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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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23화
122화. 개미의 무덤
소청과 제갈상아를 선두로 한 별동대는 선잠에서 깨자마자 한혈마를 타고 접전 지역을 향해 달렸다.
촌각을 다투는 순간이니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의총진(蟻塚陳)?”
말 위에 올라 있던 소청이 묻자 제갈상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명 개미 무덤.
진법에 대해서라면 제갈휘문과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다 생각했던 소청조차도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그걸로 적들을 막을 수 있단 말이야? 수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적을 섬멸할 수는 없지만 반나절의 시간을 버는 것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
무슨 자신감일까?
제갈상아는 확신에 찬 얼굴을 보니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자세한 설명은 신승 어른을 만나면 해야겠지만 핵심이 뭐지? 그 의총진이란 것.”
“저들을 개미굴로 끌어들이는 겁니다.”
“개미굴?”
“예. 개미굴은 입구는 하나지만 안은 불규칙적인 통로로 이어져 미로처럼 변합니다. 개미들을 따라가다 보면 언제나 막다른 곳에 도달할 수밖에 없죠.”
제갈상아는 의총진에 대해서 소청에게 설명했다.
그녀는 지금 성도에서 간양까지 오는 길에 거대한 개미굴을 만들 생각이었다.
“적을 찢어 놓겠다는 말이군.”
“맞습니다. 분명 전투를 시작하고 우리가 도망치면 뒤따르는 적은 분명히 장사진을 이루게 될 겁니다.”
무공의 고하가 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들에게 계속된 승리를 안겨 주며 협로로 유인하고 허리를 잘라 내야 합니다.”
“…….”
“계속해서 자르다 보면 적은 갈가리 찢기게 될 것이고, 그러면 적들을 서로 다른 곳으로 유인해 섬멸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부딪치기를 반복하며 적을 유인해야 한다는 말인데……. 피해가 상당하겠군.”
“피해를 생각하며 전술을 세우지 않습니다.”
“…….”
잔인하다.
무인의 잔인함은 상대를 죽이는 것에 있다.
하지만 군사의 잔인함은 전술을 성공시키기 위해 아군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이다.
그녀는 제갈휘문과 달랐다.
제갈휘문은 모두를 살리기 위해 전술을 계획하지만 그녀는 전쟁을 이기기 위해 전술을 만들고 있었다.
“별동대를 두 패로 나누어야 합니다.”
“두 패?”
“예. 하나는 퇴각을 하며 적을 유인하고 다른 하나는 매복을 해서 적의 허리를 자릅니다. 이를 반복해서 적을 계속해서 끌어들이다 보면 적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뉠 겁니다.”
“그리되면 아군의 수도 갈수록 나누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예. 처음에는 두 패지만 다시 셋으로 나뉘고…….”
“혹여 적을 유인하는 이들이 모두 죽게 되면 어찌할 것인가?”
소청의 말에 제갈상아가 아랫입술을 거칠게 씹었다.
“반나절은…… 버틸 겁니다.”
“차라리 나와 별동대를 중심으로 전면전을 하면…….”
“안 됩니다. 진 공자께서는 따로 해 줄 일이 있습니다.”
“해 줄 일이라고?”
소청의 물음에 제갈상아가 구자겸을 떠올렸다.
소름 끼치도록 강한 그.
전략과 전술 따위는 그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적의 수좌를 빼내 주십시오.”
“구자겸…….”
“예. 이 공자와 옥명자를…….”
“됐어. 혼자 한다.”
“…….”
무어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제갈상아는 그냥 믿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좋아. 하면 어디까지 유인할 생각이지?”
“간양, 간양을 내어 줄 생각입니다.”
“뭐?”
하마터면 말고삐를 잡아당길 뻔했다.
“간양을?”
“이미 진 가주님께 허락을 받았습니다. 지금쯤이면 간양의 모든 사람들이 피난길에 올랐을 겁니다.”
“…….”
모든 곳이 쑥대밭이 될 것이었다.
간양은 물론 진가의 어느 곳도 성하지 못하리라.
그런데 아버님이 흔쾌히 내주었다고?
“너 지금 그게 무슨 소린지 알아?”
소청이 서늘한 눈으로 노려보자 제갈상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숙부님께 들었습니다. 진 공자가 가문을 어찌 생각하시는지. 하지만 인명 피해는 없을 겁니다.”
“…….”
으드득.
이가 갈렸다.
“아주 예전에 제갈휘문에게 말한 적이 있다. 간양에 사는 개 한 마리라도 죽으면…….”
