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74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74화
173화. 개소리하고 있네
유성처럼 밝은 빛 무리가 어두운 밤을 찢어발기며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혈승이 날린 붉은 강기를 터트려 버렸다.
“내 수하를 누가 허락도 없이 건드리라고 했나?”
“아!”
초사의 앞을 가로막으며 표홀히 떨어지는 사내.
패월 진소청. 거짓말처럼 그가 눈앞에 나타났다.
“너, 너는?”
혈승의 미간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후우, 후우…….”
소청이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혈승을 노려보았다.
“잠깐만 기다려라, 혈승.”
“…….”
어찌 알았단 말인가?
어찌 알고 뒤쫓아 왔단 말인가?
혈승이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사이 소청은 초사를 향해 다가갔다.
짝!
소청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초사의 뺨을 때렸다.
“패, 패월…….”
“멍청한 놈!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랬잖아!”
“죄, 죄송합니다.”
“이런 씨…….”
소청은 주름이 가득해질 정도로 콧등을 찡그렸다.
“팔은 어디다 놓고 온 거야?”
“…….”
“멍청한 놈, 병신 같은 놈. 무엇 하러 쓸데없는 짓을 해서는…….”
휑해져 버린 초사의 팔을 보자 마음이 쓰라려 왔다.
“하필이면 오른팔을……. 이래서는 밥도 못 먹을 거 아냐. 밥도…….”
중얼거리는 순간에도 소청의 분노는 점점 더 쌓이고 쌓여만 갔다.
지혈해 피는 멎은 모양이지만 흘러내린 피가 옷을 시뻘겋게 만들어 놓았다.
“어때? 움직일 수 있겠어?”
“예…….”
“그래. 그럼 됐어. 그래도 살아 있으니 됐어.”
“패월…….”
“곧 있으면 휘와 비마대원들이 올 거야. 그들과 함께 멀찍이 물러나 있어.”
“예? 하지만 저자는.”
“알아, 강한 거. 그래도 반드시 팔을 떼 줄게. 너는 한쪽 팔이지만 그는 두 팔과 양쪽 다리를 모두 잃게 될 거야.”
소청이 고개를 돌려 혈승을 노려보았다. 꽉 다문 잇새로 새하얀 송곳니가 날카롭게 빛났다.
푹!
혈승의 강기를 부수고 바닥에 꽂혀 있던 창이 소청의 손에 뽑혀 나왔다.
엄청난 살기가 폭발하듯이 뿜어지자 소청을 중심으로 거센 회오리가 만들어졌다.
쏴아아아.
혈승을 향해 집중된 살기가 나무를 뒤흔들고 예리한 칼날로 변해 나무에 생채기를 만들어 내었다.
드드드드.
시작부터 단중의 화기를 끌어 내려 단전에 응축시키자 대기가 요동치듯이 떨려 오고 바닥에 깔린 낙엽과 작은 돌들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삽시간에 푸른 불꽃에 휩싸여 버린 소청이 마치 어둠을 밝히는 횃불처럼 타올랐다.
“혈승…….”
“…….”
혈승은 소청의 몸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압력과 기세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엄청나다.
절로 마른침이 넘어가고 주름진 등줄기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소청의 주위로 세상이 어그러지고 있었다.
마치 또 다른 공간에 서 있는 것처럼 엄청난 위화감이 들었다.
‘이 정도였던가?’
혈승의 눈동자가 잘게 떨려 왔다.
“홀홀, 대단하구나. 아이야. 정말로 대단해.”
“…….”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비슷한 느낌에 베푼 호의였거늘……. 무척이나 탐나는 인재로다.”
실처럼 가늘어진 혈승의 눈이 소청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어떠냐? 지금이라도 우리의 곁에 서서 이 무림의 정점에 서 보는 것이? 원한다면 뭐든지 주겠다. 재화, 권력, 여인, 그 무엇이든 필요한 만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마종을 꺾고 마천을 손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나의 손을 잡는다면…….”
소청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짜증스럽게 귀를 후벼 팠다.
“뭔 개소리를 중저음으로 하고 지랄이야?”
“…….”
“싸우러 왔으면 개소리하지 말고 덤벼.”
“뭐라고?”
혈승이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랄하고 있네. 뭐? 마천의 손을 잡으라고? 서천맹에서 나를 살려 주었을 때 생각했지. 후에 만나면 한 번은 살려 줄까 하고…….”
“…….”
“근데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역시나 마천에 살려 두어야 할 놈은 하나도 없어.”
