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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92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92화

91화. 젠자앙!

 

 

 

 

동굴 안은 어두웠지만 내력의 일부를 안력으로 돌린 소청은 어느 정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었다.

곳곳에 녹아 버린 뇌령도문의 무인들이 보였다.

독에 대한 감응이 높지 않았다면 아마도 동굴에 들어오고 나서야 중독되었음을 알았을 것이고 깨달았을 때는 늦었을 것이다.

‘개자식들…….’

그렇게 얼마나 들어왔을까?

‘응?’

미약한 바람에 화혈독의 비릿한 냄새가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은 동굴의 끝이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뜻했다.

‘도주? 그렇게 둘 순 없지.’

마음이 급해지자 그의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무언가 날아왔다.

캬아악!

소청의 손에 잡힌 놈이 하얀 독니를 드러내며 코끝까지 입을 들이밀었다.

‘칠혼독사?’

흔하지는 않지만 중원의 산중에서 간간이 볼 수 있는 놈이었다.

하지만 물리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치사율이 꽤나 높은 놈이었다.

그리고.

취이익!

사방에서 수백 쌍의 붉은 눈동자가 생겨나 소청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것들 봐라?”

팍!

칠혼독사의 머리를 손으로 터트려 버린 소청의 입술이 짜증스럽게 비틀려 올라갔다.

화혈독으로 공간을 폐쇄한 것도 모자라서 갖가지 독물들로 동굴을 가득 채워 놓고 독진(毒陳)으로 함정을 파 둔 것이다.

소청은 독진을 이루고 있는 독물들의 모양을 찬찬히 살폈다.

독주, 독두, 독사…….

소청의 기준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황제외경 영물 편’에 한 글자도 실리지 못하는 흔하디흔한 독물들이었다.

독혈보에서 사용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조잡한 수준이었다.

대충 보아하니 인근에 사는 독물들을 모조리 불러 모은 것 같았다.

“아주 개지랄을 떨어 놓았구나.”

소청은 태극의 기운을 모아 온몸에 둘렀다.

독진이라는 것은 환영진과는 달랐다.

순수한 살상진(殺傷陳).

생문이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독진은 독물들의 독성을 배가시켜 진입하는 순간 접근하는 자를 중독시키고 그 시신마저 뜯어 먹는다.

특히나 사방이 막혀 피할 곳이 없는 동굴이라면 그 위력은 더욱 강해지는 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기준을 가진 무인의 경우에 한해서였다.

만독불침의 소청에게 있어 독진은 그저 길을 막아 놓은 장애물에 불과했다.

“이따위 장난질로 추격을 막을 수 있을 줄 알았겠지.”

소청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독진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진의 경계가 침범당하자 독물들이 진한 독기를 뿜으며 소청을 공격했다.

콰직!

바닥에 깔린 독물들은 소청의 발길에 터져 버렸고 날아온 독물들의 이빨은 소청의 피부를 뚫지 못했다.

질주하듯이 달리던 소청의 걸음이 느릿해졌다.

짙었던 독 기운이 사라지고 느껴진 것은 미세한 살기였다.

슈가각!

소청은 날아오는 장력을 주먹으로 터트리며 상대의 목을 잡아 그대로 동굴의 벽면에 쑤셔 박았다.

“크억!”

뿌드득.

걸음을 멈추고 목을 꺾어 버린 소청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눈앞에 나타난 자들.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거세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이 온몸에 피를 빠르게 공급했다.

녹의를 입은 십수 명의 무인들 사이로 소청이 쫓던 인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찾았다.

상처를 입은 채 누군가에게 업혀 있는 검마와 그의 옆에 서 돌아보며 녹빛 눈깔을 빛내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소청의 눈에 옅은 긴장감이 어렸다.

‘폭멸마동?’

이젠 그들과 함께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만 봐도 치가 떨려 왔다.

하지만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이지를 상실한 회색빛이 아니라 녹빛 눈동자였고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살기와 기세는 검마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독마?”

소청의 말에 독마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네놈이 진소청인가?”

