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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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04화
203화. 진실 혹은 거짓
딱히 자신이 동생을 구속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은연중에 동생을 보호하고자 했던 마음이 구속처럼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이제껏 그랬던 적이 없었던 동생의 반항은 무척이나 커다란 느낌으로 다가왔다.
언제나 자신의 말이면 콩 심은 곳에 팥이 난다고 해도 믿어 주며 따라오던 녀석이…….
반항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녀석들 같으면 두들겨 패서라도 어찌해 보겠는데, 어찌 된 게 동생 녀석을 다루기가 이리도 어려운 것인지.’
소청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다른 일이 먼저였다.
소청의 시선이 죽어 버린 귀랑에게로 다시 옮겨졌다.
일단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불안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귀랑이 말했던 추련화.
‘빙동마령이라는 이들 중 유일한 여인.’
그녀가 자신들의 계략을 눈치채고 있는 것이다.
거웅과 후미가 도착하지 않았을 때 의심을 품었을 것이고 확인을 하기 위해 보냈던 귀랑마저 죽었으니 의심은 확신이 될 것이다.
그녀를 죽여야 했다.
‘그들을 대막혈궁에서 죽게 만들어서는 안 돼. 저들의 본대가 도착했을 때 대막을 되찾았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려면…….’
빙마동은 대막혈궁을 지나 계속해서 남하해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계속해서 알려야 했고 의심 없이 그들의 본대가 중원으로 진격하는 미끼가 되어 주어야 했다.
‘일단 좀 휘저어 줘야 하나? 추련화라는 년도 죽일 겸.’
소청은 멀리서 싸우고 있는 소강을 불렀다.
“소강!”
“…….”
서너 명의 무인들을 베어 낸 소강이 소청을 힐끗 쳐다본다.
역시나 이전과 달리 눈빛이 반항적이었다.
“나는 대막혈궁으로 간다. 이곳을 정리하고 곧바로 따라와라!”
“예? 그게……?”
소강이 묻기도 전에 소청은 이미 자신의 말을 끝내고 남쪽을 향하고 있었다.
“형님……!”
항상 저런 식이다.
아무 말도 해 주지 않는다.
소강은 그것이 너무 싫었다.
함께 싸우는 전우가 아니라 그저 동생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닌 혁련휘였다면 분명 행동하기 전에 내용부터 알렸을 것이 틀림없었다.
급한 건 알겠지만…….
“으하합!”
가공할 위력을 품은 천뢰충파가 남아 있는 빙마동의 괴인들을 향해 작렬했다.
콰아아아앙!
흙더미가 솟구치고 사방으로 육편 조각이 흩어졌다.
소강은 마치 어떤 울분 같은 것을 토해 내듯이 전장을 휩쓸어 버렸다.
그와 함께 싸우고 있는 별동대의 무인들이 놀랄 정도로 잔인한 모습이었다.
“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언청연의 물음에 악이군이 대답했다.
“이 공자 말이오. 왠지 며칠 전부터 성격이 좀 변한 것 같은……. 뭔가 좀 급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좀 잔인해졌다고 할까?”
“…….”
악이군은 잠시 소강을 바라보다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도 진 씨야.”
“…….”
“둘이 형제라고.”
“아……!”
형제는 각자가 부정하더라도 닮는 법이다.
언제나 공손하고 차분한 소강이긴 했지만 진소청과 한 피를 타고났으니…….
“그, 그럼. 앞으로 이 공자에게도 좀 주의를…….”
“집중해. 몇 놈 안 남았어!”
악이군이 언청연을 향해 달려드는 괴인의 가슴에 창을 찔러 넣었다.
* * *
“멈춰야 합니다!”
추련화의 말에 서량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추련화, 그만해라. 대막혈궁을 당장에 되찾을 수 있는 상황에서 멈추라니 동주님께 어찌 이런 무례인가?”
서량의 곁에 있던 백괴가 그녀를 나무랐다.
“백괴, 너도 그만해라!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저들은 지금 우리를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러 패배하면서 우리를 끌어들이고 있는 거야!”
