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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35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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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135화

134화. 사라진 전초

 

 

 

 

작은 방 안에서 은밀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악이군과 황보인.

소청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둘은 동료들의 안쓰러운 시선과 걱정 아래 방에서 쉬고 있었다.

하지만 남들의 걱정과는 달리 그들의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물론 검후에게 추가로 얻어맞은 황보인은 몸이 욱신거리긴 했지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그만큼 구타를 당했는데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더욱이 아침에 일어나는데 몸이 어찌나 가뿐하던지.”

악이군의 말에 황보인은 조금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참으로 신기한 일이기는 했다.

소청에게 당한 구타의 강도라면 최소한 뼈마디 몇 개는 부러져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토록 맞았는데 몸에 뻐근함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운기를 해 본 악이군과 황보인은 깜짝 놀랐다.

격체전공 이후로 많은 내공을 얻기는 했지만 강제로 주입된 내공이 몸에 맞을 리가 없었다.

완전히 융화되지 못하고 응고된 기운이 내천의 돌부리처럼 기맥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흐름이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마치 누군가 돌부리를 깨어 버린 것 같았다.

“허, 참…….”

황보인은 악이군을 째려보며 그저 허탈한 비웃음을 짓고 있었다.

뭐, 때로는 그런 경우도 있다.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갑자기 깨달음을 얻는다든지, 적의 공격으로 인해 기맥이 열려서 갑자기 고수가 되는 경우…….

“그 왜, 괴팍한 스승들은 제자의 성취를 위해 매질을 통해 수련을 시킨다고 하지 않습니까?”

“설마 그가 우리에게 타혈사통(打血四通)이라도 해 주었단 말인가?”

혈도를 때려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는 그 방법은 웬만한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그의 무공을 직접 보지 않으셨습니까? 오존 어른들보다 훨씬 윗줄입니다. 어디 그게 사람의 무공입니까?”

“…….”

물론 그렇기야 했다…….

혈승과 겨룬 일합의 승부가 잊히지 않았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와의 인연은 악연(惡緣)이었다.

자신에게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생을 핍박했고, 그의 말처럼 적 앞에서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지금도 구타를 당하던 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 올랐다.

“시도해 봅시다.”

“뭘 말인가?”

“한 번 더 맞아 보면 알 거 아닙니까?”

“…….”

뭔 처맞을 생각을 하면서 눈빛에 열망까지 띤단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럼 저만 하겠습니다. 대신에 모두에겐 비밀로 해 주십시오. 혹여 타혈사통이 되지 않더라도 분명히 그만한 강자와의 대련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

“그리 째려볼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이건…….”

젠장.

“진소청까지는 아니어도 내 소강 공자만큼은 되어야겠습니다.”

강해진다.

황보인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미 서천맹주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포기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간양 사람들이 자신을 부르던 ‘대협’이라는 말이 가슴속에 새겨져 있었다.

마천과의 전쟁의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알지 못했다.

승리할지 아니면 죽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이름 하나만큼은 얻어 세가로 돌아가고 싶었다.

‘권왕…….’

황보인의 눈동자에도 열망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좋네. 가세.”

“예. 서둘러 갑시다. 혹여 다른 이가 먼저 대련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무조건 우리가 독식을…….”

“흐흐흐…….”

은밀한 대화를 마친 황보인과 악이군이 서둘러 옷을 입고 연무장을 향해 달렸다.

 

쩍!

쩌어억!

서문중걸의 아름다운 비행이 모두의 시선을 빼앗았다.

끊어진 연처럼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그의 모습은 한 폭의…….

빠-악!

빠바바바박!

잔인한 소음이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허공에 가로 눕혀진 사람을 그리 무지막지하게 패다니…….

별동대의 무인들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음!”

귀를 막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는 순간 분명히 지목당할 것이 뻔했다.

이 순간 소강과 대련을 하고 있는 옥명자가 너무 부러웠다.

오늘은 초사가 왜 이리 늦게 오는가?

