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00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00화
199화. 빙마동의 금제
“우웩!”
바닥을 짚고 핏물을 게워 내는 거웅의 상처는 심각했다.
가슴팍이 완전히 찢어 버린 상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방어력을 가진 금강섬모의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큰 상처를 입고 있었다.
별동대에서 가장 강한 소강이었다.
이미 섬뢰와 비슷한 경지에 다다른 그의 천뢰충파의 힘이 만들어 내는 위력은 거웅이 막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차압!”
악이군 역시 만혼쇄를 펼쳐 노인을 밀어붙였고, 언청연이 귀랑과 호각을 이루자 단번에 전선이 안정을 되찾고 북해의 무인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응?”
멀리서 활을 쏘아 대는 방효곤의 옆에 서 있던 소청의 눈에 묘한 빛이 떠올랐다.
묘한 빛의 정체는 어이없음을 동반한 신경질적인 노기.
“하! 저건 또 뭐야?”
그의 예리한 시선이 고정된 곳.
그곳은 다름 아닌 쓰러진 거웅을 향해 다가가는 소강 쪽이었다.
“이 새끼가 뒈지려고!”
파아앙!
히죽 웃은 소청의 신형이 거친 파공성을 만들며 쏘아졌다.
빙동마령의 꼽추 냉악은 차가운 한기에 몸을 숨기고 최선을 다해 소강의 뒤편으로 접근했다.
그는 은밀하게 몸을 숨긴 채 전선에 추가된 이들을 살폈다. 그들은 충분히 전세를 바꾸어 버릴 정도로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모두 아홉, 노인 백괴와 아이 귀랑, 추련화를 공격해 온 자들.
하지만 그중 거웅을 공격한 창술가는 특히나 뛰어났다.
눈이 부릅뜨일 정도로 강렬한 충격파 하나로 거웅을 쓰러뜨려 버렸다. 냉악은 그들로 인해 전세가 바뀌어 퇴각할지언정 한 놈이라도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장, 반 장, 두 자…….
이제 그의 가슴을 향해…….
파학!
“……!”
분명히 찔렀다.
그런데, 분명 한참이나 떨어져 있던 검은 피풍의의 사내가 나타나 자신의 비수를 움켜쥐고 있었다.
어, 어떻게?
자신의 은신술은 완벽했다.
특히나 이런 한기 속에서라면 절대 자신의 기세를 알아차릴 수가 없을 터인데…….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던 냉악은 자신의 비수를 움켜쥔 채 내려다보는 소청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오싹.
깊디깊은 눈동자.
그 저변에 깔린 폭발적인 살기가 냉악의 눈을 관통하듯이 쏘아져 나왔다.
만년설의 대지에서 살아오며 차갑게 식어 버렸던 그에게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 줄 정도로 강렬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하압!”
자신이 상대에게 위축되었다는 생각을 용납할 수 없었던 냉악은 극음지기를 극한까지 끌어 올려 비수를 통해 뿜어내었다.
쩌저적!
소청의 손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냉악의 얼굴에 지어진 당혹감과 두려움은 어느새 득의양양한 미소로 바뀌었다. 자신의 비수를 움켜쥔 것은 놈의 실수였다.
빙마동의 무인들은 오랫동안 만년빙정의 힘을 흡수해 왔다.
빙공(氷功)을 익힌 북해의 인물들조차 쉬이 감당할 수 없는 한기였기에 극음지기에 당한 이는 산 채로 얼음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놈은 죽으리라.
자신이 가진 극음지기를 비수에 모조리 때려 박았으니 순식간에 얼음으로…….
“이 버러지 같은 새끼가.”
“…….”
이, 이럴 리가 없다.
분명 극음지기가 그의 몸 안을 관통했을 것인데 어찌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화르륵!
순간 소청의 몸에서 뜨거운 열기와 함께 푸른 불꽃이 생겨났다.
주르르…….
얼어붙었던 손이 삽시간에 녹아내렸다.
그리고 비수를 통해 가공할 열기가 전해져 왔다.
“끄으으…….”
냉악은 타는 듯한 열기에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파학!
소청의 손이 냉악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끄아……!”
손을 통해 전해지는 열기가 그의 뇌리에 스며들자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 대었다.
“감히 내 동생을 노려?”
뚜둑!
소청이 비수를 부러뜨려 잡고 냉악의 어깨에 쑤셔 박았다.
“끄아아악!”
냉악의 비명 소리가 전장을 가득 울렸다.
소청은 박아 넣은 비수를 부러뜨리고 냉악을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콰아아앙!
강렬한 충격파가 전장을 채우는 순간 추련화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뜨였다.
“냉악!”
