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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44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1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44화

143화. 남녀노소 안 가린다

 

 

 

 

음마와 환희요락궁을 제외하고도 중원에 들어온 이들이 있었다.

권마와 천패동.

그들 역시 아미를 습격한 것처럼 다른 문파를 공격하고 있을 것이다.

그 소식이 이미 전해졌을 것인데 흔한 경계령조차 떨어지지 않았다.

“혈승의 계략을 눈치채고 서천맹을 움직이지 않는 게 분명해. 아무리 그래도 다른 세력이라도 도우러 와야 하는 거 아냐?”

여인이 손을 내젓자 강 노인이 멍한 눈으로 일어나 침상에 누웠다.

눈을 감는 강 노인의 몸을 바라보던 선예의 눈에 신경질적인 감정이 떠올랐다.

“쯧, 다른 년들은 오면서 양기를 채우고 있을 텐데……. 두고 봐. 중원 무인들 중에 제일 실한 놈으로 가질 테니까.”

선예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잠시 몸을 풀고는 황보가를 향해 달렸다.

다시 한 번 확인이 필요했다.

 

황보가의 지붕 위에 도착한 선예는 전각의 곳곳을 세심하게 살폈다.

“흠, 정말로 아무런 반응이 없네. 정말로 증원을 보내지 않는 거야? 뭐 잘된 일이긴 하지만…….”

선예는 음마에게 보낼 전서구를 작성했다.

그런데 왠지 고요함이 꺼림칙했다.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좀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

선예는 쓰고 있던 전서구를 구겨 버리고 새로운 내용으로 작성했다.

푸드득!

전서구가 손을 떠나 밤하늘로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한 그녀는 서둘러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휴, 하루 정도면 도착하시겠지?”

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선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검은 인영.

언제부터?

생각이 너무 많았음일까?

그의 접근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선예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흑의 야행복을 입고 긴 머리를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사내가 한쪽 구석의 어둠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옅은 달빛에 드러나 정확한 윤곽을 알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보아 왔던 사내들 중 가장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체를 들킨 위기의 순간임에도 음심(淫心)이 돋아 오르도록 잘생긴…….

“뭘 꼬나봐?”

“…….”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어. 무공 따위는 익힌 적도 없어 보이는 노인이 세작질을 할 리가 없지. 그래도 운 좋은 줄 알아. 그 노인네를 죽이려고 했으면 그 자리에서 사지를 찢어 버리려고 했는데…….”

선예는 주위를 날카롭게 살피다가 비웃음을 날렸다.

“혼자니?”

“어, 아직 독신이야.”

“풋! 안타까워라. 그렇게 잘생겨 놓고는…….”

소청의 무덤덤한 말에 선예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나저나 제법이네? 내 뒤를 점하다니.”

선예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고 얼굴에 요사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던 소청이 피식 웃었다.

“섭혼술이라도 걸어 볼 모양인데 눈깔 뽑히고 싶지 않으면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소청이 위협적인 눈빛을 했지만 선예의 눈에는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녀의 미소가 더욱 짙어지고 요기가 점점 더 강해졌다.

자신의 미모와 섭혼공을 믿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모습을 본 사내들 중 유혹되지 않은 자는 없었으니…….

제법 탄탄해 보인다.

맛이 좋으리라.

음심이 동한 선예는 혀로 앵둣빛 입술을 쓸었다.

늙은이랑 이삼일을 보낸 통에 재미가 없었는데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일단은 섭혼술로 사내를 유혹하고 정혈을 취하기만 하면 된다.

선예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웃옷을 늘어뜨려 뽀얀 어깨를 드러내고 소청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몸동작에 녹아 있는 환락무(歡樂舞)의 기운.

고운 손이 묘한 곡선을 드리며 느릿하게 뻗어졌다.

“아이야, 이리 오렴. 너에게 천상에서나 맛볼 운우지락(雲雨之樂)을 가르쳐 줄게.”

눈앞에 있는 사내는 이제 자신의 손안에 들어오리라.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옴짝달싹 못 하고 정혈을…….

콱! 차악!

“꺄악!”

무심하게 뻗은 소청의 창극이 요사스럽게 빛나던 그녀의 왼쪽 눈을 찔렀다.

“지랄하네.”

“으흐흑…….”

“어디서 잡스러운 기술을……. 눈깔 뽑힌다고 했지?”

소청이 창극에 뽑혀 나온 그녀의 눈알을 바닥에 뿌리고 으깨 버렸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단 말인가?

