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11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11화
110화. 격돌!
면양의 절벽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멀리 상류 쪽에서 힘차게 돌아오는 거대한 물길, 대수(大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지로 이루어진 사천에는 유일하게 나룻배를 띄워 향락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면양의 대수였다.
길게 이어진 물길은 사천의 북쪽을 비스듬하게 경계 지어 놓았고 남서로 뻗은 깎아지른 절벽은 시인 묵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감숙에서 사천으로 오는 동안 강은 드넓게 흘러 잔잔해진다.
하류의 깊이는 아무리 깊어도 사람의 허리까지밖에 되지 않으니 물놀이를 하기에는 딱 적당한 곳이었다.
하지만 향락객이 가득해야 할 그곳이 너무도 조용했다.
강을 건너는 도선(渡船)들마저 영업을 중단하고 남쪽 절벽으로 모조리 당겨 묶여 있었다.
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소음이 강물을 진동시켰다.
숲을 가로지르는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고 대지를 진동시키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적의 선봉.
흑색 방립을 쓴 일천 무인들이 날렵한 기마술을 뽐내며 달려오고 있었다.
대막, 광풍단.
마적 떼로 구성된 그들은 엄청난 진격 속도로 마천의 선봉이 되어 사천을 침범했다.
히이이잉! 푸르르르!
“중원의 떨거지 놈들, 닥치는 대로 끌어모았구나.”
북쪽의 강가에 선 광풍단의 수좌 타르단이 비웃음 가득한 시선으로 강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소강을 필두로 한 청성, 아미, 곤륜의 무인들이었다.
“생각보다 수가 많습니다.”
광풍단의 우호법 무칸이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두려운가?”
“그럴 리가요? 짓밟아야 할 개미 떼를 보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타르단의 말에 무칸이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비웃었다.
“대공께서 우리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신 것이다. 단숨에 넘고 서천맹으로 가는 길목을 연다.”
타르단이 허리께에서 완만하게 휘어진 만도를 꺼내 들었다.
“모두 준비되었는가?”
“예!”
타르단이 만도를 높이 쳐들자 그의 옆으로 짐승 같은 살기를 뿌리는 광풍단의 수뇌들이 자리를 잡았다.
“가라! 단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와아아아!”
“온다!”
소강이 자신의 창 ‘월영’을 바닥에 꽂아 넣자 진무월창의 무인들이 나무창을 가득 담은 자루를 꺼내 일렬로 늘어놓았다.
그리고 승혜를 비롯한 세 파의 무인들이 일제히 무구를 뽑아 들고 경계 태세를 취했다.
강으로 뛰어든 광풍단의 일천 무인들은 세 갈래로 나누어졌다.
강의 깊이가 깊지 않았기에 그들이 진격은 더없이 빨랐다.
“사백 보!”
“기다려라! 강의 중심에 닿아야 한다!”
“삼백 보!”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자 광풍단의 속도가 조금 떨어졌고 진격을 하던 날개가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이백오십 보!”
“지금이다! 던져라!”
소강이 외침과 함께 나무창을 들어 던졌다.
쐐애액!
공기를 꿰뚫고 직선으로 날아간 창에 강물이 좌우로 튀어 올랐다.
쿠악!
“크악!”
나무창이 쏘아진 쇠뇌처럼 선두에 섰던 무인을 뚫고 지나갔다.
쐐애액!
그것을 신호로 수십 개의 나무창이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수놓았다.
“제기랄! 하늘을 조심해라!”
무칸이 수하의 어깨를 밟고 뛰어올라 나무창을 거칠게 쳐 냈다.
쐐액, 쐐애액!
소강의 창은 정확히 목표를 노려 꿰뚫었지만 진무월창의 무인들은 굳이 목표를 두지 않았다.
“이런 비열한 놈들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떨어지는 창대가 광풍단의 무인들은 물론 말까지 꿰어 버리자 강물이 금세 피로 물들었다.
“멈추지 마라! 강을 넘어 적을 죽여라!”
기세는 여전히 강맹했지만 소강과 진무월창의 공격으로 인해 진격 속도가 확연히 줄었다.
작은 조각만으로도 강을 건너는 고수들은 상관없었지만 대부분의 무인들은 물의 저항에 속도가 줄어들고 투창 공격에 죽어 가고 있었다.
“무칸!”
“예!”
