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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24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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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124화

123화. 패월, 그의 전장

 

 

 

 

“대공! 전방에서 연락입니다!”

“매복하고 있던 적의 공격으로 인해 선두가 방향을 틀었습니다.”

방향을 틀어?

전령의 보고에 후방에서 천천히 이동하고 있던 구자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들이 움직이는 길은 산과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하기는 했어도 간양까지 곧장 연결된 경로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말이냐?”

“그것이…… 선두가 갑자기 방향을 트는 바람에 지금으로서는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충마의 물음에 전령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사이 또 다른 전령이 달려와 보고를 했다.

“대공께 보고드립니다. 선두의 뒤를 이은 후발대 역시 방향을 틀어 분리되었다고 합니다.”

“…….”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선두가 계속 나누어지고 있다고?

병력이 찢어지고 있었다.

마치 나무줄기가 가지를 치듯이 자꾸만 나누어지고 있었다.

“크크크, 크핫핫핫! 재미있는 짓을 하는군.”

갑자기 구자겸이 웃자 충마가 의아해하면서 바라보았다.

“역시 중원의 놈들은 머리가 좋아.”

“…….”

“나누어진 지점이 어디쯤이냐?”

“선두를 이루었던 열화사의 무인들까지입니다.”

“피해 상황은?”

“아직까지 파악된 것은 없습니다.”

“진소청은? 놈이 전투에 참여했더냐?”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구자겸의 눈이 씰룩거렸다.

기다리는 것이다.

자신이 움직일 때까지 숨어서 살피고 있는 것이다.

“개자식…….”

여전히 껄끄러웠다.

“좋다. 본진의 전충사에 전해라. 적을 뒤쫓지 말고 곧장 간양으로 향한다.”

“알겠습니다!”

전령이 고개를 숙이고 급히 명령을 전하기 위해 달려갔다.

뒷짐을 지고 일어난 구자겸이 앞서자 한려와 호위대가 그의 주위로 늘어섰다.

“대공,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식육충(食肉蟲)과 함께하더니 곤충처럼 멍청해진 것이냐? 놈들은 우리를 상대할 수 있을 만큼 끊어서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

“하면 열화사의 병력들은…….”

“멍청한……. 저들의 술수에 말려든 멍청한 놈들까지 신경 써야 하는가?”

“…….”

“얼굴을 봐야겠다. 어떤 놈이 이런 맹랑한 계획을 세웠는지. 그리고 두들기다 보면 진소청 그 개자식이 나오겠지.”

구자겸이 호위들과 함께 전열의 앞쪽으로 움직였다.

 

* * *

 

“적의 움직임이 변했습니다.”

전황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던 초사가 다급하게 돌아왔다.

“뭐라고? 변해?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갈상아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예. 적의 본진이 방향을 바꿔 곧장 간양을 향하고 있습니다.”

“씨발…….”

제갈상아가 욕설을 내뱉었다.

제 뜻대로 되지 않으니 마음속의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하면? 저들의 선두를 유인한 병력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제일 조는 적 일천을 섬멸, 신승과 백인회 포함 삼백여 명 생존 후 현재 이동 중입니다.”

“삼, 삼백……. 이백이나 죽었단 말입니까?”

가장 적은 수를 데리고 적을 유인했지만 신승과 백인회가 있었기에 더 많은 무인들이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제갈상아의 허탈한 물음에 초사는 계속해서 보고를 이어 갔다.

“이 조, 진소강 공자는 현재 전투 중에 있으며, 삼 조의 황보인 공자의 행적은 파악 중입니다.”

초사의 보고에 제갈상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신승의 피해가 그 정도라면 더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하는 그들의 피해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대응책을 생각해 내야 했다.

의총진으로 끌어들인 것은 공격해 온 마천의 병력 중 오천여 명에 불과했다.

아직도 일만에 가까운 병력이 남아 있었다.

적어도 반 이상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보다 마천의 무인들이 더욱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지금 방향을 틀어서는 안 되었다.

간양에서 저들을 맞이하자면 좀 더 시간을 끌어야 했다.

‘씨발, 어떤 새끼가?’

분명 누군가 자신의 계획을 눈치채고 있는 것이었다.

제갈상아가 까드득 소리가 나도록 손톱을 깨물었다.

“개미굴은 무너진 모양이군.”

적의 동향을 확인하고 돌아온 소청이 제갈상아를 향해 다가왔다.

