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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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93화
192화. 오태산으로 향하는 자들 (3)
아달타와 마승들이 관병들의 눈을 피해 건널 만한 곳을 찾는 사이 그들을 뒤쫓아 온 초사와 방효곤이 나루에 도착했다.
그들 역시 최단거리를 따라 달려왔으니 같은 나루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이곳에서 강을 건너갑시다.”
“예.”
방효곤은 나루터의 관병들을 향해 다가갔다.
“뉘시오?”
관병이 먼지투성이로 변한 방효곤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일세.”
방효곤이 품에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패를 꺼내 내밀자 관병들이 급히 군례를 올렸고 수장인 듯한 관인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혹, 감찰어사 방효곤 님이십니까?”
“어? 나를 어찌 아오?”
관병이 자신을 알아보자 방효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에서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방효곤 어사께서 오시면 필요한 만큼 지원을 아끼지 말라 하셨습니다.”
“거참…….”
방효곤은 의아할 따름이었지만 관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관병들의 수장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금마강 사건 이후로 관의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는 방효곤이었다.
원래부터 황제에게 활을 하사받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일개 감찰어사가 군후의 신분에 있는 자를 잡아들였으니 그 소문이야 오죽하겠는가?
더욱이 형부상서의 아들이었다.
본인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 모르는 눈치였지만 지금 방효곤의 위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였다.
그러했기에 그가 무한성에 협조를 요청함과 동시에 각 성에서 강을 모조리 수색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관병들을 내놓은 것이다.
물론 본인은 알지 못하지만…….
“강을 건너실 겁니까?”
“그렇소.”
“그럼 저 천호장 고택수! 당장 배를 준비하겠습니다.”
“…….”
곧 잊힐 이름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아, 고 천호장 고맙소.”
“별말씀을!”
배는 순식간에 준비되었다.
“대단하시군요. 이리 빨리 배가 준비될 것이라고는…….”
“그러게 말이오. 나도 뭐가 뭔지…….”
고개를 내저은 방효곤과 초사는 서둘러 배에 올랐다.
달려오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던 방효곤은 그제야 지친 몸을 쉬게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대단하시오. 어찌 그런 경공을 익힌 것이오?”
“패월 덕분입니다.”
“아니, 진 공자가 가르쳤단 말이오?”
“예. 은신술, 살인술, 경공술……. 배운 게 하도 많아서 다 말씀드리지 못하겠군요.”
“대단하군요.”
방효곤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진소청이 대단한 위인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분명 그가 본 초사의 경공은 천하제일이라 불러도 될 정도였는데.
“하면 진 공자의 경공이 훨씬 더 뛰어나단 말이오?”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패월의 경공은…….”
“허!”
방효곤은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사건이 종결되면 졸라서라도 한 수 배워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진소청이 그의 마음을 알았다가는 학을 뗄 일이었지만…….
* * *
“어?”
모자라기 짝이 없는 자신의 제자들(?), 아니 별동대의 무인들이 살의를 품고 서로를 죽일 듯이 대련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소청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찍찍.
어디서 많이 본 쥐 새끼 한 마리가 자신의 곁에 다가와 킁킁거렸다.
“적선데?”
의아했다.
적서를 사용하는 집단은 자신이 알기로 비마대뿐이었다.
하지만 비마대는 지금 제갈휘문의 밀명을 받고 정사의 수뇌들의 뒤를 따라다니고 있을 터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소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순간 대련을 하고 있던 별동대의 무인들이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
근래의 수련을 통해 기감이 제법 확장된 때문에 멀리서 접근하는 자의 기척을 느낀 것이다.
“제법이네. 한 삼십여 장쯤 떨어져 있는데…….”
흐뭇하다.
노력의 성과를 보는 것 같았다.
대결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에서도 그 정도 거리의 기감을 느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야!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 지는 놈들은 특별히 내가 상대해 줄 테니까! 심혈을 기울여서…….”
“…….”
심혈을 기울여서…….
섬찟한 생각이 든 별동대의 무인들이 각자의 상대를 표독스럽게 노려보며 무공을 펼쳤다.
“차앗!”
“헉!”
“이얍!”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는 기합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짜식들…….”
소청은 그 모습을 다시 한 번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역시 매가 사람을 만든다.
소청은 멀리서 느껴져 오는 기운에 집중했다.
두 명.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감출 생각 따위는 없다는 듯 온 힘을 다해 기운을 뿌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다가오는 인물들의 기운이 익숙했다.
한 명은 초사가 분명했고 또 한 명은 뭔가 불안하다. 느끼고 싶지조차 않은 불편한 기운이었다.
“이 자식이 또 누굴 데려오는 거지?”
소청이 언짢게 눈을 찡그리는 순간.
파악!
숲을 뚫고 두 명의 인원이 튀어나와 고개를 휙휙 돌리다가 소청을 향해 달려왔다.
“방효……. 이런 썅, 저건 왜 또 오는 거야?”
기껏 관부의 일이 끝나서 떼어 놓았다고 안심했더니…….
“야! 초…….”
소청이 짜증을 내려는데 초사의 얼굴이 무척이나 다급해 보였다.
입고 있는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한숨도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 분명했다.
“패월!”
“…….”
“마궁의 승려들입니다.”
“뭐?”
초사가 숨을 가누지도 않고 헐떡이며 뱉어 내는 말에 소청은 미간에 내 천(川) 자를 그렸다.
설마 마궁이 움직였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도 제갈휘문에 의해 정사 연맹에 소속된 대부분의 고수들이 몰려갔을 텐데?
왜 이렇게 호들갑을…….
“야, 일단 호흡이라도 가다듬고 말해.”
