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65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65화
164화. 쯧, 내 쪽이 나을 텐데
다음 날 오후, 금성희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게 지금…….”
황산 인근 고리꾼에게 수금을 하러 갔던 충헌이 팔다리가 요상한 모양으로 꺾여 돌아왔다.
얼마나 두들겨 맞은 것인지 얼굴은 알아볼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어, 어떤 놈이 감히…….”
금성희는 쌍심지를 돋우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당장에 알아볼 수는 없었다.
대외적으로 문을 걸어 잠갔고 고리꾼의 뒷배에 남궁가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관부에 뇌물을 바치고 은밀하게 연을 맺어 두고 있다고는 해도 민가에 꾸민 일들이 드러나면 형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잘못하면 관에 뇌물을 바친 일까지 드러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밤이 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가모님!”
헐레벌떡 뛰어들어 온 외당의 무인이 급히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또 무슨 일인가!”
“도, 도박장이 털렸습니다.”
“뭐라?”
금성희의 눈에 핏발이 돋아 올랐다.
도박장은 현 남궁가의 가장 큰 수입원 중 하나였다.
더욱이.
“도박장을 운영하던 한등 패는 모조리 의원으로 실려서 갔습니다. 그들의 말로는 습격자는 둘이었다고 합니다. 충헌 무사께서 이야기했던 상인의 모습과 비슷한 듯합니다.”
“…….”
금성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무언가를 알고 있는 놈이다.
놈들의 남궁가의 뒷조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잡아야 했다.
“돈은? 돈은 어찌 되었는가?”
“소식을 듣고 저희가 갔을 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뿌드득.
어금니 갈리는 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흘러나왔다.
“이런 개자식들이…….”
금성희가 분노로 인해 거칠어진 호흡을 가라앉히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순찰당주!”
“예, 가모님.”
순찰당주 조성하가 짧게 대답했다.
“무인들을 준비하세요. 밤이 깊어지면 놈들을 산 채로 잡아 내 앞으로 데려오세요.”
“알겠습니다!”
밤이 깊어 가는 시각.
남궁세가를 빠져나온 수십 명의 복면인들이 도심 외곽으로 향했다.
자칫 많은 수가 움직이면 사람들의 눈에 띌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조성하는 순찰당의 정예만을 선발했다.
“저기냐?”
허름한 객점에 도착한 남궁가의 순찰당주 조성하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이에게 물었다.
“예. 지금 이 층에서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려 객점을 포위하도록 했다.
“혹여 놈들이 도망칠 수 있으니 외곽을 방비하라.”
“알겠습니다!”
무인들이 객점을 둘러싸고 남은 것은 순찰당에서 가장 뛰어난 일곱 명의 검수들이었다.
모두가 검기를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는 뛰어난 고수들이었다.
그들이라면 천지 분간하지 못하고 날뛰는 놈들을 잡기에는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비록 두 놈이라고는 하나 충헌뿐 아니라 도박장을 지키던 수십 명의 무인들을 단번에 무너뜨릴 정도로 제법 실력이 있는 자들이다.”
“…….”
조성하의 말에 복면인들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아무리 중원 무림계에서 버림받은 남궁세가라지만 그들은 여전히 명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가모님께서 산 채로 잡아 오라 하셨다.”
“알겠습니다!”
수하들의 대답에 조성하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범은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알겠습니다.”
“가라!”
명령이 떨어지자 일곱 명의 고수들이 객점의 안쪽으로 날 듯이 뛰어들어 갔다.
“아, 진짜 기다리느라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네. 도박장을 깨부순 지가 언젠데 이제 오는 거야? 기껏 친절하게 정체도 알려 줬더니.”
“…….”
객점 안으로 뛰어든 일곱 검수들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어렸다.
여유롭다.
마치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며 일어난 사내의 얼굴에는 조금의 긴장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빨리 끝내. 다른 곳도 찾아가야 하니까.”
“시끄러워. 얼마 만의 싸움인데 좀 즐겨야지.”
장난스럽게 말하는 그들은 다름 아닌 소청과 혁련휘였다.
