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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90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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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190화

189화. 되짚어 오는 자들

 

 

 

 

혈승의 흔적을 찾아 토번을 떠나온 아달타와 마승들.

중원에 깔린 마천의 세작들을 찾아 수소문해 보았으나 그들 역시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했다.

결국 혈승과 마지막으로 접촉한 금마강을 조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도독부의 뇌옥에 갇혀 있는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아달타와 마승들이 마궁의 정예라고 해도 그 많은 관병을 뚫고 들어가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결국 금마강 사건을 심문했던 이들을 잡아 그들에게 상황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들의 목적은 전투가 아니라 행방불명된 혈승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뜨끔!

“네놈들은 누구냐! 감히 무림인이 관부의 무관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게냐!”

아혈이 풀리는 느낌에 이태석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하지만 돌아온 건 다시 제압되는 아혈일 뿐이었다.

“내 말이 우습게 들렸나 보군. 분명 묻는 말에 대답하라 했는데…….”

아달타의 눈빛에 마승 중 하나가 싸늘하게 웃으며 이태석의 둘째 아이에게 다가갔다.

마승이 커다란 손을 뻗어 두려움에 질린 듯한 아이의 머리를 잡았다.

뿌득, 뿌드드드득.

“……!”

아이의 목이 돌아가서는 안 되는 방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으읍! 읍! 읍!”

이태석의 처가 눈이 찢어질 정도로 부릅뜨고 고개를 흔들며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우린 너에게 굳이 듣지 않아도 된다. 금마강의 조사를 맡고 있는 담당자가 네놈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들을 차례로 쫓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답이 나오겠지.”

“……!”

눈앞에서 자식이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본 이태석은 핏발이 돋아 오른 눈으로 아달타를 노려보았다.

“다시 풀어 주겠다. 이번에는 신중히 생각하고 입을 떼야 할 것이다.”

핏!

한 줄기 지풍이 이태석의 아혈을 때렸다.

하지만 더는 고함을 지르지 않았다. 처와 남은 아이 하나만큼은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아달타를 원독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묻겠다. 혈승께서는 어찌 되었나?”

“혈승? 나는 그런 자를 모른다!”

“…….”

순간 아달타의 눈에서 불이 토해지고 짙게 뻗은 살기가 휘몰아쳐 나와 사방에 생채기를 만들었다.

“모른다고?”

“나는 그저 말단 무관직에 불과하다.”

“그래?”

아달타의 미소가 잔인해졌다. 그와 동시에 마승이 이태석의 처에게 다가갔다.

안 돼! 안 돼!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이태석의 외침은 공허했다. 이미 아달타가 그의 아혈을 다시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저 죽이는 것만으로는 자극이 되지 못했나 보군.”

뿌드득!

팔이 뜯겨 나갔다.

이태석의 처는 재갈이 물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비명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혼절해 버렸다.

마승은 잔인하게도 그녀의 팔을 지혈하고 손에 든 처의 팔을 이태석의 발밑에 던져 주었다.

“관의 명령이 지엄함을 안다. 금마강에 대한 조사 내용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으려는 것도 안다. 이전에 조사했던 놈은 제 식솔들이 모두 죽어 가는데도 입을 열지 않더군. 오량이라고 했던가?”

오량은 이태석의 동료였다.

“이제부턴 답을 듣지 못할 때마다 네 처와 아이의 사지를 하나씩 뜯어내겠다.”

이태석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라는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

그에게는 관부의 극비 사항보다는 자신의 아이와 처가 훨씬 더 중요했다.

“혈승께선 어디에 계시지?”

“모, 모릅니다. 정말로 모릅니다. 저는 혈승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 어쩔 수 없군.”

마승이 다시 처를 향해 다가가자 이태석이 수많은 말들을 마구잡이로 쏟아 내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이 어떤 정보인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바를 모두 말해야만 했다.

