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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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13화
112화. 격돌 (3)
파하학!
풍검의 목이 베여 나갔다.
검림의 다섯 지파를 맡고 있는 주인들은 옥명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믿고 있던 검마마저 소강의 공격에 제대로 된 방어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니 사기가 꺾인 검림의 무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쩌어엉!
“크으윽.”
후려친 창대에 옆구리를 얻어맞은 검마가 깊은 신음을 삼켰다.
진소청이 남긴 잔영으로 인해 생긴 두려움은 그의 몸을 굳게 만들었고 평소보다 더욱 빠르게 지치게 만들었다.
‘제길…….’
함께 강을 넘은 오십의 무인들은 모두 죽었다.
그리고 어느새 서천맹의 무인들이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소강이 검마를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그 순간 검마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
닮았다.
하지만 그가 아니었다.
진소청처럼 거친 느낌이 없었고 무엇보다 어렸다.
“네, 네놈은 누구지?”
“진소강.”
“진……소강?”
멍청했다.
진소청에 대한 두려움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다.
그저 비슷한 옷차림만 보고 그가 살아 있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동생이었어. 그래, 역시나 죽었겠지. 하긴 무너진 산에서 살아 돌아올 리가 없었는데.”
검마의 눈에 지독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
기세가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공격에 밀려나던 검마의 몸에서 섬찟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파사삭!
일 장이나 떨어져 있음에도 옷자락이 날카롭게 잘려 나갔다.
피해야 한다.
소강은 다급하게 주위를 향해 외쳤다.
“모, 모두 물러…….”
소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마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마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쳐 나왔다.
“마검천류(魔劍千流)!”
쩌어엉!
내디딘 진각과 함께 천 가닥으로 나누어진 마기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으아악!”
미처 피하지 못한 서천맹의 무인들이 마기에 벌집처럼 꿰뚫렸다.
콰우우우!
천 가닥으로 나누어진 마기는 암기나 화살보다 빠르고 강했다.
폭풍처럼 회오리치며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서천맹의 무인들을 덮쳤다.
“끄아악!”
“커억!”
마기는 검마를 중심으로 십여 장의 공간을 모조리 꿰뚫어 놓고 도망치는 무인들을 뒤쫓았다.
“하압!”
물러났던 소강은 그들의 도주를 돕기 위해 두 번째 태극을 창대에 담아 지면에 박아 넣었다.
꾸우우우…….
응축된 기운이 땅속에서 폭발했다.
꽈과과광!
솟구친 흙더미가 검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에 부딪혀 폭발했다.
“이노옴!”
두 눈에 핏발이 돋아 오른 검마가 폭발의 중심을 뚫고 소강을 향해 쏘아져 나왔다.
쩡!
“크윽!”
연거푸 날아오는 주먹을 창대로 막을 때마다 떨림으로 인해 손아귀가 찢어져 나갔고 피를 토해 내며 뒷걸음질을 쳤다.
옥명자가 재빨리 날아오는 마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두려움을 분노로 바꾸어 버린 검마는 이전과는 달랐다.
“크윽!”
허공에 그려졌던 매화가 검마의 주먹에 산산이 부서졌고 옥명자가 신음을 내뱉으며 주욱 하고 밀려 나갔다.
옥명자가 검마를 상대하는 사이 잠깐의 틈이 생긴 소강은 서둘러 호흡을 골랐다.
계속해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옥명자와 싸우고 있으면서도 검마는 서천맹의 무인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소강과 옥명자가 무너지면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었다.
소강은 창대를 움켜쥐었다.
찢어진 손바닥이 쓰라렸지만 무인들이 서천맹으로 도망칠 때까지만이라도 그를 막고 있어야만 했다.
‘버텨야 해! 형님이라면 버티셨을 거야!’
소강은 확신했다.
검마만 막으면 된다.
나머지는 옥명자와 모자겸이 막아 줄 것이다.
소강은 뒷발을 지탱해 서며 세 번째 태극을 단전에 채웠다.
옥명자를 거칠게 밀어 버린 검마가 거대한 마검 ‘지충추’를 날렸다.
“흐아압!”
쩌어엉!
