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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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10화
209화. 두 개의 전서구
어느 것을 따라야 하는가?
그의 앞에 놓인 두 개의 전서.
@[마궁이 진격을 시작했다. 곧장 남하하여 합류하라.]
@[서천맹이 마궁을 향해 공격해 오고 있다. 적들의 의중을 파악할 때까지 대막혈궁을 지켜라.]
둘 다 진본이었으나 서로 상반되는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원래의 계획이었고 하나는 달라진 계획이다.
애초의 계획은 대막혈궁을 되찾음과 동시에 마궁과 함께 중원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궁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어째서 대막혈궁을 지키라 하는 것인가?
세작들이 전해 온 정보에 의하면 이미 중원은 빈집이나 다름없었다.
“음…….”
백효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둘 중 하나는 잘못되었다. 누군가 전서의 내용을 바꿔치기한 것이다.
“어찌 생각하는가?”
백효가 미여령을 향해 물었다.
“글쎄요. 속하의 짧은 생각으로는 마궁 쪽에서 온 전서가 의심스럽습니다.”
“마궁이 의심스럽다?”
“예.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대부분이 서천맹으로 몰려가 있는 상황인데 왠지 우리를 대막혈궁에 묶어 두려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
“우리가 대막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가장 수혜를 보는 쪽이 어디겠습니까?”
“중원?”
“예. 저들은 북해와 마궁을 동시에 막을 여력이 없는 것입니다. 두 전서의 공통점은 저들의 전력이 서천맹에 집중되어 중원 내부에 전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군.”
백효는 그녀의 말에 턱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 중 하나는 따라야 했다.
“빙마동에 대한 정보는 어찌 되었나?”
백효의 물음에 북해빙궁 산하 설화곡주 노태평이 대답했다.
“빙마동이 현재 계속해서 남하하여 단강구 인근으로 가고 있다 합니다.”
“단강구라면 화산?”
“예. 아무래도 저들이 만든 북천맹 쪽으로 가는 것보단 그쪽이 나았던 모양입니다. 아무리 서천맹으로 병력을 이동시켰다고는 하지만 고작 일천으로는 무리겠지요.”
“흠…….”
백효의 미간은 더욱 찡그려졌다.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대공, 일단은 다시 한 번 마궁 쪽에 연락을 취해 보시지요.”
미여령의 말에 백효가 턱을 쓸었다.
“의심이 된다 하여 계속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또한 마궁에서 온 전서는 고작 한 장입니다. 저들이 단번에 우리의 세작들을 처리하지는 못했을 터이니 조작되었다면 그 한 장의 전서구가 아니겠습니까?”
옳은 말이었다.
만약 저들이 자신들 가까이에 세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찌 지금까지 두고 보고 있었겠는가?
그리고 어찌 어렵게 얻은 대막혈궁을 그리 쉽게 빼앗겼겠는가?
백효는 미여령의 말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운’이라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보게.”
“예, 대공.”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
운은 가만히 생각을 했다.
북해로 전서구가 전해져 왔을 때 자신에게도 한 통의 전서구가 은밀하게 전달되었다.
@[귀환]
다른 세부적인 내용은 없었다.
그들에게 복귀는 마종의 곁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복귀의 명령은 마종의 출관이 멀지 않았음을 뜻했고 전쟁의 시작을 의미했다.
하지만.
“빙궁주님의 말씀이 옳은 것 같습니다. 일단은 어느 것이 조작되었을지 모르니 마궁에 확인을 거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운은 담담하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미여령, 마궁에 확인을 하는 데는 얼마나 걸리겠는가?”
“전서응을 사용한다면 이틀, 늦어도 닷새면 충분합니다.”
“닷새……. 좋다. 일단 마궁으로 전서구를 보내라. 어찌 결론이 나든 우리는 당장이라도 출진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알겠습니다.”
* * *
찌이익!
시위에 촉이 없는 화살을 건 궁수가 대막혈궁에서 날아오른 비응을 겨누었다.
그리고 비응이 날아가는 속도와 자신의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를 계산한 그는 비응보다 조금 앞선 곳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시위는 계속해서 당겨져 활이 부러질 듯이 접혔다.
수평이 아닌 수직이었다.
