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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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93화
92화. 남겨진 자들의 아픔
대규모 조사단이 꾸려졌다.
대막의 경계로 나갔던 혁력휘는 돌아오자마자 광기를 품고 산을 이 잡듯이 뒤졌다.
무너진 동굴이 있던 산악에 수천의 무인들이 모여들었다.
정천맹주가 직접 지시를 내렸고 사도련주에 의해 무인들이 대거 동원되었다.
역사에 없었던 정사 연합의 수색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찾았다.
초사와 비마대가 산자락과 협곡을 가리지 않고 달리며 출구로 보이는 동굴을 찾아내었다.
“소청!”
혁련휘는 미친 듯이 출구의 돌무더기를 맨손으로 파내었다.
손톱이 부서지고 피부가 찢어졌다.
내공이 마를 때까지 파내고 또 파내었지만 이미 지반이 약해진 동굴은 파낼수록 더욱 빠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소련주! 그만하게!”
보다 못한 섬뢰가 소련주를 말렸다.
“놔!”
혁련휘의 눈에 시퍼런 불꽃이 튀어 올랐다.
“가까이 오지 마.”
혁련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던 섬뢰가 뇌령도문의 무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소련주를 떼어 내라!”
까드드득!
뇌령도문의 무인들이 다가서는 순간 참작이 휘둘러져 땅을 파헤쳤다.
깊이 파인 칼날의 흔적이 경계를 그어 버렸다.
“다가오면 모조리 죽여 버릴 테다!”
거친 숨을 몰아 내쉬는 혁련휘의 눈에서는 귀기마저 감돌고 있었다.
평소 아웅다웅하며 그를 아껴 왔던 섬뢰조차 더 이상은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군사님! 북쪽으로 가야 합니다. 북으로 가게 해 주십시오!”
뒤늦게 도착한 제갈휘문을 향해 초사와 비마대가 피를 토하듯이 외쳤다.
“분명히 북쪽이라 하셨습니다. 저들이 북쪽과 관련이 있다 했습니다. 패월은 분명히 그들을 쫓아갔을 겁니다.”
“…….”
“허락해 주십시오!”
초사와 비마대의 말에 제갈휘문이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어찌해서 안 됩니까! 어째서요! 그분이 어떤 분인지 잊으셨습니까? 정천을 위해 어떤 일을 해 왔는지 잊으셨단 말입니까!”
초사의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안 되는 일이었다.
냉철해져야 했다.
만약 진소청이 살아 있었고 무너지기 전에 빠져나갔다면 소식을 전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분명 표식을 남겼으리라.
이미 하오문의 우진혜와 묵영단의 흑비가 그의 흔적을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적서는?”
“…….”
“그는 그리 생각 없는 인물이 아니다. 살아 있다면 분명 적서가 움직였을 것이다.”
“군사님!”
짜악!
제갈휘문이 초사의 뺨을 때렸다.
그는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았지만 그들은 소청과 함께 생사고락을 보냈고 수많은 것을 얻고 배웠다.
“초사! 정신 차려라! 냉정해지란 말이다!”
“어찌 냉정해집니까……. 어찌요. 걱정 마십시오. 북으로 가겠습니다. 패월을 찾아 그분을 도와야 합니다.”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린 초사와 비마대가 당장에 짐을 꾸렸다.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이 이성을 잃고 죽음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했다.
“초사와 비마대를 감금하라!”
새롭게 조직한 백인대의 무인들이 초사와 비마대를 묶었다.
“놓으시오! 놓으란 말이오!”
끝까지 발악하는 통에 수혈까지 짚고 말았다.
제갈휘문이 눈을 돌려 보니 자신의 행동을 막으려는 뇌령도문의 무인들을 향해 혁련휘가 짙은 살기마저 뿜어 대고 있었다.
툭, 투둑.
차가운 물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제갈휘문의 얼굴을 적셨다.
비가 내렸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한두 방울에서 시작한 비가 소나기로 변했다.
