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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75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75화

174화. 축(縮)의 묘리

 

 

 

 

휘두르려는 순간 느껴진 섬뜩함에 자신도 모르게 몸이 반응한 것이다. 분명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소청의 전신을 난자하는 것만 같았다.

“크크크, 좀 전의 기세는 어디로 간 게지?”

“…….”

변했다.

쇠를 갈아 대는 듯한 웃음소리뿐만이 아니었다.

핏빛으로 물든 얼굴은 흉신악살처럼 변했고 기운은 잔인할 정도로 난폭했다.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힘은 구자겸에게 느꼈던 그것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럴 힘이 남아 있단 말인가?

분명 뜯긴 팔에서 뿜어낸 피가 만만치 않을 것이고 혈잠의 보포로 만들어진 가사로 막았다 해도 몸 안에 충격이 쌓였을 것인데.

고통조차 느끼지 않는 듯한 모습은 무엇이고, 어째서 이전보다 더욱 거대해 보인단 말인가?

소청은 물러나 창대를 뒤로 돌리고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치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혈승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가까이 다가서면 갈가리 찢어 버릴 것처럼 진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눈에서는 악귀 같은 독기를 흘렸다.

역천의 진언?

아니다. 그것과는 달랐다.

혈승에게서는 어떠한 마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원정지기?”

“크크크.”

“제길, 다 늙어 빠진 주제에 생명력까지 태워 가면서 싸울 줄이야.”

힘의 정체는 원정지기였다.

순간적으로 몇 배의 힘을 발휘할 수는 있었지만 원정지기는 내공처럼 운기로 회복되지 않는다.

상하면 돌이킬 수가 없었다.

“크크크, 진소청. 애초에 가질 수 없는 패였던 게지. 그저 멍청한 장애물일 뿐이었다. 가질 수 없다면 파괴하는 수밖에…….”

혈승의 살기가 증폭되자 소청이 싸늘한 표정으로 창대를 움켜쥐었다.

“마찬가지다. 혈승!”

고민 따위는 필요 없었다. 부숴 버리면 된다.

그것이 원정지기이든 역천의 진언으로 만들어진 힘이든…….

소청의 기세가 확 하고 뿜어지며 창대가 수없이 많은 궤적을 그렸고 혈승의 핏빛 기운이 소청을 향해 쏘아져 나왔다.

일보월하로 단숨에 거리를 줄인 소청의 창대가 지면을 스치듯이 날아 솟구쳐 오르자 훌쩍 물러나며 장력을 뿜어내었다.

파앙!

소청이 곧바로 바닥을 차며 혈승을 향해 솟구쳤다.

혈승의 몸 안쪽으로 접근하려 했지만 그의 몸에서 뻗어 나오는 기세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틈을 만들어야 했다.

무턱대고 천뢰충파를 사용할 수 없었다.

남은 것은 백회, 명문, 회음의 공력뿐이었다. 단전의 기운을 회복한다고 해도 사용할 수 있는 천뢰충파는 두 번뿐이었다.

확실한 기회를 만들어야만 했다.

소청은 계속해서 혈승의 전후 좌우를 두들기며 기회를 엿보았다.

근접전에서는 혈승이 뿜어내는 핏빛 호신강기로 인해 접근이 어려웠고 원정을 품은 한 수 한 수의 공격이 천뢰충파에 맞먹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길. 차라리 놈의 공력이 다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하는 건가?’

소청이 눈을 찡그리며 물러나는 순간.

피해 낸 혈승의 팔이 휘저어졌다.

취릿!

순간 무언가 다가온다는 느낌에 소청이 뒤로 물러나며 재빨리 고개를 꺾었다.

목 어림에 화끈거림이 느껴졌다.

빠르다.

무언가 그의 손을 떠났다는 느낌만을 받았을 뿐인데 목 언저리가 베였다. 피가 흘러 목 아래를 흐르고 가슴을 축축하게 적셔 놓았다.

만약 반응이 늦었거나 혈승의 공격이 한 치만 더 깊었어도 목의 동맥이 잘려 나갔으리라.

“크크크, 제법이군. 감각만으로 그걸 피하다니.”

“…….”

보지 못했다.

느꼈으나 반응이 늦었다.

하지만 분명 익숙한 느낌의 공격이었다.

혁련휘?

비슷하다.

혁련휘가 자신을 다시 만났을 때 술잔을 잘라 내었던 공격이었다. 하지만 혁련휘의 그것보다 더욱 빠르고 날카로웠다.

“감춰 둔 한 수가 있었군. 망할 노인네!”

취릿!

이번에는 옆구리였다.

이전과 같았다. 혈승이 손을 움직인 순간 위화감이 전해졌고 날카로운 예기가 옆구리를 찢어 놓고 피를 튀어 오르게 했다.

시작된 공격은 도무지 접근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느 방향에서 공격해 올지 알 수 없었고 손을 움직이는 순간 눈앞에서 싸늘함이 느껴져 왔다.

