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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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79화
178화. 쥐새끼를 잡는 방법
“아, 소청 깼나?”
“그래.”
“…….”
무슨 무아의 경지가 장난도 아니고 마음대로 들어갔다가 마음대로 나온단 말인가?
툴툴거리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혁련휘는 아무 말 없이 입을 삐죽거렸다.
“오랜만이군.”
“예. 이번에 관의 일에 수고가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쓸데없는 인사는 집어치우고. 음마가 죽었다고?”
“예.”
“그랬단 말이지? 갖은 고생을 다 해서 잡아 놨는데 초를 친 새끼가 있단 말이지?”
기가 찬다는 얼굴을 한 소청의 표정에 옅은 살기가 감돌았다.
“흉수는?”
“조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재미있네. 황학루의 비동이라면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닌데. 더구나 철혈군이 교대로 지킨다고 하지 않았어?”
소청의 질문에 혁련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그때 이후로 다섯이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었지.”
“그렇단 말이지. 철혈군이 지키고 있는데 숨어들어서 음마를 죽였다? 내부자의 소행이 확실하겠군.”
“그리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저 세작 정도는 아니겠는데.”
“…….”
“혹시 그때 당시에 황학루에 있었던 자들 하나도 빠짐없이 남아 있나?”
“예. 남아 있습니다.”
“좋아. 잘되었군.”
뭐가 잘되었다는 걸까?
우진혜는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대군사님과 연맹주님께 알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뭐, 그쪽엔 초사를 보내 소식을 알리는 것으로 하지. 어차피 제갈휘문에게는 내가 따로 움직이겠다고 말했으니까.”
“알겠습니다.”
우진혜가 대답을 하자 소청이 혁련휘에게 시선을 돌렸다.
“휘, 괜찮겠나?”
“뭐가?”
“지난밤에 술을 잔뜩 마셨는데 오늘 또 마실 수 있겠어? 축의 원리를 가르쳐 준 보답으로 술을 좀 살까 하는데…….”
소청의 말에 혁련휘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네 녀석 또 뭘 꾸미고 있는 모양이군.”
혁련휘의 말에 소청이 빙그레 웃기만 했다.
“뭐 어쨌든 좋아. 진정한 주당은 지난밤 마신 술을 해장하기 위해 다음 날 또 마시는 법이니까. 핫핫핫.”
“쳇, 넉살은. 좋아. 그럼 모처럼 전부 데리고 가서 잔치를 벌여 볼까? 다들 오늘 저녁에 황학루로 가자고 해. 내가 술을 사겠네.”
“모두?”
“당연하지. 철혈군도 부르게. 그동안 고생이 많았으니. 내 통 크게 한번 쏘겠네.”
“가격이 만만치 않겠지만 원체 부잣집 아들이니 제대로 먹어 주지.”
혁련휘가 철혈군에게 소청의 뜻을 전달하는 사이, 소청은 우진혜를 바라보았다.
“연회다. 황학루에 있는 이들을 한사람도 빼놓지 말고 대연회장으로 모이게 해라. 참고로 내 자리는 단을 올려 모두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격식을 따지는 성격은 아닌 듯했는데.
필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참으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황학루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한 명도 빠져선 안 돼.”
“아, 알겠습니다.”
우진혜가 고개를 끄덕이고 연회를 준비하기 위해 먼저 황학루로 출발했다.
초사에게 지시를 내리고 정사 무림 연맹으로 보낸 소청은 일행과 함께 저녁이 되어서야 황학루로 출발했다.
“뭔 일이래?”
“그러니까. 저 인간이 술을 산다고 한 적이 있었던가?”
“그러게. 수련은 안 하고 술 마셨다고 때릴 때는 언제고 비마대와 철혈군까지 모조리 끌고 가다니…….”
황보인과 악이군이 그들의 뒤를 따르며 소곤거렸다.
“혹, 승혜 소저와 장문인께서는 뭔가 아는 게 있으십니까?”
“아니네, 우리도 없네. 그저 꼭 참석해 달라는 말만 해서…….”
