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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58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58화

157화. 정말 엮이고 싶지 않은데……

 

 

 

그날 저녁 해가 넘어가는 시간.

불이 밝혀지기 시작한 정사 연맹의 성곽.

망루에는 창검을 든 관의 척후들이 매서운 눈으로 사방을 쓸어 보았고, 성내의 전각 입구마다 관군들이 지키고 있었다.

첨사 이상백 예하의 장수들은 관병 오백을 이끌고 돌아가며 성내를 순찰하고 있었다.

‘이것 봐라? 지붕도 지키고 있었군.’

야행복을 갖추어 입고 은밀하게 성벽을 넘어온 소청은 의기천추(義氣千秋)라는 글귀가 쓰인 깃대 위에 서서 관군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바람에 기가 펄럭이고 깃대가 요동을 쳤지만 한 발을 딛고 선 그의 모습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그의 시선이 닿은 지붕에는 관군들 중 제법 은신이 뛰어난 자들이 숨어 언제든 활시위를 당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쯧쯧, 이런다고 누가 못 숨어드냐? 내가 왕년의 신투였다 이놈들아.”

소청이 나름 열심히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관부의 무인들을 비웃었다.

“자, 그럼 일단…….”

파라락!

거센 바람이 불어 깃대가 강하게 휘었다 돌아왔을 때 소청의 모습은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았다.

 

* * *

 

제갈휘문은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청초각 안으로 들어온 무장들이 도무지 나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통이각이 점거된 이후로 중원 각지에서 올라오던 연락이 모조리 끊어져 버렸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그들 앞에 무언가를 꺼내 놓으면 일일이 확인하며 참견을 하고 있었다.

밤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학사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그들은 청초각에서 잠이라도 잘 모양인지 아예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괜한 분란을 만들 수 없으니 긴 한숨만 내쉬며 얼굴을 찌푸릴 뿐이었다.

“제갈 군사께서도 그만 들어가서 쉬는 게 어떻소? 딱히 할 일도 없어 보이시는데.”

청초각을 지키는 무장 고독수의 말에 제갈휘문이 속내를 감춘 채 대답했다.

“아닙니다. 어찌 군사가 되어서 함부로 자리를 뜨겠습니까? 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갈휘문이 차를 끓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재미있군요. 일개 무림의 학사 따위가 마치 군문의 총사처럼 말하다니…….”

고독수가 빈정거렸지만 제갈휘문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과의 드잡이질은 심력 낭비에 불과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

괜한 시비를 만들어 자신을 몰아세우고 밖으로 내보낼 생각일 것이다.

자신이 나가고 나면 분명 청초각 내에 있는 정보들을 모조리 살피려는 것이 분명했다.

버티는가 버티지 못하는가의 싸움이었다.

그때.

-어이, 고생이 많군.

“…….”

소청의 말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자 제갈휘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어딘가?

-머리 위.

머, 머리?

제갈휘문은 무장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찻잔을 들고 창문 쪽으로 다가가면서 천장을 힐끗거렸지만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후훗!’

제갈휘문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청초각의 창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전음을 보내는 사이 입 모양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은신술은 여전하군.

-그나저나 어떻게 된 상황인 거야?

-이번 일은 나도 잘 모르겠네. 아는 선을 통해서 관에 확인해 보았지만 도독부에 접근이 쉽지 않았어.

제갈세가는 예로부터 학사를 배출해 온 가문인지라 그들의 끈은 관부에도 상당 부분 닿아 있었다.

하지만 감금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그들과 연락을 주고받기도 요원한 실정이라 그 끈을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었다.

-도독부라…….

-황제의 직인이 찍히지 않은 명령서였네. 도독부의 직권이라는 것이겠지.

-들었어.

-응? 관에도 아는 사람이 있었던가?

-…….

갑자기 소청의 말이 끊어졌다.

순간 방효곤이 생각나는 바람에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이상백이 황학루에 있다.

-황학……. 하면 하오문이?

-그래, 어떤 여인을 만났다고 하더군.

다행이었다.

모든 것이 막혀 있었지만 소청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으로 든든했다.

-음……. 설마 이 일이 마천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관을 움직이면 우리도 제약을 받지만 저들도 움직이기 쉽지 않을 텐데?

-글쎄. 그건 조사해 봐야 알 일이지. 어쨌든 무언가 꺼림칙해. 초사와 비마대를 이상백에게 보냈으니 무언가 걸려들겠지.

-그렇군. 자네들이 할 일이 많군. 언제나처럼.

-쳇. 말만. 그보다 도독부에 대해 알고 있나?

-도독부를?

-그래. 이상백을 찾아온 여인이 도독부에서 나온 것 같다고 했어. 이상백이 지시를 받을 만한 곳이 어디가 있지?

