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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209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6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209화

208화. 동요하는 마천

 

 

 

 

서천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인들은 전투를 위해 칼을 벼리고 복장을 갖추어 입었다.

정사의 무인들이 미리 편성된 대로 모여 서천맹의 외곽에서 대기 중이었다.

각 세력을 대표하는 깃발을 세워 휘날리는 그들의 위용은 출진을 앞둔 군세처럼 대단했다.

“제갈상아입니다.”

제갈휘문으로부터 진격 명령을 받은 제갈상아는 각 세력의 수장들을 불러들였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그녀는 널찍한 탁자 위에 지도를 펼치고 토번으로 가는 두 개의 경로를 짚었다.

“남쪽은 멸마단이, 북쪽은 사도련의 무인들이 맡습니다. 각 경로상에 지선인 여덟 곳에 부대를 두되 주 전력의 삼 할만을 배치합니다.”

제갈상아은 무인들의 수와 세력을 표시한 작은 깃발들을 지도 위로 옮겼다.

“적의 위치는 없는가?”

검후 옥선하의 질문에 제갈상아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마궁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미리 잠입해 있는 흑비 소저와 둔영(遁影)조의 무인들이 계속해서 연락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마궁에 모여 있을 뿐 다른 움직임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

“일단 정천의 무인들은 검후께서 지휘를 맡아 주십시오. 그리고 사도련은 사마현 대장로께서 이끌어 주십시오.”

“알겠소.”

“척후를 운용하기는 하겠으나 아무래도 적의 움직임을 흑비 소저의 연락을 통해서만 알 수 있으니 그 점에 유의해 주십시오.”

“알겠소.”

서천맹의 임시 맹주인 청성 장문인 명진도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물었다.

“서천맹 인근에 숨어 있는 마천의 세작들은 어찌 처리할 것이오?”

북쪽을 기점으로 삼은 세작들은 이미 인근 문파의 무인들과 비마대의 무인들에 의해 처리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뒤였다.

남은 것은 서천맹 인근과 중원 서부의 세작들이었다.

그들을 남겨 둔 것은 서천맹의 움직임을 마궁으로 전달하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 역시 명진도장의 지휘 아래 각 파에서 추린 무인들로 하여금 은밀히 감시하고 있었다.

제갈상아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들 역시 곧장 처리될 것이었다.

“서쪽의 세작들은 서천맹의 전력이 토번의 경계에 다다른 이후 처리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네.”

명진 도장의 대답에 제갈상아는 모두를 바라보며 재차 다짐을 받듯이 말했다.

“이번 싸움의 목표는 저들의 움직임을 묶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절대로 대규모의 교전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알겠네. 한데 북쪽의 전력이 부족할 텐데?”

“맞습니다. 대군사께서도 그 점을 걱정하시어 미리 연락을 보내었습니다.”

제갈상아가 모자겸을 바라보았다.

“이미 운남의 병력이 그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제갈상아의 말에 모자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들의 세작이 제거되는 즉시 모자겸 대족장께서는 서천맹을 떠나 북쪽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알겠소. 그리하지.”

모자겸이 불러들인 운남의 병력은 모두 삼천에 달했다.

“진 공자와 혁련 소련주, 이하 별동대의 무인들, 북천맹에 남아 있는 신승 어른과 백인회, 정천 예하 각 파의 원로들과 사도련의 원로들까지 직접 나선 싸움입니다. 모자겸 대족장과 운남의 병력까지 가세하면 해볼 만합니다.”

“허, 싹싹 긁어모았군.”

검후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수심이 가득하게 어렸다.

“어쩔 수 없습니다. 북해와의 일전은 마천과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아 가는 교두보가 될 것입니다. 여차하면 무황께서 직접 나선다 하셨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오 무황께서?”

무황 위도혁이 언급되자 얼굴에 가득했던 수심이 조금씩 걷혔다.

홀로 만 명의 적을 상대할 수 있다는 만인지적(萬人之敵)의 인물.

그가 바로 무황 위도혁이었다.

“하지만 북해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궁의 움직임을 막아야 합니다. 북해와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옳네.”

“자, 회의는 이걸로 끝입니다. 날이 밝는 대로 진격을 시작할 것이니 그리 준비해 주십시오.”