어째서 이놈의 집구석에는 아무 일도 없단 말인가?

그 순간.

“제가 하겠습니다!”

용기 있는 자가 그들을 구해…….

“어? 악 공자?”

구타를 당하고 누워 있어야 할 그가 왜? 더욱이 황보인까지?

“저희를 때려…… 아니 대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를 갖추어 포권까지 하며 공손하게 대련을 청하는 모습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법 눈치 빠른 놈들이네?”

소청이 피식 웃으며 창대를 어깨에 걸쳤다.

“후후후…….”

악이군과 황보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패월!”

갑자기 초사가 끼어들었다.

‘이런 망할!’

악이군과 황보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고 나머지 별동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오문의 우 소저께서 오셨습니다.”

“우진혜가? 알았다. 가 보지.”

소청이 창대를 접고 돌아서자 다급해진 악이군이 그를 향해 뛰어갔다.

“어, 어딜 가십니까?”

“맞습니다. 때려 주셔야지요!”

“…….”

피풍의를 움켜쥐고 때려 달라며 매달리는 그들의 모습은 흡사 변태?

빠박!

“큭!”

“켁!”

황보인과 악이군이 머리를 잡고 동시에 주저앉았다.

“왜 질척거리고 지랄이야!”

“…….”

눈을 부라리는 그의 모습에 그들이 억울한 듯이 초사를 째려보았다.

조금만 늦게 오지…….

소청이 초사를 따라 사라지자 별동대의 무인들이 다가왔다.

“대단하십니다. 아무리 고수와의 수련이 도움이 된다 해도 몸이 회복되지도 않았을 텐데…….”

“…….”

“근데 때려 달라니 그건 무슨 소립니까?”

말할 수 없다.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되었다. 진소청은 자신들이 독식해야만 했다.

그들의 시선이 쓰러진 서문중걸을 향했다.

모두의 눈에는 그들이 서문중걸을 걱정한다고 생각했지만.

제길, 경쟁자가 하나 더 늘었다.

 

“어쩐 일이야?”

가주전을 열고 들어온 소청을 향해 우진혜가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네.”

소청의 인사에 우진혜가 맑은 웃음을 지었다.

“정보단을 맡았다지? 북쪽과 남쪽을 동시에 감시하자면 꽤나 바쁠 텐데 어쩐 일이야?”

“대군사께서 서천맹으로 이동하라 명하셨습니다.”

“흠, 마궁을 감시하겠다는 말이군.”

“예. 흑비 소저께서 이끄는 둔영조와 연락선을 만들고 있습니다.”

“옳은 판단이군.”

“한데 그런데 그 과정에서 조금 이상한 일이 발견되어서…….”

“이상한 일?”

“예. 제갈 소저께서 서천맹의 방어선을 재구축하며 토번과 이어지는 길목 열두 곳에 적의 습격을 대비해 전초를 배치했습니다.”

“그런데?”

“이틀 전 전초를 지키던 무인들이 사라졌습니다.”

“…….”

소청은 그녀가 어떤 의심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전초는 마궁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해 위험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전투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충분히 저들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흑비 소저의 연락에서는 저들이 움직인 정황은 없었습니다.”

“조사해 달라는 말인가?”

“예. 제갈 소저의 부탁으로 하오문에서 조사했을 때는 별다른 문제점이 없었습니다. 거처는 그대로 남아 있고 전투를 한 흔적도 없었습니다.”

“흐흠…… 사람만 사라졌단 말이지?”

그녀의 말대로 이상한 일이었다. 하오문의 조사대가 실수를 했을 리도 없었다.

또한 흑비의 연락이 없었다면 마궁이 직접 움직인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마천과 관계가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신중을 기하는 수밖에.

“혹, 놓인 것이 있을지 몰라서…….”

“알겠다. 비마대와 함께 곧바로 가 보도록 하지. 신경 쓰지 말고 서천맹에서 제갈상아를 도와라. 대족장의 상태도 좋아지고 있으니 운남의 무인들도 전력에 포함시키라 전하고.”