흐르는 바람층의 저항을 꿰뚫고 솟구쳐야 했기에 같은 거리를 날자면 훨씬 더 많은 탄성이 필요했다.
찌이익! 퉁!
퀘에엑!
활이 부러질 듯이 당겨졌다가 놓이자 촉 없는 화살이 거친 파열음을 만들며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파악!
화살에 맞은 비응이 움찔하더니 날개를 접고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맞았다!”
화살을 날린 궁수, 방효곤의 외침에 지켜보던 무인들이 모두 ‘와!’ 하는 탄성을 질렀다.
방효곤은 어깨를 으쓱하며 소청을 힐끗 쳐다보았다.
‘쳇, 정말 궁술 하나는 끝내주는군.’
감히 따라 하기 힘들 정도의 기예였다.
신기에 가까운 궁술.
그 정도의 높이로 화살을 날리는 것은 소청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 빠르고 강하게 날릴 수도 있었다.
문제는 정확도와 힘 조절.
고정된 표적이 아닌 움직이는 표적을 정확하게 맞히는 것도 쉽지 않은데 딱 죽지 않을 정도의 힘만으로 쏘아 비응을 맞혔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틈은 없었다.
“소강!”
짧은 외침에 소강이 창을 들고 비응의 낙하지점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서량과의 싸움 이후로 소강의 움직임은 이전보다 조금 더 빨라졌다.
서량이 가지고 있던 극음지기.
순수한 무력으로 따지자면 서량의 무공은 소강에 비할 바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열양의 무공을 익히지 않은 소강에게 극음지기는 무척이나 위험했다.
온몸이 얼어붙어 버린 소강은 음한독에 중독되어 닷새 만에 깨어났다.
소청이 단중의 화기를 이용해 치료했지만 완전히 몰아낼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었다.
소강의 몸에 남아 있던 극음지기는 화기를 피해 숨어 버렸고 그것이 내공에 섞여 버렸다.
독맥 여덟 혈에 담긴 내공과 뒤섞여 버린 것이다.
‘하필이면…….’
그 후 나아가는 소강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머리와 눈썹이 하얗게 탈색되어 버렸다.
극음지기가 소강의 몸아 자리를 잡아 어떤 무공을 펼쳐도 한기가 스며 나왔다.
소청은 숲속으로 사라진 소강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로 소청은 절대로 소강에게 위험한 임무를 맡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소청이 자신을 부추겨 소강이 서량을 상대하게 한 혁련휘를 슬쩍 째려보았다.
“흠, 흠…….”
소강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혁련휘가 소청의 시선을 느끼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쳇!’
짜증을 내며 고개를 돌리는데 방효곤이 자신의 곁에 다가와 뭔가를 기대감에 찬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험험, 쉽지 않군요. 비응을 죽이지 않고 떨어뜨린다는 것은…….”
“그, 그래. 잘했어.”
“그렇지요? 핫핫핫!”
방효곤이 제 뒷머리를 벅벅 긁어 대며 웃었다.
그의 웃음에 피식 웃음이 났다.
소청은 천천히 별동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여유롭고 한가하다.
마치 폭풍 전야의 고요함처럼.
대막혈궁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에 소청은 따로 그들을 수련시키지 않았다.
빙마동과 싸운 이후 모처럼 그들은 늘어지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실 더 이상의 훈련은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여유를 부리며 몸 상태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두어야 했다.
최대한 휴식을 취하며 전쟁을 대비해야 할 때였다.
산서의 경계인 하곡에서 빙마동의 무인들을 몰살시킨 소청과 별동대는 곧바로 대막혈궁으로 돌아왔다.
소강을 치료하며 이동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북해보다는 빨리 대막혈궁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청과 별동대가 대막혈궁으로 이동하는 사이 북해의 병력을 상대하기 위한 중원의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신승과 백인회는 산서의 입구에서 대기 중이었고 구파와 무가, 북천맹의 무인들이 삼문협곡에서 적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족한 병력을 위해 서천맹에서 남긴 병력이 은밀하게 출발했을 테니 이제 전쟁만 남은 셈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사흘 뒤.
북해의 본대가 대막혈궁의 검은 대지로 들어왔다.
