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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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87화
186화. 아달타, 복수를 향해 떠나다
다다다닥!
손안에 수많은 종이쪽지를 가득하게 움켜쥔 무인이 급한 걸음으로 달렸다.
닫힌 문을 열 틈도 없는 것인지 담을 곧장 뛰어넘어 정원을 내달렸다.
그러곤 작은 정자에 앉아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중년인을 발견하고 급히 달려갔다.
“세주님!”
그가 엎드린 것은 마천의 열두 세주들의 수좌인 파군 용유명이었다.
혈승이 권마와 음마, 그리고 그들의 정예만을 데리고 중원으로 향한 뒤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혈승이 보내오는 정보를 취합해 중원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북해에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왜 이리 호들갑이냐!”
마치 일선에서 밀려 버린 듯한 마음에 심기가 불편했던 파군이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화를 내었다.
“혀, 혈승의 생사가 불확실하다는 전갈입니다.”
“……!”
순간 용유명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눈으로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마종이 중원 정벌의 토대를 마련하라며 그에게 전권을 주었다.
혈승은 북해가 완전한 남하를 이루기 위해 중원의 이목을 감추기 위한 계략을 꾸몄다.
은밀하게 중원으로 향한 그는 오랫동안 마천과 연결해 온 관의 세작들을 이용했다.
그리고 모두가 그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파군은 그 사실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 대공을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마천의 핵심으로 살아온 그였다.
비록 마종의 뜻이었다지만, 자신들이 아닌 복속된 세력의 수장에게 전권을 맡긴 것이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혈승의 계략이 적중되는 것이 너무나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상세하게 말해 보라.”
“그것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세작들이 전투 흔적을 발견한 것이 사흘 전입니다.”
“사흘?”
“예. 하지만 시신을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절강성 인근에서 전투 흔적을 발견했으나 중원 무림의 조사단이 그곳을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기에…….”
파군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단 말인가? 중원의 조사단이 지키고 있다면?
“이런 급한 연락이 어찌 이제야 도착한단 말이냐!”
파군의 노기에 일어난 마기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우웃!”
수하는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신음을 내며 납작 엎드렸다.
“아마도 관이 지키고 있던 터라 우리 쪽의 세작 활동도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혈승께서 너무 은밀하게 움직이시느라…….”
“망할…….”
혈승의 관을 이용한 계략은 중원 무림뿐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엄청난 제약 요소로 작용했다.
“혈승께서 권마 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보내오신 열흘 전 이후로는 세작들과 접촉을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세작들도 음마 님이 하오문의 비밀 분타에 포로로 잡혔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후에야 혈승 님과 연락을 취해 보았다고 합니다.”
연락을 취했으나 닿지 않았으니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보고가 들어왔으리라.
그런데?
“음마가 포로로 잡혔다고?”
“예. 하지만 하오문에 잠입한 세작과 연락이 닿지 않아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허!”
파군이 허탈함에 바람 빠진 소리를 내었다.
세작이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필시 그들에게 정체를 들키고 죽었을 것이다.
‘하면 결국 음마도 죽었을 확률이 크군.’
권마에 이어 음마까지 죽었다.
하지만 권마가 죽었을 때도 혈승은 모든 것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걱정을 하지 말라 했다.
“관은 어찌 되었느냐?”
“세작들의 보고로는 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남궁세가의 금성희가 폐인이 되었고, 대군후 금마강이 성도로 압송되었습니다. 또한, 중원 무림의 각 파를 지키던 관군들도 모두 돌아갔다고 합니다.”
“…….”
금마강은 마천이 결탁한 관부의 인사 중 가장 핵심이 되는 자였다. 그가 성도로 압송되었다면 관의 끈마저 모조리 잘려 나갔을 가능성이 컸다.
파군이 찡그려진 얼굴로 술잔을 움켜쥐었다.
파삭!
깨어진 술잔 조각이 그의 손아귀를 찢어 놓아 피가 뚝뚝 떨어졌다.
“북해는?”
“진격을 시작한 이후로 북풍의 설원을 지나고 있는지라…….”
북풍의 설원은 북해도와 대막 사이에 있는 동토의 대지였다. 사시사철 칼바람이 몰아치고 모든 것이 얼어붙는 곳이다.
전서구를 보내기에는 부적합했다.
결국 그들이 북풍의 설원을 완전히 빠져나오고 나서야 연락이 될 터였다.
하지만 멍하니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작들을 총동원해서 혈승의 소재를 파악하라! 만약 음마는 물론 혈승까지 포로가 되었다면 남하하고 있는 북해가 위험하다! 지금 즉시 전령을 보내 어떻게든 북천 대공을 만나 모든 정보를 전하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수하가 급히 뛰어갔다.
“망할 노인네 같으니! 그리 자신을 하더니 또다시 일을 그르치는구나!”
파군은 한가롭게 술을 마실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에겐 혈승의 안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죽어 버린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었다.
안 그래도 눈엣가시 같았던 혈승이었다. 그로 인해 열두 세주들이 마궁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죽어 버린다면 마궁의 힘은 온전히 마천의 것이 된다.
권마와 음마를 잃은 것은 안타까웠지만…….
하지만.
북해를 잃어서는 안 되었다.
구자겸과 대막혈궁이 무너진 이후 마천은 전력의 삼 할을 잃어버렸다. 북해마저 당한다면…….
서둘러야 했다.
남은 세주는 넷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대책을 논의해야만 했다.
마궁의 정수를 흡수하기 위해 모든 것과 단절을 선언하고 폐관에 들어가 버린 마종이 깨어나기 전에 사태를 수습해야만 했다.
“적패!”
“예, 세주님.”
“지금 즉시 세주들을 모으라.”
