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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81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7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81화

180화. 스스로를 관조하다

 

 

 

 

황학루의 세작을 잡은 이후 돌아온 소청은 홀로 연무장에 앉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좀 더 강한 힘…….’

혁련휘를 통해 알게 된 축의 묘리.

하지만 혁련휘의 말처럼 잘되지 않았다.

황학루의 세작을 잡았을 때 사용해 보긴 했지만 그 위력이 너무나 약했다. 그저 소량의 내공을 응축해 폭발시킨 것뿐 진정한 의미의 ‘축’이라 할 수 없었다.

천뢰충파의 힘을 담아야만 했다.

‘천뢰충파의 거대한 폭발력을 모두 담을 방법은 없을까?’

소청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눈 아래 검은 멍울이 생길 때까지 잠도 자지 않고 고민했고 식사도 거른 채 좌공에 빠져 있었다.

“아직도 저 상태입니까?”

황보인이 혹시나 소청이 수련하는 모습을 보면 무언가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찾아왔다가 혁련휘에게 물었다.

“그렇게 째려봐도 어쩔 수 없소.”

“예? 째려본 것이 아니라 원래 얼굴이…….”

나름 머쓱하게 웃었지만 혁련휘가 점점 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 비웃을 일이 아니오. 벌써 이틀째란 말이오.”

“아니 난 딱히 비웃은 게…….”

“거, 자꾸 그리 비웃을 거면 돌아가시오. 쯧, 이틀이나 무아에 빠진 모습을 보면서 감탄은 못 할망정, 에잉! 정천의 무인들은 의리가 없어. 의리가…….”

혁련휘가 신경질적으로 술잔을 비워 내자 황보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을 말자. 어디 이런 오해가 한두 번도 아니고…….

그나저나 참선만 주야장천 하고 있는 소청의 모습을 보던 황보인은 실망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앉아 있기만 한 그의 모습을 봐 봐야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질 않았다.

근래에 악이군과 수련을 하는 동안 그 스스로도 무언가 깨달음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소청에게 물어보러 온 참인데 이래서야…….

혁련휘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황보인이 돌아가는 중에도 소청은 여전히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밥이나 먹자.”

한참을 기다린 혁련휘는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소청을 놓고 자리를 떠났다.

 

표로롱, 짹, 짹짹.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연무장으로 새들이 날아왔다.

날갯짓하며 날아온 새들은 이른 새벽부터 먹이를 구하기 위해 지친 몸을 쉬려 연무장에 있는 소청의 몸에 내려앉았다.

소청의 몸을 쪼아 보기도 하고 발을 비비적대기도 하지만 새들에게 있어 소청은 바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어느 순간, 자신의 숨소리마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된 소청은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 사이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무아의 상태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찰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연무장의 한편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 그 위에 앉은 새들…….

‘어? 지금 뭐지?’

이상했다.

마치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지금까지 경험해 왔던 무아의 경지는 말 그대로 잊는 것이다. 시간, 장소를 잊고 무의식에 빠져 있는 것이었으나 지금의 것은 달랐다.

무의식에 있으면서도 모든 것이 선명했다. 너무 선명해서 적응이 되지 않았다.

처음 경험해 보는 느낌이었다.

기감(氣感)의 확장.

자신에 대한 관조.

그의 몸은 마치 투명한 무언가처럼 내부가 훤하게 보였다. 몸의 중앙을 흐르는 수많은 선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두근, 두근…….

무아에 빠진 이후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는 심장이 핏물을 밀어내자 선홍색의 핏물이 엄청난 속도로 핏줄기를 따라 온몸을 흐르고 다시 심장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피가 지날 때마다 혈맥이 터질 듯이 꿀렁거리며 뛰어올랐다.

그리고.

단전, 회음, 명문, 백회, 단중.

태극의 기운이 깃든 다섯 개의 혈 자리가 마치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임맥과 독맥, 수많은 세맥을 흐르고 있는 기운의 흐름이 각인되듯이 명확하게 보였다.