독마가 슬쩍 검마를 보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폭멸마동에 죽었을지도 모른다더니……. 살아 있었네. 운이 좋군.”

“그래. 신세 많이 졌다. 맨몸으로 맞았으면 진짜로 뒈질 뻔했거든.”

소청의 말에 독마가 그의 등에 걸쳐진 피풍의를 보았다.

“혈잠의 보포라……. 폭마가 쓸데없는 것을 남겼군.”

“큭큭큭.”

갑자기 소청이 웃기 시작했다.

“어째서 웃지?”

“좋아서.”

“…….”

“좋아서 미칠 것 같거든. 네놈들 얼굴을 보게 돼서 말이야.”

“…….”

독마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동혈의 입구에 화혈독을 대량으로 살포했었다.

내독단이 없다면 마천의 두 대공이라도 쉽게 접근하지 못할 정도의 양이었다.

더욱이 독진을 깔아 두었는데 어찌 자신을 따라올 수 있었던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쫓아올 수 있었는지 모르겠군. 정천에 그만한 효력을 가진 내독단이 있었나? 화혈독이라면 선도의 비기인 단목진기(檀木眞氣)라 해도 쉽지 않았을 것인데?”

독마의 물음에 소청이 싸늘하게 웃었다.

그리고 한 발짝을 내디뎌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저승에 가서 물어봐라. 이 늙은 애 새끼야!”

소청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세가 동굴을 진득하게 울리자 독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검마가 당했다고는 하나 독마는 자신이 있었다.

검마의 마검 회선칠류는 실로 감탄할 정도로 대단한 무공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무공도 그에 못지않았고, 무엇보다 무공에 스며 있는 독기는 세상의 그 어느 것도 녹여 버리리라 자신했다.

당가를 이용했던 일에 대한 질책을 받은 바 있었기에 당장이라도 소청을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독에 중독되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놈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검마의 생존과 마종의 명에 따라 환영곡의 생존자들을 말살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사설이 길었군. 죽여라!”

독마의 명령이 내려지는 순간 소청의 걸음이 빨라졌고 독혈보의 무인들이 몸을 돌렸다.

가가각!

독혈보의 무인들이 가까워지는 순간 휘둘러진 창극이 벽면을 스치며 불꽃을 만들어 내었다.

그 붉은 꽃이 수그러들기도 전에 독혈보의 무인 하나가 사선으로 갈라졌다.

피가 튀었지만 어둠으로 인해 색이 보이지 않았다.

사사삭!

짧게 그어지는 창날과 독혈보의 무인들이 어우러졌다.

그사이 독마와 검마가 동굴의 안쪽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이런 젠장할 것들이!”

소청은 마음이 급해졌다.

일격에 모조리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지금 천뢰충파를 쓸 수는 없었다.

그 정도의 폭발력이라면 사람 하나 들어가기 힘든 동굴이 모조리 무너져 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독혈보의 무인들도 한 번에 하나 이상 다가서지 못했다.

위협조차 되지 않았지만 길을 뚫고 나아가기에는 꽤나 큰 장애였다.

으드득!

창대를 거둔 소청은 손에 잡히는 대로 뜯고 찢어 버렸다.

고통을 주고 포로를 잡아 심문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앞을 가로막은 것들을 죽이고 독마와 검마를 잡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물러나라! 하독한다!”

우태가 서넛이 찢겨 나가는 독혈보 무인들의 모습에 다급하게 외치자 그들은 일제히 물러나며 약병을 꺼내 던졌다.

퍼억!

진한 독기가 동혈 안을 가득 채우고 불어온 바람에 화혈독이 소청을 향해 날아들었다.

무려 열 개의 약병에 담긴 화혈독이었다.

우태는 그의 죽음을 확신…….

으드득! 파학!

독연을 뚫고 사신의 손이 뻗어졌다.

“저럴 수가!”

독혈보의 무인 하나가 또다시 찢기고 뿌려진 피가 동굴의 벽면을 적셨다.

그리고 시퍼런 안광을 토하는 소청의 눈동자가 보였다.

쫘아악!

찢어졌다.

