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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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48화
147화. 아직 멀었다
악이군과 황보인이 바닥에 처박혀 축 하고 늘어졌다.
“……!”
아무리 섭혼술에 빠져 있다고는 하나 고작 단 한 방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낮지 않은 무위였다.
두 사람을 쓰러뜨린 소청은 요기를 줄기줄기 뽑아 올리는 음마를 보며 말없이 창을 뽑아 올렸다.
“쓸데없는 잡기술 따위 선보일 생각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라, 음마.”
“뭐?”
취리릭!
소청이 창대를 뽑아 휘두르자 창극에 묻어 있던 흙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갑자기 소청의 몸에서 막대한 투기가 끓어올라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드드드드.
대기가 떨리는 것도 모자라 황보세가의 바닥에 깔려 있던 청석들이 금세라도 솟구쳐 오를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 어디서 이런 놈이…….’
진득하게 압박해 오는 소청의 기운에 음마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물러났다.
“……!”
소청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 음마는 목이 잘리는 듯한 느낌에 재빨리 십여 장을 물러났다.
착각이었을까?
소청은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았다.
‘서, 설마 살기만으로…….’
소름이 돋아 올랐다.
무려 십여 장이나 떨어져 있음에도 그의 살기가 선명하게 느껴져 왔다.
그의 말처럼 다가서면 온몸이 찢겨 나갈 것 같았다.
그리고 문득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 설마 내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인가? 고작 저런 애송이에게…….’
순간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중원의 무인들 중 창을 쓰고 이만한 살기를 뿌리고 자신에게 두려움을 줄 만한 존재라면?
“지, 진소청?”
파앙!
순간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주먹만 하던 소청의 얼굴이 엄청나게 거대해졌다.
단번에 십여 장의 공간을 넘어온 그가 창대를 휘둘러 왔다.
“헉!”
허리를 꺾는 순간 배 위로 창대가 스치고 지나가며 쓰라림을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공격이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쩌억!
“큭!”
지나갔던 창대가 방향을 바꾸어 바닥을 딛고 섰던 그녀의 발목을 때렸다.
시큰한 충격과 함께 떠 버린 그녀의 몸 위로 창대가 떨어졌다.
콰아아앙!
창대에 두들겨 맞은 대지가 폭발하듯이 터져 올랐다.
부끄러움도 잊은 채 나려타곤으로 재빨리 몸을 굴려 공격을 피한 음마가 일어나려는 순간.
“크윽!”
욱신거리는 통증에 주저앉고 말았다.
새빨갛게 부어오른 발목…….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런데 이어지는 공격이 없었다.
소청이 창대를 어깨에 올리고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느긋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
조롱, 무시…….
한 번도 당해 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음마의 눈에 불길이 차올랐다.
발목의 상처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막대한 요기를 머금은 음마의 신형이 소청을 향해 날아갔다.
황보인을 상대할 때와는 달리 음마의 일장에서 엄청난 기운이 뻗어 나왔다.
하지만.
수십 초의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옷깃 하나 건드릴 수가 없었다.
가가가각!
날카롭게 세워진 손톱이 소청의 얼굴을 노리는 순간 창대가 그녀의 손을 제쳐 내고 짧게 끊어 때렸다.
쫙!
“캭!”
창날의 넓은 면이 그녀의 뺨을 거세게 후려쳤다. 허공에서 얻어맞은 음마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볼이 창날 모양으로 시뻘겋게 부풀어 오르고 말도 못 할 정도로 쓰라렸다.
수치스럽게 당해 버린 음마의 눈에 짙은 독기가 차올랐다.
“크학! 이런 개자식!”
분노가 끓어오르자 그녀의 몸에서 더욱 강한 요기가 피어오르고 눈동자가 피를 쏟아 낼 정도로 붉게 변했다.
섭령탈혼무는 그녀를 마천의 세주로 앉힐 만큼 뛰어난 무공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최고의 기술은 무공이 아닌 눈(眼)이었다.
마안, 혈금쇄(血擒鎖).