“알겠네.”

“이제부터는 전쟁이 계속될 것입니다. 북해의 무인들과의 싸움이 끝나면 곧장 마궁을 칠 계획입니다.”

기나긴 전쟁.

중원의 주인을 놓고 시작하는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도처에 시신들이 널리게 될 것이고 흐르는 물은 피로 물들 것이다.

 

* * *

 

북해가 대막혈궁에 다다랐다는 소식을 들은 파군과 마천의 세주들은 서천맹을 치기 위한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급전입니다!”

전령이 허락도 받지 않고 회의장으로 뛰어들었다.

“서천맹의 무인들이 토번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습니다.”

“뭣이!”

파군 용유명이 눈에 띄게 커진 눈으로 전령으로부터 전서를 빼앗듯이 받아 들었다.

“이, 이런!”

중원 서남쪽에 깔아 둔 세작들이 보낸 내용이었다.

“망할!”

파군이 전서를 구겨 버렸다.

“파군. 그게 무슨 소린가? 서천맹의 무인들이 진격을 시작했다니?”

요마(妖魔) 이옥상이 다그치듯이 물었다.

하지만 굳어진 파군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백효가 이끄는 북해의 진격은 순조로웠다. 이미 그들의 선발대인 빙마동이 대막혈궁을 되찾고 계속된 승전보로 적을 뒤쫓아 산서의 북쪽 하곡까지 이동했다는 연락이 당도해 있었다.

혈승이 죽긴 했으나 그의 계략은 유효했다.

북해와 마궁이 중원을 향해 진격하는 일만 남았다.

대막혈궁을 빼앗긴 것에 대해 이미 중원 무림이 동요하고 있어야 했다.

서천맹에 집중된 병력의 일부가 북쪽으로 이동해야 마땅할 일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서천맹이 토번으로 진격을 시작하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서천맹에는 중원 무인들 대부분이 집결되어 있었다.

어림잡아도 수만을 헤아렸다.

나누어지면 모르되 집중되어 들이치면 세주들이 모두 나선다 해도 그 피해를 예측하기 힘든 싸움이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북쪽을 비우고 서쪽을 친다?

파군은 제갈휘문이 그러할 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파군, 말 좀 해 보게. 어찌 된 일인가?”

이번에는 괴마(怪魔) 전추가 답답한 표정으로 다그쳤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서천맹의 병력이 움직여서는 안 되는 일인데…….”

파군은 계속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서천맹이 움직인다면 오히려 다행이 아닌가? 우리가 토번을 막고 있는 동안 북해가 중원을 밀고 들어가면 될 일일세.”

요마 이옥상은 단순하게 결론을 도출해 버렸다.

옳은 말이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부분에서는 그러했다.

하지만 최대의 걸림돌인 무황의 움직임에 대한 연락이 없었다.

진소청의 행적에 대한 보고도 오지 않은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파군은 심각한 표정으로 세주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마궁에 남은 마천의 전력은 모두 다섯이었다.

파군의 용마군(龍魔軍).

요마의 은은비림(隱隱秘林).

괴마의 귀호(鬼號).

수마의 만수곡(萬獸谷).

혈마의 혈린(血燐).

그리고 죽은 세주들의 잔존 세력과 토번의 세력들뿐이었다.

모두 합하면 이만여가 넘는 수였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서천맹에서 세주들에 비교될 만한 강자는 없었다.

하지만 마종이 폐관 중인 시점에서 무황이 나타나거나 진소청이 나타나면…….

“일단은 세주들은 각 세력을 이끌고 토번의 길목을 지켜 주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 마승들을 비롯해 토번 무인들을 앞세우고 뒤에서 대기해야 하네. 절대 교전을 벌여서는 안 돼. 나는 속히 마종을 찾아뵈어야겠네.”

“알겠다.”

파군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마종이 폐관이 든 마궁의 뒤편 용왕담(龍王潭)으로 향했다.

배를 띄워도 될 만큼 거대한 연못의 중앙에 마종 종리세가 머리만을 드러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파군은 급히 그의 앞으로 달려가 납작 엎드렸다.

폐관에 든 그는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혈승이 죽었을 때 한 번 그를 찾았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마종을 뵙습니다.”

이미 파군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마종의 얼굴에 언짢음이 가득했다.