단 한 수에 빙동마령의 일인인 냉악이 머리가 터져 죽어 버렸다.
그리고 오만한 표정으로 전장을 쓸어 보는 진소청.
망할…….
까가강!
양손 가득히 극음지기를 두른 추련화가 승혜와 서문란을 동시에 밀어 버리고 수하를 향해 외쳤다.
“신호탄을 쏴라! 퇴각을 알려라!”
피융- 퍼엉!
붉은 신호탄과 함께 북해의 무인들이 모조리 도주했다.
“형님!”
“응?”
소강의 부름에 소청이 고개를 돌렸다.
“언제까지 저를 어린아이 취급하시려는 겁니까?”
“…….”
소강은 조금 화가 난 듯 보였다.
소강은 냉악이 접근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청이 끼어들지 않았다 해도 충분한 상황이었다.
“형님! 저는 보호받아야 할 아이가 아닙니다.”
“알았다. 알았어.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하는 바람에…….”
“형님!”
소강이 미간을 찌푸리며 소청에게 다가가는 사이에 거웅이 비틀거리며 도망쳤다.
“쳇!”
소강이 그를 뒤쫓으려는 것을 소청이 막았다.
“왜요!”
“그냥 놔둬.”
“…….”
기껏 잡은 고기를 놓아주라니?
소강은 도무지 자신의 형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기분이 언짢았기에 이해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뇌령도문의 피해가 극심해. 별동대의 무인들도 좀 쉬어야 하고.”
소청이 빙긋이 웃었다.
지금의 전투는 끝이 아니라 앞으로 며칠, 몇 개월이 될지 모를 전쟁의 일면일 뿐이었다.
어차피 중원을 노리고 있는 이상 북해는 계속해서 진격해 올 것이다. 그리고 소청과 별동대는 수가 부족한 만큼 그들을 끌어들여야 했다.
제갈휘문이 계획한 ‘패배해야 하는 싸움’을 위해서…….
“쳇, 뭐 생명줄 좀 더 연장시켜 줬다 생각해라.”
소청이 피식 웃으며 몸을 돌리자 방효곤은 당겼던 활시위를 놓았고 소강과 별동대의 무인들도 그들을 뒤쫓아 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진 공자.”
“예. 서천맹 때 뵈었지요.”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별말씀을…….”
소청이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문주님은 만나 보셨습니까?”
“예. 대막에 도착했더니 이곳에서 전투가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해서 곧장 달려오는 길입니다.”
추상은 소청이 왔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데 그리 강한 자들이 아닌데 꽤나 고전하셨군요. 섬뢰 님이라면 저만한 것들은 충분히 상대하셨을 텐데?”
“그건 연속된 전투에서 많이 지치기도 하셨고……. 계속해서 문도들을 치료하시느라.”
“치료요?”
“예. 저들에게 다친 문도들이 심각한 음한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음…….”
소청도 음한독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열양공으로만 치료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뇌기도 양공의 일종이니…….
“그런데 그 성성이 같은 자들은 누굽니까?”
“그들은 스스로를 빙동마령이라 하더군요.”
“빙동마령요?”
“예. 문주님께서는 아시는 눈치였습니다. 빙마동이라는 곳에 사는 자들로 북해에서 내려오는 전설의 일족이라고 하더군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전설은 일족이라…….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았는데…….”
소청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추상이 웃었다.
“아마도 진 공자께서 너무 강해서 그리 느끼신 게 아닐지…….”
“뭐, 어쨌든 부상자들의 치료가 시급하니 다 같이 퇴각하시죠.”
“예? 일단 저들의 공격을 막았으니 척후를 남기는 게…….”
“괜찮습니다.”
“…….”
소청은 빙긋이 웃자 추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차피 원군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곧바로 움직이지는 못할 겁니다. 이쪽을 세밀하게 살피려 할 것입니다.”
소청의 말에 추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빙동마령이라는 자들 중 하나가 소청의 손에 죽었고 거웅이라는 자는 소강으로 인해 큰 부상을 입었다.
또한 우세를 점했던 그들은 전선을 뚫기 위해 무리할 정도로 병력을 운용해 입은 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효곤, 악이군.”
“예.”
“북쪽으로 가서 저들의 위치를 찾아라.”
“예?”
악이군과 방효곤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남과 산서의 경계에서 출발해서 사흘 동안 밤낮없이 달려왔고 오자마자 전투를 치른 상태였다.
몸이 지치다 못해 머리만 대면 잠들 지경이었다.
‘시팔, 그럼 아까 쫓아가지 않고…….’
악이군과 방효곤이 뚱한 표정을 짓자 소청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뭐 하냐?”
“아니 그게, 좀 전에 그냥 쫓아갔으면…….”
