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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49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7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49화

148화. 회색빛 눈동자

 

 

 

 

소청은 음마의 머리칼을 다시 잡아 올리며 소름 끼치도록 잔인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넌…… 절대 곱게 죽지 못해.”

“…….”

음마는 핏물이 목으로 차올라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온몸의 뼈란 뼈는 모조리 으깨진 듯했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부러진 뼈가 폐를 찔러 왔다.

죽음.

모든 이에게 동일한 두려움이었다.

무림을 살아가는 이들은 항상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었다.

칼을 드는 순간 언제고 찾아올 죽음을 마음에 담아야 했다.

하지만 이룬 것이 많은 이들은 죽음의 그 순간에 찾아오는 생의 의지를 쉽게 놓지 못했다.

그리고 그 어떤 이도 죽음의 순간이 비참하기를 원치 않았다.

살아온 삶이 살인자였든 아니면 패륜을 저질러 온 자였든…….

죽고 싶지 않아……. 죽더라도 네놈만큼은 죽이…….

푹!

“……!”

잔인함을 머금은 날 세워진 손이 그녀의 단전을 꿰뚫었다.

“끄으으…….”

“크크크, 너희들은 항상 죽을 때만 되면 역천 어쩌고를 쓰지. 몇 번이나 경험하고도 그냥 둘 정도로 바보 같냐?”

소청은 음마를 비웃으며 깊숙하게 박힌 손을 비틀어 버렸다.

“끄아아악! 사, 살려 줘…….”

단전이 파훼되자 음마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 대었다.

살려 달라고?

그녀의 중얼거림에 소청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

다르다.

이제까지 그 어떤 세주들에게서도 보지 못한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뭐지? 마천의 세주들이 이렇게 쉬웠나?’

음마는 천뢰충파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애초에 그녀를 노린 공격이 아니었기에 정통으로 맞지 않았다.

그리고 이전에 상대했던 세주들의 죽음과는 무언가 달랐다.

그들이 죽음의 순간에서 사용하는 역천의 진언.

숙주의 몸에 기생하는 마기는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숙주가 의식을 잃었을 때 마기가 스스로 움직여 그들의 몸을 잠식해 들어갔다.

생기를 모조리 잡아먹고 마기가 증폭되어야 했다.

그것을 흩어 버리기 위해 단전을 꿰뚫었다. 그런데 증폭되는 마기의 느낌이 없었다.

‘어찌 된 일이지?’

소청이 눈을 찡그리고 자신의 손에 잡힌 음마를 바라보았다.

푸쉬쉬…….

마치 공에서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음마가 이루었던 모든 것이 빠져나갔다.

채양보음을 통해 억지로 이루었기에 소실의 고통은 다른 어떤 이들보다 더욱 심했다.

그리고.

윤기 나던 피부가 메마른 땅처럼 갈라지고 검버섯이 가득하게 피어올랐다.

“끄으으…….”

탄탄했던 어깨가 힘없이 늘어뜨려진 음마는 수십 년 세월을 한 번에 건너 버린 것처럼 노파의 모습으로 변했다.

“뭐, 기분 탓이겠지. 모두가 역천의 진언을 익힌 건 아닐지도…….”

모든 힘을 잃어버린 그녀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소청이 음마를 움켜쥐고 전장 사이를 걸어 나왔다.

스윽, 스으윽…….

바닥에 늘어뜨려진 음마의 몸이 황보세가까지 이어진 길에 긴 흔적을 남겼다.

털썩.

소청은 멸절사태 앞에 음마를 던져 놓았다.

황보세가의 무인들은 막 전투를 끝내고 돌아온 소청의 몸에서 가라앉지 않은 투기에 숨 막힐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절대적인 힘에 의한 압도.

감히 아무나에게 표현되지 못하는 단어가 그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멸절사태가 떨리는 눈동자로 소청을 바라보았다.

“마천의 세주들 중 하나입니다. 음마 갈옥향. 아미의 참변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

“마지막 결정은…… 장문인께서 하시기 바랍니다.”

소청은 멸절사태를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가 자신들에게 원한을 갚을 기회를 주는 것이다.

