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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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91화
90화. 사라진 검마
일곱 자루의 마검이 살아 있는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포위한 무인들의 수가 적지 않았지만 가공할 기세를 품고 있는 검마의 회선칠류를 당할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검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외상이 완전히 낫지 않았고 내공을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뚫고 지나가려 했으나 무인들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좀 전까지는 뇌령도문의 무인들뿐이었으나 언뜻 곤륜의 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천라지망을?’
검마의 코끝이 찡그려졌다.
그리고 그 순간.
우르릉!
천지를 진동시키는 뇌성과 함께 무지막지한 일격이 그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쩌저저적!
갈라진 뇌전의 도가 피해 버린 검마를 대신해 대지를 갈라놓았다.
“뇌도, 섬뢰…….”
뇌령도문의 무인들이 나타났을 때 눈치를 채었어야 했다.
설마하니 사도삼위의 하나인 그가 직접 이끌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네놈이 검마인가?”
일격에 대지를 갈라 버린 섬뢰가 검마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피융! 퍼엉!
그 순간 섬뢰의 등 뒤로 신호탄이 날아올랐다.
좋지 않다.
현재 자신의 상황에서 시간을 끌어 좋을 것은 없었다.
신호탄이 터졌으니 금세 무인들이 몰려들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단독이 아니라 포위망과 함께 온 섬뢰였다.
몇 초의 겨룸으로 상대할 자가 아니었다.
‘제길! 체면이 말이 아니군.’
진소청에 이어 섬뢰에게서까지…….
어쩌다 자신이 쫓기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인가.
화악!
검마의 손이 펼쳐지자 마검의 기운이 돌아와 그의 등 뒤로 일곱 자루의 검이 형상을 갖추었다.
“굉장하군. 기의 검이라니 내력 소모가 만만치 않을 터인데…….”
만만치 않게 느껴지는 마기에 섬뢰가 양손으로 도의 손잡이를 잡았다.
“막을 수 있겠느냐?”
“당연하지. 너 따위 정도야.”
검마의 말에 섬뢰가 피식 웃었다.
“흥, 격의 차이를 보여 주마!”
검마의 손이 뻗어지자 일곱 자루의 검이 일렬로 늘어서며 쏘아져 나갔다.
까앙!
모두 세 번의 금속음.
도의 넓은 면으로 후려치고 비껴 낸 섬뢰의 발이 한 자나 밀려 나갔다.
셋은 막았으나 실린 힘이 만만치 않아 넷부터는 피할 수밖에 없었다.
휘리리링.
허리를 젖히며 잡은 도신에 희뿌연 강기가 어리자 섬뢰는 나무줄기를 뽑아 올리듯 사선으로 후려쳤다.
꽈르릉!
뇌전이 대지에서 솟구쳐 올라 마검을 모조리 튕겨 내었다.
섬뢰와 검마는 자신이 가진 초식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뇌전이 대지를 갈라놓았고 마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섬뢰는 잡기 위해, 검마는 도망치기 위해…….
가히 공전절후라 불러도 좋을 만큼의 대결에 포위망을 형성했던 이들은 기운의 범위에서 물러나 대기했다.
괜히 휩쓸렸다가는 애꿎은 명줄만 당겨질 뿐이었다.
“합!”
검마의 양손이 하나로 모이자 튕겨 나가 허공에 산개했던 검이 섬뢰의 머리 위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사람의 크기만큼 거대한 검, 마기의 집합체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휘리리리…….
거대한 기운의 회전이 와류(渦流: 소용돌이)를 만들고 와류는 폭풍을 불러왔다.
사방으로 퍼져 나간 마기가 먹구름 낀 날처럼 세상을 검게 물들였다.
쿠르릉.
하늘에 먹구름이 모여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 이런!”
섬뢰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리고.
얼굴 가득히 잔인한 미소를 머금었던 검마의 손이 내려졌다.
“회선칠류, 지충추(地衝錐)!”
콰콰콰콰!
회오리의 중심이 섬뢰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섬뢰가 피하려 했지만 검이 만들어 낸 회오리가 그를 중심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모두 물러나라!”
