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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87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87화

86화. 찾아온 자

 

 

 

 

곤륜오검이 소청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소문대로 강하다.

자신들을 압박하는 기운이 사방을 휘몰아쳤다.

“자네의 뜻은 협상이 아니로군.”

옥허가 천천히 자리에 일어나 용문검을 잡았다.

채앵!

그의 말이 신호가 된 듯이 곤륜오검이 검을 뽑아 소청을 포위하듯 둘러쌌다.

“이거 참……. 휘.”

“…….”

“오십여 명쯤 되는군.”

“술은?”

“끝내고 사도록 하지. 그리고 가능하면 죽이지 마.”

“귀찮은데…….”

소청의 말에 혁련휘가 투덜거리며 일어났다.

“비켜.”

참작을 잡은 혁련휘가 짧게 위협하자 옥허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유롭게 밖으로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옥허가 코끝을 찡그렸다.

“실로 광오하기 짝이 없도다. 곤륜의 자선당 무인들이 그리 우스워 보였더냐?”

“그 이름도 알아야 하나?”

소청의 이죽거림에 옥허가 언짢은 기색으로 물러나 기수식을 취했다.

그러자 곤륜오검이 서로 다른 자세를 취하며 위치를 잡았다.

“어린 나이에 오존에 칭해져 오만 방자하기 짝이 없구나.”

그 말에 소청이 피식 웃었다.

차자자작!

창대가 빠져나왔다.

“진! 발동!”

그리고 옥허의 외침을 신호로 검진의 기세가 소청을 짓눌렀다.

 

밖으로 나온 혁련휘가 참작을 늘어뜨려 잡고 주루 입구를 둘러싼 자선당의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저쪽은 시작한 것 같은데? 어때?”

싸늘한 웃음과 함께 자선당의 무인들이 혁련휘를 향해 몸을 날렸다.

“날벌레들…….”

잔인한 비웃음이 지어졌다.

혁련휘의 손에 참작이 비틀려 잡혔고 어느새 하늘을 향해 세워졌다.

우우웅.

맹렬한 기세가 그의 칼끝에 모여듦과 동시에 천천히 바닥을 향해 그어졌다.

콰콰콰!

만 이랑의 파도가 부채꼴 모양으로 뻗어져 마을 관도를 가득 채웠다.

파사삭!

기운에 부딪힌 건물들이 터져 나가고 휩쓸린 무인들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단 한 수에 혁련휘를 향해 검을 뻗었던 무인들이 모조리 쓸려 나갔다.

오십여 명의 무인 중 반이 쓰러진 것이다.

“이, 이럴 수가…….”

말을 잇지 못했다.

차원을 달리하는 강함이었다.

그저 소청이라는 작자를 따라온 수하 정도로 생각했던 자의 무공이 너무도 뛰어났다.

팔다리가 잘리고 목이 없는 시신이 땅바닥을 뒹굴었다.

“제길…… 죽이지 말라고 했는데…….”

자신이 만들어 낸 풍경 속에서 죽은 이를 발견한 혁련휘의 눈이 찡그려졌다.

“어쩔 수 없지. 파천도는 쓰지 않는 수밖에.”

“…….”

순간 자선당의 무인들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귀를 후벼야 했다.

파천도.

무황의 무공임을 모르는 자는 무림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의 무공을 사용하는 젊디젊은 사내라면?

“소련주 혁련휘!”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가 사색이 되어 버렸다.

무황의 제자이자 사도삼위에 칭해지는 혁련휘.

이미 그의 첫수를 본 자선당의 무인들 마음속에 짙은 패배감이 떠올랐다.

“알았어도 달라지는 건 없어. 부탁받은 건. 최대한 죽이지 않고 모조리 제압하는 거니까.”

혁련휘가 움직였다.

파앙!

그리고 그의 신형이 자선당 무인들의 틈 속을 헤집었고 주먹과 발이 뻗어질 때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신음 소리가 울려 펴졌다.

 

따다당!

소청의 창대에 옥상이 내질렀던 용문검과 함께 튕겨 벽에 처박혔다.

“옥상!”

옥허가 눈을 찡그리고 소청을 노려보았다.

