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11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11화
210화. 비무가 아닌 전쟁
휘이이…….
검은 대지에 바람이 불어온다.
거대한 검은 산을 둘러싼 성곽의 꼭대기에 선 백효가 옷자락을 날리며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궁에서 돌아온 전서응은 북해의 진격을 독려했다.
“세작 놈들이 농간을 부리는 바람에 닷새나 허비했군.”
백효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공, 준비가 끝났습니다.”
미여령의 보고에 백효가 시선을 내렸다.
북해의 무인들이 검은 대지를 빼곡히 채워 그 열기마저 눌러 대고 있었다.
북해빙궁 예하 여섯 명의 패주들과 그들의 뒤로 선 이만이 훌쩍 넘는 무인들.
백효는 지난 십 년간 북해빙궁을 자신의 손안에 넣고 중원 정벌의 시간만을 기다려 왔다.
“후후, 이제 시작이다. 여령. 우리가 중원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예, 대공. 명을 내려 주십시오.”
미여령이 무릎을 꿇자 성곽 아래 대기하고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따라 외쳤다.
“대공! 명을 내려 주십시오!”
함성과도 같은 고함 소리가 검은 대지를 뒤흔들었다.
사방을 울려 대는 소리의 메아리를 음미하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짓던 백효가 남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진격하라!”
“와아아아!”
중원을 향한 북해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북해빙궁의 본진인 설화궁을 중심으로 전후좌우에 네 곳 패주들의 세력이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이동은 웅장했으되 빠르지 않았고 느렸지만 거칠었다.
그들이 내뿜는 한기에 발이 디뎌지는 모든 곳에 때아닌 겨울이 찾아왔다.
“와, 정말 무시무시하군요.”
황보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천맹의 전투를 경험했던 별동대의 무인들은 당시에 대막혈궁과 전투를 치렀던 경험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긴장이 되는지 조심스럽게 수군거렸다.
“다들 집중해.”
소청이 그들을 주목시키고 지도를 펼쳤다.
“그들은 분명 곧장 남하해서 산서를 관통할 것이다.”
소청의 손가락이 지도 위에 예측되는 북해의 이동 경로를 표시했다.
“현재 신승께서 하곡 근교에서 대기 중에 있다. 우리는 일단 저들의 후위를 자른다.”
“예!”
“절대 깊숙하게 들어가지 않는다. 적의 핵심 전력만 노려라! 공격할 때는 최대한 강하게 밀어붙이되 내력을 아껴라.”
“알겠습니다.”
소청의 명령에 별동대의 무인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움켜쥐며 천천히 전의를 깨우기 시작했다.
“저들이 단강구에 도착하기까지 앞으로 닷새. 닷새 동안 저들의 전력을 최대한으로 줄인다.”
“예!”
소청과 혁련휘는 별동대를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두 패로 나누었다.
한쪽이 공격하고 빠지면 한쪽은 퇴로를 지킨다.
공수를 번갈아 가며 내력을 회복하고 최대한 기운을 아낄 생각이었다.
“휘, 적의 수장들이 보이면 옥명자에게 후위를 맡기고 무조건 죽여 버려야 하네.”
“알겠다.”
흑룡아를 움켜쥔 혁련휘의 대답에 소청은 이동해 가는 북해의 병력을 살폈다.
그들의 진형은 전형적인 추형진(錘形陣)을 하고 있었다.
중원이 비었다고 알고 있었으니 방어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미미한 피해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중원으로 달리기 위한 진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거대한 화살촉처럼 보였다.
하지만 추형진의 장점은 돌파에 있었다. 후위가 취약할 수밖에 없는 진형이었다.
그리고 선두가 계속해서 달리고 있으니 후위는 늘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추형의 중심을 달리는 백색의 마차.
순백의 말들을 이끌고 기세가 흉흉한 무인들이 방진을 이루어 호위하고 있었다.
‘북천대공 백효.’
소청의 눈이 가늘어졌다.
북해의 핵심.
그를 잡아야 했다.
수많은 전투가 이어지겠지만 마지막은 단강구에서 벌어질 대접전이었다.
승패가 예측되지 않았지만 그를 단강구에 도착하기 전에 빼낼 수만 있다면 승률은 적어도 이 할 이상은 오를 터.
‘일단은 닷새. 최대한 외곽을 두들긴다.’
“준비해!”
수백 장을 늘어선 그들 대열의 끝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소청이 별동대를 향해 외쳤다.