음욕 따위가 없는 인간이 어디 있을까?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과 미소, 빙기옥골과 같은 어깨선을 보았음인데 목석도 아니고 어찌 저리 무덤덤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음마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섭혼의 힘을 가진 그녀의 마안(魔眼)이었다.

선예는 피가 쏟아지는 자신의 왼쪽 눈을 감싸 쥐고 소청을 노려보았다.

“이 개자식!”

그녀의 눈동자에서 음심이 사라지고 핏발이 돋아 올랐다. 손으로 막은 왼쪽 눈에서는 핏물이 흘러 뚝뚝 떨어졌다.

“너, 환희요락궁 소속이지?”

뿌드득.

소청의 질문에 선예는 대답하지 않고 어금니를 갈아 대었다.

“대충 보아하니 네가 세작인 것 같고…….”

“…….”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

도대체 이자의 정체가 뭐란 말인가?

“지금부터 나를 도와줘야겠다. 괜한 힘 빼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면 돼.”

“닥쳐라! 감히 나를 어찌 보고!”

선예의 몸에서 뻗어 나오던 요기가 칼날 같은 살기로 변했다.

“죽어라! 이놈!”

소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카롭게 세워진 손이 화려한 변화를 만들며 날아왔다.

슈슉!

수십 개의 손끝이 송곳처럼 변해 소청의 전신 요혈을 노렸다.

하지만.

세주들은 물론 대공 구자겸까지 이긴 소청에게는 어린애 장난 같은 손동작일 뿐이었다.

그저 손을 휘저었을 뿐인데 선예의 손이 만들어 낸 잔상이 모조리 사라졌다.

“난, 여자고 남자고 가리지 않고 패는데.”

뭐?

쩌억!

선예가 의문을 채 다 드러내기도 전에 소청의 주먹이 그녀의 안면을 강타했다.

“카악!”

코뼈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선예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흑…….”

너무 아팠다.

손을 가져가 만져 보니 코가 함몰되어 버렸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게 생각했던 오뚝한 코가…….

“이노옴!”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 그녀가 눈과 코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소청을 향해 자신이 가진 모든 내공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텁!

한 걸음 내딛는 것만으로 측면으로 파고든 소청의 손이 그녀의 삼단 같은 흑발을 휘말아 쥐었다.

꽈악!

“아악!”

소청의 손아귀에 머리카락이 모조리 뽑혀 나갈 것만 같았다.

“자, 잠까…….”

“잠깐이고 자시고, 똥인지 된장인진 맞아 보면 알 거야.”

눈이 동그래진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소청의 주먹이 무자비하게 그녀의 얼굴에 꽂혔다.

쩍쩍쩍!

“크학!”

뱉어 낸 피와 함께 이빨이 몽땅 빠져 버렸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우어어(아, 안 돼)…….”

두 손을 뻗어 제지해 보려 했지만 이미 소청의 창대가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뻑! 빠바바바박!

퍽퍽퍽!

흠씬 두들겨 맞고 무릎을 꿇은 그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눈, 코, 입 얼굴의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고, 소청의 구타로 인해 주안공이 깨어져 버린 터라 중년 여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하아? 이게 본모습이냐?”

“…….”

소청이 무슨 말을 하고 비웃더라도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 맞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고통스러웠다.

여인의 얼굴을 이리 심하게 때리는 인간 망종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예쁜 얼굴은 여인들의 무기였고 자랑이었다.

그런데 소청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만 같았다.

뭐 이런 놈이…….

선예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흐흐흑, 흑흑.”

그런데.

“야, 하지 마라. 어디 되지도 않은 동정심 따위를 유발해 볼 생각인가 본데, 난 남녀도 안 가리지만 애나 노인도 안 가린다.”

소청이 잠시 내려 두었던 창대를 잡아 가자 선예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사실 그녀의 흐느낌에는 사람을 홀리는 미약한 음공이 담겨 있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본디 사람의 본성 중 하나이거늘…….

소청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근데 환희요락궁에 있는 여인들은 전부 너 같은 주안공을 쓰나?”

끄덕.

“웃기는 것들이네. 사내들의 정혈을 빨아서 젊음을 유지하는 거군. 사람이 생긴 대로 살아야지. 쯧쯧. 하여간 마천의 것들은…….”

“…….”

“하아, 난 또 뭔가 생각이 있어서 일부러 흔적을 노출시키는 줄 알았잖아? 대가리에 술병 꽂은 년들 같으니. 그냥 생각이 없는 거였군.”

