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01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01화
100화. 차가운 분노
“어떻습니까?”
옥명자가 굳은 얼굴로 소강에게 물었다.
“글쎄요. 그리 흥미를 끌 만한 비무는 아니군요. 무공을 겨루고 있지만 마치 누가 더 강한 공력을 지니고 있는가 자랑하고 있군요.”
“…….”
소강의 대답에 옥명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황보인과 서문중걸은 강했다.
오존에 뒤지지 않는 자신감을 보일 정도로 충분히 강했다.
하지만 예리함이 없었다.
소강의 말대로 누가 더 멋있게 상대를 제압할까에만 혈안이 되어 시작부터 권강이며 검강으로 구경꾼들을 놀라게 했다.
응당 서로의 실력을 가늠해 보아야 할 일인데 마구잡이식으로 무공에 내공만 더하고 있었다.
“전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예? 벌써요?”
“더 보아야 시간 낭비입니다. 좀 더 내력을 아꼈다면 모르겠지만 흥분해서 칼끝이 무뎌졌습니다. 서문중걸은 여기까지군요.”
“…….”
소강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옥명자는 차마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황보인이나 서문중걸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 무인이었다.
“그럼…….”
옥명자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는 소강을 따라 진무월창의 무인들이 일어났지만 비무대에 집중하고 있던 이들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벌써 일어난다고?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뜻일까? 아니면 정말로 서천맹주의 위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
악이군은 비무가 시작된 이후 한시도 소강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왠지 비무대의 둘보다 소강이 더욱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악이군은 현재 자신 앞에 벌어진 상황을 냉철하게 읽고 있었다.
서문중길은 자신과 비슷하지만 흥분을 잘하는 성격이니 그리 걱정되지 않았다.
아마도 다음 대결은 황보인과의 싸움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진소강…….’
도무지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설사 놈이 관심이 없다 해도 내가 서천맹주가 되는 데 걸림돌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 키워 두면 불편해질 수 있으니 초반에 잘라야 한다.’
모개에게 지시했던 독과 살수들이 준비되었으니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모개.
-예. 소가주님.
-살수들에게 전해라. 실행에 옮기라고.
-…….
떨어진 명에 잠시 멈칫했던 모개가 은밀하게 비무장을 빠져나갔다.
서천맹의 성 밖으로 나온 소강은 진무월창의 무인들과 함께 곧바로 서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간양이 멀지 않고 성도에 진가 표국의 분점이 있으니 굳이 서천맹 내에 거처를 마련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가!”
막 진가 표국 방향으로 향하는데 은소혜가 자신을 알아보고 달려왔다.
“아, 소저.”
“또! 이미 혼약이 결정되었는데 소저가 뭐예요. 소저가! 은매라고 불러요.”
“그래도 나이가 있는…….”
“닥쳐요.”
소혜가 소강을 향해 눈을 흘겼다.
그녀는 언제나 활달한 성격이었다.
비록 다른 이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거짓으로 치러진 형의 장례였지만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진가신과 섭약란을 위로했었다.
“장주님과…….”
“장인! 빙장!”
“하하, 익숙지 않아서……. 장례 끝나고 빙장 어른과 아미파에 들른다 하시더니 벌써 돌아오신 겁니까?”
“멸절사태께서 안 계셔서 언니가 아미 제자들을 이끌고 서천맹으로 왔는데 굳이 아미에 갈 이유가 없죠. 그래서 전 아버님과 떨어져서 가가를 만나러 왔어요.”
“아, 그렇군요.”
“언닐 못 본 거예요?”
“예. 아직. 너무 사람이 많아서…….”
“흠, 근데 가가께서는 어째서 서천맹주에 도전하지 않으시나요?”
“저는 그만한 재목이 못 됩니다.”
“피이-! 제가 보기엔 저들보다 훨씬 나아 보이던데요? 다들 제 이익에만 눈이 멀어서는…….”
“…….”
소혜가 혀를 쏙 내밀자 소강이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
“소저, 아니 은……매도 서천맹주가 누가 될지 관심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럼요. 그래도 제가 검후의 제자잖아요. 막내긴 해도.”
어깨를 으쓱하는 그녀의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다들 이렇게 따라다녀야 해요?”
“…….”
소혜가 관도를 따라 걷는 동안 지키듯이 뒤를 따르고 있는 진무월창의 무인들을 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 그러네요.”