‘허! 이게 대체…….’

다시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경계를 넘는 순간 자신 모든 것이 사라지고 원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리 집중을 해 봐도 더 이상 같은 경험을 하지는 못했다.

소청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더는 같은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가 오랫동안 익숙하게 수련해 왔던 초감각이 아니었다. 몸 안의 모든 것이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쿵!

어디선가 웅장한 소리가 귓가를 때리듯이 울린다.

반복되는 소리의 정체는 새들의 발길질이었다.

자신의 몸에 앉아 있는 새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피부를 진동시키는 소리가 몸 전체를 울려 대었다.

‘이게 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혹시나 자신이 주화입마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겁이 났다.

자신의 몸인데 마치 낯선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들의 지저귐이 마치 귓가에서 천둥이 치는 것처럼 고막을 찢어 놓았다.

기감에 이어 오감(五感)이 극도로 확장되었다.

사방에서 흘러온 수많은 냄새가 코를 통해 들어오고 앉아 있는 바닥의 거친 느낌과 청석의 결들이 의복을 지나 마주 닿은 피부를 통해 선명히 느껴져 왔다.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진 침에서 여러 가지 맛이 났고 여전히 새들을 비롯해 온갖 잡소리가 귓가를 울려 대었다.

거대한 세상.

마치 거인들의 세계에 떨어진 것처럼 자신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우웩!”

더 이상 자신에게 찾아온 이질감을 견딜 수 없었던 소청이 구역질하듯 피를 토해 내자 그의 몸에 앉아 있던 새들이 푸드득거리며 날아가 버렸고 바로 전에까지 느껴졌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소청!”

벌써 사흘을 이어진 무아의 참선에 지루해하며 자신의 수련을 이어 가던 혁련휘는 갑자기 소청이 피를 토해 내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갔다.

그러곤 다급히 소청의 명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무언가를 깨닫기 위한 참선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그 안에서 심마(心魔)와 마주해 주화입마에 빠지는 경우가 있었다.

혁련휘는 혹여 피를 토해 낸 소청이 그 같은 상황에 부닥치지 않았을까 심하게 걱정했다.

“서둘러 기운을 운용하게. 내가 운기를…….”

소청의 명문혈에 손을 대었던 혁련휘는 순간적으로 자신을 밀어내는 거대한 반탄력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단 말인가?

딱 봐도 위험한 상황인데 어째서 그의 내기가 자신의 힘을 밀어낸단 말이며, 이 말도 안 되는 거대한 기운은 뭐란 말인가?

아무리 노력해 봐도 그의 등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이, 이게 어찌…….”

“휘…….”

갑자기 깨어난 소청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혁련휘를 힘없이 불렀다.

“마, 말하게.”

“배고프다.”

“뭐?”

“…….”

소청이 희미한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짓고는 혁련휘의 품 안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이, 뭔…….”

 

한동안 누워 있었던 소청은 일어나자마자 엄청난 양의 식사를 해치웠다.

마치 사흘 동안 먹지 않은 밥을 모두 먹어 치우려는 것처럼 몇 번이고 상이 다시 차려져 왔다.

“그, 그만 좀 먹지?”

“어?”

“그만 먹으라고. 그러다 배가 터지겠네.”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네.”

“…….”

무슨 걸신이 들린 것인지 소청은 상에 차려진 접시를 모조리 비우고서야 만족스러운 포만감에 배를 두들겼다.

“후우,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살 것 같다고? 그 정도 먹으면 멀쩡한 사람도 죽을 거다.”

혁련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어찌 된 거냐? 표정을 보아하니 딱히 주화입마나 뭐 그딴 건 아닌 것 같고.”

혁련휘가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짓자 소청이 빙그레 웃었다.

그의 눈동자에 진한 호기심이 느껴졌다.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가득했다.