금 대인이라는 뚱뚱한 사내로 변한 소청을 두고 일어난 혁련휘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흑룡아를 재선에게 맡기고 왔으니 맨주먹으로 싸울 수밖에…….
“어이, 구경났어? 자, 와 봐. 남궁가의 창궁검식이 어떤지 좀 구경 좀 하게.”
혁련휘의 말에 검수들의 눈동자에 옅은 노기가 생겼다.
“감히 우리 일곱을 앞에 두고 검조차 들지 않다니. 알량한 무공을 믿고 까분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해 주마!”
팟!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곱 검수들의 검이 유려하게 뽑혀 나왔다.
취리릿!
발도와 동시에 뻗어 온 일곱 개의 검격이 매서운 검기를 머금고 혁련휘를 공격했다.
주먹을 움켜쥐고 자세를 취했던 혁련휘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슈슈슉!
한 발을 떼며 몸을 비트는 순간 혁련휘의 몸이 버드나무처럼 흔들렸고 일곱 개의 검격이 모조리 허공을 베었다.
“……!”
정확히 다섯 발자국.
다섯 발자국만에 위치가 바뀌었다.
혁련휘가 어느새 그들의 등 뒤에 다가와 있었다.
들고 내쉬는 호흡 소리에 등줄기로 소름이 돋아 오른 무인들이 일제히 몸을 틀며 검을 휘둘렀다.
따앙!
혁련휘의 주먹이 가장 빨리 다가온 검면을 때려 내자 쇳소리가 귀청을 찢어 놓는다.
“어헉!”
순간 살기가 진하게 담긴 혁련휘의 주먹이 곧게 뻗어졌다.
혁련휘와 가장 가까웠던 무인, 추생의 복부를 파고든 주먹이 마지막 순간에 비틀어졌다.
파앙! 휘리릭!
새우처럼 꺾어졌던 추생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며 바람개비처럼 회전했다.
“허헙!”
나머지 무인들은 급히 뻗어 내었던 검격을 회수하며 물러났다.
“이, 이놈! 감히 추생을 방패로 이용하다니!”
거센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 추생의 모습에 검수들이 노성을 질러 대었다.
“아, 미안.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실전에선 처음 써 보는 거라 조절이 잘 안 되네.”
싸우는 와중임에도 혁련휘가 손을 들어 사과했다.
방패로 쓸 생각 따위는 없었다.
굳이 그럴 필요성이 없는 것이 습격해 온 일곱 명의 검수들은 혁련휘와 소청에 비해 너무 약했다.
조금 즐길 생각이 아니라 죽일 생각이었다면 그들이 객점으로 뛰어든 순간 목을 잘라 버렸을 테니까.
“좀 더 뻗은 상태에서 비틀어야 하나? 시기가 애매하네. 야 다시 와 봐.”
마치 수련이라도 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조롱당하는 듯한 기분을 느낀 남궁가의 무인들의 몸에서 짙은 살기가 뻗어져 나왔다.
“놈! 감히 우리를 앞에 두고 오만을 부리다니……. 진을 형성해라! 호위를 죽이고 상인 놈만 데려간다!”
남은 무인들이 혁련휘의 주위로 여섯 방위를 점하며 검을 휘둘렀다.
육방을 점한 무인들의 검격이 물 흐르듯이 연계되어 혁련휘를 공격했다.
하지만 객점 안을 가득 채운 검기 중 어느 하나도 혁련휘의 몸에 상처를 내지 못했다.
반보의 움직임을 반복하며 검격과 검격의 작은 틈에 주먹을 찔러 넣는 혁련휘의 모습을 소청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특이한 움직임이었다.
주먹이 닿는 순간의 비틀림이 묘한 와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특이하군. 새로운 무공인가?’
소청이 혁련휘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보는 사이 싸움이 끝나 가고 있었다.
쩍, 휘리리리.
“크윽!”
가슴에 주먹이 박히는 순간 옷자락이 선명한 회오리를 만들었고 맞은 사내가 피분수를 뿜어내었다.
너무 강하다.
고작 상가의 호위라는 자가 자신들을 어린아이 다루듯이 하고 있었다.
