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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38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38화

137화. 아미의 참변

 

 

 

 

우렁찬 외침과 함께 거대한 불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순간 불기에 영향을 받은 사내들이 멍한 표정을 지으며 행동을 멈춰 버렸다.

마기의 상극인 불기의 힘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기운을 밀어낸 것이다.

그들과 검을 맞대고 있던 아미의 무인들은 그들이 갑자기 멈추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장로님! 저들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이지를…….”

“닥쳐라! 이지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니라!”

보은신니의 눈이 목숨을 잃고 몸이 더럽혀진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아미는 듣거라! 아미를 습격해 짐승 같은 짓을 자행한 저들은 동도가 아닌 흉적이니라!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말고 추살하라!”

그녀의 외침에 아미의 모든 제자들이 무구를 들고 공격했다.

“흐으응! 그냥 두면 안 될 년이네?”

“……!”

전장으로 뛰어들려 했던 보은신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뒤를 잡혔다.

언제?

느끼지도 못했을 만큼 강한 자였다.

재빨리 몸을 비틀며 불장을 내지르는 순간.

쩌어엉!

어마어마한 반탄력이 그녀의 불장에 부딪혀 왔다.

“크윽!”

튕겨 버린 보은신니의 몸이 대웅전 곁에 서 있던 화엄동탑에 부딪혔다가 떨어졌다.

“…….”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낼 겨를도 없이 보은신니가 자신을 공격한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불기가 깨어지고 다시금 습격자들에 의해 살육이 자행되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나타난 나의 의인들…….

승세를 점해 가던 아미의 무인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나의 즐거운 유희를 방해해서야 되겠니?”

“…….”

생글거리며 웃는 여인은 마치 벌거벗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거리는 나의 아래로 허벅지의 안쪽 속살까지 훤하게 드러나 있었다.

“악마로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어찌 여인이…….”

“악마는 염병……. 그 나이 처먹도록 음양화합도 깨닫지 못한 년이. 누구를 가르치려 들어?”

“닥치거라 이년! 감히 네년이 무엇이기에…….”

“나? 홋홋홋. 어차피 죽을 거니까 알려 줄게.”

“…….”

“마천의 환희요락궁을 이끄는 음마(淫魔) 갈옥향.”

“마, 마천…….”

“그래, 그게 내 이름이란다.”

보은신니는 생긋이 웃는 음마의 얼굴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

“자, 그럼 죽어…….”

파라락!

나의가 바람에 휘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그녀가 보은신니의 앞쪽으로 다가와 일장을 뻗었다.

“이야압!”

보은신니는 온몸의 공력을 모조리 끌어 올렸다.

우우우웅!

거대한 범종 소리와 함께 불기가 파도처럼 뻗어 나갔고 그 사이로 불장을 던져 버린 보은신니의 일장이 내질러졌다.

아미가 자랑하는 녹옥장(綠玉掌)이 펼쳐졌다.

쩌어어엉!

거대한 울림이 복호사를 뒤흔들어 놓았다.

콰아앙!

장로에 걸맞은 위력의 일장을 쏟아 낸 보은신니였지만 음마의 무위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팔뼈가 으스러지고 손바닥이 터져 나가 피가 철철 흘렀다.

“쿨럭!”

“장로님!”

검붉은 피를 사발째로 토해 내는 보은신니의 모습에 율계승들이 불장을 들고 음마를 향해 날았다.

“음…… 정말 몹쓸 년들이 많네?”

음마의 눈이 찡그려졌다.

“짜증 나게!”

차아아아악!

그녀의 손이 날파리를 쫓듯이 휘저어지자 사방으로 날카로운 경기가 휘몰아쳤다.

날카로운 손톱이 허공을 다섯 갈래로 찢어 놓자, 음마를 향해 날아들었던 율계승들의 몸이 모조리 찢겨 바닥으로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이, 이런 악독한!”

자신의 제자들이 허망하게 죽어 가는 모습에 보은신니가 원정지기를 일으켰다.

동귀어진을 결심한 그녀의 몸에서 황금빛 서기가 폭풍처럼 쏟아져 나왔다.

