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80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80화
179화. 북해 남하하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공 노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자, 그럼 이제 내가 개고생 해서 잡아 온 음마를 죽인 이유에 대해서 좀 설명을 해 주셔야겠는데?”
소청이 싸늘한 눈으로 공 노인을 바라보았다.
“크크크. 제법이군.”
어느 순간 공 노인의 입에서 전혀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거봐, 맞잖아. 마천의 쥐새끼…….”
소청이 히죽 웃으며 말하자 모두가 공 노인의 곁에서 떨어졌다.
어느새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짙은 마기를 뿜어내며 공 노인이 품에서 얇은 소도를 꺼내 쥐었다.
“제법이야. 이런 얕은수로 나를 꾀어내다니 말이야. 진소청, 들었던 대로 과연 대단해.”
“칭찬은 잘 받도록 하지.”
차자작!
창대를 늘린 소청이 공 노인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자, 그럼 음마를 대신해 우리에게 정보를 좀 털어놔 주실까?”
“흥! 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군!”
파앙!
공 노인의 신형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우진혜를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까가가강!
소청이 급히 곁에 있던 우진혜를 밀어내고 공격을 막는 순간 공 노인의 신형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이런!”
갑자기 사라진 그의 모습에 모두가 당혹성을 내뱉었다.
우진혜와 혁련휘가 다급하게 감각을 끌어 올렸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은신술이었다.
그런데.
“지랄하네.”
소청이 가볍게 발을 차더니 허공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가 끌려 나온 공 노인을 거세게 패대기쳤다.
와당탕!
“크윽.”
“순순히 말해. 더러운 꼴 보지 말고.”
“네, 네놈이 어떻게?”
공 노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소청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여유로운 표정.
설마 자신의 은신술을 잡아낼 정도로 뛰어나단 말인가?
그럴 리가.
은신술은 완벽했다. 우연이었을 뿐이다.
공 노인은 다시 한 번 훌쩍 뛰며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거참, 귀찮게…….”
소청이 귀를 후벼 파더니 우진혜 쪽을 바라보며 가볍게 창대를 휘둘렀다.
퍼엉!
그 순간 혁련휘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엇!”
퍼엉!
삼 장(9m).
분명 아무런 느낌도 없었는데 우진혜의 근처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크윽!”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공 노인이 짙은 신음을 흘리며 자신의 팔을 잡았고 재차 휘둘러진 창에 무릎이 터져 나갔다.
“크악!”
다리가 터진 공 노인의 몸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허, 벌써 축도를…….”
혁련휘의 얼굴에 어이없음이 어렸고 소청의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소청은 팔과 다리를 각기 한쪽씩 잃어 땅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공 노인을 향해 다가갔다.
“이거 참……. 정말 끈질기네.”
콰직!
소청은 공 노인의 팔이 멀쩡한 쪽의 어깨를 밟아 으스러뜨렸다.
“끄아아악!”
“어차피 살아만 있으면 되니까.”
쩍!
수직으로 내려친 주먹에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공 노인이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진혜.”
“예? ……예!”
오랫동안 함께해 왔던 공 노인이 세작일 것이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우진혜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뭐해? 지혈해서 살려. 자결하지 못하도록 재갈을 물리고.”
“아, 알겠습니다.”
“그는 네가 아는 그자가 아니야. 원래 주인의 얼굴을 벗겨 뒤집어쓴 마천의 간자지.”
“…….”
소청이 공 노인의 얼굴 가죽을 잡고 당겼다.
부욱 하는 소리와 함께 인피면구가 찢어지고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났다.
“이, 이런!”
우진혜를 비롯해 하오문의 수뇌들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음마가 죽어 버렸으니 놈을 심문해 정보를 꼭 알아내야 해.”
“……예.”
우진혜가 세작을 묶는 동안 혁련휘가 소청을 향해 얼굴을 찡그렸다.
“어떻게 벌써 축도를 익힌 거야?”
“뭐 아직 완벽한 건 아니고…….”
“완벽하지 않아? 이런 젠장, 금방 따라잡히게 생겼군.”
“따라잡혀? 원래 내가 더 강한 건 아니고?”
“시끄러워!”
혁련휘는 부인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그런데 철혈군은 왜 데려온 거냐?”
“뭐, 정말로 술을 살 생각도 있었고 혹시나 세작이 더 있을까 싶어서.”
“쯧, 미리 말해 주지 않고.”
“아, 미안. 자네라면 내 생각을 눈치챌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군.”