“금마강이 무림인과 연을 맺었다는 것은 알고 있소. 하지만 그 무림인이 누구인지 나는 알지 못하오! 그 사실을 아는 건 도찰부 감찰어사요!”

“감찰어사?”

“그렇소! 들리는 소문에는 그를 도운 무인이 있다고 했소. 맞소! 분명 그리 들었소!”

“도왔다? 그게 누구냐?”

“진소청, 진소청이오. 그가 남궁가에서 일어난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바람에 금마강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고 했소.”

순간 아달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진소청이라고?”

“그렇소. 그요. 그가 확실하오!”

이태석은 쉬지도 않고 대답을 했다.

아달타는 진소청을 알고 있었다.

서천맹 전투에서 혈승이 목숨을 살려 주었던…….

“그래, 진소청. 그놈이구나. 그놈이라면 틀림없겠지. 놈이 스승님을 만난 것이야. 놈이 스승님의 계획을 막은 것이다. 그때 죽였어야 했던 것을…….”

아달타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지고 몸에서는 버티기 힘들 정도의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달타가 뿜어낸 기운에 이태석은 떨려오는 이빨을 주체하지 못했다. 마치 지옥의 악귀를 눈앞에 마주한 것 같았다.

“그놈은 어디에 있나?”

“무림인의 행방이라……. 하지만, 하지만 무한에 진가 표국이 있다 들었소! 제발, 제발 살려 주오!”

“무한 진가 표국.”

으드득.

아달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올 정도로 어금니를 갈았다. 끓어오르는 살기와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외적인 영향은 이태석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승들을 모아라. 무한으로 가야겠다.”

“아달타.”

이태석의 처의 팔을 뜯어내었던 마승이 굳은 얼굴로 아달타를 불렀다.

“무한에 가서 어찌할 생각인가? 진가 표국이라는 곳에 살겁이라도 일으킬 생각인가?”

“죽여야지. 죽여야 하고말고. 놈을 죽이고 진가의 모든 것들을 죽여 버리겠다.”

“아달타여, 냉철해져라. 무한에는 무황이 있다.”

“…….”

무황…… 중원 최강의 무인…….

“우리가 모두 힘을 합한다면 진소청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나 무황을 어찌할 수는 없다.”

“…….”

“목적을 잊지 말라, 아달타여. 우리는 혈승님의 소재를 확인해야 한다. 그분이 살아 계신지 아니면 죽은 것인지. 죽었다면 진소청에게 핏값을 받아 내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그래, 너무 흥분했군.”

아달타의 기세가 가라앉았다. 대신 그의 눈동자에 차디찬 한기가 서렸다.

그리고 그의 눈이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이태석을 향했다.

“죽여라. 참혹하게…….”

그 말과 함께 이태석의 방 구석구석에 피가 뿌려졌다.

 

* * *

 

다음 날, 늦은 아침.

“태석이, 이봐 태석이!”

절강성 도독부 상급 조사관 우장환은 아침나절이 되어서 출근을 하지 않은 이태석의 집을 찾아왔다.

이제껏 이태석이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자 궁금해진 고명환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분명 그의 안사람과 아이들이 있을 것인데 어째서 대답이…….

“태석……. 으허헉!”

사방에 뿌려진 피.

팔다리가 잘려 나간 시신.

으깨진 얼굴…….

너무도 잔인했다.

일부러 잔혹하게 만들어 놓은 듯한 살해 현장은 마치 지옥의 한 단면을 본 것 같았다.

“이, 이게 대체…….”

 

콰앙!

금마강 사건의 수사 책임을 맡고 있던 방효곤이 일그러진 얼굴로 책상을 때렸다.

“이게 대체…….”

다섯 곳에 살인이 일어났다.

다른 곳도 아닌 도독부가 위치한 절강성의 성도였다.

그 어느 곳보다 치안이 뛰어난 그곳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금마강 사건을 조사하던 관인과 그 일가족이 모조리 참변을 당한 것이다.

“감히…….”