승혜와 장문인도 모르는 눈치이자 황보인과 악이군은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사이 연회가 준비된 대연회장에 도착한 소청 일행은 자유롭게 자리에 앉았다.
연회장은 거의 일백여 명은 족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우진혜는 소청이 미리 알려 준 대로 단을 올려 상석을 마련하고 화려하게 치장했다.
모두가 집중할 수 있도록…….
소청과 혁련휘는 우진혜와 함께 상석에 앉았다.
그런데 자리 배치가 조금 이상했다.
하오문도의 자리와 소청 일행의 자리가 별도로 구분되어 있었다.
정상적인 연회라면 서로 알아 가는 자리가 되어야 하는데…….
“자, 오늘은 그동안 마천으로 인해 고생하신 여러분들의 노고를 위해 모처럼 마련한 자리입니다. 제가 내는 것이니만큼 모두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즐겁게 마시길 바랍니다.”
소청의 축사가 끝나자 연회장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자, 그동안 나를 따라다니느라 고생한 비마대부터 한 잔씩들 줄까?”
-은수, 지금부터 구역을 나누어 내부의 인원을 살펴라. 표정이 변하는 놈, 조금이라도 반응을 보이는 놈, 그리고 은밀히 빠져나가려 하는 놈. 전부 찾아내서 보고해. 앞 열은 내가 맡도록 하지.
-예.
소청은 술을 따르며 은수에게 은밀하게 명령을 내렸다.
한창 술자리가 무르익어 가는 사이 소청이 잠시 좌중을 정돈하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거 참, 그러고 보니 제가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술자리가 너무 좋아 놓치고 있었습니다.”
“…….”
“근자에 마천의 세주 중 하나인 음마라는 자를 잡아 이곳 황학루의 비동에 가두어 두었었습니다.”
“…….”
“그런데 어떤 놈이 몰래 숨어들어서 음마의 멱을 따 버렸더군요.”
순간 우진혜와 혁련휘의 눈이 씰룩거렸다.
내부자를 밝혀야 하는 상황에서 모두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이런 일은 자고로 은밀하게 처리해야 하는데.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한데, 그 멍청한 놈이 착각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
“마천의 세작이 숨어 있을까 의심되어 음마의 부하를 이용해 대역을 만들어 놓았거든요. 크큭, 어찌나 정교하게 꾸며 놓았는지 아마 그놈도 진짜 음마인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뭐?”
“뭐라고?”
우진혜와 혁련휘의 시선이 소청을 향했다.
무언가를 꾸미고 있을줄은 알았지만 이런 방법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소청, 그게 무슨 소린가? 그 노파는 분명…….”
혁련휘가 은밀하게 소곤거리자 소청이 히죽 웃었다.
“쯧쯧, 그러니까 대역을 썼지. 이런 일은 가장 가까운 사람도 속여야 제대로 걸려드는 걸 모르나. 안 그래?”
“…….”
혁련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설마 소청이 자신도 속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언제?
혁련휘는 계속 소청과 함께였고 음마를 옮긴 것은 철혈군의 무인들이었는데?
“어쨌든 지금부터 음마를 심문해서 들어야 할 내용은 앞으로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모두 알아야 할 내용입니다. 하오문은 정보를 모아야 하고 나머지는 최전선에서 싸워야 하니까.”
소청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하는 사이 은수와 비마대의 전음이 그의 귓가를 쉬지 않고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지목한 이들을 소청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살폈다.
“진혜.”
“예? ……예.”
“심문할 준비를 해야겠어. 아무래도 그쪽으로는 그대가 훨씬 뛰어나니까.”
“…….”
말이 되지 않는다.
어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심문을 하려고 하는 걸까?
“자, 그럼. 진짜 음마를 보여 드리죠.”
모두가 소청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초사! 데리고 들어와!”
소청이 턱짓을 하며 외치자 모두가 고개를 돌려 연회장의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끼이익!
연회장의 문이 열리고 초사가 노파를 끌고 들어왔다.
“응?”
그 모습에 집중하고 있던 혁련휘가 갑자기 소청을 바라보았다.