소청은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자신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쯧, 죽이지 말라니까.”

더욱이 자신들이 아니라 밖을 바라보며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는 말에 옥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마치 자신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패색이 짙었다.

안쪽도 바깥쪽도…….

소청의 무위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곤륜의 최정예 중의 하나인 자신들이었다.

일찍이 무림에 나가 무수한 전공을 세운 바 있었고 청성과 아미의 협공 속에서도 밀리지 않았던 자신이었다.

아미의 멸절사태마저도 자신들 다섯을 상대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렇기에 자신했다.

다섯이면 적어도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오산이었다.

오존의 벽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높았다.

오만했던 것은 소청이 아니라 자신들이었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장문인의 명을 수행해야만 했다.

협상이 아니면 죽여라.

“물러나라!”

옥허의 말에 검진을 구성했던 오검이 소청과 멀찍하게 거리를 두었다.

“과할 정도로 강하구나. 하나 너는 이곳에서 반드시 죽어야 한다.”

옥허를 시작으로 소청을 둘러싼 오검의 몸에서 기이한 기운이 피어오르고 주루가 통째로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언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여러 사람의 기운을 순간적으로 모아 발출하는 곤륜의 비기였다.

“표합탄공(飄合彈空)?”

그들은 소청을 죽이기 위해 동귀어진을 선택했다.

“알아도 이미 늦었다. 우리 오검의 표합탄공이라면 오존이라도 무사하지 못할 터!”

옥허를 시작으로 오검이 검을 버리고 쌍장을 뻗었다.

그 순간 소청의 단전에 태극의 기운이 강력하게 응축되며 모여들었다.

“오존을 만나 본 적도 없는 것들이!”

비웃음을 흘린 소청의 진각이 바닥을 거세게 파고들었다.

용천혈을 향해 발출된 기운이 지면을 파고들어 소청을 중심으로 거칠게 퍼져 나갔다.

쩌어엉!

원을 그리듯이 터져 오르는 천뢰충파의 기운과 다섯 곳에서 날아온 표합탄공의 기운이 부딪쳤다.

꾸아아앙!

거대한 폭발에 주루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후우우우…….

“쿨럭.”

충격파에 휩쓸려 한참을 뒤로 밀려 버린 옥허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검은 피를 토해 내었다.

온몸의 세맥이 갈가리 찢어졌다.

‘옥상……, 옥명……, 옥진……, 옥혜…….

자신을 제외한 곤륜오검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사형제들의 기억이 하나씩 옅어졌다.

“커억…….”

피가 줄기줄기 흘러 바닥을 가득히 채우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옥허가 소청을 바라보았다.

“진소청…….”

오연하게 서서 내리깐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에 더 이상 분노가 생기지 않았다.

‘장문인, 이자는 너무…… 강합니다. 곤륜은…… 곤륜은…….’

옥허는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무너져 내렸다.

소청이 그의 시신을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전투가 끝난 뒤 절벽을 기어 도착한 초사와 비마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초사!”

“예? 예! 패월.”

“죽은 자들을 묻어 줘라. 저들에게 시신을 수습할 여유는 없을 터.”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초사를 뒤로하고 소청이 살아남은 자선당의 무인에게 다가갔다.

멀쩡한 자는 하나도 없었다.

팔다리가 부러진 그들의 눈동자에 떠올라 있는 것은 공포뿐이었다.

“가서 전해라. 인사는 잘 받았다고. 답을 기다리겠다고…….”

자선당의 무인들은 짙은 패배감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소청은 지그시 그를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곤륜오검과 자선당의 무인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살려 돌려보내려 했다.

곤륜은 죽여야 할 자가 아니라 끌어안아야 할 자들이었다.

언젠가 제갈휘문이 구성하고 있는 서천맹의 한 축을 담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 그들의 죽음에 후회가 들지는 않았다.

충분히 경고를 했으니 그들은 답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제 그 답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후우…….”

 

그날 밤.

참담한 비보를 전해 들은 곤륜의 수뇌들은 난색을 감추지 못했다.

곤륜오검과 자선당의 패배.