“표국이, 표국이 당했습니다.”
“……!”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마궁이 움직였는데 벌써 표국이 당할 리가 없었다.
“초사! 호흡을 가다듬고 말해!”
“…….”
소청이 소리를 질러 잔뜩 흥분한 그의 정신을 일깨워 놓았다.
후우, 후우…….
초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차분하게 자신의 상태를 가라앉혔다.
“자, 말해 봐.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거야?”
“진가 표국이 마승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
소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멍해진 눈동자로 초사를 바라보았다.
“포정 대표두를 비롯해 표국의 무인들이 모조리 죽었습니다.”
“뭐라고? 누가 죽어?”
“…….”
소청의 눈이 크게 뜨이고 동공이 확 하고 확장되었다.
그의 몸에서 흉포한 살기가 거침없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웁!’
살기와 함께 뿜어진 소청의 기세가 사방을 잠식했다.
호흡을 고르고 있던 방효곤은 그 무지막지한 기운에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마궁의 개새끼들이 우리 표국을 습격해 사람을 죽였다는 거지?”
“예. 그들은 패월을 찾는 듯했습니다.”
초사가 소청이 뿜어낸 기운에 짓눌린 채로 가까스로 대답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별동대의 무인들이 대결을 멈추고 그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형님!”
소강이 외침과 함께 기운을 일으켜 초사와 방효곤을 보호했다.
“허억, 허억…….”
억눌린 숨을 토해 내는 초사와 방효군을 뒤로 물러나게 한 소강이 소청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엄청난 힘이었다.
꽤나 수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소강도 소청의 기운에 얼굴을 찡그릴 정도였다.
“소강…….”
“…….”
“포정 대표두 아저씨가 죽었다는구나.”
소청의 목소리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감추지 못한 분노에 기운이 끓어올라 그의 주변 땅이 움푹움푹 파여 들기 시작했다.
“진정하세요. 가라앉히셔야 합니다.”
“표사들도 죽고, 사람들도 죽었다는구나.”
소청의 분노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소강은 그의 기분을 모르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지만 진가의 식솔들을 누구보다 아끼는 소청이 아니던가?
포정은 진가신과 거의 반평생을 함께해 온 표사였다.
무한에 진가 표국의 분점을 만들었을 때 가족과 생이별을 했지만 표국이 커 나가기에 기쁜 마음으로 사천을 떠나온 사람이었다.
표국의 일이 바빠 사천에 자주 가 보지도 못하면서도 투덜거리는 모습도 보이지 않은 사람이다.
가진 바 무력은 낮았지만, 누구보다 아랫사람을 아낄 줄 알고, 누구보다 윗사람을 받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순박하고, 순수하고…….
누구보다 자신들을 아껴 준 사람 중의 하나였다.
“형님…….”
소강의 가슴에 소청의 분노 너머의 슬픔이 전해져 왔다.
“그들은 마천의 전쟁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놈들이 나를 찾기 위해 그들을 죽였다는구나. 나 때문에…….”
“형님 때문이 아닙니다.”
“나 때문이다. 내가 혈승을 죽였기 때문에 그 불쌍한 이들이…….”
“형님!”
소청의 상태가 이상했다.
눈동자는 잘게 떨리고 가장자리에서 검은 기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분노와 슬픔, 자책에 빠져 그의 기운이 미친 듯이 들끓고 있었다.
언제나 차분한 형님이었다.
모든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누구보다 현명하게 일들을 처리해 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과하다.
과할 정도로 많은 기운을 끌어 올려지고 있었다.
휘휘휘휘…….
소청의 몸에서 뿜어진 기세가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 있던 돌들이 서로 부딪치며 떠오르고 나무들이 세찬 기의 폭풍에 허리를 꺾기 시작했다.
‘제길…….’
소강이 온 힘을 다해 창대를 움켜쥐었다.
“모두! 피하십시오!”
상쇄시켜야 했다.
지금의 소청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이성을 잃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강한 충격을 줘서 소청의 분노를 잠재워야만 했다.
소강은 자신의 창 월영을 힘껏 바닥에 꽂아 넣었다.
“이야압!”
소청이라면 자신의 천뢰충파의 기운을 버텨 낼 것이다.
콰드드드득! 콰아앙!
천뢰충파의 기운이 대지를 뒤흔들고 충격파가 사방에 휘몰아쳤다.
“…….”
소강은 곧바로 자신의 형을 바라보았다.
기세는 여전했지만, 다행히 눈동자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후우……. 형님.”
“소강.”
소청이 떨리는 눈동자로 소강과 시선을 맞추었다.
소청의 눈동자에 옅은 물기가 어렸다.
“형님…….”
소강 역시 분이 끓었기에 소청의 분노를 삭여 줄 수가 없었다. 그저 그가 이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초사 님!”
“예? 예!”
“그들이 어디로 향했습니까?”
“부, 북으로 갔습니다.”
소강에게서 알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또한, 소청보다 더욱 냉정한 모습이었다.
“북쪽…….”
“예. 그들이 얼마나 빨리 이동했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오태산을 목표로 곧장 이동했다면 지금 이 근처에 있거나 아니면 이쪽으로 오고 있을 겁니다.”
“이 근처라……. 좋습니다.”
소강이 아직 완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소청을 대신해 별동대를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우리는 개인별로 흩어져 마궁에서 온 인물들의 흔적을 찾습니다. 현 지점을 중심으로 수색을 하되 방향은 남쪽입니다.”
“…….”
소청의 말에 별동대의 무인들이 살기를 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청의 분노가 전해져서가 아니었다.
소청에게 훈련을 받으며 생겨난 마천에 대한 독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