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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201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9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201화

200화. 패배하는 싸움

 

 

 

 

“물러나라는 겐가?”

“예. 물러납니다.”

섬뢰의 말에 소청이 빙긋이 웃었다.

“대신 최대한 시간을 끌다 저들의 본대가 가까워져 오면 패배하는 척하며 물러나는 겁니다.”

“그게 무슨…….”

섬뢰를 비롯해 별동대의 무인들까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무지 소청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전선에 나타났을 때만 해도 어찌나 기뻤는지 모른다.

더욱이 열양공으로 뇌령도문의 부상자들이 중독된 음한독까지 몰아내어 주었다.

뇌령도문으로서는 은혜를 입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데 어찌 승기를 잡은 전투에서 물러난단 말인가? 진소청과 혁련휘 일행까지 곧 도착할 테니 그들과 함께 적의 선봉을 무너뜨려야 했다.

“적의 수는 이만으로 추산합니다.”

“…….”

“대막혈궁이 서천맹을 공격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천맹 때처럼 저들의 선발대를 무너뜨려야 하는 것 아닌가?”

섬뢰의 말에 소청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서천맹 전투는 막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패배해야만 하는 싸움입니다.”

“패배해야 한다고?”

그런 싸움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예. 우리가 싸워야 할 곳은 북해가 마지막이 아닙니다. 토번의 마궁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지요.”

“마궁…….”

이미 중원 무림뿐 아니라 북천맹의 대부분 전력이 사천으로 이동했다는 전갈을 받은 상태였다.

“이미 혈승의 죽음이 저들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고 남하해 오는 북해에 전해졌을 것입니다.”

“…….”

“이런 상황에서 적들의 선발대가 무너지면 고심을 하겠지요. 더욱 만반의 준비를 해서 마종과 함께 쳐들어온다면 현재 중원 무림으로서는 감내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섬뢰는 언짢은 표정으로 묵묵히 듣기만 했다. 일단 ‘퇴각’이라는 말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의 선발대가 승전고를 울리고 빠른 속도로 쳐들어온다면 본진과의 거리는 충분히 벌어질 것입니다. 중원의 전력은 저들에 비교해 상당수 열세입니다. 결국 하나씩 각개 격파 하는 것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죠.”

“음…….”

틀린 말이 아니었다.

“북해는 반드시 계속해서 이동해야 합니다. 중원 깊숙한 곳까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계속 물러나기만 한다는 것은…….”

“물러나기만 하겠습니까? 계속 줄여 나가야지요.”

소청이 빙긋이 웃었다.

“저들에게 계속해서 승리를 안겨 줄 것입니다. 먹잇감을 앞에 두고 따라오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말이죠.”

“…….”

소청은 별동대와 섬뢰에게 제갈휘문이 세운 계략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일단은 대막혈궁으로 오는 길목을 막는 척할 겁니다. 그리고 전투가 치열해졌을 때 비울 것입니다.”

“…….”

대막혈궁으로 오는 길목은 수차례 접전을 벌이며 지켜 온 곳이었다.

그곳을 비워 버리면 순식간에 적이 밀고 들어올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대막혈궁을 차지하게 만들고 조금씩 물러나야 합니다.”

섬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패배를 통해 승리하는 전쟁이라니…….

“휴, 어쨌든 알겠네.”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문주님께선 먼저 부상자들을 추려 후방으로 천천히 후퇴시켜 주십시오.”

“후퇴를?”

“예. 아마 지금쯤 저들은 우리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첩자를 보냈을 겁니다. 일단 그들부터 믿게 해야지요. 우리의 전력이 약해졌다는 걸…….”

“…….”

소청이 빙긋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주님, 지금쯤이면 휘가 도착할 때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동하느라 고생했을 텐데 따뜻한 술이 필요하겠네요.”

“알겠네.”

 

혁련휘와 별동대는 섬뢰와 소청이 만난 지 한 시진 후인 늦은 밤에 도착했다.

“어?”

소청을 본 혁련휘의 반응이었다.

“아니, 자네…… 어떻게?”