소청은 제갈휘문에게서 온 적의 행적 정보에 대해 떠올렸다.

마치 자신들의 경로를 보여 주며 오는 것 같은 느낌에 한 번 더 적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 우스웠다.

물론 그것을 유추해 낼 수 있는 것은 소청이 그녀들의 정체를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든 좋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아무리 똑똑한 놈들도 아편에 빠지고 나면 끊기가 힘들어지는 법이다.

그들 역시 사내들의 양기에 눈이 멀었으니 쉽사리 유혹을 이겨 내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 처음부터 아미파 다음에 황보세가를 노리고 있었던 거냐?”

“…….”

“대답 안 해?”

소청이 창대를 잡아 가자 선예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는 지독한 몰매를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중원의 중심부에 위치한 황보가가 당하면 적잖이 당황스럽긴 했겠지.”

“좋아,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대로 받아써라.”

“…….”

선예는 하나 남은 오른쪽 눈으로 소청을 바라보았다.

“황보세가에는 아무런 위협도 없음.”

“…….”

설마 자신을 이용해 음마와 환희요락궁을 불러들일 참인가?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더라니…….

함정이 틀림없었다.

필시 홀로는 아닐 것이다.

분명 지원대가 인근에 잠복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뭐 하냐? 써…….”

“흐흐흐, 멍청한 놈. 늦었다. 이미 세주님께 전서를 보냈다.”

“…….”

선예의 미소에 소청이 멀뚱하게 쳐다보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뭐? 이거?”

소청이 펼쳐 보인 것은 자신이 조금 전 보냈던 전서였다.

“어떻게…….”

“새 한 마리 잡는 것쯤이야.”

“…….”

“불러 주는 대로 써라. 뒈지게 맞고 싶지 않으면.”

선예가 하나 남은 눈을 끔벅거리다가 손에 붓을 잡았다.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하고 기회를 봐서 도망쳐야 한다.

살아 나가서 경고를 하고 음마에게 알려야 했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이길 수도, 유혹할 수도 없는 인간 망종이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써서도 안 된다.

고작 아미 하나를 무너뜨렸을 뿐인 환희요락궁을 위험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선예는 필체를 바꾸어…….

“야.”

바닥에 고개를 숙이고 쓰고 있던 선예가 천천히 눈을 들었다.

소청이 웃고 있었다.

“이게 대가리 쓰네?”

미소는 점점 잔인해졌다.

“이게 필체를 바꿔? 내가 아주 우스워 보이지?”

소청이 창대를 움켜쥐고 일어나자 선예의 낯빛이 노랗게 변했다.

“아, 그……!”

빡! 빠바바박!

무자비한 구타가 시작되었다.

선예는 살아오면서 받았던 그 어떤 무엇보다 심한 고통을 느끼며 혼절해 버렸다.

 

* * *

 

“세주님!”

추련이 푸드득거리며 날아온 전서구를 받아 들었다.

“호남성에 잠입한 선예에게서 온 연락입니다.”

“…….”

그녀가 내민 전서를 읽은 음마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혈승이 말했던 그대로인가?’

마종에게 전권을 부여받은 혈승은 그들에게 서천맹이 아닌 다른 곳들을 기습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명 조호이산.

제법 쓸 만한 전략이었다.

외곽을 급습해 적을 불러냄으로써 서천맹의 결속을 끊어 내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들의 군사인 제갈휘문이라면 반드시 자신들의 계략을 눈치채고 병력을 묶어 둘 것이라 했다.

‘아미를 친다 해도 저들이 쉬이 병력을 빼지 않을 것이라 했지.’

하지만 만약 저들의 심장부에 위치한 황보가까지 공격당한다면?

‘지금쯤, 권마가 화산을 향하고 있을 거야.’

아미에 이어 화산이 당하고, 황보가까지 당하고 나면 제갈휘문이 아무리 막고자 한다고 해도 서천맹의 결속은 깨어질 수밖에 없으리라.

“때가 무르익었다.”

“하면?”

“계획된 대로 황보가를 친다.”

음마의 말에 요녀들의 얼굴이 욕망으로 가득 차올랐다.

황보세가.

필시 그녀들의 입맛을 채워 줄 무언가가 가득하리라.

“내일 저녁은 황보가에 도착해서 먹도록 하자꾸나.”

“예, 세주님!”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마와 환희요락궁의 요녀들은 나의를 휘날리며 동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녀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수없이 많은 사내들이 고목처럼 변해 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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