소강이 남광을 보며 웃자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안 됩니다. 성도에는 진가의 무인들이 없습니다. 혹여 소가주님의 신변에 문제라도 생기시면…….”
“에이, 무슨 소리예요? 누가 노린다고…….”
“노리는 자가 많습니다. 지난밤에도 악가와 소란이 있었고요.”
“악가와요?”
“예.”
남광이 지난밤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 소혜가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쯧쯧, 그 악표는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보네요. 그 자리에 있었으면 개 패듯이 패 버렸을 텐데…….”
“소저가요?”
“은매라고욧!”
빽 하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주위의 시선이 몰려들자 소강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으, 은매…… 악이군은 강합니다. 심계도 깊어 보였고요.”
“악이군이라. 하긴 악표보다는 뛰어난 사람이죠. 하지만 가가보다는 한참 모자라요. 누구 신랑 될 사람인데…….”
소혜가 자신 있게 제 가슴을 내밀었다.
“어쨌든 다들 돌아가세요.”
“…….”
“아니 사천에서 진가가 미치는 영향력이 얼만데. 그리고 제가 누구예요. 오존의 일인이신 검후의 제자예요. 그러니 걱정 말고 다들 돌아가세요.”
“하지만…….”
남광이 난감한 표정을 짓자 소혜가 은근하게 위협을 가했다.
“지금 모처럼 오붓한 시간을 좀 즐겨 보겠다는데 방해하시는 건가요?”
“…….”
그녀의 매서운(?) 눈빛에 남광이 진땀을 흘리며 돌아섰다.
“알겠습니다. 하면 돌아가겠습니다. 부디 어두운 곳으로 다니지 마시고…… 사람 많은 곳을 조심하시고…… 무슨 일 있으시면…….”
“아! 쫌!”
버럭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에 남광은 기어코 작은 신호탄 하나를 소강의 품에 집어넣었다.
“그, 그럼 먼저 돌아가 대기하겠습니다. 소가주님.”
소혜의 흘김에 남광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수하들과 발걸음을 돌렸다.
둘만 남게 된 소강은 어색하게 웃었고 소혜가 그의 팔짱을 끼었다.
“자, 가요! 홋홋홋!”
-크흐흐, 이제 둘만 남았군. 모두 준비해라.
누군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소강은 소혜에게 이끌려 관도를 헤집다시피 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포목점에, 당과 가게, 풍물상…….
하지만 그것이 형을 잃은(?) 자신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한 노력임을 알고 있는 소강은 미소를 잃지 않고 뒤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성도 곳곳을 돌아다니던 소강과 소혜는 배고픔을 느끼고 근처 객점으로 들어갔다.
소혜가 음식을 주문하는 동안 소강이 갑자기 일어났다.
“어? 왜요?”
소혜의 물음에 미소만 지은 소강이 구석진 탁자를 향해 다가갔다.
“뭐요?”
탁자에는 서로 다른 복장을 한 네 명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제가 물어볼 말 같군요.”
“…….”
“어째서 따라다니는 겁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포목점, 어전(魚展) 거리, 풍물점, 만두 가게……. 더 말해 줘야 할까요?”
“아, 아니, 이자가 어디서 시비야?”
넷 중, 털보 장한이 화를 내며 일어났다.
순간 소강의 손이 그의 어깨를 움켜쥐고 눌러 앉혔다.
콰득!
“크윽!”
근육과 함께 어깨뼈를 다쳐 버린 털보가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며 주저앉았다.
“성도에 진가의 힘이 미치고 있지 않지만 월문복을 모르는 무인은 없습니다. 그것은 각지에서 몰려든 낭인들이라 해도 마찬가지이지요.”
“끄으으…….”
소강이 털보와 함께 잔뜩 긴장한 세 명의 사내를 쓸어 보았다.
“무, 무슨 소리를…….”
“지금부터 답할 기회를 주겠습니다. 만약 답이 틀리면…….”
소강이 스산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털보의 다리뼈를 부숴 버렸다.
으드득!
“끄아악!”
바닥에 쓰러져 버린 털보의 모습에 세 명의 무인들이 저마다 무구에 손을 가져갔다.
“뽑으면…….”
죽는다.
꿀꺽.
무지막지한 기세가 피어 나와 객점 안을 모조리 짓눌러 놓았다.
“달라졌네. 아주버님이 돌아가셔서 그런가?”
예의 바르고 차분한 소강의 모습은 없었다.
