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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94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94화

193화. 오태산으로 향하는 자들 (4)

 

 

 

 

“어떤 인물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섣부르게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적의 위치를 확인하면 반드시 신호를 보내야 합니다.”

“알겠다.”

한 달 동안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적의를 넘어 이미 끈끈한 정이 생긴 그들은 소강을 동생처럼 대했다.

소청이 대장이었지만 별동대는 은연중에 함께 훈련한 소강을 조장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은……. 안 그래도 마천을 빨리 만나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나는 곧장 남서쪽으로 내려가겠다.”

악이군이 피식 웃으며 창대를 휘돌려 잡고 방향을 선택했다.

악이군을 필두로 별동대의 무인들이 각자의 방향을 잡았고 마지막으로 승혜가 소청을 바라보았다.

거칠게 호흡을 몰아 내쉬는 그는 조금 안정이 필요했다.

얼마 전 자신도 느꼈던 바가 있었다.

극도의 분노에서 오는 심마(心魔).

“이 공자, 대장을…….”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할 말이 아니라는 생각에 말을 삼켰다.

누가 누구를 부탁한단 말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진소청이었다. 그는 이미 무림 최강의 자리에 다가서 있는 무인인데…….

하지만 소강이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안정을 찾으시면 저희도 곧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음.”

승혜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아무도 택하지 않은 서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우, 우리도 돕겠소.”

방효곤이 뒤이어 움직였고 초사도 소강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움직였다.

모두가 떠난 뒤 소강은 소청을 바라보았다.

“형님…….”

“후우, 후우…….”

소청은 여전히 자신의 분노를 완전히 삭여 내지 못하고 있었다.

 

* * *

 

“이 소리는?”

강을 건너 북쪽으로 달리던 아달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멀지 않은 곳이었다.

소강이 만들어 낸 천뢰충파의 폭음이 산자락의 메아리를 타고 선명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아달타,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서둘러 오태산으로 향해야 한다. 진소청을 만나기 전에 구궁천살진을 구성해야 한다.”

“알겠다.”

마승 라무트의 말에 아달타가 이내 관심을 끊었다.

구궁천살진(九宮天殺陣).

마궁이 가진 비기 중의 하나로 불가가 아닌 밀교에서 전승된 그것이라면 아무리 강한 진소청이라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 자신했다.

하지만 아달타는 무언가 불안했다.

메아리를 타고 보이지 않는 정도의 거리를 날려 올 충격음이 흔할 리는 없었다.

그런데 다시 걸음을 재촉하려던 아달타의 기감에 무언가 섬찟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들을 향해 고강한 기운을 품은 무언가가 쾌속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적이다. 모습을 숨겨라!”

아달타의 외침에 마승들이 일제히 숲을 향해 뛰어들었다.

파학!

나뭇가지를 밟으며 나타난 사내.

옅은 살기를 머금은 그는 조금 전 아달타와 마승들이 있던 곳에 멈추어 섰다.

싸늘한 눈빛으로 주위를 노려보는 사내는 다름 아닌 악이군이었다.

“쥐새끼들…….”

악이군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주변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자들의 섬뜩한 기운.

마천이다.

그들이 찾고자 했던 마궁의 족속들이 확실했다.

비릿한 미소와 함께 그가 창대의 끝을 잡음과 동시에 팔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지이익.

내디딘 앞발이 흙을 밀어내는 순간 탄탄한 자세가 만들어졌다.

“마냥 숨어서 지켜볼 참이라면…… 내가 가지!”

깊게 들이마신 숨에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순간 온 힘을 주어 끌어당긴 창대가 빠르게 원을 그렸다.

후우웅!

“피해라!”

창대의 끝을 빠져나온 기운이 거대한 원형의 칼날을 그리고 사방으로 확장되었다.

우두둑! 쿵! 쿠쿵!

순식간에 악이군의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모조리 베여 나갔다.

그리고 마치 공터처럼 변해 버린 그곳에 아달타와 마승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네놈들이군.”

“…….”

