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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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47화
146화. 도와 달라고 할까?
붕산격, 배천격, 벽파격에 이어 다시 붕산격의 초식이 음마를 향해 쉬지 않고 날아갔다.
쩌엉!
권과 장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막대한 기의 충격파를 만들어 내었다.
둘의 싸움이 펼쳐지자 충격파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환희요락궁과 멸절사태 등이 양쪽으로 물러나 대치했다.
콰아앙!
‘크윽!’
황보인이 진한 충격을 느끼며 서너 걸음이나 밀려났다.
강했다.
마천의 세주라는 음마는 엄청난 무위를 가지고 있었다.
한 단계를 뛰어올랐다 생각했던 황보인의 주먹은 그녀의 몸에 생채기 하나 만들지 못했다.
힘 있게 내지른 주먹이 그녀가 만들어 낸 손길의 회오리에 빨려 들었다가 흩어졌다.
마치 허공에 뜬 천을 때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호호호, 좀 더 노력해 보렴.”
황보인은 점점 더 그녀가 만들어 놓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무력감과 더불어 몸이 무거워졌다.
무호흡에 가까운 권격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늘어난 자신의 무공에 들떴던 그는 점차 음마에게 밀려나고 있었다.
뭐 이런 강한…….
도무지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무공을 사용해 보았지만 음마의 몸에 닿지 않았다.
그리고 간간이 찔러 들어오는 그녀의 날카로운 손톱에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등줄기로 섬뜩함과 함께 식은땀이 축축하게 흘렀다.
아차 하는 순간에 죽을 수도 있다.
서천맹 이후 전쟁에서 절대로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상대가 상대이니.
‘도, 도와 달라고 할까?’
황보인이 어지럽게 쏟아지는 음마의 손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물러나다 대전각의 지붕 위를 힐끗거렸다.
갑자기 지랄맞은 소청이 떠올랐다.
‘분명 저 새끼 성격에 죽을 때까지 팰 거야.’
음마도 무섭지만, 소청은 더 무섭다.
무조건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이야압!”
짧게 하단으로 파고들며 혼신의 힘을 다해 주먹을 뻗어 올리는 순간 피해 버린 그녀의 얼굴이 황보인을 향해 다가왔다.
번쩍!
그녀의 두 눈에서 환한 광채가 뿜어지는 순간.
슈가가각!
날카로운 창날이 그녀를 공격했다.
파악!
음마가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나 끼어든 사내를 바라보았다.
“황보 형, 제가 돕겠습니다.”
창대를 말아 쥐고 황보인의 옆으로 선 것은 다름 아닌 악이군이었다.
“음…….”
하마터면 음마에게 당할 뻔했던 황보인이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고, 고맙네.”
때마침 나타나 준 악이군이 너무 고마웠다.
합공을 해야 했다.
자신만으로는 음마에게 상대가 되지 않음을 충분히 깨달았다.
“호오? 이번엔 제법 잘생긴 공자님이 나오셨네?”
음마가 악이군의 얼굴을 보며 입술을 쓸었다.
“하나, 너희 둘만으로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음마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푸슉!
사라졌다 싶은 순간 날카롭게 세워진 음마의 손이 얼굴을 향해 뻗어 왔다.
악이군이 재빨리 몸을 빼내었지만 코끝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치잇!”
악이군은 물러나던 뒷발에 힘을 주며 앞으로 나아갔다.
중원사대창이라 불리는 악가창법에는 후퇴라는 것이 없었다. 오직 공격과 전진에만 국한된 무공이었다.
팡!
내지른 창이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공격의 길을 트는 선인지로(仙人指路)에 이어 솟구친 음마를 따라 위로 찌르는 진마창(進馬槍)의 초식에 창극이 수십 갈래로 나누어졌다.
파파파팍!
악이군의 창극이 음마의 잔상을 수도 없이 꿰뚫었고 뒤이어 황보인의 권격이 그녀를 뒤쫓았다.
순식간에 수십 합에 이르는 공수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졌다.
악이군의 창이 쏘아져 나가면 피하는 음마를 향해 황보인의 권이 질러졌다.
창의 궤적이 난무하고 권강이 사방으로 뿌려지자 물러난 이들은 그들의 모습조차 볼 수가 없었다.
“하압!”