“추련화!”
서량의 눈에서 불길이 토해졌다.
적이 쫓겨 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적의 저항에 피해가 있기는 했지만 미미했다.
그저 자신들의 걸음을 늦추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었다.
대막혈궁이 눈앞에 있었다.
고작 일천으로 이루어 낸 쾌거였다.
서둘러 대막혈궁을 차지하고 도주하는 적들을 쫓아 섬멸해야 했다.
서둘러 본대를 위해 길을 열어 자신들의 전공을 알려야만 했다.
“추련화, 더 이상의 참견은 용서하지 않겠다.”
서량이 못 박듯이 말했다. 하지만 추련화는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이 눈을 똑바로 뜨고 말했다.
“동주님, 거웅이 오지 않고 있습니다.”
“…….”
“후위에서 공격을 받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귀랑을 보냈지만 그 역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뭐라?”
서량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턱!
자신을 향해 언성을 높인 추련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인데 제 마음대로 빙동마령을 움직이기까지 했다.
“누구 마음대로! 나에게 허락조차 받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라 했더냐?”
“동주님! 상황을 직시하십시오. 빙마동의 부활이 목전에 이르렀다 하지만…….”
짜아악!
서량의 손이 매섭게 휘둘러졌다.
거친 손길에 얻어맞은 추련화의 얼굴이 찢어져 피가 흘렀다.
“동주님!”
“닥쳐라!”
“…….”
“백괴! 적을 추격한다!”
“알겠습니다!”
서량은 무시무시한 한기를 뿜어내며 추련화를 압박했다.
그녀의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았다.
“동주…….”
“멍청한 년! 그리도 겁이 나면 너는 대막혈궁에서 기다려라!”
“…….”
미쳤다.
미친 것이다.
불을 보고 홀려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서량이 미친 것이다.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죽더라도 빙마동의 움직임을 멈춰야만 했다.
화악!
추련화가 서릿발 같은 기운을 끌어 내 서량의 앞을 막아섰다.
“네, 네년이…….”
“막아야겠소. 당신의 그릇된 판단으로 우리 빙마동이 전멸하는 것만은 막아야겠소.”
“감히…….”
추련화는 서량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만년빙정의 극음지기를 함께 흡수했다고 하더라도 그 양과 질에서 엄청난 차이를 이룬다.
빙마동주 서량은 과거 북해빙궁의 궁주에 도전했을 만큼 뛰어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막지 않으면…….
빙마동은 저들의 간계에 속아 전멸할 것이다.
차아앙!
지켜보고 있던 백괴가 양손에 한기를 선명할 정도로 끌어 올리며 서량의 앞을 막았다.
“이년이 미쳤구나. 감히 동주님께 반기를 들다니!”
“너도 정신 차려라. 백괴! 믿고 따르는 것만이 충성이 아니다. 잘못된 길로 나아가려는 것을 깨우쳐 주는 것 역시 충성이다.”
“이……!”
백괴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데 서량이 그의 어깨를 잡아 밀어내었다.
“오냐오냐해 주었더니 미친 게로구나.”
“동주…….”
으적, 으저적.
광폭한 기운이 한기를 머금고 몰아치기 시작했다.
빙마동주 서량의 기운.
같이 극음지기를 수련한 추련화의 몸에 소름이 돋아 오를 정도로 차가운 힘이 그녀의 전신을 짓눌러 왔다.
“하, 이것 봐라?”
“……!”
팽팽한 긴장감이 끊어질 듯이 유지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파고든 나른한 목소리.
검은 피풍의를 두르고 치렁치렁한 앞머리를 휘날리며 나타난 사내, 진소청.
“네놈!”
추련화는 소청을 보는 순간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어, 언제?
퇴각하는 적을 따라 전선이 앞쪽에 치우쳐져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주위에는 수많은 빙마동의 고수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런데 어찌 그 틈을 아무렇지도 않게 뚫고 들어와 자신들 앞에 나타난단 말인가?
