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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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16화
115화. 포로를 훔치다
서천맹을 고립시키려는 소청의 계획이 착수되었다.
진가에 기거를 했던 은가장주는 인부를 대거 동원해 지원했다.
주로 군문에서 고립된 성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매우 고전적인 방법이었지만, 적과 싸우지 않고 무력화시키는 데 있어서 그만한 효과를 가진 것이 없었다.
준비를 하는 사이 소청은 정천맹과 사도련의 수뇌들을 모았다.
“자네 말은 전력을 다해 서천맹을 공격하란 말인가?”
“아닙니다. 척만 하는 겁니다.”
“척만 하라고?”
“예. 교전은 없습니다.”
“흠……. 이유가 뭔가?”
“저들을 묶어 둬야 하니까요.”
“……알겠네. 언제쯤이면 좋겠는가?”
“인시 전에 서천맹의 외곽에 대기해 주십시오. 내부에서 화광이 오르면 저들에게 혼란을 주시면 됩니다.”
신승은 혹시나 잡혀 있을지 모를 포로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이 공격하는 그때, 소청은 저들의 내부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기에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회의가 끝나고 소진각으로 돌아왔을 때, 대막을 출발한 초사와 비마대가 진가에 도착했다.
“패월을 뵙습니다.”
“고생했다. 상황은?”
“예. 섬뢰께서 남하를 시작하셨으니 사흘 안으로 당도하실 겁니다.”
“좋아. 비슷하겠군.”
“서천맹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마천의 본진이 서천맹을 공격했더군.”
아마 일찍 도착했었다 해도 서천맹이 무너지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소청이 감히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적의 수가 이만에 달하니…….
“이것은 오면서 받은 제갈 군사님의 서신입니다.”
초사가 품에서 제갈휘문이 직접 보낸 서신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제갈휘문의 의견이 적혀 있었다.
“쳇, 말이 쉽지.”
서신을 끝까지 읽은 소청이 짜증스럽게 구겨 버렸다.
“뭐라 적으셨습니까?”
“뭐긴 뭐야? 날 부려 먹겠다는 이야기지.”
소청의 말에 초사가 빙긋이 웃었다.
“그만큼 믿고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까?”
“개뿔이……. 걱정되면 직접 오든가 할 일이지 어디서 명령질이야?”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오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서신에 적혀 있는 내용만 봐도 소청이 대막에 가 있는 동안 그가 얼마나 발 빠르게 움직였는지가 느껴졌다.
태존과 무황의 만남.
마천이라는 유례없는 적을 맞이해 정사 연합이 결성된 것이다.
무황이 중원의 중심인 호북성 무한 정천맹으로 가고 있었다.
그가 연맹주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갈휘문은 개방을 재정비해서 하오문과 연계했고 정보의 총책에 우진혜를 선임했다.
묵영단 역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우진혜의 휘하로 들어갔다.
체계가 일원화된 것이다.
물론 초사와 비마대 스물은 소청에게 일임되었다.
그리고 정사 연합과 함께 기존 사도련이 북천맹으로 변경되었다.
호북성 무한의 대(大)연맹.
정천맹을 중심으로 한 서천맹.
사도련을 중심으로 한 북천맹.
중원 무림의 힘이 결집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휘의 이름이 보이지 않지? 그만큼 북천맹주의 이름에 어울리는 자가 없는데…….’
소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패월.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소청이 한참을 말이 없자 초사가 물어보았다.
“아, 움직여야지.”
“…….”
“제갈휘문이 서천맹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군.”
“하면?”
“빼앗겼으니 다시 빼앗아야지. 비마대를 셋으로 나눈다.”
“셋으로요?”
“그래. 자시 초(밤 11시)를 기해 서천맹에 잠입한다. 목표는 적들에 대한 세부적인 파악이다. 적의 규모와 배치, 침입 가능한 경로, 반드시 확보해야 할 탈출로까지.”
“알겠습니다.”
“초사, 너는 진입한 이후 적의 식량 창고를 찾아라. 인시 초에 모조리 불사른다. 때를 맞추어 신승이 서천맹을 공격할 것이다.”
“전면전입니까?”