첫 번째 싸움.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후방에 적이 있다는 사실만 알려 주면 되는 전투였다.
그들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정도까지만 만들고 퇴각한다.
“제일 진 공격한다!”
파앙!
외침과 동시에 소청이 쏘아져 나가자 소강을 비롯한 별동대의 무인들이 뒤를 쫓았다.
혁련휘가 맡은 제이 진은 그들보다 천천히 다가섰다.
공격을 하고 벗어나는 소청 일행을 뒤쫓는 무리를 섬멸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 * *
쉭…….
북해의 제일 후미.
후군을 맡은 설영궁(雪影宮) 소속의 무인 황계는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에 눈을 찡그렸다.
분명 무언가 스치는 소리인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쉭! 쉬쉭!
또다시 들려오는 소리.
‘거참 희한…….’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끔벅이는데 희뿌연 물체들이 설영궁의 무인들 틈으로 파고드는 모습이 보였다.
“어? 저거…….”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손가락질한 곳에 있던 동료들이 갑자기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달리는 속도 때문에 그들의 몸이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혀 굴렀다.
“스, 습격…….”
그의 끝나지 않은 말은 거대한 폭발음에 감추어져 버렸다.
콰아아앙!
충격파가 설영궁의 후미를 뒤덮었다.
수십의 무인들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랄 겨를도 없이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수십 장이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폭발.
첫 번째는 거대했고 두 번째는 그에 비하면 작은 수준이었지만 연이은 폭발음에 귀가 먹먹해졌다.
“끄아악!”
“으아악!”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사방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설영궁의 후미를 공격한 소청과 별동대는 말 그대로 처음부터 자신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절기를 퍼부어 대었다.
“적이다! 적의 습격이다!”
설영궁의 후위 중 일부가 달리던 방향을 돌려 소청을 공격해 왔다.
하지만 일당백의 무공을 가진 별동대의 무위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뭣들 하느냐! 적은 고작해야 몇이 되지 않는다! 당황하지 말고 포위망을 구축해라!”
설영궁의 장로 냉천상이 수하들을 독려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야압!”
그에게서 가장 가까이 있던 악이군을 향해 뻗은 주먹에서 새하얀 기운이 어리더니 용의 형상을 하고 쏘아졌다.
“용권이다! 모두 피해라!”
권풍이 만들어 낸 한기에 설영궁의 무인들이 재빨리 악이군의 곁에서 벗어났다.
“흥!”
악이군은 일보를 내디뎌 진각을 밟으며 숨을 들이쉬었다.
“허접스러운 기술 따위!”
백색의 용이 악이군을 향해 거대한 아가리를 쩍 하고 벌리는 순간 악이군의 신형이 쏘아지며 창대가 빛살처럼 뻗어져 나왔다.
악가창의 비전, 만혼쇄!
콰드드득!
수백 가닥으로 나누어진 창이 용을 터트리고 냉천상을 향해 날아갔다.
콱! 콰콰콰콱!
악이군의 공격은 마치 유성우가 직선으로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 악이군의 뒤로 우두커니 선 냉천상의 몸에 수백 개의 구멍이 꿰뚫렸다.
“뭘 멍하니 보고 있어! 이건 비무가 아니라 전쟁이야!”
설화궁의 무인 서넛을 한 번에 갈가리 찢어 버린 소청이 잠시 멈춘 악이군을 향해 따끔한 일갈을 내질렀다.
“적이 몰린다! 좌우로 흩어져라!”
소청의 외침에 별동대의 일 조가 산개하듯이 설화궁의 무인 사이로 파고들었다.
사방에서 조각난 사지와 함께 피가 튀어 올랐다.
파아아악!
소청이 앞의 적을 상대하는 사이 두 개의 거도가 등 어림을 향해 날아왔다.
대기를 찢어 놓는 파공음과 함께 소청의 창날이 앞의 적을 반으로 자름과 동시에 거도를 막았다.
쩌어어엉!
무겁다.
내기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도신 자체가 무거웠다.
“이놈! 감히 설화궁을 공격하다니! 이곳에 우리 거탑쌍웅이 있다는 것을 몰랐으렷다!”
“…….”
손에 든 참마도가 작아 보일 만큼 거대한 덩치를 가진 쌍둥이 노인들.
“시도는 좋았다만 이곳에서 죽여 주겠다!”
참마도가 허리를 가를 듯이 휘둘러져 왔고 또 다른 하나는 몸을 반으로 가를 듯 수직으로 내리쳐져 왔다.
“지랄하네.”
