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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08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08화

107화. 끌어내다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공격을 하기보다는 회피를 선택한 소청은 독마를 관찰했다.

느껴지는 것은 역천의 진언과 같았으나 그가 죽였던 다른 세주들과는 달랐다.

마치 신체 변형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청의 눈이 혈독을 힐끔거렸다.

계속되는 공방 속에서 느낀 것은 놈의 공력이 혈독을 흡수하며 계속해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욱이 상처까지 치료해 주니 독마에게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망할! 혈독…….’

괴물로 변한 독마는 감히 그 내력의 끝을 추측하기 힘들 만큼 강했다.

자르고 또 자르고, 때리고 또 때려도 도무지 충격을 받지 않았다.

더욱이 그의 공격만도 무시무시한데 독마의 기운에 반응해 혈독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공격해 오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빠른 움직임과 강맹한 일격으로 적을 상대하는 소청에게는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지금 그의 단전에 담긴 기운은 천뢰충파의 파괴력을 상회하고 있었다.

그런 위력의 공격을 수십 차례 얻어맞고도 독마는 조금도 타격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탈태환골을 경험한 이후 단전의 내력은 아무리 써도 샘물처럼 채워졌지만 다른 네 곳 혈에 담긴 힘은 달랐다.

한 단계 더 성장한 태극의 힘이 발출되면 운기를 할 때까지 채워지지 않았다.

더욱이 이미 단중혈의 화기를 끌어내었으니 남아 있는 것은 백회, 명문, 회음에 담긴 힘뿐이었다.

단전까지 합해서 두 번.

만약 결정적인 공격이 되지 못하면 위험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소청은 조금씩 방법을 찾아 나가고 있었다.

‘동작이 크다.’

그렇기에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수, 한 수에 너무 많은 힘이 실려 있었다.

뒤는 전혀 바라보지 않고 오로지 전진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정신이 아니다.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혈독만 없다면…….’

소청은 공격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독마의 상태를 살폈다.

“크아아아악!”

자신의 공격이 소청의 몸에 닿지 않은 것이 화가 났는지 독마가 괴성을 질러 대었다.

우르릉!

그의 웃음소리가 음파로 변해 공동이 뒤흔들렸다.

콰르릉!

독마의 기세가 더욱 거대해졌다.

전신에서 뿜어지는 내공과 독 기운이 공동 안으로 휘몰아쳤다.

속도는 느렸지만 그 위력만큼은 추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났기에 가까이 다가설 수가 없었다.

콰앙!

공동을 받치고 있던 아름드리 석주(石柱)가 갈가리 찢겨 무너졌다.

꾸우우우…….

‘젠장, 갈수록 태산이군.’

소청이 무너질 듯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공동을 바라보았다.

산의 떨림이 심상치 않았다.

독마와 자신의 격돌이 만들어 낸 진동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할 정도의 잔떨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막혈궁이 자리한 검은 산은 화산이었다.

잠시 박동을 멈춘 화산이 둘의 충돌이 기폭제가 되어 폭발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지금쯤이면 비마대도 얼추 나갔을 터……. 일단 밖으로 빠져나간다.’

시간이 꽤나 지나간 뒤였다.

후우욱!

소청의 몸에서 이는 기도가 변했다.

이전까지의 무거운 기운과 달리 가볍고 예리한 기운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파팍! 팡!

독마의 공격을 피해 좌측으로 물러났던 소청의 신형이 엄청난 속도로 독마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짧게 잡힌 소청의 창대가 독마의 명치에 깊숙이 박혔다.

쩌억! 퉁!

독마의 몸이 주춤거리며 밀려났고 소청이 그의 가슴을 차며 빠르게 베어 내었다.

푸른 화염을 머금은 창기가 그의 살갗을 수십 가닥으로 베어 버렸다.

푸슉! 슈슈슉!

지면에 강렬한 흔적을 남긴 진각과 함께 뻗어진 찌르기가 독마의 복부에 수십 개의 구멍을 뚫어 놓았다.

“크으으으…….”

독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상처가 아물고 혈독의 기운이 그의 몸으로 빨려들자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놈은 상처뿐 아니라 또다시 기력을 회복했다.