그 사이를 파고든 소강이 천뢰충파로 지충추의 꼭짓점을 때렸다.
“커억!”
되돌아온 반탄력에 내기가 들끓어 오르고 입으로 터져 나온 피가 그의 아래턱을 흘러 앞섶을 적셨다.
하지만 지충추는 부서졌고 검마는 또다시 뒷걸음질 쳤다.
“후우, 후우…….”
세 번이나 사용한 천뢰충파의 기운은 소청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의 몸에 엄청난 무리를 주고 있었다.
단전은 터져 나갈 것 같았고 온몸의 근육이 갈가리 찢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효과는 있었다.
천뢰충파의 기운을 두 번이나 허용한 검마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찢어져 버린 옷 사이로 드러난 상체에 상처가 가득했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한 번 더, 한 번만 더…….’
소강은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핏물을 삼키며 검마를 노려보았다.
귓속이 웅웅거리고 주변이 명확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흐려졌다.
“곧 죽을 것들이 명을 재촉하는구나.”
시커먼 마기에 휩싸인 검마가 소강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왔다.
소강은 울컥거리며 솟구치는 핏물을 뱉어 내고 네 번째 태극을 단전에 담았다.
그 순간.
파라라락!
희뿌연 검기가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 내며 검마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옥명자와 화산의 검수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성하지 못했다.
검마와의 격돌로 내상을 입은 듯 안색이 창백했고 백의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모, 모두 물러나세요. 이곳은 제가……. 서둘러 수습해 서천맹으로…….”
소강이 쥐어짜 내듯이 말했다.
“아닙니다. 적이 너무 강합니다. 홀로는 무리입니다.”
“옥명 형님…….”
옥명자가 소강의 옆에 섰고 화산의 검수들이 검마를 포위하듯 검진을 이루었다.
“저희가 틈을 만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하면 잠시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소강이 창대를 넓게 잡고 자세를 취했다.
“매화검진을 펼쳐라! 악적을 처단한다!”
옥명자의 고함에 화산검수들이 검마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기운을 모을 틈을 주지 말라!”
“쉬지 않고 몰아붙여라!”
화산의 매화검진이 펼쳐졌다.
까가강!
수십 개의 검격이 각기 다른 꽃잎을 그리고 거대한 매화를 만들었다.
검마의 손을 떠난 회선칠류의 기운과 매화검진이 부딪히며 대기를 진동시켰다.
“이, 이런 버러지 같은 것들이!”
검마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평소라면 단번에 쳐 죽일 수 있는 날파리들이 끈질기게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욱이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한 터라 몸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잔뜩 흥분한 그의 두 눈이 조금씩 검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역천의 기운.
몸 안에 잠재된 마기가 들끓어 올라 그의 이성을 지배하고 생기를 집어삼켰다.
“으하합!”
쩌어엉!
온 힘을 다한 진각이 거칠게 대기를 파고들었다.
“피해라!”
화산검수들이 폭발을 피해 일제히 뒤로 물러나는 순간.
검진을 깨기 위해 온 힘을 진각에 담았던 검마에게 틈이 생겼다.
쐐애액!
그리고 그 틈으로 네 번째 천뢰충파의 기운을 머금은 소강의 창대가 거칠게 쏘아져 나갔다.
콰아아아앙!
* * *
콰드득!
호광의 머리를 부서지도록 움켜쥔 모자겸은 그대로 뽑아 올렸다.
으드득!
머리에 달린 척추뼈가 통째로 뽑혀 나오며 피 분수가 솟구쳤다.
“오너라! 한 놈도 빠짐없이 모가지를 뜯어 주마.”
눈도 감지 못한 호광의 머리를 움켜쥐고 온몸에 선혈이 낭자한 모자겸의 모습은 악귀 같았다.
애초에 오존의 경지와 비견되는 모자겸에게 호광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의 죽음으로 사기가 떨어진 검림은 순식간에 진무월창에 의해 정리되었다.
툭. 떼구르르…….
쓰러진 호광의 몸에서 작은 원통하나가 떨어져 굴렀다.
서로에게 연락을 보내기 위한 신호탄이 확실했지만 모자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만약 놈들이 상류의 수문을 차지했다는 이놈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면? 후후, 그게 아니라도 혼란을 줄 수는 있겠지.’