전언을 들고 온 자선당의 무인은 단둘이라 했다.

진소청과 혁련휘.

곤륜오검은 동귀어진을 각오하고도 진소청을 넘지 못했고, 자선당의 무인 오십이 혁련휘에게 쓰러졌다.

“허, 오존의 힘이 그다지도 강했던가?”

장문인 연화자 양중선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장문인!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저들은 경고를 한 것입니다. 곤륜을 무너뜨리려 찾아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맞습니다. 고작 스무 명 정도입니다. 아무리 진혼창의 이름이 높다 하나 약관의 애송이입니다. 그들만으로는 일천 무인을 가진 곤륜을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응전해야 합니다.”

호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던 연공과 연각이 나서 말했다.

“그리 쉬이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사형. 곤륜오검 다섯을 홀로 죽인 자입니다. 거기에 사도련의 소련주까지 있습니다. 애꿎은 피해만 생길 뿐입니다.”

연비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닥치거라! 그의 무위를 직접 마주해 보지도 않고 어찌 곤륜이 꼬리부터 만단 말이냐!”

“하지만 방유현마저도 그에게 죽었습니다.”

“소문이다! 신승이 있었고 태존이 있었다!”

연공이 연비를 쏘아보며 나무랐다.

“조용히 하라!”

양중선이 장로들이자 자신의 사제들을 나무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결정을 해야만 했다.

양중선이 장고를 끝내고 눈을 떴을 때, 장로들은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며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항전할 것인가?

항복해서 오명을 안더라도 곤륜의 이름을 보전할 것인가?

“장로들은 들으라.”

“…….”

“그대들은 나의 사제이자 대곤륜을 지켜 온 무인들이다. 누구의 의견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의 선택 또한 후대에 평가받을 일이다.”

양중선의 말에 장로들이 크게 심호흡했다.

“나는 그대들과 뜻을 함께하고자 한다. 이미 우리는 오명을 얻었고 돌이킬 수는 없다. 죽는가, 엎드려 비는가만 남아 있다.”

“장문인…….”

모두의 얼굴에 참담함이 어렸다.

“진혼창이라는 그자의 무위가 생각보다 강한 건 사실이다. 하나 일천 무인이면 막을 수는 있을 게다. 하지만 그를 쫓아내고 나면 어찌할 것이냐? 정천은 변절한 우리를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

“그대들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듣고자 한다. 그대들은 나와 함께 곤륜의 미래를 결정할 권한이 있고 그 후 일어날 일에 대한 책임이 있다.”

“…….”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그들과 만나는 것은 우리다. 우리가 모든 책임을 지고 제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

“죽는 것도 우리일 것이고 비는 것도 우리일 것이다.”

두 개의 안건은 표결에 부쳐졌다.

그리고 양중선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들을 만나러 가면 되겠군.”

곤륜의 행보가 결정되었다.

그들의 행보는 ‘항복’이었다.

마천과 관여하였음을 인정할 것이다.

장문인과 장로들은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 후대를 지키기로 결정했다.

곤륜의 이름만은 지켜야 했다.

제자들을 더 이상 마천에 협력한 오명을 쓰고 그들의 개로 죽어 가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진소청이 무서워 그리한 것이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 항전하면 이길 수 있다는 자존심이 있었다.

하나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명이었다.

누대를 걸쳐 이어 온 의기와 협기를 더럽힌 책임을 지고자 하는 것이었다.

“다들 이만 돌아가 쉬게. 내일 아침에 그들을 만나러 가세.”

“예. 장문인.”

결정이 내려지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

그런데.

콰앙!

거친 폭발음이 들려왔다.

“아니, 이게 무슨?”

설마?

옥허를 보내 경고를 했던 진소청이 기습이라도 해 온 것일까?

양중선과 장로들이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곤륜의 제자들이 검을 뽑아 들고 산문을 들어서는 이들을 향해 매서운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걸어 들어왔다.

한 자루 검처럼 날카로운 예기와 짙은 마기를 사방으로 뿌려 대며 그가 천천히 걸어왔다.

“낯짝을 보아하니 가서 사죄라도 할 얼굴이로군…….”

그가 잔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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