파군의 목소리에 떨림이 있으니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지는 않았을 터였다.

수련은 거의 막바지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맥을 끊어 버린다면 다시 시간이 늘어날 터였다.

“고하라.”

“예! 북해가 대막혈궁을 되찾았고 중원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데 서천맹에서 마궁을 향해 진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순간 종리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촤아악.

종리세가 굵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눈을 뜨자 기세가 사방으로 뿜어져 용왕담의 물결이 거센 파랑을 일으켰다.

“서천맹이 진격을 해 왔다고? 이 사형이 대막을 공격했음을 알 것인데. 놈들이 북쪽을 비웠단 말이냐?”

“예, 마종. 세작들의 보고에는 서천맹으로 무인들이 이동했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사항은 없었습니다.”

“…….”

종리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역시 파군처럼 제갈휘문을 떠올렸다.

그가 살던 생에서 다 이긴 싸움을 뒤집었던 지략가였다.

허투루 수를 내놓을 리가 없었다.

분명 노림수를 숨겨 두고 자신들을 도발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무황의 움직임은?”

“파악된 것이 없습니다.”

“음…….”

무황 위도혁.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였다.

“하긴, 무황 정도 되는 이가 움직이는 것을 한낱 세작 따위가 알 수는 없겠지. 숨기고자 한다면 세상 그 누구도 찾지 못할 것을…….”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 사형과 북해는 어찌하고 있는가?”

“닷새 전 보고에는 대막혈궁과 열흘 거리에 있었으니 지금쯤 도착하였을 것입니다.”

“음…….”

종리세는 잠시 고민했다.

“전서를 보내라. 이 사형에게 대막혈궁을 지키라 하라. 적의 의중이 파악되지 않는 한 절대로 중원을 향해 발을 내딛지 말라 하라.”

“알겠습니다. 마궁과 세주들에게도 서천맹의 공격에 대비해 길목을 지키라 하였으나 교전하지 말고 대기하라 하였습니다.”

“옳은 판단을 했군.”

파군의 말에 종리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보고가 끝난 파군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주저함을 보였다.

“파군,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라.”

“만약 서천맹이 기다리지 않고 공격해 온다면 항전을 해야 합니다. 만약 마종께옵서 제때 폐관을 끝내지 않으시면 귀령술로 되살린 역천대공을 보내도 되겠습니까?”

“구 사형을?”

“예.”

구자겸은 서천맹 전투에서 진소청에게 패하고 폐인이 되어 돌아왔다.

단전이 파훼되었으니 그는 더 이상 무인으로 살 수가 없었다.

마종의 명령에 의해 괴마는 그에게 귀령술(鬼靈術)을 통해 이혼 대법을 펼쳤다.

구자겸의 정신을 강시의 몸에 전이시킨 것이다.

하지만 온전치 못했다.

강시의 몸에 역천대법으로 마기를 증폭시켜 이전과 비견될 정도의 힘을 되찾기는 했으나 약간의 이성만을 가진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좋다. 필요하면 사용하라.”

“알겠습니다.”

파군은 조심스럽게 용왕담에서 물러났다.

파군이 나간 뒤.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 있던 마종의 입이 떼어졌다.

“흑묘(黑猫).”

공허한 듯한 그의 부름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무언가 쑥 하고 튀어나왔다.

검은 천으로 몸을 둘둘 말고 있는 흑묘는 눈만을 빼꼼히 내민 모습으로 종리세의 뒤에 엎드렸다.

“상황이 재미있게 되어 가는구나. 슬슬 십이 마령들을 준비해야겠다.”

침묵하고 있던 흑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쇠가 갈리듯이 거북한 목소리.

“현재 운(雲)은 북천대공과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운이?”

“예.”

십이 마령.

그들의 존재는 마천에 알리지 않았다.

종리세가 역천검을 이용해 과거로 돌아온 이후부터 만들어 온 무인들이었다.

전생에 이루지 못했던 마도 천하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운을 불러들여라. 마지막을 준비한다.”

“알겠습니다.”

“마궁의 정수를 얻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때부터 마천의 위대한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전쟁은 어찌 끝나도 상관없다. 내가 곧 마천이며, 세상에 나가는 날 모든 곳이 피로 잠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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