“…….”
“민가의 습격, 남궁세가의 만행. 모두가 너의 늙은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겠지. 무슨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너희들은 그냥 쓰레기야. 세상에 절대로 존재해서는 안 되는……. 그리고…….”
소청이 고개를 돌려 초사를 바라보았다.
“초사의 팔.”
“…….”
“지금부터 돌려받을 생각이야. 너의 팔다리를 잘라서!”
“뭣!”
파앙!
혈승이 채 기운을 끌어 올리기도 전에 소청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 이렇게 빠른!’
혈승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소청의 모습이 일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모습뿐 아니라 기척까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뜨고 깜빡이는 순간 그의 머리 위에서 막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허헉!”
허공에 나타난 소청의 눈동자가 푸른 불꽃을 뿜어내었고 곧게 세워진 창이 혈승의 몸을 수직으로 꿰뚫었다.
‘제길!’
벗어나야 했다.
막기에는 늦었음을 깨달은 혈승이 재빨리 지면을 차며 물러났다. 창극이 혈승의 잔상을 꿰뚫으며 대지에 틀어박혔다.
꾸우우우……!
대지가 요동치며 뒤흔들렸다.
“누가 벗어나게 둘 줄 알아!”
소청이 창대가 가득히 머금은 기운을 터트렸다.
진 천뢰충파, 청염!
콰아아앙!
대지가 터져 올랐다.
사방에서 푸른 불기둥이 솟구쳐 오르고 지면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젠장!’
청염의 범위를 완전히 피하지 못한 혈승이 재빨리 가사를 풀어 온몸을 감쌌다.
‘크으윽! 이런 가공한……. 일전의 힘이 전력이 아니었구나!’
서천맹에서 일합을 나누었을 때와는 달랐다.
당시의 소청은 이미 구자겸과의 싸움으로 심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고 온몸의 힘을 쥐어짜듯이 끌어낸 상태였기에 제대로 된 천뢰충파를 펼치지 못했었다.
혈승은 가까스로 청염이 만들어 놓은 충격의 중심에서 벗어나 혈잠의 보포로 몸을 보호했지만 모든 충격을 흡수할 수는 없었다.
가사로 불꽃은 막아 냈지만 외부를 강타한 폭풍의 충격에 내기가 들끓었다.
‘우욱!’
들끓던 내기를 억누르며 혈승이 가사를 회오리처럼 휘돌려 가시지 않은 충격파의 힘을 밀어내고 훌쩍 뛰어올랐다.
휘리릭!
혈승의 손을 따라 붉은 가사가 가공할 기운을 뿜으며 허공에 넓게 펼쳐졌다.
붉은 빛 무리가 사방에 퍼져 나가고 거대한 기운이 대기를 짓눌렀다.
“으하합!”
내력이 실린 기합성과 함께 붉은 기운이 손바닥 모양으로 변해 소청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파라혈수인(爬羅血手印).
쾅! 콰쾅!
거대한 손바닥이 대지를 움푹움푹 짓누르며 상처를 남겼다.
일보월하로 자신의 기운을 빠져나가는 소청의 모습에 혈승의 신형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며 뒤쫓았다.
“합!”
후우우웅!
혈승의 손을 떠난 가사가 거대한 원반이 되어 소청을 쫓으며 닿는 모든 것을 잘라 내었다.
쿵! 쿠쿵!
숲을 이루던 나무들이 잘려 쓰러졌다. 하지만 그 역시 영원하지는 않았다.
콰득!
가사가 회전력을 잃고 아름드리를 넘는 나무에 박혀 축 처지는 순간 피하기만 하던 소청이 방향을 틀었다.
파앙!
“이야압!”
기합성과 함께 쫓아오는 혈승을 향해 쏘아진 소청의 창대에 보름달처럼 거대한 구체가 만들어졌다.
건월식 만월(滿月)의 압살!
하늘에 떠오른 달이 소청의 창대를 따라 세차게 떨어져 내리며 부서졌다.
콰콰콰콰!
기운의 조각들이 쫓아오는 혈승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흥!”
주먹 가득히 기운을 모은 혈승이 휘젓듯이 떨치자 만월의 기운이 모조리 무력화되고 찔러 간 소청의 창대가 튕겨 나갔다.
쩌어엉!
‘크윽!’
창대와 주먹이 닿는 순간 진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막았다.
창술은 놈이 더 뛰어나지만 권각술로는 혈승 자신이 우위라고 생각…….
파라라락.
“……!”