계속 피하기만 하던 음마가 둘의 사이를 파고들며 양쪽으로 장력을 펼쳤다.
쩌어어엉!
“크윽!”
“윽!”
둔탁한 소음과 함께 악이군과 황보인이 뒷걸음질하다 겨우 중심을 잡았다.
“크…….”
뒷짐을 지고 우뚝 선 음마와는 달리 양쪽으로 물러난 황보인과 악이군의 입가에 옅은 혈선이 만들어졌다.
둘에게 합공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그녀의 표정은 여유롭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충마를 죽였을 때는 소강과 옥명자까지 함께였다.
‘이런 자들이랑 계속해서 혼자 싸워 왔던 거야?’
새삼 소청에 대한 놀람이 더욱 커져 갔다.
“호호호, 정말 탐나는 아이들이로구나. 더구나 어리기까지……. 쓰릅, 장난은 여기까지란다.”
두 사람을 쓸어 보는 음마의 두 눈이 음심으로 가득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타는 듯한 목마름이 느껴지고 온몸이 흥분으로 차올랐다.
‘흐흐흐, 주안공이 수년은 더 유지되겠구나!’
눈에서 엄청난 요기를 뿜어내는 음마의 몸이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늘거리는 나비 같기도, 뱀처럼 끈적하기도 한 그것은 마치 무희의 춤 같았다.
“으음…….”
그녀의 춤사위가 시작되자 묘한 훈풍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마치 팔다리가 수십 개로 변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순간 음마의 모습이 화단의 꽃처럼 사방에서 피어났다.
“아…….”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내들에게서 알 수 없는 감탄사가 터져 나오고 눈동자가 몽롱하게 변해 갔다.
섭령탈혼무(攝靈奪魂舞).
환희요락궁의 정수이자 음마 갈옥향의 독문무공으로 극의에 이르면 몸동작 하나로도 상대를 미혹할 수 있었다.
“하아…….”
화려한 춤사위가 작은 한숨과 함께 멈추자 황보세가의 무인들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곱디고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들리고 그녀의 시선이 향하자 사내들의 눈동자에 욕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승혜야, 서둘러 호심항마공을 운용해 무인들을 보호하거라!”
“예, 스승님!”
음마의 춤사위로 인해 황보가의 무인들이 현혹되자 물러나 있던 멸절사태가 목에서 서천보살자를 끌러 내 사방으로 뿌렸다.
우우우웅!
두 눈을 감은 멸절사태와 승혜의 입에서 경문이 흘러나오자 금빛 서기가 황보가의 무인들을 감싸 안았다.
내기가 강한 이들은 서천보살자에 의해 증폭된 불기의 힘으로 미혹에서 벗어나며 대다수의 무인들이 음마를 향해 이끌린 듯이 다가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황보 형, 미혼술입니다.”
“제길, 멈춰야 하네!”
눈을 보지 말라 했던 소청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춤사위만 보아도 아찔한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멈춰야 했다.
파앙!
황보인과 악이군이 음마를 향해 몸을 날렸다.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대로 두었다가는 모두가 미혼술에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춤사위에 스민 미혼의 효과가 그들의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있었다.
이전과 달리 주먹과 창의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이리 오렴…….”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자 뇌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를 향해 무수히 공격을 쏟아부었지만 도무지 춤사위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무희의 춤사위에 어우러진 취객 같았다.
땅!
악이군의 창대가 튕겨 나가고 황보인의 주먹이 그녀의 손에 잡혔다.
“생각보다 심지가 강한 아이들이구나. 자, 내 눈을 보렴.”
흑요석처럼 빛나는 음마의 두 눈에서 요사스러운 기운이 뿜어져 둘을 향했다.
음마의 마안(魔眼).
눈을 떼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저런, 버티면 점점 더 고통스러워질 터인데…….”
그녀의 몸에서 뿜어지는 미혼술과 마안이 뿜어내는 요기의 기운을 버티기 위해 내력을 끌어 올린 황보인과 악이군이 결국 피를 토해 내었다.
“으웩!”
“커억!”
억지로 견디려 한 그들은 결국 음마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내상을 입은 것이다.
“자, 주저하지 말고…….”
“…….”
“…….”
내력이 흩어져 버렸다.
두 눈의 초점이 흐트러지고 의식이 몽롱해졌다.