-흠, 호남성이라면 아마도 후군 도독부에 속해 있겠지. 수장은 척승광 도독이네.

-척승광 도독? 좋아, 그쪽을 파 보면 되겠군.

-미안하네. 내 좀 더 많은 정보를 알아봐 주고 싶지만……. 안타깝군.

-뭐 언제는 도와준 적이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군.

소청이 빈정거렸지만 제갈휘문은 그저 웃기만 했다.

맞는 말이다.

언제나 소청은 자신의 예상보다 빠르게,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이번 황보가의 사태도 그가 적절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별다른 동요 없이 끝날 수 있었다.

-그보다 사건 현장에 대해서도 알아보아야 하네. 우리 쪽에서도 조사를 하고 있었지만 관이 끼어들면서 조사가 중단되었고 그들이 지키고 있어서 연락도 닿지 않고 있네. 만약 저들이 조사 과정에서 일부를 누락하거나 조작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네.

제갈휘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게 어렸다.

-안타깝군. 이럴 때 육부의 사람이라도 알고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인데…….

-…….

또다시 소청의 전음이 끊어졌다.

딱 한 사람이 떠올랐다.

제길, 짜증 나게 왜 자꾸 방효곤이 떠오르는 것인지…….

하지만 제갈휘문의 말처럼 도독부를 상대하자면 그들과 언제나 척을 지고 있는 육부를 움직이는 것이 제일 효율적이었다.

그리고 방효곤은 형부상서의 큰아들이었다.

만약 이번 관부의 움직임이 마천과 관련이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움직임마저 제약하면서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마찰 없이 이 사태를 끝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러자면 그의 도움이 절실했다.

제길……. 정말 엮이고 싶지 않은데…….

-알았어. 일단 그쪽을 이용해 보지.

-정말로 관부의 인물을 아는 모양이군.

-있긴 한데…….

새삼 놀라웠다.

이상하게도 소청은 자신보다 항상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마천에 대한 것들도 그렇고 이제는 관부의 인물들까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도대체 이 친구의 정체는 뭘까?’

오랫동안 해 온 고민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소청이 도움 될 만한 누군가를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정말 다행이군!

다행은 제기랄, 사람 속도 모르면서 그렇게 화색이 깃든 목소리를 하지 말란 말이야!

은신해 있는 소청의 얼굴이 소태를 한 움큼이나 입에 문 것처럼 찡그려졌다.

물론 아무도 모르겠지만…….

-참, 혁련 소련주와 연락이 되는가?

-아니. 왜?

-그에게 연락해서 연맹으로 오는 것을 막아 주게. 혹여 관과 마찰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

-이보게, 소청?

한참이나 소청이 말이 없자 제갈휘문이 허공을 향해 전음을 날렸지만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허 참, 귀신같구먼.’

제갈휘문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정상적인 경우가 없었다.

나타날 때도 사라질 때도…….

‘또 그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답답했지만 너무나 든든했다.

소청이라면 분명 이 사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 *

 

찌이익! 피잉!

“와!”

아무것도 없는 시위가 당겨졌다가 빠르게 놓아졌다.

그리고 이십여 장 밖에 떨어져 있던 작은 옹이 그릇이 부서졌다.

“대단합니다. 무형시(無形矢)라니.”

방효곤의 궁술을 처음 접해 본 악이군은 그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놀랍지? 나도 처음에는 정말 반신반의했다니까?”

황보인이 칭찬하고 수련을 하고 있던 멸절사태와 승혜까지 놀란 눈을 하자 방효곤이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무림인들은 웬만하면 활을 쓰지 않는다.

물론 쓰긴 하지만 부수적인 무기일 뿐이었다.

멀리서 상대를 공격하기에 치졸하다고 생각했다.

해서 무림에 궁술을 전문적으로 익히는 무인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방효곤이 보여 준 궁술은 감탄을 자아낼 만했다.

보여도 막지 못할 것인데 보이지 않는 화살이라면 전쟁이 벌어졌을 시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질 것이 틀림없었다.

“저 친구는 궁술뿐 아니라 무공도 일절이지. 지금이야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정말 당해 내질 못했다니까.”

황보인의 계속된 칭찬에 방효곤이 겸양을 떨다가 슬쩍 째려보았다.

“지금은 이길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응? 핫핫핫. 당연하지. 군문에만 있던 자네가 상대가 되겠는가?”

“호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해보겠는가?”

관직에 있기는 해도 방효곤 역시 무인이었다.

겨루어보지 않고 승부를 판단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슬쩍 바라본 곳에 승혜라는 여인이 있었다.

참 예쁜 여인이었다.

한순간에 마음을 빼앗길 정도로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며칠 함께해 보니 심성이 곱고 바른 여인임을 알 수 있었다.