“아니, 시늉만 한다. 너희는 혼란이 일어나는 틈을 타 빠져나오면 된다. 명심해라. 모든 것이 인시 초(3시)에 마무리되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잠시 말을 끊었던 소청이 모두를 향해 다짐을 받듯이 말했다.
“어쩌면 아군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
“외면해라.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도 절대 동요해서는 안 된다.”
“…….”
“우리가 적을 얼마나 상세하게 파악하는가에 전쟁의 승패가 달려 있다. 이번 전쟁은 포로 구출이 아니라 서천맹의 수복이 목적임을 잊지 말도록.”
“……예.”
초사와 비마대가 무거운 표정으로 돌아간 뒤, 소청은 수많은 위패가 모셔진 후원의 한곳으로 향했다.
팍, 파삭.
망설임 없는 손길에 땅이 파헤쳐지고 겹겹이 봉인된 작은 함이 드러났다.
덜컥.
안을 열자 코가 찡그려질 정도로 강력한 독 기운이 확 하고 뿜어져 나왔다.
함에 담긴 것은 서로 다른 색을 가진 네 개의 깃털이었다.
‘이걸 이렇게 사용할 줄이야. 아깝긴 하지만…….’
소청은 입맛을 다셨다.
짐조의 깃털.
오래전 소청이 독 기운이 스며 나오지 않도록 함에 봉인해 묻어 둔 것이었다.
부스스스.
내기를 운용해 깃털 하나를 가루로 만들어 버린 소청이 미리 준비해 온 약병에 담았다.
그리고 막 소진각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소진각의 문 앞에서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
소강이었다.
“어? 네가 웬일이냐? 신승과 함께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저는 형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데려가겠다고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죽어도 갈 것입니다. 최근 대막혈궁에서의 일도 그렇고 어찌 매번 혼자만 짊어지려 하시는 겁니까?”
혼자 짊어지려 한 적 없었다.
그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
소청이 피식 웃으며 동생을 바라보았다.
고집스러운 녀석.
그럼에도 언제나 자신의 말을 반문 한 번 하지 않고 따라 준 녀석이었다.
‘하아, 이 자식이 머리 좀 굵었다고…….’
소청은 자신의 말에 반항스러운 표정을 짓는 동생의 모습이 싫지 많은 않았다.
커 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제법 제 주관을 세우는 모습에서 강단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이놈아.’
소청은 소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환하게 웃었다.
“휴우…… 좋아. 하지만 네 몸은 너 스스로 지켜야 한다. 혹시 위험해지더라도 아무도 돕지 않을 테니까.”
소청이 승낙이 떨어지자 소강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런데 마주 웃는 순간, 소청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흐려졌다.
뜨끔.
몸이 뻣뻣해졌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소청이 풀썩 쓰러지는 소강의 몸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안았다.
풀어 주십시오!
소강의 눈동자가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저절로 풀릴 거야.”
저도 가겠습니다.
“너는 내 동생이다. 너는 나와는 달리 진가를 이어 가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널 지켜야 해.”
“…….”
“소강, 고집부리지 마라.”
소청은 소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형님…….
“걱정 마라. 나는 너처럼 무모하지 않아. 위험해지면 제일 먼저 도망칠 테니까.”
그랬던 적이 없었다.
소강이 아는 소청은 언제나 가장 위험한 곳에서 싸워 왔다.
그리고 언제나 위험해 처해 사경을 헤맨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소강은 걱정되었다.
언제까지 그런 운이 이어질 수는 없었다.
“그럼 훌쩍 다녀올 테니까 쉬고 있어라.”
소청은 밝게 웃으며 소강을 소진각의 방 안에 눕혔다.
그리고 그는 함을 들고 서천맹으로 향했다.
* * *
우두둑.
어둠 속에서 나타난 손이 입을 막고 목뼈를 꺾었다.
우물가를 지키던 무인은 그대로 절명했고 시신은 어둠 속으로 감추어졌다.
그리고 그곳에 소청이 나타났다.
“이상하네. 마치 길을 열어 둔 것 같은 건 착각인가?”
소청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수많은 무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침투가 용이하도록 적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건 마치 들어와서 구경하라고 하는 것 같잖아. 왜지? 무엇 때문에?”