화혈독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고 그들의 무공은 진소청에게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광기 어린 눈동자와 함께 다가서는 소청의 손아귀에서 종잇장처럼 찢어져 나갔다.

“도, 도망쳐라!”

잔인한 손아귀를 두려움으로 물든 눈으로 응시하던 우태는 최선을 다해 도망쳤다.

찢기는 수하들을 버리고 미친 듯이 내달렸다.

동굴의 끝을 통해 빛이 보였다.

대막으로 가는 길목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빛 무리에 독마와 검마의 그림자가 보였다.

살았다.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와 같은 자를 피해 드디어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그런데 독마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세, 세주님?”

독마와 검마가 몸을 돌리고 그들을 대신해 작은 아이 하나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폭멸……마……동.”

우태의 걸음은 멈춰졌다.

아이는 천천히 동굴을 향해 걸어 들어왔고 뒤에서는 소청의 살기가 진득하게 느껴졌다.

“이런 씨발…….”

주인에게 버림받은 우태의 욕설과 함께 아이의 눈에서 붉은 화광이 일어났다.

꽈르르릉!

그리고 폭발했다.

우그르르…….

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너지고 있었다.

멀리 보이던 빛이 무너지는 바위틈에 묻혀 사라지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바위에 깔리는 우태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이런 젠장!”

독혈보의 무인들을 모조리 찢어 죽이고 우태를 뒤쫓아 왔던 소청은 산악이 뒤흔들리는 충격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후두둑.

산 전체가 진동했다.

그리고 동굴이 굉음을 내며 무너지고 있었다.

멀리 보이던 우태를 깔아뭉갠 붕괴가 삽시간에 이어져 소청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개새끼들이!”

자신의 수하까지 묻어 버리는 잔혹함에 치를 떨기보다는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시간이 없었다.

무너져 내리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멀리 보였던 빛까지는 무려 오십여 장 정도 되는 거리였다.

이미 무너지고 있으니 그 틈을 빠져나가려 하다가는 바위 더미에 깔릴 뿐이었다.

파앙!

결정을 내린 소청은 온 힘을 다해 뒤돌아 달렸다.

우웅!

태극의 기운을 모아 용천혈로 모조리 뿜어내었다.

동굴이 구불구불했기에 일보월하의 경공도 펼칠 수가 없었다.

머리 위로는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미친!”

콰드득거리며 이어지는 균열이 소청을 앞질렀다.

호흡을 고를 틈도 없었다.

동굴이 좁아 이곳저곳에 부딪혀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떨어지는 바위를 때려 부수고 무너지는 흙더미를 넘어 달리고 또 달렸다.

뒤를 돌아볼 틈이나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무언가 발밑을 지나가고 있었다.

달리던 소청의 걸음이 느려졌다.

독진을 이루고 있던 독물들이 미친 듯이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으로 보였다.

콰드득. 우르르르…….

희망이 짓밟히고 있었다.

“안 돼!”

입구가 사라지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일 장을 뻗었지만 붕괴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

소청의 걸음은 멈춰 버렸다.

무너졌다.

자신이 들어왔던 입구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서서히 굉음이 잦아들더니 동굴은 더 이상 무너지지 않았다.

소청은 혹시 모를 여진에 대비해 창대를 세워 천장을 받쳐 두었다.

갇혀 버렸다.

“하아…… 망할…….”

깊은 한숨과 함께 소청이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은 소청을 향해 독진의 독물들이 다가왔다.

“너희도…… 도망쳐 온 거냐. 하아, 꼬라지가 더럽게 됐네.”

소청은 한숨을 내쉬며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물어뜯고 있는 독물들을 바라보았다.

 

* * *

 

소청이 동굴로 들어가고 신호탄을 보고 달려온 무인들이 모조리 모여들었다.

곤륜, 청성, 아미, 그리고 뇌령도문의 무인들…….

짙게 뿌려진 화혈독의 독성 앞에서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거대한 폭발.

그리고 무너짐.

소청이 들어갔던 동굴이 무너져 내리며 먼지구름이 파도처럼 뻗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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