독마가 손가락만 하게 자라난 송곳니를 드러내며 소청을 노려보았다.

“크아아앙!”

짐승처럼 포효하며 지면을 파헤친 그가 소청을 향해 쏘아졌다.

쩌엉! 우르르…….

독마의 공격에 기둥이 무너질 때마다 천정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이지를 잃어버린 독마는 생각지도 못하겠지만 소청은 이전의 경험을 또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묻히는 건 한 번이면 족해.”

파악!

소청은 공동이 무너지기 전에 서둘러 밖으로 나가는 동굴을 향해 몸을 날렸다.

“크아아아!”

그리고 독마가 소청을 뒤쫓았다.

 

* * *

 

우르르릉.

동굴이 무너질 듯이 뒤흔들렸다.

“대주님!”

쏟아져 들어오는 적을 베어 낸 비마대원의 걱정스러운 외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초사는 알고 있었다.

소청이 홀로 남았다.

미세하게 떨려 오던 진동이 더욱 강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걸음을 늦추지 마라! 패월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일이다!”

수하들을 다그친 초사는 달리는 속도를 멈추지 않았다.

피윳! 챙!

직선으로 쏘아져 들어오는 검격을 튕겨 내며 적의 목에 칼을 박아 넣었다.

“좀 더 힘을 내라!”

두어 명의 목을 날려 버린 초사는 비마대를 향해 외쳤다.

그들에게는 오직 전진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뒤를 걱정할 정도로 적의 공세가 녹록지 않았다.

“크윽!”

옆에 있던 대원 하나가 복부에 공격을 허용하고 주저앉았다.

“이놈!”

초사가 그의 앞을 막으며 적의 목을 잘라 내었다.

뒤따르던 비마대가 빈자리를 채우는 사이 초사는 수하를 부축했다.

“괜찮으냐?”

“차, 참을 만합니다.”

수하가 검병을 움켜쥐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역력했다.

이미 입고 있던 옷이 적의 검격에 갈가리 찢어져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도주를 시작한 지 한 시진 가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중독당한 포로들에게 해약을 넘겼으니 만약 독공이 펼쳐진다면 더 이상 버틸 방법도 없었다.

취리릿!

서내 개의 검격에 허리를 젖혀 피한 초사의 칼이 원을 그렸다.

차아악!

피가 튀어 올랐다.

“곧 입구다! 신속히 빠져나간다!”

적들의 공세가 더욱 강해졌다.

동굴이 점점 더 넓어지고 안으로 들어오는 무인들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제길,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어…….’

소청은 입구를 나가는 즉시 포로들을 산개시켜 도주시키라 명했다.

내부의 적보다 외부의 적이 배 이상 많았다.

은수가 조사해 온 바에 따르면 족히 칠백은 넘는다 했다.

“대주!”

초사가 고민하는 사이 후방을 맡고 있어야 했던 재선이 달려왔다.

반갑기 그지없었지만 의아했다.

“어찌 된 일이냐?”

“후위에 적이 따르지 않아 돌아가 보니 통로가 무너져 있었습니다.”

“뭣이!”

초사는 지나간 기억에 깜짝 놀랐다.

이전에 한번 산에 갇혔던 소청이었다.

하지만 걱정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러야만 했다.

어쨌든 든든한 우군이 생겼으니 서둘러 포로들을 탈출시켜야 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리라.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번처럼 절대 소청을 혼자 두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가자! 추형진을 갖추어라! 적의 종심을 뚫는다!”

 

동굴을 통해 검은 산을 빠져나온 초사와 비마대는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또 다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게 뭔……?”

포위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대막혈궁의 무인들이 검은 대지를 침범해 온 적들에게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공격해 온 적은 너무나 익숙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붉은 피풍의를 날 서도록 휘날리며 질주하는 그들은 가히 폭풍을 만난 파도 같았다.

“뇌령도문? 혈랑대?”

사도련 예하 중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뇌령도문과 사도련주의 호위 무인들인 혈랑대였다.

그리고 양 떼의 틈으로 뛰어든 늑대처럼 날뛰며 적을 학살하고 있는 것은 뇌령도문의 문주이자 사도삼위의 하나인 섬뢰였다.

콰앙!