“호오? 꼴에 사내라고 그 상황에서도 나를 째려보는 것이냐?”
분명 섭혼을 당했음인데 황보인이 계속해서 그녀를 째려보며 비웃음을 짓고 있자 음마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 너부터 무너뜨려 주마.”
그녀의 입술이 황보인을 향해 다가갔다.
그 순간.
차자자작!
피-융!
쇠 갈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섬뜩한 느낌이 음마의 등줄기에 소름을 돋아 올렸다.
재빨리 몸을 뒤로 물린 음마는 자신의 행사를 방해한 무언가를 쏘아보았다.
그녀가 물러난 자리에는 묵빛을 은은하게 뿜어내는 창대가 박혀 있었다.
“거참, 눈 보지 말라니까.”
지붕에서 훌쩍 뛰어내려 온 소청은 마치 지나가는 행인처럼 느긋하게 걸으며 다가왔다.
“어째 잘 막는다 싶어서 놔뒀더니, 아직 멀었네, 멀었어. 고작 잡기에 당하기나 하고…….”
소청이 몽롱한 표정을 하고 있는 황보인과 악이군을 보며 이죽거렸다.
“네놈은 누구냐?”
음마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자신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나?”
소청은 히죽 웃으며 손에 든 선예를 음마의 앞에 던졌다.
“지나가던 과객이다.”
“…….”
되지도 않는 농담 짓거리를 하며 웃는 소청의 모습에 음마가 자신의 앞에 던져진 인물을 바라보았다.
“선예?”
주안공이 깨진 중년 여인, 선예의 모습을 알아본 음마의 눈이 살짝 찡그려졌다.
그럼 자신들에게 신호를 보낸 여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네놈이…… 유인한 것이냐?”
“유인은 무슨. 원래 황보가를 치려고 한 거잖아? 난 그냥 주변에 얼쩡대는 아줌마 하나 잡아 족쳤을 뿐이야.”
“…….”
묘한 불안감이 그녀의 머릿속을 채웠다.
“세주님…….”
뼈가 으스러져 움직일 수도 없는 선예가 음마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
음마는 그녀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적을 살피라 보냈더니 되레 적에게 도움을 준 꼴이 아니던가?
콰직!
음마가 선예의 목줄기를 짓밟았다.
“컥! 세……주…….”
“멍청한 년.”
부릅뜨인 눈으로 음마를 바라보던 선예는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그리고.
“모른 척 지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뭐 어찌 되었건 변하는 것은 없단다.”
선예를 죽인 음마가 소청을 향해 싱긋이 웃었다.
먹잇감이 늘었을 뿐이다.
그녀의 눈에서 요기가 피어나고 유혹하듯이 살짝 비틀린 자세를 취하자 나의가 슬쩍 젖혀지며 그녀의 뽀얀 속살이 드러났다.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던 소청이 소태 씹은 표정을 했다.
“지랄하네. 다 늙어 빠진 할망구 주제에…….”
“…….”
분명 그녀의 몸짓, 목소리 모든 곳에 섭령탈혼무의 기운이 스며 있음인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찌 사내가?
고자라 하더라도 마음이 흔들릴 것이고 불가의 청련심법을 익히고 있어도 욕정이 생길 것인데…….
무언가 불안감이 스쳤다.
그러고 보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살기나 투기는 물론 어느 정도의 기운을 품고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제법이구나. 섭혼의 기운을 이겨 낼 정도로 내공이 정심하다니.”
확인이 필요했다.
소청이 멈춰 있는 사이 음마의 시선이 악이군과 황보인을 향했다.
“죽여…….”
언령처럼 흘러나온 그녀의 목소리에 마안에 지배당한 악이군과 황보인이 갑자기 소청을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파학!
황보인의 주먹이 소청의 옆구리를 공격해 왔고, 악이군의 창이 가슴께를 찔러 왔다.
“쳇! 이런 멍청한 것들이…….”
못마땅함을 담은 짧은 소리와 함께 소청이 슬쩍 발을 튕겼다.
슉, 훅!
소청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자 둘의 공격이 허공을 갈랐다.
뒤에서 나타나 양손을 말아 쥔 소청이 두 사람의 뒤통수를 거세게 강타했다.
쩌어어억! 쿠당탕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