무혈입성을 한 것이다.
하지만 제갈휘문이 조작한 전서구들이 수도 없이 도착했음에도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곧바로 움직일 것이라 생각했던 소청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며 검은 대지의 외곽에서 북해의 무인들을 감시했다.
분명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비응 한 마리가 서남쪽을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소청은 그것이 놈들이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는 이유일 것이라 직감했다.
연유를 알아야 했다.
북해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
분명히 무언가 있을 것이다.
“형님!”
소강이 비응의 날개를 잡고 돌아오자 혁련휘와 별동대의 무인들이 몰려들었다.
모두가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와. 대단하네, 대단해.”
악이군이 소강의 손을 벗어나기 위해 날개를 연신 퍼덕거리고 있는 비응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고 방효곤이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거렸다.
“비켜!”
소강이 별동대의 무인들을 헤치고 비응의 발에 묶여 있는 작은 통의 입구를 열었다.
퐁!
돌돌 말린 전서.
“은수.”
소청은 전서를 꺼내 은수에게 내밀었다.
저들이 쓰는 암어는 이미 청초각에서 분석이 끝난 상태였다.
세작을 처리하는 임무를 맡았던 은수라면 충분히 해독할 수 있었다.
한참을 읽어 내린 은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들이 확인을 하려는 모양입니다.”
“확인?”
“예. 대막혈궁에서 대기하라는 것이 사실인지 묻는 것을 보면 아마도 마궁에서 전서구가 도착한 모양입니다.”
“호, 그래?”
마궁이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다.
하긴 서천맹이 갑자기 병력을 몰아 토번을 향해 진격했으니 중원의 의도가 궁금했을 터였다.
그들은 그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북해의 움직임을 멈추게 한 것이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소청이 은수를 향해 물었다.
“비응이 마궁에 도착했다가 돌아온다면 얼마나 걸리지?”
“아, 음, 하루에 이삼천 리 정도 날아간다고 생각을 하면 한 닷새 정도면 도착할 것입니다.”
“닷새라…….”
오히려 잘되었다.
북해의 병력에 비해 중원 무림에 남은 방어 병력이 열세인 시점이었다.
닷새라는 기간이라면 좀 더 많은 준비를 할 수가 있었다.
그만한 기간이라면 모자겸이 끌고 오는 운남의 병력들이 북해가 내려오기 전에 삼문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또한 삼문협에 적을 상대하기 위한 수많은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크크크. 하늘이 돕는군.”
소청이 싸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은수, 제갈휘문에게 연락을 보내라. 적이 닷새 후에 진격을 시작한다고.”
“알겠습니다.”
은수가 연락을 보낼 준비를 하는 사이 소청이 별동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긴 싸움이 될 것이다. 우리 별동대의 임무는 적의 수를 줄이고 핵심적인 전력을 죽이는 데 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닷새다. 모두 자신이 가진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라. 죽지 않기 위해서…….”
* * *
시간이 쏜살처럼 흘렀다.
닷새라는 시간은 소청과 별동대에게도, 북해의 무인들에게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는 단강구.
뇌령도문이 정천과 수차례 전투를 벌여 온 그곳으로 이동한 제갈휘문은 직접 전투 준비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적을 유인할 공격로마다 함정이 설치되고 혼란에 빠뜨릴 진법이 구축되었다.
제갈세가의 모든 학사들이 동원되었고 무인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도왔다.
“조금만 더 서둘러라!”
제갈휘문이 무인들을 채근했다.
“어떤가?”
북천맹을 떠나온 혜어화가 다가와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이 정도 준비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수적인 차이를 줄일 만큼은 되어야 합니다.”
“음. 그렇겠지. 적들의 수가 이만이 훌쩍 넘는다 하더군.”
“예. 개략적이긴 하지만 하오문에서 보내온 정보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음…….”
“그보다 북천맹에 남아 있는 병력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두 패로 나누어 신승께서 부탁한 곳과 진 공자가 요청한 곳으로 보내 두었네.”
“이미 닷새가 지났습니다. 북해가 진격을 시작했을 테니 앞으로 최소 열흘 남았습니다.”
“그렇겠군.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되겠군. 서로가 죽고 죽이는 아귀다툼의 전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