파군의 소집에 세주들의 회의가 장시간 동안 이어지는 사이 마궁의 외곽에서 또 다른 움직임이 있었다.
“모두 들었느냐?”
“…….”
혈승의 수제자인 아달타의 말에 수십 명의 마승들이 굳은 침묵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궁의 핵심과도 같은 자들.
모두가 혈승의 제자이며 오랫동안 혈승의 아래에서 마궁을 다스려 온 자들이었다.
“스승님께서! 이 마궁의 주인께서 행방불명이 되셨다고 한다.”
“…….”
“한데 저들은 스승님의 안위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북해를 살리려는 노력만을 하고 있다는군.”
아달타의 말에 마승들의 눈동자에 짙은 살기가 피어났다.
“생사가 불분명하다 한다.”
“…….”
“나는 그분께서 죽었으리라 믿지 않는다.”
“…….”
“반드시 그분을 되찾아 돌아와야 할 것이다. 만약, 아주 만약에…….”
아달타의 목소리에 서늘한 한기가 어렸다.
“그분께서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했다면 우리가 그분의 복수를 해야 한다.”
아달타의 분노가 마승들에게 전염되듯이 끓어올랐다.
“가자, 절강성으로…….”
* * *
“보, 보셨습니까?”
초식을 수련하던 승혜가 악이군을 향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역시 승혜와 같은 마음인 듯이 겁에 질린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않다.
정사 무림 연맹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오후가 되어서야 돌아온 소청의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구겨져 있었다.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소청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구겨진 얼굴을 하고 혁련휘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안에서 무언가 대화가 오고 가는 듯하지만 아직 군자산의 효력이 남아 있어서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혹여 자신들을 훈련하기 위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면?
가까이 다가가 볼까 하다가 흉흉한 생각이 떠올라 황보인을 불렀다.
“황보 공자.”
“예?”
승혜에게 지난번 한 소리 들은 터라 조금 위축되어 있던 황보인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안에서 뭐라고 하는지 들립니까?”
“글쎄요.”
“한번 들어 보시죠. 우리는 군자산 때문에…….”
“예?”
승혜의 은근한 요청에 황보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걸리면?
자신도 보았다.
악귀 같은 소청의 얼굴이 엄청나게 구겨져 있는 모습을…….
그리고 그 화가 분명 승혜와 악이군에게만 미칠 것인데 자신이 왜 나선단 말인가?
자신은 관세음보살이라고 해도 좋을 혁련휘에게 수련을 받고 있는데?
“그게 좀…….”
“황보 공자!”
그녀의 어조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지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속삭임이었다.
“이럴 겁니까? 아무리 마천으로 인해 강호의 도의가 땅에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동료의 청을 외면할 것입니까?”
아니 이게 강호의 도의와 무슨 상관이…….
“거, 치사하게 그러지 말고 좀 들어 봐요. 저자가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음, 좋소! 그럼 지난번에 아가리 뭐 어쩌고 한 이야기 사과하시오.”
“…….”
그걸 마음에 계속 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좋소, 그때는 내 말이 심했소.”
승혜가 순순히 사과하자 황보인은 조금 기분이 풀어진 듯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앞으로는 절대로 그러지 않기요.”
“알겠소.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확답을 받은 황보인이 선심을 쓰듯이 청력에 내공을 집중했다.
하지만 뭐라고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잘 들리지 않았다.
“뭐요? 무슨 대화를 나누는 것 같소?”
“그게…… 잠시만…….”
이미 약속을 한 터라 안 들린다고 말할 수 없었던 황보인이 조금씩 소청의 거처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모기만 한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북해, 수련, 이동, 그리고 황보인…….
‘어?’
자신의 이름이 들리는 듯하자 황보인도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설마? 저놈이 나를 수련시키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것 같았던 황보인이 귀를 더 쫑긋하게 세우고 소청의 거처를 향해 더욱 가까워졌다.
“연락을 보냈으니 앞으로 사나흘 안에는 모두 도착하겠군.”
“음, 어찌할 생각인가?”
“일단 북해를 맡기로 했으니 모두 데리고 이동해야겠지. 일단은 저들의 세작들 몰래…….”
‘이동해? 어디로?’
황보인은 궁금증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이미 그의 몸은 둘이 있는 방문 앞에 당도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말소리가 뚝 하고 끊어졌다.
어? 뭐지?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방문은 활짝 열려 있고 미간을 잔뜩 찡그린 소청과 눈이 마주쳤다.
“너 뭐 하냐? 쥐새끼냐?”
“아니, 전, 그저…….”
“그저 뭐 하는 거냐고.”
“그게, 저 친구들이…….”
당황한 황보인이 손가락을 들어 승혜와 악이군을 가리키는데.
“합!”
“끼야압!”
우렁찬 함성과 함께 그들이 화려한 창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너무도 열심히…….
“저 친구들이 어쨌다고?”
“…….”
“이런 썅!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해 죽겠는데!”
욕설과 함께 순간적으로 사라진 소청의 신형이 나타나는 순간 황보인의 머리에 발이 날아왔다.
퍼억!
공중을 표홀히 날아가는 황보인의 머릿속에 ‘나쁜 연놈들 같으니…….’ 하는 원망이 그려졌다.
“이 자식이 수련은 안 하고!”
쩍! 쩌적! 쩍!
“휘에게 맡겨 뒀더니!”
퍽퍽퍽퍽!
소름 끼치는 타격음이 연무장을 채우자 승혜와 악이군의 기합 소리가 더욱 커지고 창대는 더 화려한 변화를 만들어 내었다.
아, 정말로 강호의 도의가 땅에 떨어졌구나…….
소청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 버린 황보인은 정말로 심하게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