자신을 환하게 웃으며 맞이하는 소청의 모습에 혁련휘와 별동대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출발할 때 분명 하남 북쪽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허 참, 따라잡힌 게야? 이틀이나 되는 거리를?”

“사흘을 쉬지 않고 달렸지. 그리고 자네들보다 반나절 먼저 도착했고.”

“쉬지 않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어 대는 혁련휘를 향해 소청은 웃기만 했다.

“자네가 올 줄 알고 미리 술을 데워 놓았네.”

“쳇, 놀라서 술 마실 생각도 들지 않는군. 더구나 대막에서 술이라고 해 봐야 그 맛없는 마유주(馬乳酒)일 텐데…….”

마유주는 말이나 양의 젖을 발효시켜 만드는 술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이것뿐이네.”

소청이 데워진 술을 내밀었다.

“쳇…….”

“그보다 수련은 어찌 되었나?”

소청이 옥명자를 비롯해 혁련휘가 끌고 간 별동대를 쳐다보며 물었다.

“뭐 다들 제법 성취가 있었어. 장담하건대 자네를 따라간 이들보다는 뛰어날 거야.”

“그래?”

소청이 음흉하게 눈을 뜨고 별동대들을 바라보았다.

순간 옥명자 등과 인사를 나누고 있던 승혜가 움찔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뿐만 아니라 소청을 따라갔던 별동대의 무인들이 술을 마시다 말고 사색이 되어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서문중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지만 다들 묵묵히 술만 마셨다.

그들이 어째서 그런 것인지는 오직 진가 표국에서 그들의 수련을 보았던 황보인만이 알고 있었다.

저 정도의 반응이라면 분명 보통 훈련이 아니었을 것이다. 경험하지 않았지만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심신이 지친 별동대의 무인들은 밤이 깊어 가자 마유주의 독한 기운에 취해 하나둘 잠들었고 남아 있는 것은 소청과 혁련휘뿐이었다.

“휘.”

“왜?”

“자네가 퇴각을 맡아 주게.”

“내가?”

“그래. 섬뢰 님은 뛰어난 무인이지만 간계를 꾸밀 줄 몰라. 싸움에 임하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만 생각하시지.”

“음, 전투적인 성향이 강하시니까.”

“하니 자네가 이끌어 주게. 적당히 싸우고 적당히 물러나며 적을 끌어들여 주게.”

“자네는?”

“나? 후방을 쳐야지.”

소청의 말에 혁련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패배하는 전투.

소청과 혁련휘는 제갈휘문에게 전략을 함께 전해 들었다.

저들은 술에 취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승리에 도취하여 제 살이 조금씩 갉아 먹히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쳇, 재미있는 싸움은 혼자 하겠단 말이군.”

“그런 것보다는 후방은 공수 전환이 자유로워야 하네. 자네보다 경공이 빠른 내가 유리하겠지.”

“뭐 좋아. 대신 이번엔 북천대공이라는 놈은 나에게 넘겨줘야 해.”

“자네가?”

소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뭐 좋아. 능력이 된다면…….”

“너보단 나아!”

혁련휘가 빽 하고 소리를 지르자 소청이 푸흡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혁련휘는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주인이었다.

수하들 앞에서는 여전히 위엄 넘치고 존경받는 무인이었다.

하지만 소청과 둘이 있을 때만 되면 질투 넘치는 소년이자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되었다.

“휘, 꽤나 긴 싸움이 될 걸세.”

“알아. 이 싸움이 그 어떤 때보다 중요하다는 것도…….”

혁련휘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혁련휘를 향해 소청이 품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건네었다.

“뭔가?”

“속명단.”

“…….”

속명단은 위험한 순간에 기력을 돋우는 단약이었다.

내력이 고갈되거나 중한 상처를 입었을 때 한 줌 진기 정도는 회복시켜 줄 터였다.

“지칠 거야. 싸우다 죽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지쳐서 죽어서는 안 되겠지. 적어도 도망칠 힘 정도는 될 거야.”

혁련휘는 피식 웃으며 보자기를 받아 품에 갈무리했다.

둘은 말없이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셨다. 마유주의 시큼한 향기와 알싸한 맛이 목울대를 넘어갔다.

 

“대, 대장…….”