“후우…… 소청, 자네는 보일 때나 보이지 않을 때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있군그래. 부디…….”
군사라는 신분이 그를 냉정하게 행동하게 했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렸다.
비가 내렸고 바람이 휘몰아쳤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이 지나고 입구와 출구에 남은 경계 병력을 제외하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사이 하오문과 묵영단은 감숙성을 중심으로 소청의 흔적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열흘째가 되었을 때.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소청의 죽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쪼르륵.
술이 따라졌다.
무너진 바위를 타고 흐른 술은 바닥에 닿아 스며들었다.
벌컥, 벌컥…….
혁련휘는 비바람을 맨몸으로 맞으며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처럼 소청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빠져나갔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떠날 수가 없었다.
그때.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선두에 선 자는 다름 아닌 진가신이었다.
그 옆으로 소강이 보였고 진무월창의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아버님!”
혁련휘가 달려가자 진가신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 자네는 있었구먼그래. 자네는…….”
그는 수척해져 있었다.
소강도 마찬가지였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아니 술병을…….”
진가신이 혁련휘의 손에 들린 술병을 바라보고는 눈을 돌려 바위에 뿌려진 술의 흔적을 응시했다.
“이보게. 어찌 자네마저 죽은 사람 취급하는 겐가?”
“…….”
“앞으로는 술을 붓지 말아 주게. 살아 있을 것이네. 강한 아이가 아닌가? 우리 소청이는 그리 쉽게 죽을 아이가 아니란 말이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마음이 울컥이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올랐다.
“아버님…….”
“그래, 그래. 그러면 되는 게야.”
힘없이 말하고 어깨를 두들기는 모습에 혁련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뭣들 하는 게야. 벌써 열흘이 지났어.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서두르게. 소강아, 어여 서둘러라!”
“예. 아버님!”
진가신의 말에 소강와 진무월창의 무인들이 동굴의 입구를 곡괭이로 찍기 시작했다.
깡! 깡!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산자락을 울렸다.
멀리서 번을 서고 있던 무인들이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
“뭣들 하시오!”
하지만 혁련휘가 그들의 앞을 막아서고 벌게진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대로 둡시다. 제발. 지금은 저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번을 서던 무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혁련휘는 그렇게 진가의 사람들을 지켜보고 또 지켜보았다.
하루가 지나고 또 이틀이 지났다.
사람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도 진가신과 소강은 쉬지 않았다.
손이 부르트고 피가 흐르면 천으로 동여매고 곡괭이질을 계속해서 이어 갔다.
하지만 동혈은 파내면 파낼수록 무너졌다.
한참을 파냈지만 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폭발로 지반이 약해져 파낸 만큼의 산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아버님.”
혁련휘가 진가신의 곡괭이를 잡았다.
“제가 하겠습니다. 잠시만 쉬십시오.”
“아닐세. 내가 하겠네. 내가.”
“아버님.”
혁련휘가 진가신을 바라보며 슬프게 미소를 지었다.
“손이 이게 뭡니까. 끼니도 거르셨지 않습니까? 그 녀석이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
진가신이 혁련휘를 바라보았다.
“잠시만…… 잠시만 쉬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알겠네.”
진가신이 터덜터덜 몸을 돌려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을 감추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벌써 십삼 일이 지났다.
혁련휘가 고개를 떨궜다.
그는 말없이 곡괭이질을 이어 갔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휘아.”
“스승님…….”
스승은 보지 않은 사이에 제법 늙어 있었다.
위도혁은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 좋은 친구였더냐?”
“…….”
“네 슬픔이 나의 마음까지 전해지는 듯하구나.”
스승의 말에 혁련휘는 갑자기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스승님 도와주십시오. 제 힘으로는 무리입니다. 스승님이라면 가능하지 않습니까? 이 산을 날려 주십시오.”
“…….”
애원하는 혁련휘를 지그시 바라보던 위도혁이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
“안 된다.”
