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88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88화
187화. 한계에서의 변화
황보인 등이 수련을 시작한 지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모진 구타와 억압 속에서 육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수련을 반복해 온 악이군과 승혜는 처음으로 소청에게 지도 대련을 받게 되었다.
“뭐 해? 안 할 거야?”
소청이 짜증스럽게 팔짱을 끼고 노려보자 악이군이 머쓱한 표정으로 연무장의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몸이 가볍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알이 배어 걷는 것만으로도 욱신거렸던 몸이 내공을 운용하자 지극히 상쾌해졌다.
내공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나?
누구나 인정하는 명가의 대공자로 태어난 그였다.
단 한 번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수련이 끝나면 바닥을 기어 다녀야 할 정도로 몸을 혹사해 본 적이 없었다.
창을 잡자 찌르르 하는 느낌이 손을 통해 전해져 왔다.
고작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거참, 더럽게 느끼고 있네.”
소청의 핀잔에 악이군은 눈을 빛내며 창대를 휘돌려 중단에 잡았다.
후웅!
창대가 만든 압력이 연무장의 청석을 때리며 거친 바람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부탁드립니다.”
“죽을힘을 다해서 덤벼. 없는 시간 쪼개서 하는 거니까.”
“예!”
“자, 그럼 시작해 볼까?”
“…….”
소청은 따로 자세를 잡지 않았다.
창이라도 꺼낼 줄 알았는데 그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하긴, 자신과 그의 실력 차는 천양지차였으니…….
악이군의 눈에는 오히려 소청은 자신감이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선공을 하겠습니다.”
파앙!
마보에서 일보를 내디딤과 동시에 악이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차르륵! 차앙!
창이 화려한 변화를 만들며 날카롭게 뻗어져 나왔다. 악가창법의 장점인 속도를 최대로 살린 공격법이었다.
지독하게 빠른 찰법의 연환기가 소청의 전신을 노리고 뻗어 나갔다.
오직 전진에만 치중한 찌르기.
하지만 뒷짐을 지고 선 소청의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하압!”
짧은 기합성과 함께 웅혼한 기운이 몰린 창날이 수십에서 수백으로 나누어져 소청의 몸을 향해 날아갔다.
만혼쇄.
악가창의 오의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절초였다.
그 순간 소청의 입가에 잔인할 정도로 비릿한 웃음이 지어졌고 일보를 내딛는 순간 엄청난 잔영이 만들어졌다.
파파파파팍!
창날이 잔상을 모조리 꿰뚫는 순간 소청의 신형은 사라졌고 어느새 악이군의 측면에 나타났다.
“헙!”
뻗어 낸 창을 회수하지도 못했는데 측면 하단에서 솟구쳐 오르는 소청의 눈동자가 새파란 살기를 토했다.
사, 살초?
섬뜩함이 소름을 만들고 뒷덜미가 쭈뼛하게 솟아올랐다.
파파팍!
악이군은 만혼쇄를 펼치다 말고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소청은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너 뭐 하냐? 죽을힘을 다해서 덤비라고 하지 않았어? 좀 맞고 시작할래?”
소청이 눈을 찡그리며 악이군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바로 전의 살기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소청의 모습은 평온하기만 했다.
잘못 느낀 건가?
지도 대련 중에 살기를 보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부족한 점을 짚어 줌으로써 좀 더 발전하게 만들어 주는 목적을 가진 것이 지도 대련이었다.
‘그동안 대장에게 너무 위축되어 있었기 때문인 게야. 무슨 생사투도 아니고 지도 대련에서 살기를 느끼다니 너무 예민해졌어. 하하, 나도 참.’
악이군은 머릿속에 떠오른 흉흉한 생각을 지우고 다시금 창을 움켜쥐었다.
“다시 갑니다!”
악이군이 다시 한 번 창에 내공을 담아 공격을 펼쳐 내었다.
깡! 까깡!
하지만 이번에는 소청이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해 왔다. 악이군은 소청이 뻗어 내는 손의 움직임에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쩍!
“커억!”
지도 대련인데…….
마구잡이식의 구타는 아니었지만 내지른 창대를 피해 휘둘러진 소청의 발이 그의 옆구리를 꺾어 놓았다.
그는 잠시간의 틈도 주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악이군을 향해 마치 유령처럼 휘어져 들어오며 주먹을 날렸다.
사람이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측면으로 파고든 소청의 주먹이 또다시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땅! 따당!
가까스로 창대로 주먹을 막았지만 반탄력에 손아귀가 찢어지는 듯했다.
“크윽!”
짧은 신음을 뱉었지만 물러나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다시 진한 살기가 느껴졌다.
순식간에 자신의 좌, 우측을 번갈아 공격해 시선을 빼고 정면 하단으로 이동해 솟구치는 그의 눈에 또다시 시퍼런 안광이 번뜩였다.
‘사, 살초? 자, 잘못 느낀 게 아니었어!’
가슴을 노리고 솟구쳐 오르는 소청의 일장에서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다.
‘지, 진짜로 죽일 생각…….’
시퍼런 빛을 내는 눈동자.
등 뒤로 느껴지는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일장이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한 자, 반 자, 여섯 치…….
막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막지 못할 것이다.
죽이려 하고 있다.
시늉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죽이려는 것이다.
머릿속에 그의 일장이 명치를 때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가슴뼈가 함몰되고 구멍이 뚫려 처참한 모습으로 죽을 것 같았다.
왜? 라는 의문을 해결하기 전에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저 괴물의 일장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오만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해지고 삶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제, 제발 움직여라! 어떻게든!