악이군의 일격에 아달타가 가늘게 뜬 눈으로 쏘아보았다.

강하다.

하지만 진소청은 아니었다.

기세가 거칠게 뻗어 나오긴 했지만 모자랐다. 서천맹의 전투에서 혈승과 싸우는 그를 본 적이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나? 악가의 대공자이자 현 별동대원의 한 사람인 악이군.”

“악이군.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군.”

“이제부터 듣게 될 거야.”

악이군이 이죽거리며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비켜라. 앞을 막은 것을 생각하면 짓이겨 버리고 싶으나 지금은 너와 드잡이질을 할 생각이 없다.”

“나도 비키고 싶은데……. 네놈들이 사람을 좀 잘못 건드려 놔서 비킬 수가 없는 입장이다. 그리고 근래에 마천이라면 아주 이가 갈리기도 하고…….”

“…….”

악이군이 한숨을 쉬며 품에서 꺼낸 신호탄을 당겼다.

피융! 퍼엉!

“신호……탄?”

“그래. 이제 올 거거든. 너희 목을 베 줄, 아니 아마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악이군이 피식 웃으며 한 말에 아달타가 눈가를 씰룩거렸다.

“동료를 부른 모양이군. 하나 그만한 시간이 있을까?”

“동료? 웃기는 소리 하네. 사신이 온다니까.”

“…….”

악이군의 말이 자꾸만 신경을 거슬려 왔다.

그와 계속해서 말을 나누는 건 그저 시간 소모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말이 많은 놈이군. 서둘러 치우고 이동한다.”

아달타의 싸늘한 명령에 마승들이 손가락을 세우며 악이군을 향해 몸을 날렸다.

“크크크, 새끼들. 마음 같아서는 다 죽여 버리고 싶은데…… 내 몫이 아니라서……. 난 시간만 좀 끌면 되거든!”

파앙!

지면을 박차는 순간 악이군의 신형이 쭉 하고 늘어나듯이 쏘아져 나왔다.

‘빠, 빠르다!’

비단 빠른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서 쏘아진 창극이 수십 개의 잔영을 만들어 내며 찔러 들어왔다.

허초가 없는 절예.

갈라진 창극의 잔영이 모조리 실초이자 살초였다.

땅! 따다당!

생각지도 못했던 속도와 공격에 아달타가 창대를 튕겨 내며 빠르게 물러났다.

막지 못한 창극이 그의 좌우에 아릿한 상처를 만들어 내었다.

“감히!”

겨우 물러난 아달타가 코끝을 찡그렸다.

놀란 것은 아달타뿐만이 아니었다.

악이군조차도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는 지경이었다.

움직임.

찰법의 속도와 예리함.

‘어떻게 된 거지?’

실전은 처음이었다.

소청에게 수련을 받은 이후로 별동대원과 수많은 대결을 벌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족쇄를 차고 싸우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생사투처럼 싸웠으나 생사투가 아니다.

동료를 죽여서는 안 되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죽이는 싸움.

족쇄라는 것을 끊어 버린 그의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했다.

확장된 기감은 자신을 둘러싼 마승들의 움직임이 머리에 그려지게 했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그의 살의는 온몸의 기운을 배가시켰다.

한계점을 오가며 수련의 결과가 이토록 기분을 좋게 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하아, 이거 정말 이렇게 흥분되어서는…… 다 죽여 버리고 싶잖아.’

악이군의 눈동자에 희열과 함께 엄청난 전의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을 음미하고 있는 악이군의 모습을 노려보는 아달타의 몸에서 살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마치 자신들을 앞에 두고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제법이군. 아주 제법이야. 진소청을 만날 때까지는 기다리려 했는데…….”

기운을 끌어 올리는 아달타의 눈동자가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승들이여. 힘을 개방하라!”

아달타의 외침에 마승들의 몸에서도 막강한 기운이 악이군을 향해 뻗어져 나왔다.

어? 하는 기분이랄까?