순식간에 몸에 수십 개의 상처가 만들어졌다.

“언제까지 피하고만 있을 셈이냐!”

“…….”

씨발, 뭐가 보여야 싸울 것 아냐?

혹시나 몰라 초감각을 끌어 올렸지만 피하는 게 고작이었다. 언제 어느 순간 뻗어져 나올지 모르니 안심을 할 수가 없었다.

“크크크, 오지 않으면 오게 만들어 주마.”

“뭐?”

갑자기 혈승이 손을 움직였다.

그런데 소청을 향한 방향이 아니었다. 초사가 있는…….

“이런 썅!”

파앙!

소청이 온 힘을 다해 기운을 용천혈로 뿜어내었다. 보이지 않는 공격이니 초사의 앞을 가로막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안 돼!”

소청의 눈이 부릅뜨이고 목 언저리에 차 있던 핏물이 외침과 함께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이미 혈승이 손을 떠난 날카로운 느낌이 초사에게 닿고 있었다.

휘리리리!

초사의 몸이 꿰뚫리려는 순간 거대한 회오리가 초사의 앞을 막아섰다.

쿠루루!

뒤틀린 공간이 혈승이 뻗어 낸 공격을 집어삼키며 우레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

목적을 이루지 못한 혈승이 고개를 꺾어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휘!”

소청이 십년감수한 목소리로 불렀다.

비마대원과 함께 도착한 혁련휘가 주먹을 뻗어 혈승의 공격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권마의 와류투공? 크크크, 대단하군 무황의 제자가 천재라는 말을 들었었지. 한데 권마와 싸운 것만으로 그 핵심을 흉내 내다니…….”

혈승은 혁련휘를 알아보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노인네가 혈승이군.”

혁련휘는 피가 끓어올랐다. 혈승을 보는 순간 호승심이라는 녀석이 그의 심장을 세차게 뛰게 만들었다.

역천대공이라는 자의 무위에 대해서 수도 없이 들었다.

소청만큼이나 강한 존재들…….

만나고 싶었고 싸우고 싶었다.

그리고 초사를 공격했던 것은 분명 자신이 깨달은 축도와 같은 유형의 공격이었다.

무릇 심검(心劍)이라는 것이 있다.

무형검(無形劍), 혹은 심즉살(心卽殺)이라 불리는 그것은 마음이 가는 모든 곳에 죽음을 내리는 전설상의 경지였다.

그것은 전설에 불과할 뿐 고금 제일의 경지를 이룩했다는 무황 위도혁조차도 이루어 내지 못한 경지였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것이 바로 축(縮: 줄이다)이라는 기술이었다.

축의 묘리를 깨달으면 한 점에 만변을 담을 수 있었고 일정 공간을 뛰어넘어 검격을 발출할 수 있었다.

혁련휘도 스승의 가르침에 겨우 익혀 낸 기술이었지만 혈승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대가 어떻게 축도(縮刀)를 알고 있는 거지?”

“축도? 호오?”

혁련휘의 말에 혈승이 비릿하게 웃었다.

“무황이 제법 재미있는 놈을 키웠군. 약관의 나이에 축의 묘리를 깨달은 놈이라.”

혈승이 소청과 혁련휘를 번갈아 바라보며 웃었다.

“이거 재미있겠군. 진소청과 혁련휘라. 참으로 재미있는 조합이 아닌가? 좋다. 오너라, 둘 다 상대해 주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혈승이 모든 힘을 개방하자 사방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혁련휘의 옆에 자리를 잡은 소청이 다급히 비마대를 향해 외쳤다.

“초사를 데리고 물러나!”

그들의 싸움에 휩쓸렸다가는 피해만 입게 될 뿐이었다.

“휘, 놈이 원정지기를 끌어 올렸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서…….”

“무슨 헛소리야?”

“뭐?”

“이런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아.”

혁련휘가 싸늘하게 웃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거 아쉽네. 흑룡아를 들고 왔으면 정말 미친 듯이 싸워 볼 텐데…….”

“이 멍청아! 정말로 강하다고!”

“상관없어! 소청. 빠지려면 네가 빠져라. 나는 이런 싸움을 마다해 본 적이 없어!”

혁련휘는 조금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길, 좋아. 우측을 맡아. 내가 좌측을 맡겠다.”

“큭큭큭, 무슨 소리. 오른팔이 없으니 당연히 내가 좌측이지!”

혁련휘가 대답도 듣지 않고 혈승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제길!”

쾅! 쩌억!

원정지기를 극한까지 끌어 올린 혈승은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 내면서도 거침이 없었다.

이미 원정을 끌어 올려 생명을 담보로 한 싸움이었다. 한 수 한 수가 피할 생각도 없이 공격해 오는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법이었다.

살을 자르려 하면 뼈를 노리고 공격이 날아왔다. 허초 따위는 없었고 모두가 살초이자 실초였다.

