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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78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78화

77화. 마천의 움직임

 

 

 

 

용암산의 중심부.

심처에 가까워질수록 그 열기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선 구자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한서불침의 몸도 무쇠마저 녹여 버리는 그곳의 열기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용암이 고이고 폭발했던 흔적으로 인해 하늘이 열려 있는 곳이었다.

화룡의 은신처와 같은 그곳의 중심에 한 사내가 태사의에 앉아 있었다.

마종.

마천의 주인이자 그곳에 속한 모든 이들이 복종해야 하는 사내였다.

그 앞으로 열 명의 노인들이 양쪽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파군은 세 명의 세주가 죽고 제갈휘문을 죽이지 못했음에 대해 보고를 하며 죄를 청하고 있었다.

“사, 살려…….”

손이 뒤로 묶여 꿇어앉은 자의 머리 위에 태사의 사내의 손이 얹혔다.

츠츠츠츠.

“끄아아아!”

묶인 자의 몸에서 시퍼런 기운이 뽑혀 나와 힘줄이 돋아 오르고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후우…….”

생기가 완전히 빨려 나가 버린 사내는 눈동자가 회백색으로 변했고 온몸이 고목처럼 변해 갈라졌다.

투툭.

오랜 세월 풍화된 흙 인형처럼 부서지자 검은 장포의 무인 둘이 눈이 가려진 여인 하나를 짐승처럼 끌고 와 사내의 옆에 앉혔다.

“꺄아아악!”

사내의 손이 오르자 여인이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독마.”

“하명하십시오.”

나지막한 부름에 독마가 재빨리 그의 앞으로 튀어나와 이마를 땅에 찧었다.

“당가에 흔적을 남기고도 실패한 것인가?”

담담했지만 그것이 질책임을 모르지 않았다.

마천의 한 기둥이라 불리는 독마 북궁려강은 사내의 말에 식은땀을 흘리며 눈알을 굴렸다.

그사이에도 생기를 빨아 먹히는 여인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용암산의 중심부를 가득히 울리고 하늘과 맞닿은 산정의 입구를 향해 퍼져 나갔다.

하지만 사내는 무표정하기만 했다.

“마, 마종. 속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세주들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던 파군 용유명이 독마의 옆으로 나와 고개를 처박고 외쳤다.

“말하라.”

“독마는 진소청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당문을 무너뜨릴 수 있었으니 마천에 득이 되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를…….”

반개한 눈이 패군에게 닿았다.

고요함.

적막함.

용암이 부글거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긴 침묵의 순간.

끼이익.

문이 열리고.

저벅,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마종이 있던 자리가 아닌 뒤쪽 입구에서부터 이어져 왔다.

‘누구?’

의아한 생각이 드는 가운데 용유명의 뒷머리가 거칠게 잡혔다.

쾅!

누군가 용유명의 머리를 그대로 바닥에 찍어 버렸다.

“크…….”

이마가 터지고 코뼈가 내려앉았지만 용유명은 비명을 지를 수가 없었다.

새로이 나타난 자가 숨 막힐 정도로 짙은 마기를 드러내며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착각을 하는 것인가? 파군.”

목소리가 달랐다.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역천대공 구자겸.

“파군이 세주의 수장 자리에 앉더니 죽고 싶은 모양입니다. 마종.”

하긴 그가 아니고서 마종의 앞에서 이리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을 터였다.

“폭마, 환마, 잔마가 죽었는데 제갈휘문은 왜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인가. 정천에 혼란을 만들었으니 그것만으로 마천의 득이라 생각하는 것이더냐?”

구자겸이 파군의 머리를 짓눌렀다.

“소, 속하가 실언을…….”

“병신 같은 것들.”

구자겸이 파군의 머리를 놓고 마종의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절을 했다.

“미천한 종이 주인을 뵙습니다.”

그의 인사가 끝났지만 마종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아악!”

흡정에 죽어 가는 여인의 비명만이 주위를 가득 채웠지만 그 누구도 안쓰러워하는 자는 없었다.

“부상을 당했군.”

한참 만에 나온 말에 구자겸이 얼굴을 찡그렸다.

“면목 없습니다.”

“누군가?”

“진소청이라는 자였습니다.”

구자겸의 대답에 파군과 독마를 비롯한 세주들의 눈동자에 짙은 살심이 떠올랐다.