“너?”
아니다.
초사가 데리고 들어오는 것은 음마가 아니었다.
-진혜. 푸른 장삼을 입은 노인은 누구냐?
-공 노인이라는 분인데 황학루의 다섯 지주 중 한 분입니다. 한데 어찌?
-좋아. 잘됐군. 심문을 한다는 명목하에 별도로 자리를 마련하지.
-여기에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확인할 건 다 했으니까.
소청의 전음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은 그의 의도를 알지 못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 공자, 즐거운 연회입니다. 심문을 하게 되면 흥이 깨질까 염려되니 상급 무인들만 참석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 그런가요? 제가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네요. 그리하시죠.”
미리 이야기한 대로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휘, 철혈군을 이용해 이곳에서 단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봉쇄해 주게.
-음흉하기는……. 알았네. 그렇게 하지.
세 사람의 은밀한 전음이 오고 가는 사이 초사가 데려온 음마가 다른 곳으로 이동되었고 우진혜는 하오문의 수뇌들 중 일부만 데리고 뒤따랐다.
황학루의 후원 천향당.
초사가 음마라며 끌고 온 노파가 꿇어앉자 소청을 비롯한 일행들이 그 주위를 둘러쌌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소청이 피식 웃으며 한 인물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음마가 아니라 하오문의 황학루 분타의 수뇌 중 한 사람이자 마방을 맡고 있는 공 노인이었다.
“어, 어찌 저를 보십니까?”
공 노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소청을 바라보았다.
“거, 새끼 연기력이 경극 배우 뺨치네.”
“…….”
소청의 위협적인 말투에 공 노인이 겁에 질린 듯이 몸을 웅크렸다.
“진 공자!”
그사이 우진혜가 말을 걸었지만 소청에게 가로막혔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말씀이 과하시오. 아무리 소련주님과 친분이 있고 문주님께서 아끼는 분이라 하나…….”
공 노인이 발끈하자 소청이 피식 웃었다.
“시끄러워. 숨어 있는 쥐새끼에게 곱게 말해 줄 생각 없어.”
“쥐, 쥐새끼라니…….”
“왜 아닌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요?”
“근거라…….”
소청이 공 노인을 스산하게 바라보았다.
“거짓말이 근거지.”
“뭐?”
“음마의 대역이 있다는 것이 거짓말인 건 다들 알고 있을 테고.”
“…….”
“내 말을 듣고 다들 진짜 대역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겠지.”
그 순간 공 노인의 눈가에 이채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소청은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안 그런 놈들이 있지. 단전이 파훼되었다곤 해도 원래의 느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거든.”
“…….”
“그런데 당신은 나의 눈치를 살피고 당황하더군. 모두가 입구를 향해 고개를 돌린 와중에 말이야.”
“그런?”
“의심이겠지. 분명 음마임을 확인하고 죽였는데? 설마? 하는 느낌이랄까?”
“닥치시오! 듣자 듣자 하니 지금 나를 모함하는 것이오?”
“모함? 그건 진짜로 아닌 사람에게나 통용되는 말이지. 너는 아냐.”
“그 무슨?”
소청이 피식 웃었다.
그가 공 노인을 지목한 것은 눈빛 때문만이 아니었다.
“역용이라는 건 여러 종류가 있지. 첫째는 변장술. 이건 약물을 사용하니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발각되니 최하급이라고 할 수 있고, 둘째는 짐승의 가죽을 사용해 얼굴 형태를 만든 것인데 시간이 오래 걸려. 오래 사용하면 피부에도 안 좋고. 그리고 셋째는 직접 얼굴 가죽을 벗기는 방법인데, 가장 완벽한 방법이지만 오랜 시간 지속할 수는 없어. 사람의 인상은 계속해서 바뀌니까.”
“이보시오! 진 공자, 말씀이 과하시오!”
“그래? 그럴까?”
“…….”
“인피를 쓰면 아무리 잘해도 겹쳐지는 부분에서 층이라는 것이 생기거든. 그리고 그 층의 색깔이 미세하게 다르지. 바로 너처럼 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