풀어낸 소청의 피풍의가 휘말려 날카로운 창대로 변했다.
그리고 소청과 교차하는 순간 싸늘한 기운이 곧게 뻗어 낸 어깻죽지를 스쳤다.
“크으윽!”
쓰라림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순간 소청의 창대가 혈승의 등 어림을 때렸다.
쿠당탕탕.
균형을 잃어버린 혈승이 바닥을 볼썽사납게 뒹굴었다가 튕겨 오르듯이 몸을 세웠다.
비틀…….
소청의 싸늘한 눈동자가 혈승을 향했다.
“이제 팔 하나.”
“…….”
거리를 물리고 떨어진 혈승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땅바닥을 뒹구는 앙상한 팔.
“크윽!”
혈승이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며 오른쪽 어깨를 움켜쥐었다. 방금 전 스치는 순간 팔 하나가 잘려 버렸다.
“놈…… 감히…….”
혈승은 서둘러 혈도를 눌러 지혈을 하고 소청을 노려보았다.
“…….”
피풍의를 풀어 등 어림에 걸친 소청이 무표정한 얼굴로 튕겨 나갔던 창대를 집어 들었다.
“이제 셋 남았다.”
“……!”
파앙!
지면을 박차고 쏘아진 소청이 혈승의 품을 빠르게 파고들었다.
쩡! 쩌정!
근접한 단창의 공격과 혈승의 권각이 수십 차례 격돌하며 사방을 진하게 울려 놓았다.
휘리릭!
비틀림! 권마의 와류투공이었다.
비록 혁련휘가 흉내 낸 것처럼 엄청난 위력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간간이 혈승의 몸을 때려 놓으며 만든 비틀림이 그의 주름진 살갗을 찢어 놓았다.
“이노옴!”
자꾸 상처가 늘어 가자 혈승이 온몸의 기운을 일시에 터트려 사방으로 뿜어내었다.
마치 혈승의 몸 주위로 거대한 원이 만들어져 늘어나는 것처럼 뻗어 나왔다.
퉁!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얻어맞고 튕겨 나온 소청이 창대를 박아 겨우 몸을 멈췄다.
“카악! 퉤!”
소청이 입안에 고인 핏물을 뱉어 내고 소매로 흐르는 피를 닦아 내었다. 분명 충격이 심했을 테지만 눈동자에 어린 분노와 살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역시 그 정돈 해 줘야지. 그 정돈 해 줘야 짓밟는 맛이 있지!”
혈승의 무위는 여타의 세주들과는 달랐다.
혈승이 일시적으로 뻗어 낸 기운이 소청의 몸 안쪽을 모조리 뒤흔들어 놓았다.
‘씨발…….’
말은 여유롭게 했지만 목구멍에서 솟구치는 핏물에 비릿함이 느껴졌다.
소청은 눈동자로 새파란 살기를 토해 내며 백회의 뇌기를 단전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혈승 역시도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뭐, 이런?”
믿을 수가 없었다.
혈승이 일으킨 것은 지고지순한 위력을 가진 보호막인 호신강기였다.
호신강기는 위급 시에 자신도 모르게 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허!’
위기를 느낀 것이 언제였던가?
그런데 강기를 머금은 공격에 얻어맞고도 고작 핏물을 뱉어 내며 일어나는 소청의 모습에 혈승의 눈동자가 잘게 떨려 왔다.
꿀럭, 꿀럭.
무리하게 기를 뽑아낸 탓에 지혈을 했던 어깨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더구나 이전의 공격만 해도 감히 추측하기도 힘든 폭발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또다시 비슷한 양의 기운이 소청의 몸에서 느껴져 왔다.
“홀홀홀, 역시 대단하구나. 오냐! 온 힘을 다해 싸워 주마!”
혈승의 얼굴에 이상하리만큼 희열이 감도는 순간 피를 뱉어 낸 소청의 눈동자가 새하얀 궤적을 만들었다.
슈우욱!
마치 하얀 실선이 늘어선 것처럼 소청의 신형이 혈승의 몸을 파고들었다.
혈승은 더 이상 잘려 나간 오른팔을 신경 쓰지 않았다.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무시하고 모든 힘을 끌어 올렸다.
스스스…….
어깨에서 울컥이며 쏟아지던 피가 잔뜩 끌어 올린 그의 기운으로 인해 수증기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거센 기세가 혈승의 전신에서 폭풍처럼 쏟아져 나왔다.
측면으로 파고들어 창대를 휘둘러 가던 소청이 방향을 꺾어 물러났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