“어찌 안 됩니까? 혹여 녀석이 갇혀 있다면 어찌합니까? 만약 죽었더라도 시신을…….”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휘아. 그 아이가 갇혀 있다 해도 죽었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수없이 검을 휘두른다면 산을 날릴 수는 있겠지.”
“…….”
“하나 그리되면 동굴은 더 무너질 것이다. 혹여 네 말대로 살아 있다면 다시 무너지는 동굴에 깔릴 것이고, 만약 죽었다면 시신마저 훼손될 것이다.”
“…….”
반문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신의 말이 원통하고 비통함에서 나온 억지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스승님…….”
“나 역시 그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예. 금방이라도 동굴을 뚫고 나와 웃을 것만 같습니다.”
그것이 혁련휘의 마음이었다.
소청이 그러했듯 처음으로 마음을 준 친구의 죽음은 그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 놓고 있었다.
“휘아. 돌아가자.”
“스승님.”
“네 슬픔은 어디를 향해 있느냐?”
“…….”
“죽었다면 너는 친구의 죽음 앞에 허송세월만 할 뿐이다. 친구를 죽인 놈에게 복수조차 하지 못하고…….”
검마…….
‘그놈만큼은…….’
혁련휘의 눈가에 어린 슬픔 사이로 잊고 있던 분노의 감정이 떠올랐다.
“섬뢰가 그리 말하더구나. 만약 놈이 상처를 입지 않았다면 자신은 죽었을 것이라고……. 하면 너는 어떠하냐? 자신이 있느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섬뢰는 강했다.
지금의 자신과 비교하면 대등하거나 조금 앞서는 수준일 뿐이었다.
“가자. 가서 새로운 사도를 이끌어라. 내가 그리 만들어 주마. 새로운 사도를 이끌어 네 친구를 죽인 저들을 모조리 부숴 놓거라.”
불길이 솟구쳤다.
불길에 살심과 분노가 화탕처럼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혁련휘는 무너진 동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가의 사람들을 찾아갔다.
떠난다 했고, 진가신은 말없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미안했다.
그리고 미안한 만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기다려라. 내 반드시 네놈만큼은……. 평생을 바닥을 기며 개처럼 살아가게 만들어 주마.’
* * *
으적, 으드득.
독이 터져 나오고 피가 터져 턱 밑을 흘렀다.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났고 퀭한 눈동자에서 귀기가 흘러나왔다.
꿀꺽.
오물거리던 것이 힘겹게 목을 넘어갔다.
“하, 젠장. 이것도 자꾸 먹으니 먹을 만하네.”
처음에는 톡 쏘고 씁쓰름했다.
맨 처음 갇혔을 때 하루, 아니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니 어쨌든 오랜 시간 분노가 치밀었다.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다가 동굴이 진동하면서 흙더미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걸 보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적서가 생각나 만리향을 품은 단약을 바닥에 놓았다.
하지만 오지 않았다.
적서가 냄새를 맡지 못할 만큼 꽉 막혀 버린 것일까?
그러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드러누워 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맨 처음은 두꺼비였다.
독 섬여(毒蟾蜍).
살기 위해 맹렬하게 독기를 뿜어내던 놈은 삼매진화에 구워져 입으로 향했다.
그 후로 허기가 질 때마다 한 마리씩 잡아먹었다.
이제는 굳이 구워 먹을 생각도 없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고강한 내공을 익혔다 해도 소청은 불가나 도가의 인물이 아니었다.
무슨 등선을 하는 것도 아니고 허기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것은 독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놈들도 허기를 이기지 못했다.
처음에는 합심하여 소청을 뜯어 먹으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자 자기들끼리 싸우고 뜯어 먹으며 배를 채우고 있었다.
단지 짜증 나는 것이라면 자는 사이에 독 지네 녀석이 자꾸만 귓속을 파고든다는 것이었다.
코를 파고든 것은 어차피 입으로 들어오니 씹어 먹으면 되었지만 귀를 파고드는 것만은 귀찮았다.
“젠장할……. 도대체 방법이 없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