섭혼의 눈이 아닌 사로잡는 눈.
“감히 나에게 이런 수치를…….”
“…….”
음마의 붉은 눈이 소청을 향했다.
일순간.
‘어?’
멈췄다.
쩍!
“큭!”
음마는 일순간의 멈춤을 놓치지 않고 소청의 옆구리를 가격해 왔다.
이어지는 그녀의 춤사위가 펼쳐졌다. 살기를 머금은 손끝이 소청의 전신 요혈을 노려 왔다.
빠가가가강!
창대를 휘둘러 그녀의 손을 막아 낸 소청이 그녀를 향해 다시 공격을 하려는 순간 또다시 눈이 마주쳤다.
쩍!
소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갑자기 사라진 음마의 발이 그의 명치 깊숙이 박혔다.
“크윽…….”
미끄러지듯이 밀려난 소청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음마를 바라보았다.
“호호호, 자신만만하던 표정은 어디로 갔니, 아이야?”
“…….”
저 눈.
붉은 눈이 빛나는 순간 이상하게도…….
“동술(動術)? 하, 결국엔 잡술이군.”
소청이 복부에 묻은 타격의 흔적을 털고 일어났다.
“후우, 좋아. 그게 뭐든 간에 아무 상관 없어.”
소청이 창대를 휘돌려 잡았다.
음마는 소청을 비웃었다.
혈금쇄라 불리는 기술은 섭혼술이라기보다는 최면에 가까웠다.
일시적으로 모든 내공을 쏟아 적에게 순간적으로 최면을 건다.
당하는 이는 순간적으로 멈춘다 생각하겠지만 그저 최면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수가 중첩되면 최면에 빠지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네놈은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음마가 열 손가락을 날카롭게 세우며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청이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소청의 몸에서 뻗어 나오던 투기와 기세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
눈을?
무인에게 있어서 눈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맹인으로서 뛰어난 경지에 이른 무인도 있지만 그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눈을 뜨고 있던 자가 눈을 감고 느낌만으로 싸울 수는 없는 법이었다.
“멍청한 놈, 고작 생각해 낸 것이 그따위 편법이더냐?”
“…….”
하지만 소청은 그녀의 말에 조금도 휘둘리지 않았다.
눈을 감고 싸우는 것?
밥 먹는 것만큼 익숙했다.
소청이 가장 자신 있는 것은 창술도 내공도 아니었다.
은신(隱身).
상대에게서 자신을 감추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 은신을 익히기 위해 해야 했던 감각의 수련.
인간의 오감을 넘어선 초감각.
바람이 부딪히는 소리를 통해 사물을 인지하고 공기의 흐름이 변하는 모습을 느껴 적의 형체를 그리는 것 정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련해 온 것이었다.
“놈, 죽어라!”
측면으로 파고든 음마의 손톱이 날카롭게 휘어져 들어왔다.
슉!
반보를 물리며 상체를 비트는 사이로 날카로운 예기가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쫙, 쫘좍!
음마의 손톱이 피하는 소청의 주위의 대기를 갈가리 찢어 내었다.
음마의 손가락에서 뿌려진 예기로 인해 기운을 풀어 버린 소청의 몸에 상처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치명상은 없었다.
공격을 피할수록 상처는 늘어 갔지만 그녀의 모습이 감은 눈에 그려졌다.
“후우…….”
소청은 가볍게 숨을 몰아 내쉬며 집중을 흩었다. 집중을 흩어 버리자 감각은 더욱 예리해졌다.
“이, 이런…….”
소청이 자신의 모든 공격을 피해 버리자 음마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도…….
그리고 공격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짧게 내질러진 창대가 귓가를 스쳤다.
핏!
귓불이 찢어지며 따끔함이 느껴졌다.
다음은 어깨.
옷자락이 길게 찢어져 나갔다.
그리고.
쩌엉!
뒤로 다가선 음마의 복부에 창의 의 뒷부분 파고들었다.
“꺽!”