쾅!

혈승이 내지른 공격에 혁련휘의 신형이 뒤로 물러나면 소청이 그 자리를 메꿔 창극을 찔러 넣었다.

밀고 당기는 싸움이 계속되었고 주변의 풍경이 세 사람이 뿜어낸 기운에 황폐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혈승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 갔다.

아무리 원정지기를 끌어 올렸다고 하지만 오른팔을 잃어버린 터라 공수가 매끄럽지 않았다.

혈승이 축의 묘리를 통해 공격을 하는 순간 혁련휘가 절묘하게 그 흐름을 끊어 놓았다.

이미 깨달음이 있었으니 축의 묘리를 상대하는 것은 소청보다 혁련휘가 훨씬 더 적합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격돌을 하는 것처럼 허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쩌엉!

혁련휘가 혈승이 뿜어내는 축의 묘리를 막아 내는 사이 소청의 창대가 몸을 파고드는 순간 핏빛 호신강기가 일어나 두 사람을 밀어 버렸다.

‘칫!’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 이길 터였다. 하지만 그의 생명력이 다하기 전에 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제길, 이렇게 되면……!

-휘! 준비해. 길을 만들어 주겠다!

혁련휘에게 전음을 날린 소청이 창대를 휘둘러 반월형의 강기를 수도 없이 쏘아 내었다.

콰콰콰콰콰!

혈승이 소청의 폭격에 가까운 소청의 공격을 피하는 순간 숨을 가득하게 들이마셨던 혁련휘가 혼신의 힘을 다해 주먹을 뻗어 내었다.

휘리리…….

비틀림이 만들어 낸 와류가 혈승을 정면을 덮쳤다.

쿠루루루!

하지만 혈승이 호신강기를 뻗어 내 와류의 회전을 터트려 버렸다.

“우웩!”

되돌아온 반탄력에 혁련휘가 서너 걸음을 밀려나며 검붉은 핏물을 토해 내었다.

필시 내상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그를 걱정할 겨를이 없었다.

호신강기가 터트려졌으니 다시 발현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리라. 재빨리 혈승의 측면으로 파고든 소청이 창대를 휘둘렀다.

쩡!

하지만 혈승이 어느새 손바닥을 뻗어 창대를 막았다.

“크크크, 고작 이런 공격으로는…….”

혈승이 창대를 움켜쥐고 비웃는 순간.

“그런 공격이라면 그렇겠지!”

우우우웅!

강렬한 떨림을 만든 창대에서 섬전같은 기운이 뿜어졌다.

진 천뢰충파 뇌격(雷擊)!

창대를 빠져나온 백회의 뇌기가 허연 빛무리를 토하며 손아귀에서 터트려졌다.

콰앙!

“크윽!”

진한 충격이 혈승의 손아귀를 터트리며 폭발했다.

“허억, 허억…….”

일시적으로 엄청난 내공을 쏟아부어 버린 소청이 공허함을 느끼며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런데.

취릭!

또다시 같은 공격이 날아왔다.

볼이 불에 닿은 듯이 화끈거리고 피가 흘렀다.

그리고 혈승이 강기의 폭격이 있었던 곳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온몸이 피로 물들어 비틀거리면서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크크크, 좋구나. 실로 감탄할 따름이로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단 말인가?

천뢰충파의 폭발력을 견뎌 내고 강기 다발을 몇 번이나 맞고서도 버텨 내었다.

“정말 괴물 같은 노인네네. 좋아.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소청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명문의 한기를 단전으로 쑤셔 박았다. 무리한 기의 운용에 짜릿한 고통이 전해져 왔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쩌저저적!

한기가 사방으로 뿜어져 소청이 밟고 있던 모든 곳을 얼려 버렸다.

취릿!

소청의 몸에 가공할 기운이 모이자 혈승이 이전과 같은 보이지 않는 공격을 했다.

찌이이익!

한쪽 어깨를 젖히며 피하는 순간 가슴이 길게 찢어져 나갔고 소청이 젖혔던 가슴을 끌어당기며 움켜쥔 창을 던졌다.

빙뢰(氷雷) 투창!

콰콰콰콰!

엄청난 한기를 머금은 창이 주변을 얼어붙게 만들며 혈승을 향해 날아갔다.

촤라락!

뒤이어 피풍의를 휘말고 소청이 온 힘을 다해 혈승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마지막 혈. 회음.

거악의 무거움을 가진 기운이 소청의 단전을 채웠다.

“으아압!”

혈승이 날아온 창극을 향해 가공할 장력을 뻗어 내었다.

콰아아앙!

장력과 부딪쳐 터트려진 한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뒤를 이어 파고든 소청의 창이 곧게 찔러져 들어왔다.

“흥! 몇 번이고 막아…….”

터어엉!

그 순간 그의 왼쪽 어깻죽지에 작은 비틀림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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