검(劍)은 혁련휘의 주먹에 휘고 부러졌고 모두가 회오리와 같은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궁가의 여섯 검수들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고 그들의 시선이 똑같은 곳을 향했다.
상인.
살집이 비대한 상인을 노려야 한다.
그를 인질로 잡고 호위를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했다.
검수들은 눈짓으로 뜻을 모으고 혁련휘를 향해 검격을 뻗었다.
“다시 해보자는…….”
그런데 혁련휘가 주먹을 움켜쥐는 순간 검수들이 일제히 몸을 빼며 이 층을 향해 솟구쳤다.
“쯧, 내 쪽이 더 나을 텐데.”
혁련휘가 움켜쥐었던 주먹을 풀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무인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성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호위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제 상인만 잡으면…….
쩌억!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무인이 무언가를 정통으로 얻어맞고 날아간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튕겨 나왔다.
“은신자다! 은신자에 주의해라!”
그 순간 소청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은신자 같은 소리 하네.”
턱! 콰직!
몸을 돌린 소청이 앉은 채로 날아온 검격을 슬쩍 피하고 팔을 잡아당기며 팔꿈치로 찍어 버렸다.
당겨지는 힘과 팔꿈치의 공격이 합해져 무인의 얼굴을 함몰시켜 버렸다.
“거 시간 끌지 말라니까.”
소청이 핀잔을 주며 무인들을 향해 일어났다.
순식간에 둘이 당해 버리자 공격하려 했던 이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멈춰 버렸다.
“사, 상인이 어찌 그런…….”
“누가 그래?”
“뭐?”
“내가 상인이라고 누가 그러더냐고?”
“…….”
싸늘하게 웃은 소청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콰직! 팟! 쩌어억!
그것이 다였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했다.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고 잔인하게 뼈가 부서지는 소리만 들려왔다.
뒤에 있던 두 명의 무인이 동시에 쓰러졌다. 쓰러진 모습을 보니 절명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 이럴 수가……. 분명 상인과 호위라고 했는데…….’
정보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그들 일곱은 남궁세가의 순찰당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수였다.
아무리 순찰당주 조성하가 더욱 뛰어난 고수라고 하지만 이 정도의 고수들이라면 밖에 있는 이들은 모두 당할 것이 분명했다.
‘아, 알려야 해, 이자들은 우리 상대가 아니야.’
무인이 급히 몸을 빼내려는 순간 소청이 한 걸음을 내디뎠다.
턱!
그리고 어느새 그의 뒤에 있던 동료의 몸을 잡고 있었다.
“꼬라지 보니 도망치려고?”
뿌드득!
“끄아아아악!”
소청은 어깨를 잡고 무릎을 밟아 버렸다. 역으로 꺾여 버린 다리가 덜렁거렸다.
우두둑!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팔꿈치마저 역으로 접어 버렸다.
“끄아아아!”
“거 더럽게 시끄럽네.”
쩍! 콰직!
그리고 주먹으로 얼굴을 찍었다.
그 한 방으로 동료의 의식이 끊어졌다. 얼굴뼈가 함몰되었으니 살았을 리가 없다.
무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손으로 뿌려진 핏물이 이 층 바닥을 흥건하게 적셔 놓았다.
“이, 이런 잔인한!”
“뭐? 잔인?”
무인의 말에 소청이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너희들도 우릴 죽이거나 잡아가려고 온 거잖아. 그럼 시작부터 목숨을 걸었어야지.”
“…….”
소청이 이죽거리며 다가왔지만 무인은 움직이지도 못했다.
겁이 났다. 눈앞에서 당한 동료의 모습에 손끝이 떨려 왔다.
그리고 주먹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콰직!
“반항을 하고 있나 보군. 어째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너무 심각한데?”
객점 밖에서 혹시나 모를 도주에 대비하고 있던 조성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모에게 받은 명령은 그들을 산 채로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하긴 몇 군데 부러진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이야 없겠지. 어차피 가모님께 죽게 될 텐데…….’
조성하가 피식 웃는데.
와장창!
창문이 박살 나며 무언가 튀어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