담긴 기운이 강하니 막지 못하면 일대가 초토화될 것이었다.
섬뢰가 기운을 모조리 뽑아내 도신에 실으며 수하들을 향해 외쳤다.
우르릉!
뇌성이 울리고 섬뢰의 도신에 무지막지한 전격이 피어올랐다.
뇌신 천뢰살(天雷煞).
올려치는 도신을 따라 섬뢰의 모든 심득이 담긴 초식이 펼쳐졌다.
꾸우…….
두 개의 기운이 힘겨루기를 하듯이 허공에서 부딪쳐 지지직거리는 마찰음을 만들었다.
‘크으으…….’
도신을 잡은 섬뢰의 팔에 굵은 힘줄이 튀어 올랐다.
밀리고 있었다.
마검의 중심이 천뢰살의 중심을 꿰뚫고 있었다.
그 순간.
“쿠헉!”
검마가 피를 토해 내었다.
가슴께에서 사선으로 피가 터져 올랐다.
내상이 나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내공을 끌어 올려 내상을 입었고, 과도하게 힘을 준 터라 소청에게 당한 상처가 재차 터져 버린 것이다.
콰아아앙!
집중력을 잃어버린 검마의 기운이 폭발했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그 일대의 숲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크으윽!”
섬뢰가 도신을 짚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런 가공한…….’
막지 못했다.
검마의 힘이 끊어져 기운이 폭발을 일으켰지만 천뢰살이 이미 뚫린 상태였다.
“문주!”
뇌령도문의 무인들이 서둘러 다가왔다.
“놈이…… 도망쳤다. 서둘러 쫓아라. 절대 대적해서는…… 안 된다.”
섬뢰가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며 힘겹게 말했다.
* * *
감숙의 가욕관 인근 산자락에 자리 잡은 낡은 판잣집.
어둠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주위의 분위기가 너무나 적막했다.
사람의 손이 오래 닿지 않아 밤벌레들이 넘쳐 나야 함인데 울음소리조차 없었다.
사박, 사박.
고요함 때문인지 풀잎을 스치는 발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려왔다.
녹의를 입은 자가 앞서고 적의를 입은 자 십여 명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적의를 입은 자들이 열을 지어 멈추자 녹의를 입은 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판잣집으로 다가갔다.
끼이이…….
위태롭게 서 있던 문이 귀신의 울음처럼 소름 끼치는 소음을 만들어 내었다.
수좌는 무거워진 마음을 다잡으며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그러곤 어둠 속에 앉은, 녹빛 눈을 가진 괴인을 향해 허리를 접었다.
“세주를 뵙습니다.”
세주라 불린 괴인은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우태, 끝난 게냐?”
싸늘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녹의인 우태가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다.
“다섯을 놓쳤습니다. 그리고 경천우와 혈독지괴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말이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를 모셔 온 우태가 그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다섯을 놓쳤다?”
되물음과 함께 어둠을 빠져나온 것은 오 척이 조금 못 되는 작은 아이였다.
독마 북궁려강.
아이의 몸을 하고 있지만 마천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아온 자였고 열두 가문 중 하나인 독혈보를 이끌고 있는 수장이었다.
독마가 수좌를 지나쳐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짙은 살기에 발아래 모인 풀들이 누렇게 말라 으스러졌다.
“다섯을 놓친 놈이 누구더냐?”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여 있던 인원 중 둘이 독마의 발 앞으로 뛰어나와 재빨리 엎드렸다.
“죄송합니다.”
“한혈, 주괴…….”
둘의 이름이었다.
독마는 독혈보의 무인들 중 정예만을 선발해서 나온 참이었다.
독혈보를 이끄는 열 명의 당주.
“그래. 실수할 수도 있지.”
독마가 나지막하게 말하며 두 명의 당주들 앞에 다가가 앉았다.
“한데 마종께서 내리신 명이다. 마종의 명에 실수란 있어서는 안 되는 일.”
독마의 손이 그들의 머리에 얹혔다.
맞닿은 손을 통해 새파란 기운이 어리고 한혈과 주괴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놈들의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제발, 제발!”