파앙!
짧은 욕설과 함께 소청의 모습이 열십(十)자를 이룬 그들의 공격에서 사라졌다.
“……!”
거탑쌍웅이 당황하는 순간 소청의 손이 각기 하나씩 그들의 머리에 올려졌다.
“올려다보니 목 아프다.”
우지직! 콰아앙!
소청은 거탑쌍웅을 그대로 짓눌러 버렸다.
콰드드드…….
두 발이 지면을 파고들고, 으스러지는 척추뼈와 함께 머리가 몸속으로 쑥 파고든 거탑쌍웅은 이전보다 반이나 작은 크기로 줄어들었다.
“으으으!”
장로 셋이 순식간에 당해 버리자 설화궁의 무인들이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사방에서 소청과 별동대의 무인들을 향해 무기들이 집중되어 날아왔다.
슈슈슈슉!
그리고 어디선가 날아오는 반월형의 강기.
까아아앙!
소청은 지면을 스치듯이 날아가 강기의 중심을 향해 손을 뻗어 넣었다.
쩌어어엉!
축의 묘리.
소청의 손에서 위력이 줄어 버린 강기가 폭발했다.
“웬 놈들이냐!”
거친 고함 소리와 함께 나타난 것은 쌍검을 양손에 나누어 쥔 설화궁의 대장로 공화척이었다.
“네놈이 대장이냐?”
“나는 설화궁 대장로 공화척이다!”
“쳇, 쭉정이였군.”
소청이 비릿하게 웃으며 공화척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놈이!”
공화척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소청의 모습에 검을 교차하며 만들어 낸 십자강기를 날렸다.
“이까짓!”
소청은 축의 묘리를 쓸 필요도 없이 강기의 중심을 향해 창극을 찔러 넣었다.
콰아아앙!
강기가 터져 나가며 그 조각이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
“크에엑!”
“으아악!”
강기의 조각에 얻어맞은 설화궁의 무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공화척은 자신의 십자강기를 부숴 버린 소청의 모습에 ‘아!’ 하는 탄식을 흘렸다.
그 순간 소청의 창극이 원을 그리듯이 회전해 공화척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왔다.
“우웃!”
장창의 단점이라 불리는 공수의 전환을 넘어 버린 움직임에 공화척이 다급히 쌍검을 교차시켜 옆구리를 막았다.
쩌어어엉!
“끄어어억!”
밀렸다.
막으리라 생각했던 공격이 교차된 검을 그대로 밀고 들어왔다.
교차된 채로 공화척의 몸에 박혀 버린 검.
“끄으으…….”
공화척은 온 힘을 다해 검을 밀어내어 봤지만 소청의 힘을 막을 수가 없었다.
우두둑! 서걱!
결국 팔이 부러지고 그의 검이 창대에 밀렸다.
쌍검이 옆구리를 파고들어 반대편으로 밀려났다.
후두둑!
고작 서너 호흡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설화궁의 대장로 공화척은 그 짧은 시간에 십초지적도 되지 못한 채 사등분되었다.
설화궁의 대장로를 죽였음에도 소청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쏘아져 나가며 설화궁의 무인들을 베어 내었다.
일각, 이각…….
시간이 흐르자 어느 순간 설화궁의 무인들의 걸음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후미가 아닌 그들 전체가 적들의 위협에 반응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주위에서 느껴지는 적의 기세가 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물러날 때였다.
그들이 싸워야 할 것은 설화궁 전체가 아니었다.
‘역시 첫 격돌에서 궁주까지 끌어내지는 못했군.’
굳이 모든 무인을 죽일 필요는 없었다. 별동대는 저들의 핵심만 무너뜨리면 된다.
나머지는 제갈휘문에게 맡기면 될 일이었다.
“퇴각한다!”
소청의 외침이 전장을 가득하게 울렸다.
명령을 들은 소강과 별동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쫓아라! 놈들이 도망친다!”
사방에서 무인들이 소청 등의 뒤를 쫓았다.
“모두 모여!”
설화궁의 범위를 벗어난 소청은 산개하여 도망치던 소강과 별동대의 무인들을 모았다.
그들이 모이자 추격하던 설화궁의 무인들도 모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도망치는 소청의 뒤로 꼬리가 만들어지는 듯했다.
“휘!”
퇴각하는 일 조의 마지막에 위치하며 적의 공격을 막던 소청이 퇴로상의 숲에 대기하고 있던 혁련휘를 스쳐 지나갔다.
“맡겨 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