“일단 저 망할 놈들의 투창 공격을 끊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타르단의 명령에 광풍단의 고수들이 물을 밟고 쏘아졌다.
그 순간.
촤자자자작!
물을 차는 소리가 좌우의 측면에서 들려왔다.
착! 파팍!
옥명자가 무인들을 이끌고 적을 습격했다.
“끄아악!”
화려한 매화꽃이 허공에 그려졌다가 질 때마다 광풍단 무인들의 머리가 솟구쳐 오르고 사방에 피가 뿌려졌다.
“여기도 있다!”
콰아앙!
웅혼한 외침과 함께 모자겸이 광풍단의 후위를 공격했다.
그의 두 주먹에서 뻗어 나온 기운이 한 번에 서너 명의 무인들을 띄워 올렸다.
쾅!
“단주님! 적이!”
“시끄럽다! 적의 운용법에 속지 마라! 눈앞에 있는 적부터 무너뜨려라!”
좌우측과 후방에 나타난 적들로 인해 순식간에 진형이 무너졌다.
강의 중심에 빠져 있는 광풍단의 무인들은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어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강은 적들이 제갈상아가 세운 계획대로 움직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여전히 그들은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일천이나 되는 무인을 공격하고 있는 옥명자의 습격대와 후위를 공격한 모자겸의 부대에서도 피해는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소강은 적이 혼란에 빠지면 반드시 적의 수좌들이 공격해 올 것이라는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눈앞으로 수면을 차며 날아오는 적들이 보였다.
“진무월창은 창을 들어 적의 공격에 대비해라!”
차라착!
까가가강!
일렬로 늘어선 진무월창의 창대와 광풍단이 부딪혔다.
“후열, 적을 공격해라!”
소강의 외침에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승혜가 세 파의 무인들을 이끌고 적들을 공격했다.
순식간에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힘든 난전이 벌어졌다.
단번에 서너 명의 목을 베어 낸 소강은 전투의 현장을 매섭게 살폈다.
상대적으로 아군의 무위가 낮았다.
난전 속에서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적의 사기를 꺾어야만 했다.
무리를 이끄는 대장을 죽이지 못하면 피해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죽어라!”
타르단의 만도가 솟구쳐 오른 수십 개의 창대를 잘라 내었다.
그를 향해 창을 뻗었던 진무월창의 무인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저놈!’
소강의 시선이 포악하게 무인들을 학살하고 있는 타르단을 향했다.
파앙!
생각과 동시에 지면을 박찬 소강이 재빨리 그들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우우우우!
거대한 장소성이 울려 퍼지자 광풍단을 맞아 가던 무인들이 일제히 칼을 거두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놈들이 퇴각한다! 쫓아…….”
그 순간 타르간은 거대한 기운을 느끼고 머리를 쳐들었다.
우우웅!
‘달?’
분명 대낮인데 하늘에 달이 떠올랐다.
눈이 부셨다.
그리고 밝은 빛 무리가 떨어져 내렸다.
꾸아아아앙!
거친 폭발음의 흔적이 피아의 경계를 나누어 놓았다.
그리고 그 폭발 속에서 물러난 타르단의 눈이 찡그려졌다.
폭발에 휩쓸린 수십여 명의 무인들이 갈가리 찢겨 나간 모습에 타르단이 핏발이 돋은 눈으로 소강을 쏘아보았다.
“네놈은 누구냐!”
“진소강.”
“진소강?”
타르단은 그따위 이름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런 놈이 모두가 도망치는데 홀로 자신들의 앞을 막아섰다.
“이런 개자식이!”
파앙!
타르단이 만도를 곧추세우자 수십의 폭발에 물러났던 무인들이 칼날을 세우고 소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최대한…… 잔인하게……. 그래야 적들을 진격을 지연시킬 수 있다.’
제갈상아의 말이 또다시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소강이 양손으로 잡은 월영의 끝을 비틀며 휘둘렀다.
슈우웅!
월영이 소강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활처럼 휘어졌다가 곧게 펴졌다.
빠가가가강!
월영이 날아오는 병장기를 때려 부수며 긴 불꽃을 만들어 내었다.
창대의 흐름을 뒤따라온 기운이 부챗살 모양으로 퍼져 나가고 풍압에 강물이 파랑을 일으키며 밀려 나갔다.
“크윽!”