“아니, 안 무너졌어! 지금쯤이면 신승께서 분명히 적들을 죽이고…….”

자신의 계획이 틀어진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

그녀는 소청의 말에 항변하듯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인정할 건 인정해. 모두가 지쳐 있다.”

“…….”

“이제 그만 진가로 돌아가라. 여기서부터는 내가 맡지.”

“아직, 아직이라니까!”

“…….”

주먹을 움켜쥐고 이를 갈아 대는 제갈상아를 무심히 바라보던 소청이 피식 웃었다.

턱.

“…….”

소청의 손이 그녀의 머리에 얹어졌다.

“어이, 그만하면 할 만큼 했어. 그저 전황(戰況)이 변했을 뿐이야. 대처하기에는 우리의 수가 너무 적었을 뿐 너의 전술은 훌륭했다. 적어도 두 시진은 벌었잖아.”

입김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기 때문이었을까?

제갈상아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발갛게 달아올랐다.

나이도 어린 게…… 잘생긴…… 얼굴을 어디다가…….

위급한 순간이지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초사, 모두에게 전해라! 모두 진가로 퇴각해서 체력을 회복하고 항전을 준비한다.”

“알겠습니다. 패월께서는?”

초사의 물음에 소청이 빙긋이 웃었다.

“막아야지.”

“예?”

파앙!

초사가 되묻기도 전에 소청은 이미 몸을 날리고 있었다.

“이봐! 이봐! 기다려! 적의 수좌가 아직…….”

제갈상아가 잡아 보려 했지만 이미 소청의 모습은 손바닥보다 작아져 있었다.

“이 망할 자식아!”

순식간에 점으로 변해 버린 소청의 뒤를 향해 제갈상아가 소리를 질렀다.

“젠장…….”

애초에 그는 적의 수장이 나설 때를 대비해 준비한 예비 전력이었다.

지금의 무인들 중에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기 때문이다.

‘할 만큼 했다고? 아니야.’

그의 말은 틀렸다.

할 만큼 한 것이 아니라 의총진은 실패한 것이다.

적이 반나절이나 빨리 움직이는 바람에 급히 만들어 낸 전술이기는 했지만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좀 더 심혈을 기울였어야 했어.’

마음이 무거웠다.

능숙한 군사라면 적들의 변화마저 예측해 전술을 짜야 했다.

아직 모자란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 전술에 한탄만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피해만 보고 간양마저 빼앗길 가능성이 높았다.

까드득!

“계획을 바꿉니다. 지금 즉시 살아남은 모든 무인들을 간양의 입구로 집결시켜 진 공자의 후위를 지원합니다.”

“예? 하지만 패월께서는…….”

“시끄러워요! 중원의 미래를 한 사람에게 맡겨 둘 생각입니까!”

“아, 알겠습니다.”

서슬 퍼런 제갈상아의 외침에 초사가 황급히 그녀의 명을 전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앞으로 두 시진.’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때가 되면 분명 지원대가 도착할 것이었다.

그나저나 혼자서 어떻게 저 많은 병력을 막겠다고…….

제갈상아는 다시 한 번 소청이 사라진 방향을 걱정스럽게 힐끗거리고 뒤로 물러났다.

 

파앙!

소청의 신형이 지면을 밟을 때마다 십여 장 이상씩 날아갔다.

주변의 풍경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남아 있는 적의 수는 여전히 많았다.

어쩌면 홀로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쯧, 역시나 귀찮아.’

문득 헛웃음이 났다.

한때 동경했던 혁련휘와 친구가 되고, 무림의 명숙들과 같은 자리에 서서 마천에 대항할 줄은 몰랐다.

중원 곳곳을 제집 드나들듯이 이것저것 훔쳐 무림공적이 되었던 자신이 이제는 언제 죽을지도 모를 일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정말 너무 손핸데? 차라리 그냥 신투가 되어서 조용하게 살 걸 그랬나?’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는 동안 마천의 모습이 가까워졌다.

‘마천…….’

그때와 비슷했다.

당태위가 당가의 무인들을 이끌고 간양을 공격했을 때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앞선 무인들이 잘라 냈다는 무인이 삼 할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였다.

스스로도 그 많은 적을 홀로 막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모하다.

제갈상아의 말대로 그는 구자겸을 기다려야 했다.

얼마가 다치고 죽든지…….