소청이 직접 훈련시킨 비마대였다.
굳이 그들이 길을 열지 않아도 발각되지 않고 숨어들 수 있는 능력은 충분했다.
“이 새끼들 뭔가 노리고 있군…….”
소청은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품에서 약병을 꺼냈다.
부스스스…….
짐조의 깃털을 갈아 만든 독분이 우물에 뿌려졌다.
“어쨌든 이것으로 다섯. 개새끼들, 어디 한번 말라 죽어 봐라.”
소청으로 인해 당가타 안에 존재하는 다섯 개의 우물이 모조리 독정(毒井)으로 변해 버렸다.
물길을 막고 우물에 독을 풀었으니 저들이 식수를 구할 방법은 없었다.
단련된 무인들이니 며칠은 충분히 버틸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진다면 저들은 갈수록 지쳐 갈 것이다.
더욱이 초사에게 식량을 불태우라 했으니 먹을 양식도 줄어들 것이다.
혼란이 찾아올 것이고 그것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변할 것이다.
결국 나오지 않으려 해도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고 차근차근히 그들을 죽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자 그럼. 이 새끼들이 뭘 노리고 있는지 확인을 해 볼까?”
우물을 떠난 소청이 향한 곳은 서천맹의 중심인 춘추관이었다.
분명 마천의 핵심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
춘추관의 근처 지붕에 내려앉은 소청의 눈에 대연무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처참한 몰골로 묶여 있는 서너 명의 인물들, 청성과 곤륜의 장문인, 그리고 처음 보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 수많은 이들이 무릎이 꿇려진 채 죽을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소청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춘추관의 주위로 수많은 기운이 느껴졌다.
“요 새끼들 보게?”
소청이 그들을 상대할 계획을 세우는 동안 마천의 무인들 역시 놀고만 있지 않았다.
겉으로는 비워 둔 듯이 보였지만.
미끼다.
적들은 정천맹의 무인들이 포로를 구하러 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정천, 의기와 협으로 똘똘 뭉친 고지식한 자들이라면 반드시 밤을 기해 구하러 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어쩐지 경계를 너무 허술하게 해 두었더라니……. 구하러 오면 퇴각하는 순간을 기다려 공격할 생각이었군.’
구하려 드는 순간 적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가 잠입할 것을 대충 예상했단 말이겠지? 누가 걸려들 줄 알고?’
춘추관의 앞 연무장에 모여 있는 포로들.
담벼락을 경계로 내부를 지키는 자는 오십여 명 남짓.
수가 너무 적었다.
하지만 일일이 다 세지 않아도 연무장 주위에 숨은 적의 수가 수백은 되어 보였다.
포로를 구하는 순간 공격할 수 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섣불리 구하려 했다가는 퇴각하지도 못하고 포위될 것이고 포로는 물론 구출대마저 목숨을 잃을 것이 뻔했다.
당연히 모른 척해야 했다.
초사와 비마대에게 외면하라 말했고 애초에 포로를 구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함정임을 알고서도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쳇…… 망할 놈의 오지랖…….”
소청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당가타의 외벽과 이어진 야산으로 향했다.
모든 문파에는 위협에 대비해 수뇌부가 빠져나갈 수 있는 비밀 통로를 만들어 둔다.
당가에도 그와 같은 곳이 세 곳이나 있었다.
그중 가장 가까운 곳이 소청이 바라보고 있는 야산이었다.
당태위가 폐관에 들었던 당가의 녹문동(綠門洞).
‘녹문동의 비밀 통로.’
소청의 기억으로 통로는 당가타의 외부와 연결되어 있었다.
녹문동까지만 도착할 수 있다면 포로들은 무사히 서천맹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거리는 이백 장 정도. 휴, 멀군…….’
소청의 눈에 대연무장에 가득하게 잡혀 있는 서천맹의 무인들이 보였다.
그들은 지쳐 있었다.
도와준다 해도 얼마나 빨리 그곳을 벗어날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다행인 것은 저들은 비밀 통로에 대해 알지 못하는 듯이 어떠한 대비도 해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좋아, 미끼를 물어 주지. 하지만 네놈들 생각대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