단 한 수에 모조리 물러난 적들을 바라보던 소강은 창날을 바닥에 늘어뜨렸다.
단 한 수의 움직임에 모두가 얼어붙은 듯이 멈춰 버렸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에 천천히 고개를 든 소강의 눈가에 서늘한 살기가 어렸다.
“한 놈도 살려 두지 않겠다!”
파학!
가가가각!
지면이 파헤쳐지고 창극이 바닥을 파헤치며 불꽃을 튀겨 올렸다.
갑자기 훅 하고 다가오는 모양에 타르단이 기겁하며 물러나 만도를 내리그었다.
퉁!
솟구쳐 올라온 창극에 타르단의 만도가 튕겨 올라 흡사 만세라도 부르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흡!’
졸지에 가슴이 비어 버린 타르단은 재빨리 양팔을 교차했다.
뻐억!
하지만 가슴을 찌를 것이라 판단했던 창대가 호선을 그리며 그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끄윽!”
갈빗대가 모조리 으깨지는 느낌이었다.
쩍!
이어진 공격이 그의 턱으로 날아왔다.
하지만 그 역시 일문의 주인이었다. 몸을 비틀어 피한 그가 재빨리 힘을 모았다.
츠츠츠츠!
타르단의 팔뚝에 굵은 힘줄이 불거져 나오고 만도에 짙은 마기가 솟구쳐 올랐다.
“흐아압!”
흉흉하게 자리한 마기가 폭발할 듯 응축되는 순간 타르단이 무서운 기세로 내리그었다.
쿠콰콰콰콰!
만도를 빠져나간 반월형의 마기가 공기를 찢어발기며 쏘아졌다.
한데 그 목표가 소강이 아니었다.
소강의 상대가 되지 않음을 깨달은 타르단은 물러난 무인들을 노렸다.
“크크크. 굳이 하나의 목표만 공격할 필요는 없지!”
타르단이 선택한 것은 차선이었다.
비무가 아닌 전쟁이니 최대한 많은 적을 죽이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아군을 향해 날아가는 마기를 본 소강이 급히 용천혈에 기운을 몰아넣었다.
“젠장!”
꾸우…….
파앙!
응축된 기운이 허벅지와 종아리를 부풀리는 순간 소강의 모습이 사라졌다.
“천뢰충파!”
공간을 뛰어넘은 소강의 신형이 진무월창의 무인들을 가로막고 나타났다.
쩌어엉!
소강의 손을 따라 뻗어 나온 태극의 기운이 타르단이 뿌린 마기를 터트려 버렸다.
“어떻게…….”
입을 떡 벌린 순간.
천천히 지면으로 내려선 소강의 창대가 뒤로 돌려졌다.
그리고
스팟! 쩌적!
몸을 낮추며 회오리처럼 돌린 소강의 창대를 따라 백색 실이 세상을 반으로 갈라놓았다.
툭, 투툭!
눈조차 감지 못한 타르단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푸욱!
천천히 걸어와 타르단의 머리를 꿰어 든 소강이 외쳤다.
“적의 수좌를 죽였다! 적을 모조리 척살하라!”
기세가 오른 서천맹의 무인들이 강으로 뛰어들었다.
서천맹과 대막혈궁의 전투의 서막이 올랐다.
콰드득!
머리를 잡고 목줄기를 뜯어 버린 모자겸의 잔인함과.
차자자작! 화악!
수백 송이의 매화를 그려 내는 옥명자의 화려한 검식이 면양의 강가를 피로 물들였다.
무려 두 시진을 이어진 싸움이 서서히 그 끝을 보이고 있었다.
* * *
“대공! 선발대가 무너졌습니다!”
“…….”
“광풍단주 휘하 일천 무인들이 모조리 죽었고 그들의 시신이 강가의 숲에 모조리 걸려 있습니다.”
척후의 보고에 마상에 올라 있던 역천대공 구자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적들은 현재 강 너머에 대기 중입니다.”
경고였다.
저들은 지금 자신에게 경고를 하고 있었다.
“감히…….”
구자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발악을 해 보겠다는 이야기겠지. 좋다. 초월!”
“예. 대공!”
“적들의 지원이 오기 전에 무너뜨려야 한다. 본대는 좌측으로 돌아 서천맹으로 갈 것이다. 너는 면양의 잡졸들을 뚫고 합류하라!”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