“글쎄. 잘 모르겠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서…….”

“…….”

“어때? 배도 꺼트릴 겸?”

소청이 창대를 쥐며 묻자 혁련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무인에게 맞수와의 대련만큼 즐거운 일은 없으니까.

“좋지! 가세!”

혁련휘가 뛸 듯이 일어나 흑룡아를 잡고 밖으로 나갔다.

연무장으로 나간 소청과 혁련휘는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소청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호흡이 너무도 고르게 느껴졌고 움직임은 더없이 자연스러웠다.

무언가 변한 것 같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휘, 그 축도인가 하는 것 말이야. 한번 보여 줄 수 있나?”

“축도를?”

“그래.”

그게 뭐가 어렵겠는가?

어차피 그가 가진 최상의 초식은 축의 묘리를 이용해 펼치는 파천도법이었다.

“뭐, 어렵지 않지.”

소청의 부탁에 혁련휘가 고개를 끄덕이고 흑룡아를 잡았다.

발검하듯이 허리를 살짝 굽히고 도를 잡자 혁련휘의 기세가 낮게 가라앉았다.

“이봐, 그 방향이 아니라 나를 노려야지.”

“뭐?”

“대련 아닌가.”

“…….”

혁련휘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축도’는 보이지 않는 빠름이다. 적이 아닌 이상 잘못하다가는 큰 상처를 입힐 수도 있었다.

“소청, 하지만…….”

“해 주게.”

“음, 알았다.”

혁련휘는 소청을 믿었다.

위험해지면 피할 것이라 생각했고 피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일전의 싸움에서도 그는 혈승이 펼친 축의 묘리를 담은 공격을 피해 내었다.

좀 더 약하게 펼친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으리라.

스윽.

앞발이 내질러지는 순간 혁련휘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허문다. 그리고 그의 손이 빠르게 흑룡아를 뽑아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번쩍!

소청의 눈에 흐릿함이 떠오르고 검은 동공이 어둠 속을 살필 때처럼 거대하게 확장되었다.

‘이거다!’

쉭!

칼날이 희뿌연 선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그어졌지만, 소청의 눈에는 너무나 느리게 보였다.

발도의 순간에서 끝점을 향해 다다르는 칼의 움직임이 너무도 선명했다.

그리고 보였다.

혈승과의 싸움에서는 그저 위험천만한 느낌뿐이었지만 지금은 확연하게 보였다.

잔상이 겹쳐지듯이 사라지며 칼끝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난 기운이 허공을 흐르듯이 날아왔다.

마치 그 시간이 영겁(永劫)의 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소청은 마치 세상을 관조하는 눈을 가진 것처럼 대기에 존재하는 수많은 결의 틈을 지나 날아오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느리다.

어느 경로로 어떻게 날아오는지 확실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 엄청난 변화가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이 응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보았다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몸의 근육이, 움직임이 그 느린 속도를 쫓아갈 수 없었다.

분명히 보고 있고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있지만, 몸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마음과는 달리 소청의 몸은 너무나 천천히 미세하게 움직였다.

일보월하를 극한으로 펼쳤으나 진기의 흐름이 혁련휘가 펼쳐 낸 축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제길! 소청!”

움직이지 않고 있는 소청의 모습에 혁련휘가 다급하게 외쳤다.

비록 온전히 펼친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 수많은 변화가 담겨 있다. 피하지 않으면 큰 상처를 입을 것이 틀림없었다.

축도는 공간을 뛰어넘는 기술이니 발출되고 나면 무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소청에게는 모든 것이 느려져 있었다.

혁련휘의 외침조차 ‘제에기이일, 소오오오처어엉……!’이라 들릴 만큼 늘어져 들려왔다.

파사사사삭!

만경창파의 기운이 소청의 몸에 닿았다.

하나에서 시작된 변화가 수천으로 갈라져 소청의 몸을 헤쳐 놓았다.

“망할! 이 멍청한 자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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