악이군은 이빨이 으스러지도록 깨물었다.
그리고.
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두근, 두근, 두근!
평소의 몇 배나 될 법한 속도로 심장이 뛰고 요 며칠간 단련되었던 온몸의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찌이익.
바닥을 지지하고 있던 발이 슬쩍 비틀리는 순간, 전신으로 전달된 근육의 회전이 그의 몸을 순간적으로 반 바퀴 정도 회전시켰다.
그리고 소청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창대를 끌어당겼다.
후아악!
마치 창대의 일부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빠르게 휘둘러졌다.
쩌어어엉!
강렬한 타격음이 연무장을 진하게 울렸다.
악이군은 막대한 반탄력에 손아귀가 찢어지는 것만 같아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한데 자신을 향해 쏘아져 들어오던 소청의 일장은 어느 순간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자신의 창대가 소청의 옆구리에 닿아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소청의 옆구리를 노렸지만, 그의 단창에 가로막혀 있었다.
“헉, 헉…….”
갑자기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뭐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금은 나아졌군. 하지만 아직 멀었다.”
“…….”
소청이 자신을 향해 피식 웃었다. 악이군은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마지막의 그 느낌을 기억해라. 다음에는 내공을 반드시 실을 수 있도록 해라. 아니면 정말 죽을지도…….”
흘리듯이 줄인 끝말에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악이군은 멍하니 목을 축이기 위해 돌아서서 걸어가는 소청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 죽일 생각이었던…….
이런 개자식이?
그런데.
“대, 대단해!”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황보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했다.
“보, 보이지 않았어. 창대의 움직임이…….”
승혜마저 놀란 표정으로 감탄했다. 뭐가? 도대체 뭐가?
“어찌한 것이오?”
승혜가 놀란 얼굴 그대로 달려와 물었다.
그러니까 뭐가?
뭘 알아야 대답을 할 것 아닌가.
“방금 전의 움직임, 어떻게 한 거요?”
“…….”
“다음이 내 차례란 말입니다.”
승혜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하지만 악이군은 도무지 뭐라고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의 움직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냥 이렇게……. 으윽.”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본능적으로 펼친 것이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대충 흉내라도 내어 보이면 승혜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발을 비트는 순간 종아리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다.
근육이? 찢어졌어?
“그게 단가요?”
“…….”
승혜가 다그치듯이 물었지만 악이군은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 사신과도 같은 소청이 목을 축이고 다가오고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할까? 승혜?”
“…….”
승혜와 소청의 대련 역시 사람들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할 만큼 뛰어났다.
결과는 악이군과 동일했다.
승혜는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소청은 악이군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살기를 담아 칭찬했다.
그리고.
“혁련 소련주!”
“예?”
“이, 이 정도 수련으로는 안 되겠소. 조, 좀 더 강하게 단련시켜 주시오.”
“예? 굳이 그럴 필요가…….”
“부탁이오.”
승혜와 악이군이 펼친 마지막 움직임을 볼 수가 없었던 황보인은 위기감을 느꼈다.
“하지만 저는 저 친구처럼 모질지도 못하고 딱히 저런 식으로 수련을 해 본 적이 없어서…….”
혁련휘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벅벅 긁어 대었다.
소청이 한 방법은 극한까지 상대를 몰아붙여서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혁련휘는 그따위 방법을 써 본 적이 없었다. 굳이 그런 방법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깨닫고 이해할 만큼 천재였기 때문이다.
단지 황보인이 혁련휘만큼 뛰어나지 못할 뿐이었다.
“자 자, 우리는 우리 방법대로 합시다. 황보 공자는 충분히 잘하고 있소.”
“…….”
“그래 바로 그 자세요. 저 정도는 그렇게 비웃어 버리면 되는 겁니다. 핫핫핫!”
“…….”
비웃은 게 아닌데…….
* * *
다음 날.
황보인 등이 수련을 하는 와중에 누군가 진가 표국의 연무장으로 뛰어들어 왔다.
“형님!”
그는 다름 아닌 소강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입고 있는 옷이 황톳빛 먼지로 가득한 그의 모습을 보며 소청은 역시나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고생했다.”
소청은 소강을 웃으면서 맞이했다.
분명 소강은 제갈휘문을 통해 연락이 닿음과 동시에 움직였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경공을 가르쳤으니 말을 타지 않고 달렸을 것이고, 그의 내공이라면 나흘이면 충분히 도달할 만한 거리였다.
그리고 나머지 별동대의 인원도 곧 도착할 터였다.
‘슬슬 도착하겠군. 이제 움직일 때가 된 것인가?’
소청은 무황과의 만남 이후로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무황의 삶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 모른다.
마종과 결전을 벌일지 그 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소청은 아직 마종보다 약하다.
더 강해져야 했다.
몸 안에 쌓인 네 곳 혈 자리의 기운을 합해야 했다.
마종과 만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황이 자신에게 가르친 신과 축의 묘리에 대해서도 익숙해져야만 했다.
그리고.
‘저들이 핵심이 되겠지. 마천과의 남은 싸움에서…….’
소청의 시선이 소강을 비롯해 악이군, 승혜, 황보인을 향했다.
“휘.”
“왜?”
“우리 내기의 방법을 좀 바꾸는 게 어떻겠나?”
“어떤?”
“이틀 안으로 별동대의 무인들이 모두 도착할 거야. 그들을 반으로 나누어서 반은 자네가, 반은 내가 맡아 수련시키도록 하지. 그리고 승부를 보는 거야. 어때?”
“호오? 좋아. 그리고 자네와 나의 승부도 포함하지.”
“상대가 안 될 텐데?”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