“예, 알겠습니다.”

소청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우진혜에게 물었다.

“혹시 휘의 소식은 없나?”

흘러가듯이 말했지만 소청의 목소리에 궁금증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낀 우진혜가 빙긋이 웃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의 안부를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련에서 수련 중이십니다.”

이제는 북천맹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도련이라 부르는 것이 편했다.

“그렇군.”

“……그분께선 아직도 진 공자의 생환을 모릅니다.”

“뭐? 아직도?”

“예. 무황께서 모르고 있는 편이 수련에 더욱 도움을 주리라 판단하셔서…….”

보고 싶은 얼굴이지만 그가 사도련에 있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아직까지 마종의 정체는 알지 못했지만 구자겸을 비롯해 마천 삼 공자 중 둘이 더 남아 있다.

북해의 병력이 움직인다면 그들 중 하나가 섞여 있을지 몰랐다.

섬뢰와 신승만으로는 부족할 테니 혁련휘가 함께라면 믿고 맡길 만했다.

“쳇, 나중에 한 소리 듣겠군그래.”

소청이 투덜거리며 그녀와 밖으로 빠져나갔다.

우진혜가 멀리서 들려오는 병장기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소리는 뭐죠?”

“별동대가 수련하는 소리다.”

“아! 설마 직접 수련시키시는 건가요?”

“뭐, 주로 소강이 하고 있지만 간간이 돕는 편이지.”

“설마 여전히 같은 방법으로?”

“그래. 그 멍청이들은 좋은 걸 얻고도 아직 제대로 녹여 내지 못해서…….”

“아!”

정천 무가의 격체전공에 따라 만들어진 후계들.

모두가 뛰어난 강자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을 우진혜는 알고 있었다.

격체전공이 뛰어난 내력 전수 방법인 것은 맞지만 힘을 얻고 난 다음이 문제였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내공이 섞여 들어갔으니 일순간 많은 힘을 얻은 것 같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소실되고 만다.

분명 일 년 정도 지나면 그 몇몇을 제외하고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안에 그것을 제대로 녹여 낼 수 있느냐 마느냐가 관건이었다.

만약 소청이 그들이 모은 내력을 녹여 주기만 한다면?

그들은 진정한 오존의 경지에 다가설 것이다.

하지만.

“엄청 아프겠네요. 그렇게 맞아 본 적이 없을 텐데…….”

그녀는 일전에 소청이 초사와 비마대를 훈련시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꽤나 효과적이기는 했지만…….

“그래.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 그 멍청이들이 더 때려 달라고 하더군.”

“그렇겠죠. 어느 정도 경지를 이루었다면 운기만 해 봐도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래 봐야 잠깐 손봐 주는 것에 불과해. 그 이상은 어차피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겐 기연일 겁니다.”

이런 저런 말을 나누는 사이 그들은 별동대가 수련 중인 진가의 대연무장에 도착했다.

“소강!”

소청의 부름에 옥명자와 대련 중이던 소강이 달려와 우진혜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신임 서천맹주님?”

우진혜가 방긋이 웃자 소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그게…….”

“소강.”

“예?”

“잠시 나갔다 와야겠다.”

“채비할까요?”

“아니, 초사와 비마대만 데려간다.”

“알겠습니다.”

소강이 고개를 숙이는데 황보인과 악이군이 다가왔다.

“때려…….”

“저희도 가겠습니다!”

“…….”

자발적으로 자원하는 그들의 모습에 우진혜가 싱긋이 웃었다.

“이들 두 명인가 보네요?”

“그래. 무척 마음에 들진 않지만…….”

소청이 투덜거리자 우진혜가 황보인과 악이군을 향해 말했다.

“축하드려요, 기연을 만난 거.”

“…….”

“쓸데없는 소리. 어쨌든 조사가 완료되면 연락을 보내겠다.”

소청의 말에 우진혜가 살포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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