“하아, 정말 귀찮은 년이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진다고…….”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보은신니를 바라보는 음마의 눈동자에 뱀처럼 차가운 기운이 떠올랐다.

“상대가 안 된다는 걸 가르쳐 주었는데…….”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을 한 음마가 공력을 끌어 올리고 있는 보은신니를 향해 다가섰다.

“그래, 중원에 나온 기념으로 너는 특별하게 죽여 줄게.”

잔학한 그녀임에도 말투는 교태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사뿐히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몸에서 차갑고 요사스러운 마기가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퍼트려졌다.

“화엄동탑이 너희의 상징이라지?”

“…….”

음마는 보은신니가 기대고 있는 탑을 보며 생긋이 웃었다.

그녀가 다가설수록 보은신니의 금빛 서기는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으하합!”

음마가 반 장 앞으로 다가섰을 때.

우렁찬 불기와 함께 녹옥장이 보은신니의 모든 내공을 품고 쏘아져 나갔다.

“흥, 고작 이 정도…….”

스으윽!

잔인하게 고운 손을 따라 천천히 뻗어진 음마의 마기가 녹옥장에 실린 불기를 집어삼키고 파르라니 깎인 보은신니의 머리 위에 대어졌다.

“음혼(淫魂), 탈명장(奪命掌).”

쩍!

무언가 내부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음마의 기운이 보은신니의 몸을 뚫고 화엄동탑을 때렸다.

쩡, 우르르르…….

무너졌다.

이 장이 넘는 거대한 높이를 가진 화엄동탑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움직임을 멈춰 버린 보은신니의 부릅뜬 두 눈에 눈물처럼 피가 차올라 흘렀다.

푸학!

코와 입, 귀에서 피를 토해 내며 쓰러진 보은신니의 주위가 벌건 피로 물들었다.

“쯧, 피가 튀었네…….”

나의로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닦아 낸 음마의 시선이 살육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복호사의 경내를 훑었다.

여승들은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절간의 곳곳에 쓰러져 있었고 바닥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정혈을 빼앗기고 이지를 잃어버린 서천맹의 무인들은 잔혹하게 아미파의 여승들을 학살했다.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 그들의 모습에 음마가 뱀처럼 차갑게 웃었다.

“오호호홋! 그래. 정이니 협이니 해도 어차피 욕정에 미치면 쓰레기가 될 뿐이란다. 추련, 너무 아름답지 않니?”

생긋하게 웃는 그녀의 미소에 추련이 동조를 표했다.

“그럼요. 음양의 조화는 언제나 아름답죠.”

그녀들의 잔혹한 유희는 아미의 모든 여승들이 죽고 정혈을 완전히 쏟아 낸 사내들이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흠, 이제 그만 옮길까?”

“네, 세주님.”

흥미를 잃어버린 음마의 시큰둥한 말에 환희요락궁의 여인들이 초점 잃은 눈으로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서성이는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스거걱!

서른 개의 목이 동시에 떠올랐다.

잔인한 유희가 끝났다.

남겨진 것은 처참하기 짝이 없는 풍경뿐이었다.

“불태워. 이곳에 있는 불당이란 불당은 모조리…….”

 

“아, 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비명도 지를 수가 없었다.

당과를 사 먹기 위해 도망치던 금정은 멀리서 불타오르는 아미를 보고 복호사로 돌아왔다.

금정이 처음 본 것은 산문에 죽은 사형들이었다.

처참했다.

그리고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는 불꽃은 순식간에 열세 채의 불당을 모조리 불태우고 금정봉을 집어삼켰다.

손끝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걸을 수가 없었다.

누가, 누가 제발 도와줘…….

마음속의 공허한 메아리는 그들이 아미파를 무너뜨리고 떠날 때까지 밖으로 내뱉어지지 못했다.

금정은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억지로 옮겨서 복호사를 향해 다가갔다.

수십 장밖에 되지 않는 거리가 수천 리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혹시나 그들이 남아 있지 않을까? 두려움에 제 발이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산문을 넘고…….

경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처참한 시신들의 모습에 토악질이 올라왔다.

벌거벗겨지고 팔다리가 잘린 모습은 열 살의 어린 여승이 감당할 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보, 보은…… 장로님…….”