숨 막힐 듯한 통증에 음마가 비틀거리며 물러나 꺽꺽거렸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자신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눈을 감고도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후웅!
횡으로 휘둘러지는 창대에 음마가 훌쩍 물러났다.
순간 눈을 감은 소청에게 음마의 모습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초감각의 단점이었다.
거리가 멀어지면 느낄 수가 없었다.
눈을 뜬 소청은 음마의 신형을 찾았다.
십 장여의 거리.
환희요락궁의 무인들이 있는 곳까지 물러난 음마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거리는 소청의 초감각에 대한 단점이기도 했지만 음마의 혈금쇄에도 크나큰 단점이었다.
거리가 멀어지면 사용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최강의 패가 깨어져 버린 것이다.
“어째서냐? 어째서 네놈이 황보가를 지키는 거지?”
“황보가? 뭔가 착각하는 모양이네.”
“…….”
“황보가 따윈 어찌 되어도 상관없었어.”
“…….”
“내가 아미에 빚이 많거든. 근데 너희들이 아미파를 건드렸잖아.”
“그, 그런…….”
소청의 발이 내디뎌질 때마다 음마가 점점 뒷걸음질 쳤다.
“왜 그래? 자신이 없어?”
소청이 비릿하게 웃자 음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니면 더 보여 줄 게 없는 거야?”
꽈아악.
소청이 창대를 움켜쥐었다.
초감각을 끌어 올리며 가라앉혔던 살기와 투기가 다시금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지면을 박차며 음마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막아! 막아라! 놈을 죽여! 유혼진(誘魂陳)을 펼쳐라!”
음마가 괴성을 질러 대었고 환희요락궁의 요녀들이 날개처럼 펼쳐져 소청의 주위에 원을 그렸다.
차아악!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한 요녀들의 화려한 군무가 펼쳐졌다.
그리고.
우우우웅!
그 속에 갇혔던 소청의 몸에서 진한 울림이 피어 나왔다.
단중혈의 화기가 세차게 내려와 단전에 모였다.
소청의 전신이 푸른 불꽃에 휩싸였다.
진 천뢰충파, 청염!
창극이 진의 중심에 깊숙이 박혔다.
꾸우우…….
지축이 뒤흔들리며.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진의 전체를 집어삼켰다.
화아악!
멀리서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푸른 불꽃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거센 폭풍이 휘몰아쳐 폭발의 주위를 모조리 날려 버렸다.
황보세가 인근이 무언가에 뜯어 먹힌 것처럼 황량하게 변해 버렸다.
휘이이…….
폭발이 만들어 낸 먼지는 진공을 향해 빨려 드는 바람에 사라졌다.
천뢰충파의 기운을 이기지 못한 환희요락궁의 무인들의 시신은 형체도 남기지 못했다.
군데군데 떨어진 팔다리와 육편만이 그들이 그곳에 있었음을 알게 했다.
그리고.
“끄으으으…….”
피투성이로 변해 버린 음마가 신음 소리를 내며 바닥을 기고 있었다.
마치 도망이라도 치려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땅을 헤집었다.
“…….”
그녀의 곁으로 다가간 소청은 음마의 머리칼을 잡아 올렸다.
“끄으으…….”
머리 가죽이 뜯겨 나가는 고통에 음마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터트려져 버린 눈에서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로? 이제 시작이야.”
소청의 눈이 반짝이는 순간.
쩍! 쩌억!
주먹이 음마의 몸을 마구잡이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뼈 부러지는 소리에 지켜보는 이들의 몸에 소름이 돋아 오르고 오히려 맞고 있는 음마가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철퍼덕.
바닥에 내팽개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소청이 창대를 움켜쥐었다.
빠악! 빠바박! 퍽퍽퍽!
소청의 창대가 땅바닥에 뻗은 음마의 몸을 곤죽이 되도록 다져 놓았다.
“끄으으…….”
음마의 신음 소리가 곧 죽을 것처럼 미약해졌다.
“후우…….”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청이 길게 숨을 내쉬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끝난 것 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