“…….”
소청의 말에 혁련휘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괜히 아니라고 하면 눈치 못 챈 것이 될 테니까.
“음, 뭐 대충은…….”
“거짓말…….”
“진짤세.”
“그렇다고 해 두지.”
소청과 혁련휘가 시답잖은 자존심을 세우는 동안 우진혜는 공 노인으로 변한 세작의 상처를 지혈하고 혹여 독단을 물어 자결하지 않을까, 입안을 샅샅이 살폈다.
“깨워.”
“예.”
우진혜의 명에 하오문도가 세작의 혈도를 짚자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공 노인이 깨어났다.
이미 원래의 공 노인이 죽었다는 사실에 깊은 분노를 느낀 우진혜는 뜸 들일 생각도 없이 사혈에 대침을 꽂아 넣었다.
“끄아아악!”
그녀의 고문술은 상대의 정신을 잃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훨씬 더 정신이 맑아지게 했고 더 많은 고통을 느끼게 했다.
“네놈은 누구냐?”
“…….”
질문에 대답이 없자 그녀가 사정없이 대침을 꽂았다.
비명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차라리 말하지 마라. 네놈이 죽인 공 노인이 저승에서나마 편히 쉴 수 있게.”
우진혜는 싸늘한 목소리로 대침을 비틀며 사혈 안으로 쑤셔 박았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곳임에도 죽지는 않고 침을 꽂을 때마다 고통이 점점 더 배가되었다.
“음, 다시 봐도 소름 끼치는군.”
우진혜의 고문술을 보며 소청이 몸서리를 치자 혁련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잘하게. 저리되지 않으려면.”
“뭘?”
“그런 게 있네…….”
말해 줘서 무엇하겠는가?
언젠가는 알게 될 텐데…….
역사가 또 바뀌지 않는다면 분명 그녀는 사도련의 안주인이 될 것이다.
소청과 혁련휘가 소곤거리는 사이에도 우진혜의 심문은 계속되고 있었다.
“목적이 뭐냐?”
“끄으으……. 중원…… 세작들의 관리……. 사로잡힌…… 음마를 죽이는…….”
“몇이나 되나? 네놈과 같은 세작이?”
“그, 그건 모른……다.”
“음마와 혈승이 관을 이용해 무얼 노리고 있었던 것이지?”
“끄으…… 북해…… 남하……. 반년…….”
대침의 수가 쌓일수록 고통은 점점 더 커져 갔고 세작은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허연 거품을 만들며 대답했다.
그런데?
북해가 남하하고 있다고?
순간 소청의 눈이 부릅뜨였다.
대막혈궁, 토번의 마궁과 함께 새외 무림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북해빙궁, 그들이…….
“젠장, 역시나 북해빙궁도 마천의 손아귀에 있었군. 그렇다면 백효가 움직이는 것인가?”
* * *
휘이이…….
살을 엘 듯한 바람이 드넓은 백색의 평원에 몰아쳐 시야를 가렸다.
동토의 대지는 그 어떤 생명조차도 살아갈 수 없는 잔인함을 가득하게 품고 있었다.
바람과 함께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쌓이고 쌓여 만년설을 만들어 낸 대지 위로 크기가 다양한 천막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지어져 있었다.
임시로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튼튼해 보이는…….
뽀득, 뽀득…….
짐승의 털을 기워 만든 덧신을 신은 푸른 눈의 사내가 눈밭에 발자국을 만들며 가장 큰 천막의 곁으로 걸어갔다.
휘익.
휘장을 젖히자 눈보라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안쪽에 쳐진 또 하나의 천막이 있었다.
사내는 자신의 몸에 쌓인 눈을 털어 내고 안쪽의 천막을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
“대공, 압적입니다.”
“들어오라.”
허락이 떨어지자 푸른 눈의 사내 압적이 안쪽의 천막 휘장을 걷고 들어갔다.
타닥, 타닥…….
천막의 중앙에는 커다란 모닥불이 피어올라 내부의 공기를 훈훈하게 만들었다.
싸늘한 외부와는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그 안의 사람들은 너무도 편안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중앙에 비스듬하게 앉아 있는 사내와 여인.
마천의 세 번째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동토의 대지를 지배하고 있는 북천대공 백효와 빙궁의 전대 궁주였던 미여령이었다.
압적은 백효의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바닥에 깔린 모피의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열기와 함께 추위에 굳은 그의 몸을 녹여 주었다.