소청이 아니었다면 아미의 제자들을 죽인 흉수를 찾지도 못했을 것이고 찾았다고 한들 자신들의 실력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고맙네…….”

멸절사태의 말에 소청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진가가 아미에 수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가족 이외에 제일 먼저 손을 잡아 준 이가 승혜 소저였습니다.”

소청의 말에 승혜는 어린 시절 당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저 옳다고 믿었던 일을 행했을 뿐인데 그때의 첫 만남이 이리도 소중하게 다가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당가가 공격해 왔을 때 진가를 막아 주셨고, 소강이 저들에게 고초를 당하고 있을 때 승혜 소저가 나서서 항변해 주었다 들었습니다.”

“…….”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었기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무덤덤했다.

가식적이지도 꾸미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담긴 진심을 어찌 모르겠는가?

“음마는 사내의 정혈을 빨아 제 젊음을 유지해 온 악적입니다. 삶의 이치를 거스르기 위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해한 자입니다.”

이어진 소청의 말뜻 또한 모르지 않았다.

불가의 제자인 그녀가 복수에 머뭇거리지 않게 하기 위해 죄책감을 씻어 주려는 것이다.

“그럼…….”

다시 한 번 인사를 한 소청이 황보세가의 무인들에게 부축되어 옮겨지는 황보인과 악이군에게 다가갔다.

“하, 이놈들을 어찌해야 하나?”

허리께에 팔을 올리고 둘을 째려보는 뒷모습은 좀 전의 그 사람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만큼 가벼웠다.

어찌 사람이 이렇게 다변적일 수가 있단 말인가? 마치 시전 파락호와 다를 바 없는 느낌이었다.

짝, 짝.

“야, 일어나.”

“이, 이보시오. 그건 좀…….”

이미 소청의 무위를 보았기 때문일까?

황보숭과 황보세가의 장로들이 차마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난색을 표했다.

따지자면 난적으로부터 황보가를 구한 은인이 아닌가?

“초사, 가서 찬물 좀 가져와.”

“예!”

그런 사람이었다.

모든 게 끝나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거칠고 막무가내이지만 자신감 넘치고 따뜻한…….

멸절사태의 눈이 소청에게서 음마를 향해 돌아왔다.

눈앞의 노파.

어떻게든 살아 보려 온몸이 피로 물들었음에도 벌레처럼 땅바닥을 기고 있는 흉수의 모습.

멸절사태의 눈에서 불길이 토해졌다.

분노에 몸이 떨리고 호흡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칠어졌다.

악착같이 꿈틀거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언제나 올곧고 딱딱하기만 했던 보은신니의 모습이 그려졌다.

제 잘못이라며 울던 금정의 모습이 가슴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불가에 귀의한 몸으로 처참하게 윤간을 당하며 죽어 간 제자들의 생전 모습이 아스라하게 그려졌다.

밝고 예뻤던 아이들이었다.

무인이기 이전에 불가에 귀의하여 아미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했던…….

푸욱!

승혜의 창이 그녀의 등 어림에 박혔다.

“끄으으으…….”

박혀 든 창대가 비틀어지자 살과 뼈가 휘저어지는 느낌에 음마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승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튀어 오르는 피에 승복이 붉게 물들어 갔지만 승혜는 멈추지 않았다.

평소의 온화함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마치 비사문천(毘沙門天)을 따르는 악귀, 나찰(羅刹)처럼 잔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표정하지만 차갑게 천천히 고통을 주며 음마를 죽이고 있었다.

하늘을 거슬러 악행을 일삼는 저들에게는 불법의 교화보다는 더욱 잔인하게 지옥의 형벌을 가하는 야차가 되고 나찰이 되어야 했다.

승혜의 분노는 음마의 시신이 갈가리 찢겨 나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만하거라.”

“…….”

멸절사태가 승혜의 모진 손을 잡았다.

“…….”

승혜의 눈동자에서 잔인함이 떠나지 않았다.

“되었다. 이미 죽었느니라…….”

“…….”

자신을 안은 스승의 손길에 승혜는 한참이나 멍한 표정을 짓다가 창대를 떨어뜨렸다.

쩔그렁.