모자겸이 수문을 바라보았다.
이미 가득히 찬 물이 수문의 위를 넘고 있었고 물을 막고 있는 벽이 더 이상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지!’
모자겸은 미련 없이 신호탄을 당겼다.
피유웅! 퍼엉!
“모두 언덕 위로 물러나라! 수문을 터트린다!”
진무월창의 무인들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길 기다린 모자겸은 곧바로 수문의 앞에 섰다.
후읍!
짧게 마신 숨이 멈추고 말아 쥔 주먹이 거세게 뻗어 나갔다.
쩌어엉!
거센 충격이 둑을 뒤흔들었다.
꾸우우우…….
버티고 있던 압력이 더해져 순식간에 수문이 터져 나가고 가득히 모였던 물이 쏟아졌다.
콰콰콰콰!
“서둘러 소가주와 합류한다!”
* * *
천뢰충파의 기운이 폭발했다.
하지만 뒤이어진 모습은 모두를 절망으로 빠져들게 했다.
흑요석처럼 검게 반짝이는 검마의 눈.
막혔다.
소강의 창대는 검마의 손에 잡혀 있었고.
꾸룩, 꾸룩…….
징그럽게 새어 나온 마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와아아아아!”
“세주님을 보호하라!”
하늘을 수놓은 폭죽과 함께 강 건너에 있던 검림의 일천 무인들이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망할!”
옥명자가 절망스러운 외침을 내뱉었다.
소강은 힘없이 무릎을 꿇고 검붉은 피를 토해 내고 있었다.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어 보였다.
“…….”
옥명자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시체들…….
상처를 입고 헐떡이는 매화검수들…….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적이 너무 강했다.
소강의 공격은 정말로 강했다.
자신이었다면 막지 못했을 것이다.
‘끝이군…….’
하지만 누군가는 남아 뒤를 지켜야 했다.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그것이 촌각에 불과할지라도…….
옥명자가 운검자를 바라보았다.
“운검 사숙.”
운검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옥명자가 할 말이 무엇인지 느끼고도 남았기 때문이었다.
“이 공자는 살아야 합니다.”
아니라 말하고 싶었다.
화산은 진소강보다 옥명자를 살려야 한다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옥명자가 품은 결심을 알기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알겠네. 맡겨 두게…….”
운검자는 소강을 부축했다.
소강이 말을 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손을 내저었다.
옥명자는 그의 손을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괜찮습니다. 화산의 매화는 질 때도 아름다운 법이니.”
짧은 말, 짧은 미소와 함께 옥명자는 몸을 돌렸고 그의 손에 자하검이 잡혔다.
그와 동시에 검마가 흑광을 뿜어내며 시커먼 마기를 뻗어 내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콰콰콰콰콰!
거친 진동과 함께 강물이 쏟아졌다.
“끄아악!”
거대한 물줄기가 강을 반밖에 건너지 못했던 검림의 무인들을 강타했다.
그리고.
우우우우!
어디선가 긴 장소성이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 순간 시간이 멈췄다.
옥명자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멈춰진 시간에 단 하나의 신형만 움직이고 있었다.
묶지도 않은 흑발과 검은 피풍의를 휘날리는 사내.
소강과 닮았지만 너무나 거친 느낌을 가진 그가 시간의 경계마저 뛰어넘은 듯이 나타났다.
그리고 단번에 강을 뛰어넘었다.
옥명자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드는 그의 모습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느리게 돌아가는 옥명자의 시선을 넘어 검마가 뻗어 낸 마기의 앞에 내려섰다.
그리고 시간이 잠시 느려졌던 공백을 채우듯 급격하게 흘렀다.
콰아아아앙!
세상이 뒤흔들리고 고막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폭발의 여파가 밀려온 강물의 방향마저 바꾸어 버렸다.
휘이이이…….
충격파에 눈을 찡그렸던 옥명자는 한 사내의 등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소강을 보며 따스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직 멀었구나, 이 녀석…….”
소강이 웃었다.
버티고 버티던 그가 안도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정신을 놓아 버렸다.
옥명자는 소강의 입 모양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