“생각보다 날씨가 좋습니다. 당초 예상보다 중원에 도착하는 시간이 당겨질 듯합니다.”
압적의 보고에 비스듬하게 누운 백효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되는 도착 시간은?”
“두 달 후면 대막의 초입에 들어설 것 같습니다.”
“대막이라…….”
잠시 고개를 끄덕인 백효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장난스럽게 들어 올린 손안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몰려들었다가 흩어졌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구 사형을 무너뜨린 놈이라…….”
“…….”
“어쨌든 잘됐어. 안 그래도 힘도 없는 인간이 대사형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거들먹거리는 꼴이 보기 싫었는데…….”
백효의 얼굴에 지어진 미소에 고소함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혈승에게서 연락은 없었나?”
“눈보라를 뚫고 전서구를 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작들이 여전히 중원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조만간 연락을 취해 올 것 같습니다.”
“쯧, 늦군. 그 늙은이 하는 일이 그렇지. 마종께서는 어쩌자고 그 노망난 늙은이에게 전권을 맡기셨는지 모르겠군. 관부를 이용해 중원 무림의 발목을 잡겠다니…… 웃기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음모와 계략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중원의 조무래기들이 무섭다고는 하나 고작해야 무황과 그 진소청이라는 놈이 전부가 아닌가? 애초에 열두 세주들과 대공, 삼궁의 전력을 동원해 진격했다면 이미 우리의 손에 중원이 있을 것인데…….”
“…….”
“뭐, 좋아. 상관없겠지. 마종께서 결정한 일이니까. 먼저 출발한 빙마인들의 상황은?”
“예. 한 달 후면 대막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흐흠……. 좋아. 일천이다. 일천의 빙마인이라면 대막을 되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터.”
백효가 웃으며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자 그의 곁에 있던 미여령이 물었다.
“그런데 대공.”
“말하라.”
“그 진소청이라는 자에 의해 여덟이나 되는 세주들이 죽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래.”
“음, 대단한 자군요. 마천의 기둥이라 불리는 그들이 그리 당할 줄은…….”
“마천의 기둥? 후후, 말도 안 되는 소리.”
“예?”
“누가 마천의 기둥이라는 거냐. 여령.”
“아니옵니까?”
“과거에는 그랬겠지. 하나 지금은 아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겼다.”
“예?”
“열두 명의 세주? 그들이 그리 중요했다면 마종께서 진소청에게 당하도록 두었을 것 같으냐? 그들은 그저 마종께서 쓰다 버리는 패에 불과하지. 삼궁의 정수를 얻을 때까지 저들의 눈을 속일 수단 말이야.”
백효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종께서 처음 빙궁의 정수를 얻으셨을 때, 나는 보았다. 마종께서 기르고 있는 진정한 마인들을…….”
백호가 음산한 미소를 흘렸지만 선화는 고개만 갸웃거렸다.
“압적.”
“예, 대공.”
“속도를 올린다. 따라오지 못하는 놈은 얼마든지 죽여도 좋다.”
“알겠습니다.”
“마종께서 혈승에게 전권을 맡겼다고는 하나 뒤처져서는 안 된다. 혈승이 관부를 이용해 우리의 진격을 감추는 사이에 곧바로 중원을 친다. 마궁의 전력이 중원으로 들어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들어가 선점하는 것이다.”
“예!”
“명령을 내려라. 하루를 쉬고 곧바로 출발한다!”
압적이 명을 받고 밖으로 나가자 백효는 가늘어진 눈으로 타오르는 모닥불을 쏘아보았다.
마종으로부터 빙궁을 부여받고 중원에서 수만 리나 떨어진 동토의 대지를 지배한 그는 되돌아올 날만을 기다려 왔다.
구자겸이 진소청에게 단전이 꿰뚫려 폐인이 되고 마종은 마궁의 정수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단절한 채 폐관에 들었다.
혈승이 중원 정벌의 발판을 닦기 위해 전권을 넘겨받았다고 하나 결국에는 자신들의 수족일 뿐이었다.
남은 것은 자신뿐이다.
마종은 열두 세주와 자신들 말고도 또 다른 세력을 길러 두고 있었다.
구자겸이 세주들에게 전한 역천의 진언은 마기를 증폭시켜 끌어 올리는 것이지만 마종이 기른 이들은 진정한 ‘마(魔)의 화신’이었다.
“뒤질 순 없지. 나 백효가 반드시 중원을 정벌하고 마종의 가장 가까운 곳에 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