어렵게, 어렵게 도착한 대웅전.

화엄동탑 앞에 쓰러져 있는 익숙한 복장의 여승.

보은신니였다.

그녀를 발견한 금정이 떨리는 손으로 안아 들었다.

마음이,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다. 심장이 터질 듯이 아파 왔다.

“장로님……. 으흐흑…….”

“그, 금정……이구나…….”

금정의 눈이 번쩍 뜨였다.

죽지 않았다.

살아 있다.

“장로님!”

“다행이로고……. 참으로 다행…….”

어째서 죽어 가는 순간에 그처럼 따뜻한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어째서 그런 포근한 미소를 보여 준단 말인가?

금세라도 숨이 넘어갈 듯 보은의 말소리가 낮아졌다.

호흡이 잦아들고 있었다.

입가에 핏물이 점점 더 많이 흘러 금정의 옷자락을 붉게 물들였다.

“안 돼요. 말하지 마세요. 말하지 마세요!”

금정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알리거라……. 음마……. 장문인께…….”

힘겹게 뻐끔거리는 그녀의 입을 통해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점점 더 낮아졌다.

“장로니임!”

그녀의 머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울고 또 울며 아무리 불러 보아도 더 이상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뜨거웠던 피가 점점 더 차갑게 식었다.

한참을 울부짖은 금정은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일어나 아미파의 전서구가 있는 보현전으로 향했다.

구륵, 구르륵!

불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전서구들이 금정을 보자마자 미친 듯이 날갯짓을 해 대며 울어 대었다.

화르륵.

불길이 거세지고.

퉁!

나무가 쓰러진다.

금정은 제 옷을 뜯어 자신의 손에 묻어 있는 보은신니의 피로 글자를 썼다.

살(殺).

전서구의 다리에 묶은 금정이 새장을 열자.

푸드득!

전서구들이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아미파에 몰아닥친 처참함을 알리기 위해, 잔혹하기 짝이 없는 슬픔을 알리기 위해…….

 

* * *

 

“이, 이런!”

아미파에서 날아온 전서구를 받아 든 제갈상아는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피로 쓰인 살(殺).

글자가 주는 섬뜩함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전서구에 사용되는 글자가 아니다. 암어도 아니고 파자는 더욱 아니다.

전서구를 써 본 적이 없는 누군가가 보낸 것이다.

그게 뭐든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설마…… 사라진 전초와 관계있는 건가?”

닥쳐올 결과가 너무 두려웠다.

“진소강 공자와 아미파의 장문인을 불러라! 전초에 조사를 나간 소청 공자에게 연락을 보내라. 아미, 아미파의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

제갈상아는 서둘러 움직였다.

지금의 아미파에 일이 벌어졌다면 흉수는 마천이다.

정사가 연합한 마당에 아미파를 노릴 수 있는 곳은 그들이 유일했다.

제갈상아는 황급히 청초각으로 전서구를 써서 보냈다.

만약 저들이 서천맹을 노리지 않고 소규모로 공격해 온다면?

그 피해는 점차 커지게 되고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숙부님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해.’

 

두두두두!

수십 기의 인마가 성도의 관도를 질주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아미산.

제갈상아가 내민 천에는 핏물이 번져 알아보기도 힘든 글자가 쓰여 있었다.

살(殺).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이상 위급을 표현하는 말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니야, 아닐 것이다.’

선두에서 말채찍을 휘두르는 멸절사태는 가슴을 채운 불안감을 애써 부인했다.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빌고 싶었지만 멀리 아미산에 붉은 화광이 일고 있다는 연락까지 받은 뒤였다.

본산이 무너지는 것은 상관없다.

천 년의 역사건, 아미파에 소장된 낡은 무공 서적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모두가 살아 있기만을 빌 뿐이었다.

말을 쉬지 않고 달려도 반나절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하지만 더욱 빨리 달렸으면 하는 마음에 느릿하기만 한 말이 야속했다.

“…….”

그들과 함께 달리고 있는 소강은 선두에 선 멸절사태와 승혜의 표정에 아무런 위로조차 건넬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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