의 몸이 깊은 울음을 만들어 내며 동굴을 진동시켰다.
@[하나의 태극(太極)이 나뉘어 이는 건(乾)과 곤(坤)이요, 음(陰)과 양(陽)이라 한다.]
소청의 몸을 잠식하고 있던 붉은 기운과 푸른 기운이 증기처럼 피어올라 뭉쳐지자 보름달이 떠오른 것처럼 동굴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음양의 기운은 다시 넷으로 나뉘어 하늘과 땅과 물과 불이 된다. 하늘과 불은 가볍고 땅과 물은 무거우니 그 또한 태극이요, 이 네 가지 기운을 건곤감리(乾坤坎離)라 한다.]
웅.
좌정하고 앉아 있던 소청의 몸이 저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파학!
소청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던 둥근 기운이 갈라져 넷이 되었다.
@[이는 다시 천과 화가 함께하여 뇌(雷)와 풍(風)이 생겨나고, 지와 수가 어울려 산(山)과 늪(澤)이 이루어진다. 이 모두가 세상을 구성하는 이치이니 팔괘라 하고……. 나뉘었으되 이는 다시 합해져 사상이 되고 양의가 되고 태극(太極)이 되리라.]
소청의 몸을 휘돌던 네 가지 기운이 서로 합쳐졌다가 갈라지자 여덟 가지 기운으로 나뉘었다.
가장 높은 곳에 하늘의 기운이 서리고 가장 낮은 곳에 땅의 기운이 자리를 잡았다.
여덟 가지 기운은 건곤의 위치를 중심으로 소청의 몸 주위를 회오리처럼 휘돌았다.
우우우웅!
그러다 뇌기(震: 진)를 머금은 기운과 하늘(乾: 건)의 기운을 머금은 기운이 합해져 소청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때를 기다린 것처럼 불(離: 리)과 바람(巽: 손), 땅(坤: 곤)과 산(艮: 간), 물(坎: 감)과 늪(兌: 태)의 기운이 합쳐져 네 곳 혈 자리로 스며들었다.
순간 소청의 몸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단전은 더욱 거대해지고 독맥의 여덟 자리를 대신해 하늘의 기운이 스민 백회, 땅의 기운이 스민 회음, 불의 기운이 스민 단중과 물의 기운이 스민 명문, 네 곳의 혈 자리가 밝게 빛을 뿜어내었고 나머지는 소청이 팔괘공을 익히기 전의 크기로 돌아갔다.
우드득. 우드득.
동굴을 환하게 비추던 빛이 사라졌을 때.
소청의 뼈마디에서 부서질 것처럼 기괴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리고.
찌직, 찌지직!
입고 있던 옷은 말라비틀어진 듯이 부서져 떨어져 나갔고, 나신으로 변한 소청의 피부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 말라 버린 진흙처럼 쩍쩍 갈라져 떨어졌다.
매미가 탈피를 하듯 한 겹의 피부를 벗어 버린 소청의 몸은 매끄럽기 그지없고 막 태어난 아이의 그것처럼 부들부들했다.
“쓰으, 후우…….”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호흡은 고르고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날숨을 따라 그의 코에서 시커먼 탁기가 밖으로 뿜어졌다.
더 이상 탁기가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쯤 소청의 몸이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후우…… 후우…….”
낮고 가늘어진 숨소리.
소청이 천천히 눈 뜨는 순간 맑은 빛이 확 하고 뿜어졌다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
소청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분명 어둠이었는데 너무나 밝게 보였다.
굳이 내공으로 안력을 높이지 않아도 동굴 안이 흐린 날 대낮처럼 환히 보였다.
“이거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분명 태청신단을 먹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옷이……. 그리고 이 냄새는 또…….”
소청이 코끝을 찡그렸다.
어디선가 한 십 년 정도 씻지 않은 듯한 악취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저게?”
냄새의 흔적은 소청의 몸 주위에 떨어진 천과 껍질 같은 조각들에서 나고 있었다.
“피부가…….”
윤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더욱이 탄탄해진 근육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갑옷처럼 자리 잡았다.
소청은 서둘러 운기를 해서 몸 안을 살폈다.
‘다, 단전이…….’
거대해졌다.
몸에 힘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팰괘공이 사라지고 이전에 없었던 거대한 힘이 단중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다 백회, 명문, 회음?’
여덟 개의 기운이 넷으로 줄었지만, 그 넷이 태극의 기운만큼이나 거대했다.
운기를 마친 소청이 눈을 끔벅거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설마 탈태환……골?”
만독불침은 짐조의 내단으로 인해 이루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독성을 지닌 놈의 내단을 먹었으니 이미 예상한 바 있는 기연이었다.
그런데 탈태환골이라니…….
태청신단의 기운이 짐조와 대환단의 기운을 만나 그를 또 다른 전설상의 경지로 이끌어 놓았다.
짐조는 자신이 의도한 기연이었고, 대환단과 태청신단은 타인에 의해 얻은 기연이었다.
그리고 그 세 가지가 만나 전례 없던 경지를 만들어 놓았다.
“하, 이거 엄청난 기연을 얻어 버렸네.”
멋쩍게 웃어 버린 소청은 문득 지독스럽게 몰려오는 허기를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일단 배부터 채워야겠군.”
소청은 독물들의 잡아 닥치는 대로 뜯어 먹었다.
지금으로서는 먹을 것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단전에 모인 건 태극의 기운인데. 설마 이전처럼 두 개의 혈을 합일할 수 있는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청이 단전에 회음의 기운을 끌어당겼다.
우우웅!
거침없었다.
순식간에 회음혈이 단전의 기운과 뒤섞여 버렸다.
이전처럼 고통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래 담고 있지는 못할 것 같았다.
합해지는 순간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갈 듯이 요동쳤고 너무나 거대한 힘인지라 감히 제어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픽!
기운을 흩어 버린 소청은 거친 숨을 내몰아 쉬었다.
“이거 대단해지기는 했는데……. 이렇게 되면 합일한 기운을 쓸 수 있는 건 두 번뿐인가?”
상관없었다.
그것만으로 대단했다.
단전에는 태극의 기운이 항시 자리 잡아 있고 천뢰충파라 이름 지었던 기운은 이번보다 배는 더 강하리라.
“일단은 나가야겠지? 나가서 연구를 좀 해야겠어.”
소청이 창대를 잡았다.
그리고 막혀 있는 동혈을 향해 사정없이 후려쳤다.
꾸우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