바닥에 떨어진 창대의 쇳소리가 연무장을 가득하게 울렸다.

황보가의 소란은 끝이 났다.

중원을 기습해 온 음마와 환희요락궁의 습격대 중 목숨을 부지한 자는 없었다.

아미와 같은 참변을 당할 뻔했던 황보가의 무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찾아왔다.

그리고.

부엉, 부엉.

소란에 놀란 밤 부엉이 한 마리가 승전을 축하하듯이 울음소리를 내었다.

회색빛 눈으로…….

 

* * *

 

눈동자를 가득 채운 동공이 동그랗게 확장되었다가 다시 줄어들었다.

여인.

고운 속눈썹에 고혹적인 미모를 가진 여인이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회색빛 눈동자.

“크으…….”

어느 순간 여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고 신음 소리를 내며 제 눈을 가렸다.

그리고.

“진소청…….”

분노에 가득 찬 그녀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어찌 되었는가?”

그녀의 뒤로 다가온 붉은 가사의 승려가 물었다.

“모두 죽었소.”

신경질적으로 일어난 여인이 고운 눈을 씰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혈승의 말대로요. 진소청 그 개자식이 황보가를 도우러 왔소.”

“홀홀, 이제 노납의 말을 믿겠는가?”

“…….”

붉은 가사를 입은 노승은 다름 아닌 혈승이었다.

그리고 좌정을 하고 앉아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던 여인은 황보세가를 습격했던 음마 갈옥향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상황이 혈승의 말대로 펼쳐졌다.

그녀는 음마와 닮은 여인이 아닌 음마 갈옥향 본인이었다.

중원을 기습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을 때 혈승이 그녀에게 은밀하게 찾아왔다.

대체자를 만들라 했다.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의 똑같은 대체자라야만 한다 했다.

음마는 반신반의했지만 이미 마종이 그에게 전권을 주었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음마는 결국 자신의 애제자이자 다음 대의 환희요락궁의 궁주가 되어야 하는 요희(妖喜) 한수연에게 섭혼술을 걸었다.

환희요락궁의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해야 했다. 또한 한수연조차도 스스로가 음마라고 생각해야 했다.

그렇기에 음마는 내공의 삼 할을 요희에게 담아 환혼대법(換魂大法)을 펼치고 그들로 하여금 아미를 공격하고 황보가로 진격하게 만들었다.

“그래, 만수통령술(萬獸通靈術)로 보니 어떻던가?”

“…….”

섭혼술은 사람에게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마천의 세주 중 하나인 수마(獸魔) 교악처럼 모든 짐승을 다룰 수는 없었지만 한두 마리 정도는 충분히 섭혼이 가능했다.

음마는 섭혼술을 펼친 부엉이를 이용해 계속해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했소. 쉽지 않은 상대임이 틀림없소.”

음마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홀홀, 그렇지. 역천대공을 그리 만든 자가 아니냐.”

혈승이 얼굴에 주름을 늘리며 피식 웃었다.

“…….”

혈승의 계략.

습격이되 습격이 아닌…….

그는 지켜보고자 했다.

애초에 조호이산의 계책 따위는 미끼에 불과했던 것이다.

적을 끌어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믿게끔 만들었다.

그가 원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중원의 움직임.

아미를 습격할 때 사용했던 전초의 무인을 사용한 것은 모두의 시선을 확실하게 집중시키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경계를 지키고 있던 중원 무림의 시선이 모조리 음마의 대체자에게 집중되었다.

음마는 자신의 대체자에게 다음 목표는 황보세가라 전했다.

혈승의 생각대로 제갈휘문은 서천맹의 동요를 막았고 무황은 무한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혈승은 그 모든 움직임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정보 조직과 제갈휘문의 움직임.

그런 와중에 생각지도 못했던 진소청이 나타났다.

무황 이외에 중원에서 그들이 유일하게 경계해야 할 존재가 된 그가 황보가에 나타났다.

움직일 것이라고는 생각했으나 그리 빨리 황보가에 나타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이제 어쩌지?”

“홀홀, 저들이 어찌 움직일 줄 알았으니 계속해서 시선을 끌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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