소혜는 그것이 소청의 죽음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변화가 나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이제까지의 소강은 형의 말을 잘 듣는 소년이었다면 조금씩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내다움을 보여 주고 있었다.
홀로서기를 해야 할 시기이니 좀 더 결단력 있는 모습으로 변해야만 했다.
소강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소혜의 옆으로 점소이가 다가와 음식을 놓았다.
그 순간.
“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은소혜의 목소리.
소강의 눈이 홱 하고 돌아갔다.
멀리 점소이가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점소이로 가장했던 살수 하나가 소강에게 정신이 팔린 틈을 노리고 소혜를 공격한 것이다.
은소혜가 눈을 부릅뜨고 쫓아가려다가 현기증을 느끼며 풀썩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소저!”
소강이 고개를 돌린 사이 털보를 제외한 나머진 셋이 객점의 창을 뚫고 섬전처럼 도망쳤다.
“이, 이런!”
쫓아야 했지만 소혜가 먼저였다.
피웅- 퍼엉!
소강은 남광이 주고 간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성도의 표국 분점이 멀지 않으니 진무월창의 무인들이 금세 찾아올 것이었다.
신호탄을 쏘고 난 소강은 재빨리 은소혜의 상처를 살폈다.
“독?”
소강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생채기에 불과한데 소혜의 낯빛이 창백해졌고 입술이 보랏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젠장!”
방법이 없었다.
어떤 독인지 알 수가 없느니 지체하다가는 그녀가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제가 돕겠습니다. 운기를 하세요.”
소강이 그녀를 앉힌 후 명문에 손을 대고 내공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녀가 운공을 해 독을 한 곳으로 몰아넣어 가두긴 했지만 파리한 안색과 입술 색이 돌아오지 않았다.
극독은 아니었지만 그대로 두면 위험했다.
서둘러 의원에게 보여야만 했다.
“소가주!”
남광이 도착한 것은 일각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놈을 부탁합니다.”
소강은 털보 장한을 맡기고 소혜를 안고 급히 의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소혜를 진맥한 의원이 고개를 내저었다.
“해약이 있어야 합니다.”
“…….”
결국 살수를 잡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잠시 부탁드립니다.”
소강은 의원에게 소혜를 맡기고 객점으로 돌아왔다.
털보 장한은 검을 겨눈 진무월창의 무인들의 기세에 적잖이 당황한 듯한 모습이었다.
소강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털보장한을 노려보았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거짓 없이 대답해 주면 좋겠군요.”
“…….”
“의뢰인이 누구죠?”
“…….”
대답하기를 머뭇거리자 소강이 다가가 그의 성한 다리를 움켜쥐었다.
뿌드득.
“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털보 장한을 바라보는 소강의 눈은 주위를 얼려 버릴 듯이 차가웠다.
소강의 얼굴을 바라본 남광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무표정한 소강의 얼굴은 자신이 알던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였다.
“질문에 답은 꼭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에 있는 뼈가 하나도 성하지 않을 테니까요.”
소름이 돋아 오를 정도로 차가운 살기에 털보 장한이 고통스럽게 찡그린 얼굴로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뢰인이 누구죠?”
“아, 암시장의 독묘입니다.”
“암시장…….”
소강의 눈이 가늘어졌다.
성도의 암시장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소청이 짐조의 깃털을 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겼었다는 사실은 이미 아비인 진가신에게 들은 바 있었다.
“그가 어째서 우리를 노린 건가요?”
소강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가 기세로 뿜어져 털보 장한을 압박했다.
“그건 모릅니다. 저희는 그저 의뢰만…….”
으드득!
“끄아아악!”
소청은 바닥을 짚은 그의 손을 밟아 으깨 버렸다.
“모른다는 대답을 듣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답은 항상 있어야 합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독묘에게 의뢰를 받았고 상처만 내면 된다 했습니다. 저희는 그저 공자님의 시선만 끌면 나머지는 다른 이들이 다 알아서 할 것이라 했습니다.”
털보 장한은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남광.”
“예! 소가주님.”
“두 패로 나눕니다. 제가 암시장의 독묘를 찾고 나머지는 관에 연락해 흉수를 찾습니다. 인원은 다섯, 혹은 그 이상. 검후의 제자인 그녀에게 상처를 입힐 정도로 뛰어난 살수입니다. 키 칠 척, 눈 밑에 점이 있고…….”
소강은 자신이 보았던 네 명과 도망친 점소이의 용모를 설명했다.
“반드시 찾으세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