원래 사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예쁜 여인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잘 보이고 싶은…….

더욱이 은근히 마음까지 가는 상대라니…….

‘속가라니 가능성이 있을지도……. 애는 한둘 정도가 괜찮을라나? 아니지, 여럿이라도…….’

방효곤은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뭘 쪼개?”

“응? 아, 아니야.”

황보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방효곤이 어색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물론 그사이에도 승혜의 눈치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좋아, 그럼 오랜만에 옛날에 졌던 복수도 할 겸 한판 어우러져 볼까?”

“좋지!”

둘은 호기로운 표정으로 연무장에 섰다.

“타앗!”

황보인의 발전된 천왕삼권이 펼쳐지자 방효곤은 군문의 권각인 격술(擊術)으로 응수했다.

쩡! 쩌정!

내공이 없이 초식만을 겨루는 둘의 격돌임에도 강렬한 파공음이 만들어졌다.

초저녁 볼거리에 진가 표국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순식간에 연무장 주위가 사람들로 빼곡해졌다.

황보인의 무공은 오존에 근접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었지만 방효곤의 무공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애초에 군문의 무공은 적을 효과적으로 살상하기 위한 것으로 화려한 변화보다는 파훼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대단하군요. 거의 호각입니다.”

승혜가 놀란 표정으로 감탄하자 멸절사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공을 사용했다면 황보 공자가 우세일 터지만 초식만으로는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구나. 대단해. 군문의 무공이 중원 무학을 집대성했다더니 실로 놀랍구나.”

하지만 시간이 흘러 밤이 깊어 갈수록 방효곤의 패색이 짙어졌다.

“뭐 하나? 이거 단련을 게을리했나 본데?”

승기를 잡아 몰아붙이며 황보인이 약 올리듯이 웃자 수세에 몰린 방효곤이 짜증을 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후웅!

황보인의 주먹이 틈새를 파고들며 명치를 노렸다.

이겼다는 생각에 움직임이 커지는 순간 방효곤의 손이 활짝 펴져 부드럽게 그의 주먹을 휘감았다.

‘어?’

터엉!

순간 내질러졌던 주먹이 밀려 나가고 부드럽게 휘어진 방효곤의 손바닥이 황보인의 가슴에 닿았다.

턱턱.

“…….”

두 발자국.

자신이 밀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황보인이 멍하니 방효곤을 바라보았다.

순간적으로 무공이 바뀌었다.

마치 나비를 안듯이 부드러운 움직임을 가진…….

“포접공(抱蝶行)?”

황보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포접공은 군문의 무공이 아니라 동창의 무인들이 익히는 살상용 무공이었다.

“호오? 안목이 제법이구먼. 어떻게 알았나?”

방효곤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의 물음이 대답이나 다름없자 황보인이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치사하게.”

“어허, 치사하다니. 승부를 인정하지 않을 셈인가?”

“시끄러워. 근데 동창의 무공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잊었나? 전에 동창의 영입을 제안받았던 나라고. 그때 첩형관(貼刑官) 관국성 대인께서 나를 설득하시면서 주신 무공이지. 핫핫핫.”

방효곤이 허리에 양팔을 올리고 기분 좋게 웃었다.

“됐어! 다시 해!”

“싫네.”

방효곤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왜!”

“다시 하면 질 것 같거든.”

“…….”

너무나 깔끔한 대답에 황보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내가 이겼으니 이제 다신 안 할 것이네. 핫핫핫!”

치사하기 짝이 없는 방효곤의 모습에 황보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사람들이 둘의 모습에 즐거운 표정으로 웃었다.

“뭐 하냐?”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악이군이 화들짝 놀랐다.

“어,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좀 전에 황보인이 명치 맞고 물러날 때부터.”

“아, 그게 방형께서 포접공을 사용하시는 바람에…….”

“흠. 그래?”

포접공이라는 말을 듣자 소청이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형부뿐 아니라 동창과도 관계가 있단 말이지?

엮이고 싶진 않지만 정말 쓸모 있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기억만 없다면…….

“근데 졌단 말이지? 관부의 무인에게? 나의 별동대가?”

소청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턱을 쓸자 악이군은 왠지 모를 소름에 재빨리 변명했다.

“그, 그게 졌다기보다는 황보 형이 거의 우세였는데…….”

“어쨌든 졌다는 거군. 앞으로 마천의 더 강한 자들과 싸워야 하는데 관부의 무인 따위에게 지다니. 역시 수련이 필요해, 수련이……. 좀 더 강도 높은…….”

“…….”

망할 황보인, 왜 져 가지고…….

방효곤에 대한 소청의 앙금을 모르는 악이군의 얼굴에 울상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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