셋이나 되는 세주를 죽이고 자신들에게 실패를 안겨 준 자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진소청만 없었다면 세 명의 세주는 죽지 않았을 것이고, 마천은 아직 드러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한 놈으로 인해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진소청, 폐관을 끝내고 나왔더니 그 이름을 자주 듣게 되는군. 어찌했나? 죽였나?”

“마종께서 관여치 말라 하시어 살려 주었습니다.”

“속이 쓰리겠군.”

“아닙니다.”

구자겸의 눈에 살기가 솟았다가 사라졌다.

진소청에 대한 복수심보다는 마종 앞에서 부상을 당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구자겸의 말에 마종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대의 죄가 아니다. 본 것을 말하라.”

“강한 녀석이었습니다.”

구자겸의 말에 마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자겸은 강했다.

비록 그리 깊지 않다고 해도 그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진소청, 혹은 막야라는 이름으로…….”

순간 마종의 눈이 살짝 일그러지자 구자겸이 말을 멈추었다.

“막야……라고?”

“어찌?”

마종의 얼굴에 처음으로 씰룩거림이라는 것이 생겼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늘조차 자신의 발아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그였다.

무황 위도혁에게 패했을 때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던 그였다.

“익숙한 이름이군. 계속하라.”

“진소청이 뛰어나긴 했으나 죽이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하나 아직 어리니 언젠가 본 천의 대적이 될지도 모르지요.”

“하면 그로 인해 환마가 실패한 건가?”

“아닙니다. 이번 일의 실패는 진소청이 끼어든 것과는 무관합니다. 모든 책임은 환마에게 있습니다.”

“…….”

구자겸이 날카로운 눈으로 세주들을 쓸어 보았다.

“십 년 동안 길들여졌더군요. 마음속에 복종이 아닌 군림을 품었던 모양입니다.”

그의 말에 세주들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항변할 수도 없었다.

이미 대공이 말했으니 변명을 했다가는 당장에 목이 달아날 것이 분명했다.

“군림하고자 했다? 환마가…….”

마종의 목소리에 신경질적인 감정이 살짝 어리자 세주들이 모조리 이마를 처박고 고개를 조아렸다.

“예. 해서 실패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명대로 제갈휘문만 죽였다면 흉수에 대한 조사는 있었어도 마천이 드러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했다?”

“저는 그리 판단했습니다.”

“좋다. 하면 그 진소청에 대해 말해 보라.”

어찌 된 일인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마종의 말에 진소청에 대한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간양 진가라는 작은 표국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무공을 쓰고 있었습니다.”

“…….”

“내공이 일시적으로 두 배, 혹은 세 배로 늘어나더군요. 마치 역천의 힘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막야가 무공을 익혔다? 진소청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되씹듯이 말하는 마종의 모습에 구자겸이 의아한 눈빛을 했다.

‘막야’라는 이름에 너무나 과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크크크.”

갑자기 마종이 음산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두 대공과 세주들이 황급히 머리를 처박았다.

털썩.

그의 손에 이마가 닿아 있던 여인은 수십 년 세월을 단번에 뛰어넘은 듯 노파로 변해 바닥에 쓰러졌다.

“재미있게 되었군. 재미있게 되었어.”

뭐가 재미있다는 것인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들에게 의문은 허락되지 않았다.

“혈궁의 정수는 내 손에 들어왔다.”

마종이 주먹 쥔 제 손을 바라보자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쳤다.

“감축드립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마종이 폐관을 끝내고 사람의 생기를 빨아들일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정수의 힘에 대해서는 마종을 제외한 누구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정수의 힘을 얻은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고 있었다.

허기.

배고픔과 같은 본능이 아닌 내공의 허기.

그가 처음 빙궁을 무너뜨리고 그 정수를 얻었을 때.

빙궁의 일천 무인이 생기가 빨려 죽었다.

살아 있는 것이든, 죽은 시신이든, 동물이든 가리지 않았다.

북해의 정수를 얻은 그는 화산의 검존을 찾아갔다.

그리고 무황 위도혁에게 무릎을 꿇었다.

돌아온 그는 혈궁의 정수를 얻기 위해 다시 십 년을 보냈다.