“목숨을 걸죠.”
제갈상아가 단언하듯이 말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고심하던 소청이 말채찍을 때렸다.
“네 목숨 하나 가지곤 안 될 거야.”
나지막한 목소리가 말발굽 소리에 묻힐 만도 하건만 소청의 목소리가 파고들듯이 선명했다.
섬뜩함.
절로 침이 삼켜지게 만드는 두려움이 제갈상아의 가슴을 짓눌러 왔다.
“간양이 저들의 무덤이 될 것입니다.”
* * *
두두두두…….
대지가 시커멓게 물들었다.
마천의 진격은 행렬이 아닌 파도와 같이 몰아닥쳤다.
산과 들.
그 어느 곳도 물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수백 장이나 떨어져 있음에도 그들이 뿜어내는 마기가 바람을 타고 선명하게 느껴져 왔다.
제갈상아에 의해 무인들이 재편성되고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을 일일이 전해 들었지만, 정사의 무인들은 마천의 거대한 진격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지, 진짜 저들을 상대하겠단 말이야?”
단체로 미친 게 아닐까?
되지도 않을 싸움이다. 필시 목숨을 잃을 것이 틀림없었다.
황보인이 잘게 떨리는 손을 바라보았다.
“저, 정말 가능하다 생각하는 거요?”
“싸우기도 전에 겁을 집어먹은 거냐?”
소청이 무심한 표정으로 적을 바라보았다.
“난 말이야.”
“……”
“언제나 그랬지.”
적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소청의 말이 모두의 가슴을 파고든다.
“이만? 흥,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키는 곳도 있었다.”
“그보다 많은…….”
“그래. 훨씬 더…….”
……더 많은 사람들이 지키는 곳을 뚫고 훔쳐 내었었지.
“적의 숫자에 압도당하지 마라. 어차피 고수는 몇몇뿐이다.”
“…….”
소청의 시선이 소강을 지나 옥명자, 황보인, 그리고 별동대와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쳐 갔다.
“너희들은 강해.”
“…….”
“하지만 힘든 싸움이 될 거다.”
“…….”
“이길 수 없는 자가 있으면 협공을 해라. 둘이 안 되면 셋이 덤비고, 셋도 힘들다면 넷이 덤벼.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은 전쟁이다. 적을 죽이고 중원을 지켜 내는 것. 그것만 생각해라. 내가 막지 않으면 내 부모 형제가 죽는다.”
소청의 말이 묘한 울림을 가지고 전달되었다.
“그럼, 맡겨 두지…….”
“…….”
소청은 황보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사이 그들을 발견한 마천의 진격 속도가 오르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던 그들의 진형이 송곳처럼 변해 길게 늘어서기 시작했다.
“자, 그럼 각자의 위치로 가라!”
소청의 말에 소강이 옥명자를 제외한 별동대와 칠 할에 달하는 무인들을 데리고 제갈상아가 매복지로 찍은 장릉협으로 향했다.
“오는군.”
신승이 불장을 움켜쥐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자네도 무운을 빌겠네.”
신승과 굳은 인사를 나눈 소청은 제갈상아와 함께 물러났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신승이 고개를 돌렸다.
물밀 듯이 밀려오는 적과의 집단전은 그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참고 있었지만 심장이 두근거리고 잔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신승,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옥명자가 자하검을 움켜쥐고 신승의 앞으로 나섰다.
그의 모습에 신승이 두려움을 느낀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허, 내 이 나이를 먹었거늘 어찌 목숨 따위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가?’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소림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마음이 편해지자 그의 몸에서 선명한 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마음에 공명한 듯이 백인회의 무인들이 저마다 두려움을 떨치고 옥명자의 앞으로 나섰다.
“제, 제가…….”
옥명자가 앞으로 나서자 멸절사태가 고개를 저으며 그를 향해 웃었다.
“아직까지는 우리의 시대라네. 벌써 자네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싶지 않네.”
“옳네. 저들에게 중원의 늙은 생강이 얼마나 매운지 보여 주세.”
“예! 신승!”
신승의 말에 선두에 선 백인회의 무인들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 공격하라! 저들에게 중원의 무서움을 알게 해 줘라!”
신승이 금빛 광채와 함께 몸을 날리자 백인회의 무인들이 곧장 따라붙었다.
두 개의 송곳이 엄청난 기세로 맞부딪쳤다.
콰아아앙!
금빛 광채가 터져 나가고 열을 이루듯이 부딪침이 일어났다.
신승과 백인회는 순식간에 적의 선두를 무너뜨리고 그들의 틈새를 바람처럼 파고들었다.