갑자기 아달타와 마승들의 눈빛이 변하는 순간 그들의 기세가 증폭되었다.

하지만 크게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자신이 있었다.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취리릭!

악이군은 창대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마승들을 향해 걸어갔다.

“몸에 전율이 일어나서 도저히 못 참겠다. 뭐 어때? 죽이지만 않으면 되지.”

악이군이 씨익 웃었다.

“네놈 따위가 우리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래. 떼거지로 덤벼 봐!”

파앙!

천천히 걷던 악이군의 걸음이 순간적으로 속도를 더했다.

그리고 그의 창이 엄청난 속도로 뻗어 나왔다.

핏! 피피핏!

오로지 찰법에 국한된 전진 공격법. 이전과 같은 공격이었다.

빠르기는 하지만 너무 직선적이었고 직선은 허점이 많았다.

“이놈!”

퓨푹!

아달타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찰법을 피해 악이군의 측면으로 파고들어 휘두른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옆구리에 악이군의 창극이 박혀 있었다.

“큭!”

공격법이 변했다.

어떻게 움직인 것인지 보이지도 않았다.

악가의 창법은 원래 찌르기에 치중한 공격법이었다.

나서며 찌르고, 물러나며 찌른다.

신음을 흘리는 아달타를 대신해 마승의 공격이 이어지고 악이군이 훌쩍 물러나 창극에 묻은 피를 떨어내었다.

“멍청이. 누가 찌르기만 계속할 줄 알았어?”

악이군이 싸늘하게 웃었다.

그의 변화는 소청에게서 기인한 것이었다.

악가의 창법이 가진 장점을 바꾸기 위해 수도 없이 구타를 당했고 오랫동안 배워 온 창법에서 변칙을 만들어 내었다.

“뭐 해? 나를 죽이려는 거 아니었어?”

악이군이 창극을 까닥거리며 그들을 도발했다.

“이 죽일 놈!”

거친 욕설과 함께 마승들이 일제히 악이군을 향해 덤벼들었다.

“좋아!”

콰드득! 쾅! 파팍!

마승들의 주먹과 악이군의 창이 쉬지 않고 어우러졌다.

한 명, 한 명은 그리 대단할 것이 없었지만 마승들의 연계기는 생각보다 뛰어났다.

자신감은 넘쳐흘렀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대단하군. 수뇌도 아니고 고작 마궁의 승려들이 이 정도라니…….’

싸울 순 있으나 이길 수 없다.

그리고 약간 밀리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우세를 점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조금씩…….

뛰어난 성취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십수 명과 동수를 이루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악이군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아달타와 마승들은 오랫동안 혈승이 심혈을 기울여 기른 마궁의 최정예였다.

그들 전체가 진을 이루어 만들어 내는 연환 공격은 마천의 세주에 버금갈 정도였다.

‘제길!’

악이군의 눈이 신광을 토했다.

온몸의 힘을 끌어 올린 악이군의 창술에는 쾌속함과 부드러움이 담겨 있었다.

찌르기에 베기가 더해지고 이전보다 빨라진 보법의 속도가 공수 전환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한 손으로 길게 찌른 창날이 마승들의 사이를 파고들었다가 거칠게 휘어지며 좌우를 베어 내었다.

서로 교차하며 좌우를 노리고 들어오는 마승들의 주먹에 악이군은 지면을 박차고 훌쩍 뛰어올랐다.

파파파팍!

마승들의 머리 위에서 찔러진 화려한 창극에서 유성우가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쾅!

빗살처럼 내리꽂힌 유성우에 지면이 우박이라도 맞은 것처럼 파헤쳐졌다.

“크윽!”

한 명의 마승이 창날에 찔려 멈칫 하는 순간 틈이 생기고 악이군이 빠르게 그 틈을 파고들었다.

포위당해 싸우는 것보다는 벽을 등지고 싸우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에 아름드리나무를 등 어림에 방패 삼아 자리를 잡았다.

쩌어어엉!

하지만 그건 아달타와 마승들에게는 얕은 수밖에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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