폐관을 끝내고 난 뒤 찾아온 ‘허기’를 채우기 위해 대막의 무인들은 곳곳에서 사람들을 납치하고 노예를 사들였다.

그리고 고스란히 마종에게 바쳤다.

“독마.”

“예. 마종!”

“편살원은 전멸했고 벽력원은 여전히 폭멸마동을 만들고 있다. 한데 환영곡은 돌아오지 않았다지?”

“…….”

“주인이 딴마음을 품었으니 이미 복종의 의미는 퇴색되었을 터다.”

마종의 말하는 의미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기르던 개새끼가 주인이 죽고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꼬리를 말고 숨기 위한 것. 나의 마천에 들개는 필요하지 않다.”

찾아내서 죽이라는 말이었다.

“맡겨 주십시오!”

“맡기겠다. 단 두 번의 실패는 용서하지 않겠다.”

경고였다.

이미 한 번의 실패를 용서받았다.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실수치 않겠습니다!”

독마는 이마가 터지도록 머리를 찧으며 대답했다.

“검마.”

“예. 마종!”

“대공에게 상처를 입힐 정도로 강한 자다.”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이름이 그려졌다.

“할 수 있겠는가?”

“제가 감히 대공께 비하겠습니까. 하나,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기대하지.”

마종이 고개를 끄덕이자 검마가 고개를 조아렸다.

진소청만큼은 자신이 죽이고 싶었던 구자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하지만 마종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역천대공.”

“예. 마종.”

“나는 마궁으로 간다. 마궁의 모든 것을 얻는 순간 무림을 정벌할 것이다. 북천대공에게 서신을 보내고 그대도 그때에 맞추어 준비를 하고 있으라. 그리고 다시는 부상을 입지 않도록.”

“마천혈세!”

“마천혈세!”

구자겸의 선창에 모두가 엎드려 한목소리로 외쳤다.

느긋하게 그들을 바라보던 마종이 스산하게 미소를 지었다.

‘크크크, 막야. 네놈도 돌아왔던가? 재미있게 되었군. 어디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지켜보겠다.’

 

* * *

 

“이런 젠장!”

갑자기 소청이 짜증스럽게 귀를 파며 고개를 휙휙 돌렸다.

혁련휘는 황학루에서 돌아온 이후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참작을 쥐고 같은 동작을 수만 번이나 반복했다.

양손으로 힘주어 올렸다가 거침없이 아래로 내리긋는 동작.

휘웅!

칼이 대기를 갈라 양분하고 칼날에 맺힌 바람이 바닥을 때리자 바닥이 미세하게 떨렸다.

흑의는 땀에 젖어 흥건했고 물기 먹은 머리칼은 막 떠오른 햇볕에 반짝였다.

일도에 온 정신을 집중해 흐트러짐 없이 칼을 내리그었다.

화려한 초식의 향연 따위는 없었다.

가공할 기파도 없었고 기세도 없었다.

명경지수처럼 차분한 그의 모습을 보아도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한 사만 번쯤 되었나?’

귓가로 들린 바람 소리를 세었던 소청은 대강 혁련휘가 휘두른 수를 세고 있었다.

“뭐, 저리 집중하고 있는 녀석이 머릿속으로 내 얘기를 하고 있을 리는 없고…….”

소청이 귀를 파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대청에 꼿꼿하게 앉아 서책을 보고 있는 여인.

하오문의 후계자, 우진혜.

묶지 않은 긴 머리가 등 어림에 걸쳐지고 아래로 내리깐 눈의 속눈썹이 선명하다.

반듯한 이마를 따라 흐른 코끝과 중얼거리고 있는 앵둣빛 입술은 너무도 탐스러웠다.

아름답다.

‘응? 젠장, 내가 무슨 생각을…….’

아직도 ‘금 한 관’의 쓰라림이 잊히지 않았다.

도적에게 바가지를 씌우다니…….

소청이 순간적으로 들었던 잡념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휙휙 내저었다.

그녀는 동행이 결정된 이후 무한 진가 표국 분점으로 거처를 옮겨 왔다.

아예 살러 온 것인지 수레 가득히 짐을 싣고 와서는 원래 소청이 묵고 있던 방 한 칸을 통째로 차지해 버렸다.

“그럼 도대체 누구야? 누가 내 이야기를 차지게 하기에 이렇게 귀가 가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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