“귀, 귀랑이 죽은 것인가?”
“귀랑? 그건 또 뭐야?”
“모른다고?”
소청이 얼굴을 일그러뜨리자 추련화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잠시 다른 임무로 떠나 있는 동안 대막혈궁을 공격했더군.”
“…….”
“대막혈궁을 무너뜨리기 위해 죽어 간 이들이 얼마인지 알아? 중원 무림인들의 피와 땀이 서린 전장을 너희들 따위에겐 넘겨줄 순 없지!”
거짓말이다.
추련화는 소청의 거짓말에 속지 않고 의심했다.
말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본대가 퇴각을 한 시점이다.
마땅히 그들과 합류해서 싸워야 한다.
아니라 하더라도 모두의 눈을 속이고 은신해 올 정도라면 차라리 숨어서 살수를 펼치는 것이 옳다.
그런데 홀로 온 것도 모자라 자신들 앞에 버젓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죽음을 각오한다고 해도 너무 무모한 짓이었다.
자신이 있는 것이다.
‘이놈, 도대체 무엇을 노리는 것인가?’
추련화가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는 사이.
“네놈은 누구냐?”
서량이 소청을 노려보며 서늘한 기운을 뿜어 대었다.
“냉악, 냉악을 죽인 놈입니다.”
“호오? 그렇군. 네놈이군.”
서량은 가늘게 뜬 눈으로 소청의 기세를 살폈다.
추련화의 말에 따르면 냉악이 뿜어낸 극음지기를 녹여 버리고 단 일격에 죽였다고 했다.
그만하면 충분히 고수라 할 만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다.
빙동마령들에 비하면 강한 기운이긴 했으나 서량 자신의 기운에 비하면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재미있는 놈이군. 꽤나 뛰어난 은신술을 익혀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모양이구나. 하나 제 발로 죽을 자리를 찾아오다니…….”
서량이 소청을 비웃으며 다가왔다.
“그래, 죽을 자리일지도 모르지.”
소청이 피식 웃으며 창대를 움켜쥐었다.
차자자작!
쇳소리와 함께 창대가 늘어났다.
“이야압!”
소청은 곧바로 서량을 노렸다.
깡!
백괴가 그의 앞을 막으며 창대를 튕겨 내었다.
“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깡! 까가가강!
쉴 새 없이 주먹을 날리는 백괴의 공격에 소청이 뒷걸음질하며 창대를 휘둘러 막았다.
호각이라 할 수도 없을 만큼 밀리는 형세였다.
하지만 간간히 기감에서 사라졌다가 백괴의 사각에서 나타나 창극을 찔렀다.
“큭!”
백괴가 옆구리에 상처를 입고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을 내었다.
서량은 잠시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은신술.
그것이 전부였다.
그의 눈에 비친 소청은 고도의 은신술을 익힌 살수에 불과했다.
창을 쓰는 것이 독특했지만 자신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역시 추련화의 눈이 틀렸다.
자신들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은신술 때문에 놀랐을 뿐이리라 생각했다.
추련화 역시 소청과 백괴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 이럴 리가?’
그럴 리가 없었다.
자신이 본 소청은 고작 백괴에게 밀릴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떨어져 있었던 백괴는 온전히 느끼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냉악의 죽음을 보았던 그녀는 그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순간 이동이라도 하듯이 십여 장을 뛰어넘는 움직임.
극음지기를 단숨에 녹여 내었던 그 푸른 불꽃의 기운은 빙마동주의 힘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그런데 백괴와 호각, 아니 밀리는 형세라니?
말도 되지 않는다.
의심은 점점 더 커져 갔다.
“백괴, 돕겠다!”
빙마동주에게 그의 실체를 보여 주어야 한다 생각한 추련화가 백괴와 소청의 싸움에 끼어들었다.
하나가 더 더해진 한기는 사방을 매섭게 할퀴어 대었다.
소청의 옷자락이 찢어지고 살갗에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소청은 은신술과 일보월하를 써 가며 팽팽하게 그들과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