“으하합!”
신승의 무위는 실로 가공했다.
휘두른 불장에 서너 명의 머리가 터져 나갔고 거력의 힘을 담은 금강장(金剛掌)은 두어 명의 심장을 통째로 터트려 버렸다.
쐐애액!
아미의 창이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잔인하게 적을 꿰뚫었다.
정천의 백대 고수들이 저마다의 절기를 혼신의 힘을 다해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이미 수십 개의 검을 몸에 박고 쓰러졌다.
“깊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순식간에 가사가 붉은 핏빛으로 물들어 버린 신승의 외침이 전장을 울렸다.
신승과 백인회의 노력으로 언뜻 승기를 잡는 듯 보였으나 뒤이어 따라온 마천의 무사들이 좌우로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이야압!”
신승과 백인회의 저력이 놀라웠듯이 옥명자도 그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왼쪽에서 몰려든 적들이 붉은 매화의 꽃잎과 함께 바닥에 쓰려졌다.
“물러나야 합니다!”
몰려드는 적들로 인해 피해가 늘어나고 있었다.
옥명자의 외침에 신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허헝!
가슴을 부풀렸다 내지른 신승의 입을 통해 소림의 사자후가 전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강렬한 음공에 전방에 있던 이들이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순식간에 그의 주위가 휑하니 변해 버렸다.
“물러나라! 백인회는 후위를 지키며 퇴각한다!”
신승의 외침과 함께 정사의 무인들이 썰물처럼 전장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적들이 도망친다! 놓치지 말라!”
“적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정사의 무인들이 일거에 빠져나가자 승기를 잡았다 생각한 마천의 무인들이 꼬리를 뒤쫓았다.
하지만 퇴각이 빨라서는 안 되었다.
저들이 꼬리를 잡을 수 있도록 적당하게 거리를 유지해야만 했다.
“온다.”
황보인의 말에 소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사의 무인들이 도망치고 마천의 무인들이 그들을 뒤쫓아 갔다.
제갈상아가 정한 그 첫 번째 경로 장릉협의 절벽 면에 몸을 숨긴 소강은 퇴각하는 마천의 무인들이 지나갈 때를 기다렸다.
길게 이어지는 장사진의 끝자락이 매복한 지점을 넘어서는 순간.
콰아아앙!
소강이 천뢰충파의 기운으로 절벽면을 터트렸다.
우르르르, 쾅쾅!
“크아악!”
절벽의 한쪽 면이 무너지며 돌 더미가 마천의 무인들을 향해 덮쳤다.
“지금이다! 적의 측면을 공격해라!”
소강의 외침과 함께 황보인을 비롯한 사도련의 철혈기들이 마천의 허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런 젠장! 아무리 생각해도 수가 너무 많단 말이야!”
비록 소청에게 개 맞듯이 맞았던 황보인이었지만 주먹에 실린 권강은 가공할 기세를 품고 있었다.
산을 허문다는 붕산격(崩山擊)이 수십 명의 적들을 짓누르고 파도를 쪼갠다는 벽파격(劈波擊)에 머리가 터트려졌다.
광포하게 날뛰며 전장을 휘저어 대는 소강과 황보인, 그리고 사도련의 철혈기는 당황한 적들을 유린해 나갔다.
“뭣들 하는 게냐! 서둘러 적을 짓밟아라!”
열화사의 문성준이 노기를 참지 못하고 소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쩌엉!
허공에서 맞부딪친 두 사람의 공격이 폭발하듯이 터져 올랐다.
“크윽!”
밀려난 문성준을 바라보던 소강의 시선이 그 너머를 향했다.
또다시 수많은 이들이 몰아닥치고 있었다.
“황보 형! 곡 대협! 물러납니다!”
소강의 외침에 철혈기의 수장 곡상이 고개를 끄덕이고 서둘러 움직였다.
“이 개자식들이 감히! 도망을 쳐?”
선두와의 격차만 벌려 놓고 물러나는 그들의 모습에 문성준이 노기를 드러내었다.
“놈들이 본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
문성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절벽이 무너져서 앞으로 나아가는 협곡을 가려 버렸다.
적지 않은 수가 먼저 간 적을 뒤쫓았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방향을 틀어라! 저놈들을 뒤쫓는다!”
“알겠습니다!”
마천의 선두가 소강을 뒤쫓으며 방향을 꺾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선두가 주춤하게 되자 후열에 있던 진격이 정체되었고, 마천의 무인들이 두 패로 나누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