검은 산을 둘러싸고 있던 성벽이 사방에서 터져 나갔고 뇌령도문과 혈랑대의 무인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초사의 앞으로 반백의 머리를 휘날리는 섬뢰가 금빛 찬란한 뇌기를 머금은 도를 어께에 메고 다가왔다.

“그대들이 묵영단인가?”

“예? 예! 묵영단의 초사입니다. 헌데 섬뢰께서 어찌?”

“제갈 군사에게 연락을 받은 련주께서 명하시어 급히 달려오는 길일세.”

그가 사도련을 떠난 것은 열흘 전이었다.

제갈휘문은 소청에게 연락을 받은 이후 사도련주에게 서신을 보냈다.

대막혈궁을 비롯해 새외 삼세가 마천에 복속되었을지도 모른다 알리며 정사 연합에 대한 의견을 담고 있었다.

위도혁은 서신을 받자마자 섬뢰와 뇌령도문의 정예 오백을 대막으로 출발시켰다.

오랫동안 무림에 군림해 온 위도혁은 대막의 전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소청이 혹시 위험에 빠질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오면서 하오문의 정보를 들었기에 대막혈궁으로 곧장 달려온 그들은 소요가 일어나고 있음을 대번에 깨닫고 공격을 감행했다.

이미 대다수의 전력이 빠져나갔기에 대막혈궁의 무인들은 사도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일방적인 학살…….

“진소청, 그는 어디에 있나?”

“그게, 후위를 맡겠다 하시고 아직…….”

“흠, 다행이군. 무너진 산에 갇혀 죽었다 들었는데…….”

위도혁에게 진소청이 살아 있음을 들었을 때 놀람을 금치 못했다.

섬뢰의 시선이 비마대를 향했다.

지쳐 보이는 초사와 비마대.

그리고 그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포로인가?”

“예. 혈독의 제물로 쓰이려던 이들입니다.”

“혈독…….”

섬뢰의 눈이 찌푸려졌다.

우진혜에 의해 혈독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다.

또한 그들이 사용하는 화혈독에 대한 해약을 만들기 위해 사도련의 독웅각이 밤잠을 설치며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일단, 포로들을 안전하게 빼내는 것이 우선이겠군.”

섬뢰는 고개를 돌려 대막혈궁의 잔당을 처리하고 있는 수하들에게 외쳤다.

“뇌령도문은 잔당을 처리하고 혈랑대는 포로들을 호위해 이곳을 빠져나가라!”

그의 웅혼한 외침에 혈랑대가 다가와 포로들을 인계받았다.

“자네들도 가게. 내가 들어가 보겠네.”

섬뢰의 말에 초사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저희가 나온 동굴은 이미 막혔습니다.”

“막혀? 무너졌단 말인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안쪽에서 계속해서 충돌음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패월께서 저희의 도주를 위해 일부러 막으신 듯합니다.”

“음…….”

섬뢰가 고개를 끄덕였다.

“포로들을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패월께서 나오실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초사와 비마대의 얼굴은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죽음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표정이었다.

‘허, 이 정도의 신임이라니……. 역시나 부러운 녀석이군.’

섬뢰는 충성스러운 수하를 둔 소청에게 또다시 감탄했다.

“알겠네. 하면 함께…….”

그 순간.

콰아아앙!

검은 산의 한쪽 벽이 터져 나갔고 소청이 섬전처럼 쏘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듣도 보도 못한 거대한 괴물이 뒤쫓고 있었다.

“패월!”

초사와 비마대원들이 반색을 하며 다가가려는데 섬뢰가 굳은 얼굴로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물러나게. 서둘러 피해야겠네.”

“예?”

초사가 의아하게 되물었지만 섬뢰의 굳은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소청을 뒤쫓는 괴물을 보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 같았다.

괴기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상체는 물론이고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더욱이 그의 주위로 퍼진 독기는 생전 처음 볼 정도로 지독했다.

‘저, 저게 도대체…….’

섬뢰는 소청과 함께 싸우는 괴물에게서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나도 저만한 기운을 느낀 건 련주님 이외에는 처음이네. 서둘러 피하게. 휘말리면 죽을 것이야!”

초사에게 다짐을 둔 섬뢰가 급히 소청을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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