척후를 나갔던 방효곤과 악이군이 지친 표정으로 돌아왔다.

“늦었군. 한잔해라.”

“예.”

소청이 내민 술잔을 악이군과 방효곤이 단숨에 삼켰…….

푸학!

입에 넣자마자 뿜어 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마셨다가 마유주의 독특한 맛에 놀란 터였다.

“…….”

악이군이 정면에서 뿜어낸 술을 맞아 버린 소청의 얼굴에 짜증이 슬며시 치밀어 올랐다.

“아, 이, 이건 순전히…….”

악이군이 당황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쳐 대었다.

단창을 슬쩍 잡았던 소청이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남들이 쉬는 동안 고생한 그들에게 조금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방효곤이 그랬다면 용서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래. 찾았어?”

“예. 이곳에서 북쪽으로 약 이백 리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수는 일천 이상쯤 되는 듯했습니다.”

“다른 건?”

“그저 위치만 찾으라 해서 깊숙이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한데 조금 지나니 열 명쯤 되는 놈들이 대막혈궁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우리 쪽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생각이겠지.”

예상했던 대로였다.

“대충의 위치는 파악해 두었습니다. 명령하시면 곧바로…….”

방효곤이 자신의 활을 움켜쥐며 자신감을 보였다.

“아니, 그대로 두고 술이나 한잔하고 쉬어라.”

“예?”

“많이 지쳤을 테니 충분히 쉬어 두는 것이 좋을 거야. 적들이 이쪽을 살펴봤다면 내일쯤은 반드시 움직일 테니까.”

“…….”

 

* * *

 

다음 날 아침.

소청에게 미리 언질을 받은 섬뢰는 뇌령도문의 무인들을 추려 내었다.

부상자들과 그들을 호위하는 병력이 대막혈궁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무려 일천에 달하는 병력이었다.

그리고 소청이 혁련휘와 함께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는군.”

“그래.”

혁련휘의 말에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작이야.”

“그래…….”

소청은 눈을 감고 자신의 기감을 퍼트렸다.

옅게 퍼트린 기감이 대막혈궁 곳곳의 정보를 담아 그의 민감한 감각에 전해져 왔다.

그가 찾고 있는 것은 차가운 한기…….

‘저것도 은신이라고…….’

북해의 한기에 자신들의 기운을 숨기는 그들의 은신술은 대막혈궁의 검은 대지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은신을 하자면 자신의 기운을 감추어야 하는 법인데 뜨거운 열기 속에 감추어진 그들의 한기는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대막의 상황을 한참이나 지켜보던 그들의 기운이 북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악이군이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저들과의 거리는 이백여 리. 저들이 되돌아가 선발대의 본진을 데리고 돌아온다면 오후쯤 이동을 시작하겠군.’

소청은 머릿속으로 적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짐작했다.

치밀해야 했다.

하나의 오차가 큰 구멍을 만들 수 있는 일이었다. 일단은 저들의 선발대가 믿게끔 만들어야 했다.

‘일단은 길목에서 저들과 싸운다. 그리고 대막을 내어 주는 사이 후미를 친다.’

소청은 별동대의 인원들을 바라보았다.

후미의 전투는 기습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만큼 경공은 뛰어날수록 좋았다.

방효곤, 소강, 악이군, 승혜…….

소청과 함께 온 인원들이었다.

단폐폭승을 배운 그들이라면, 산서 초입에서 대막까지 사흘 만에 주파해 낸 능력이라면 충분했다.

때가 온 것이다.

“소강!”

“예. 형님.”

“별동대를 준비시켜라.”

“알겠습니다.”

승혜와 악이군 등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운기를 하며 몸을 극상의 상태로 끌어 올리고 있었다.

“휘.”

“알았다. 몸조심해.”

혁련휘는 이미 소청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패배를 위한 전투가…….

“온전히 만나자. 중원에서.”

“그래. 물러나는 길에 화산에 들러서 옥루주를 챙겨 두마.”

“그래. 북천대공을 잡고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셔 보도록 하지.”

혁련휘와 소청은 잠시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완전히 회복한 모습으로 일어난 별동대와 함께 소청이 북쪽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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