두 시진만 지나면 지원군이 올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나설 수밖에 없었다.

막아 주겠다며 호언장담을 하고 나섰다.

‘어쨌든 지금은…….’

소청의 눈동자가 푸른 불꽃으로 물들었다.

파앙!

강하게 지면을 밟자 허공으로 몸이 솟구쳐 올랐다.

순식간에 적 선두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마천의 무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

휘리릭! 차차차작!

늘어난 창대의 끝을 잡은 소청이 단전의 기운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우우우웅!

창대의 떨림이 움켜쥔 손을 통해 전신을 타고 흘렀다.

심장이 세차게 뛰고 몸의 모든 곳으로 활력이 퍼져 나갔다.

그그그그…….

쏜살처럼 빠져나간 기운이 창극에 몰려 거대한 구체가 만들어지고 터질 듯이 떨려 왔다.

“이 시간에…… 다, 달이?”

마천의 무인 중 누군가가 손가락을 들어 소청을 가리켰다.

대낮에 달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다 죽어 버려라.”

소청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리고 달이 수백 조각으로 부서지며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환하게 세상을 밝히며 반짝이는 빛 무리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콰콰콰콰콰!

아름다움은 지면에 떨어지는 순간 잔혹함으로 변해 버렸다.

건월식, 만월의 압살!

손바닥처럼 갈라진 기운의 조각들이 칼날처럼 쏟아져 닿는 모든 것을 잘라 놓으며 폭발했다.

쩌어어엉!

창대가 바닥에 닿는 순간 거인의 망치가 지면을 때려 놓은 것처럼 대지가 뒤흔들렸다.

진앙(震央)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퍼져 나가는 지면의 너울과 함께 충격파가 폭풍처럼 휘몰아쳐 나갔다.

“크아악!”

“으아악!”

충격파에 실린 기운에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내력이 진탕된 무인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멈췄다.

간양을 향해 진격하던 마천의 무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멈추고 소청을 바라보았다.

휘이이잉.

충격파의 뒤에 찾아온 바람이 참혹한 광경을 드러내었다.

잘리고 짓눌려 그 시신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한 마천의 무인들이 반경 삼십여 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중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소청의 차가운 시선이 마천의 무인들을 향했다.

꿀꺽.

단 한 번의 공격에 압도당해 버린 무인들이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뭣들 하는 게야! 고작 한 놈이다! 놈을 짓밟고 계속해서 진격해라!”

전충사의 선두를 이끌던 거혈의 신경질적인 외침에 수십의 무인이 칼날을 곧추세우고 소청을 향해 쏘아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던 소청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지어졌다.

파악!

그 끝을 양손으로 잡아 비틀자 창극이 지면을 파헤쳤다.

소청이 엄청난 속도로 창대를 당겨 올렸다.

뽑혀 올라왔다.

휘둘렀다는 표현은 너무나 가볍게 느껴졌다.

마치 거목이 통째로 뽑혀 올라온 것처럼 창대가 거대한 힘을 머금고 원을 그렸다.

가가가각!

대기를 잘라 내며 휘둘러진 창극을 따라 응축된 기운이 채찍처럼 늘어졌다.

후웅!

그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것처럼 싸늘한 느낌이었다.

검과 도, 창…….

소청을 향해 뻗어 내었던 병장기들이 부딪힘이 강렬한 불꽃을 만들어 내며 잘려 나갔다.

푸하학.

소청을 향해 달려들었던 무인들이 모조리 잘려 나가고 솟구친 피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크윽!”

수하들과 함께 공격했던 거혈이 잘려 나간 자신의 복부를 움켜쥔 채 무릎을 꿇었다.

처참했다.

그저 낫으로 풀을 베어 버린 것처럼 소청의 주위에 원형의 공간이 생겼고 그 안에 시신들이 가득했다.

스윽.

소청이 한 걸음을 내디뎌 꿇어앉은 거혈의 옆으로 다가갔다.

푸욱!

양손을 잡아 찍어 누른 창극이 거혈의 목줄기를 거칠게 꿰뚫었다가 빠져나왔다.

분수처럼 솟구쳤다가 잘게 부서져 내리는 피의 비가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잔인하고 압도적인 무위…….

“나는…….”

고요함 속으로 내리는 피의 비로 혈신이 되어 버린 소청의 나지막한 목소리 파고든다.

“진가의 패월, 진소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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