한혈과 주괴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두 번은 없다.”
차가운 말과 함께 당주들이 몸이 시커먼 연기를 뿜어 올리며 진물처럼 녹아내렸다.
치이이…….
완전히 녹아 버린 그들은 검게 변한 뼈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우태.”
“예. 세주님.”
“남은 다섯을 찾아 마저 죽이고 와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보고드릴 일이…….”
“…….”
“중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심상치 않다?”
“예.”
독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인가?”
“사도련 예하 뇌령도문의 무인들이 서쪽으로 이동했고 정천맹 예하 사천의 무인들이 감숙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우리를 노림인가?”
“아닙니다. 저들의 전서구를 확인해 본 결과 검마님을 쫓고 있었습니다.”
“검마를?”
“예.”
“멍청한. 진소청을 죽이는 데 실패한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혼자이신 걸로 봐서는 함께 온 검림의 무인들이 모조리 죽은 듯합니다.”
“으음…… 진소청. 그리 대단한 자였던가?”
독마는 잠시 고민했다.
어찌해야 하는가?
아직 마종이 내린 명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했다.
하나 지금 검마가 죽어서도 안 되었다.
그리고 진소청에게는 당가에서 당한 묵은 빚이 남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독혈보의 무인들을 모조리 모으도록. 일단은 검마를 먼저 구한다.”
“알겠습니다.”
* * *
내력을 회복하고 곤륜을 떠나온 소청은 초사와 비마대와 합류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추격대와 함께 검마를 뒤쫓고 있던 섬뢰를 만날 수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으음, 강하더군.”
내상을 입은 섬뢰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참담했다.
검마를 뒤쫓으며 뇌령도문의 무인 오십이 죽었다.
또한 자신마저 부상을 입었으니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얼마나 되었습니까?”
“한 시진이 지났네. 하나 그 역시 내상을 입은 듯했으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야.”
“알겠습니다.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나누시죠. 몸을 추스르십시오. 저는 놈을 쫓겠습니다.”
“알겠네. 회복되는 대로 따라가겠네.”
섬뢰와 헤어진 소청은 곧바로 신호를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검마의 흔적은 얼마 가지 않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뒤를 추격한 이들의 시신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리고.
일백에 가까운 무인들이 부채꼴 모양으로 포위한 장소에 도착했다.
산으로 둘러막힌 계곡에 뚫린 동굴.
“저곳이오?”
“예. 놈이 저곳에 숨어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척후를 보냈으나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모두 죽은 것 같습니다.”
뇌령도문 무인의 말에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섬뢰에게 내상을 입힌 자였다.
이미 피해를 보았음이 명확한데 다가서서는 쓸데없는 피해만 늘어날 뿐이었다.
차자자작!
소청이 창대를 늘어뜨렸다.
“초사, 진입한다! 주위를 살펴라!”
“알겠습니다.”
소청은 조심스럽게 동혈을 향해 접근했고 포위망을 구축한 무인들이 그 뒤를 따랐다.
동굴의 입구에 다다른 순간 비릿한 냄새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서 다가왔다.
“모두 멈춰!”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외친 소청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동굴 주변의 풀이며 나뭇잎이 누렇게 말라 죽어 있었다.
“독이군요.”
소매로 코와 입을 가린 우진혜가 옆으로 다가오면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금세 눈이 동그래져서 소청을 바라보았다.
“화혈독?”
“맞아.”
“하면? 독혈보?”
“여기서 기다려. 내가 들어간다.”
“아니, 저…….”
우진혜가 뭐라 말할 사이도 없이 소청은 명을 내리고 바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만독불침에 이른 소청임에도 진득한 독 기운에 얼굴이 찡그려졌다.
‘이만한 독 기운이라면……. 검마가 독혈보와 만난 것이군.’
상황이 어렵게 되었다.
검마는 부상을 입었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상대였다.
하지만 여전히 폭멸마동이 추가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있었다.
또한 독혈보를 만났으니 최악의 경우엔 독마 북궁려강이 함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 잡은 고기를 놓칠 수야 없지.”
소청은 창대를 줄여 단창을 만들고 동굴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