방효곤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지금의 시점에서 조사관을 죽여야 할 이유가 없다.

이미 사건이 마무리되어 연관이 있는 자들이라면 모조리 관부에 잡혀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어사님.”

“말하시오.”

“사건 현장을 살펴보았을 때 흉수는 무림인으로 보입니다.”

“무림인이라고?”

“예. 살해 방식이나 사지를 뜯어낸 상처는 도구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힘으로 뜯어낸 것 같습니다.”

“힘이라고? 그런…….”

방효곤의 눈이 가늘어졌다.

만약 살겁이 무림인에 의해 자행되었다면?

정사 무림 연맹의 짓은 아닐 것이다. 백이면 백 마천이라는 자들의 소행이 분명하다.

“어째서 그들이 조사를 맡은 관부의 인물들을 죽인 것이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어 낸 것인가?”

일단은 무림맹에 협조를 구해야 할 사항이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진소청…….’

왠지 그라면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림맹에 협조 공문을 보내라. 이번 사건에 무림이 연관이 있다면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해결에 큰 도움이 될 터.”

“알겠습니다.”

“또한 추적대를 편성하라. 관인들이 참살을 당한 사건이다. 반드시 찾아야 한다!”

“예!”

방효곤은 수하에게 명을 내리고 무한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 * *

 

쩍! 쩌적!

소청의 창대가 신들린 듯이 움직이고 사방에서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멍청한 것들! 아직도 이 모양인가! 이래서 휘에게 훈련받고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 상대나 되겠나?”

소청의 외침에 별동대의 무인들이 진한 독기를 피워 내며 자신의 무구를 집어 들었다.

일 대 다의 싸움.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버티는 자들이 늘어 갔다.

처음에만 해도 한 방에 쭉쭉 뻗었던 자들이 요령이 생긴 것인지 가끔 흘리기도 하고 버티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마천의 고수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더욱 독해져야 했다. 팔다리가 잘려 나가면 이빨로라도 목줄을 물어뜯을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혁련휘는 별동대의 무인들에게 깨달음을 강조했지만 소청은 실전을 강조했다.

어차피 두 달이었다.

두 달은 무인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극한까지 몰아붙인 소청으로 인해 그들은 한 달 동안 수도 없이 생사의 고비를 넘겨야 했다.

지옥을 걷는 자는 지옥에 동화되기 마련이었다.

참혹함에 익숙해지면 스스로 악귀가 되고 저절로 귀기를 흘리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생존에 대한 독기는 그들이 전쟁에서 살아남는 데 더욱더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의 싸움에서는 타인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옆에서 누군가 죽어 나가더라도 적의 심장에 칼을 꽂아야만 하는 전투였다.

북해와의 전투는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야 했다.

그래야 앞으로 다가올 마천과의 전쟁에서 조금 더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테니까.

“휴식!”

소청은 자신에게 덤벼든 별동대의 무인들을 완전히 때려눕힌 후에야 휴식을 부여했다.

“흐윽.”

“하아…….”

이곳저곳에서 참고 있던 신음이 흘러나왔다.

개중에 가장 뛰어났던 소강마저도 피로감을 느낀 것인지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소청은 피식 웃고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들만 성장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도 성장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좀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가 있었다.

대규모의 난전이 아니라 지속적인 국지전으로 상대를 무력화시켜야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자신은 더 강해져야 했다.

초사처럼 싸우다 팔을 잃게 되는 자는 없어야 했고 목숨을 잃는 자는 더더욱 없어야 했다.

숲을 한참이나 걸어 들어가 자리를 잡은 소청은 창대를 들었다.

무황이 자신에게 가르친 신과 축의 묘리.

만약 천뢰충파를 축의 묘리로 응축시키고 신의 묘리로 폭발력을 단숨에 증대시킬 수 있다면…….

개인전에서는 몰라도 다수의 무인을 상대할 때는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을 터였다.

‘서로 어우러지게 모으고 응축한다…….’

소청은 천천히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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