“그래서, 내가 멍청한 판단을 해서 그렇다는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날도 춥고 피곤하기도 하고…….”
“아, 그래? 그럼 내가 가야겠네. 내가 가야겠어.”
“…….”
소청의 이죽거림에 악이군과 방효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망할, 대장 놈…….
망할, 그때 그냥 돌아가는 건데…….
“아니 그건 저희 인원들이…….”
악이군과 방효곤의 안색이 눈에 띄게 우울해지자 추상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소청이 눈을 세모꼴로 뜨고 악이군과 방효곤을 째려보았다.
“맞습니다! 저희가 가야지요. 전투를 치르시느라 힘드셨을 텐데요.”
순간 섬뜩함을 느낀 둘이 서둘러 채비를 갖추고 북쪽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소청의 전음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위치만 확인하고 돌아와. 따뜻한 술을 준비해 놓을 테니까.
망할 놈, 생각해 주는 척하기는…….
* * *
짜악!
거칠게 뻗어진 손에 추련화의 얼굴이 세차게 돌아가고 입안이 터져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뺨을 때린 노인.
빙마동주 서량.
북해빙궁주 예하 다섯 패자 중 한 명으로 오랫동안 빙마동을 지배해 온 인물이다.
추련화를 비롯한 다섯 빙동마령들의 스승이자 그는 일천의 빙마인들의 우두머리인 그는 손수 선발대로 출발했다.
모두가 하나의 약속 때문이었다.
빙마동에 사는 백모 일족의 생존이 담긴 약속…….
“멍청한 것들!”
서량의 몸에서는 서릿발 같은 기세가 흘러나왔고 눈은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
“빙마동의 최고수인 너희들이 저들에게 도망쳐 왔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죄송?”
서량이 추련화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의외의 인물들이 끼어들었습니다. 수는 열한 명에 불과했지만 가진 무공이 엄청났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거웅과 냉악은 일초지적도 되지 못했습니다.”
추련화의 시선을 따라 서량의 눈이 심각한 부상을 입고 치료 중인 거웅에게 돌려졌다.
북해 최강의 외공이자 그들 일족이 가진 금강섬모조차 뚫고 만들어 낸 처참한 상처.
“그리고 그들의 수좌인 듯한 자는 정말로 강했습니다. 도무지 힘을 추측할 수도 없었고 냉악이 죽기전 극음지기를 모조리 끌어 올려 사용했으나 통하지 않았습니다.”
“…….”
서량의 눈이 찡그려졌다.
극음지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만년빙정의 한기를 뛰어넘는 열양공을 가진 무인이 중원에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들이 중원인들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극음지기였다.
“그래서?”
서량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희들의 힘으로는…….”
서량이 가볍게 일장을 뻗어 추련화의 가슴을 때렸다.
쩡!
“크윽!”
그저 내지름뿐이었는데 추련화가 얼굴을 찡그리며 물러났다.
금강섬모의 방어력 따위는 무시한 일격에 가슴팍에 선명한 장인이 생기고 허연 서리가 퍼져 나갔다.
빙마동주의 힘은 같은 극음지기를 익히고 있음인데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할 만큼 강했다.
“멍청한!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단 말이냐?”
“…….”
“북천대공께서 우리 빙마동에 내린 금제를 풀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일족의 보물인 만년빙정을 다시 우리의 보금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란 말이다!”
빙마동의 보물인 만년빙정.
마종 종리세에게 패배한 이후로 북해의 여섯 패주들은 자신들의 세력이 가진 신물을 바쳐야만 했다.
빙마동은 만년빙정을 바쳤다.
극음지기로 생명을 이어 가는 그들이었기에 빙정을 빼앗긴 이후 그들의 일족은 서서히 세를 잃어 가고 있었다.
수천에 달하던 일족들은 거의 대부분 죽었고 남은 것은 일천뿐이었다.
서둘러 중원으로 가는 길목을 열고 만년빙정을 돌려받아야만 했다.
“압니다. 하지만…….”
“시끄럽다!”
서량이 눈을 씰룩거리며 추련화의 말을 막아 버렸다.
“오등!”
“예, 동주님!”
“놈들에 대해서 알아 오라. 그사이 우리는 전력을 정비해서 공격할 준비를 마친다.”
“알겠습니다.”
오등이 고개를 숙이고 수하들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추련화.”
“예.”
서량의 부름에 추련화가 급히 무릎을 꿇었다.
“지금 즉시 전력을 재정비하라. 오등이 돌아오는 즉시 저들의 약점을 파악해 단번에 몰아붙인다.”
“알겠습니다.”
“이번 전투에 일족의 미래가 달려 있음을 잊지 말라. 곧 궁주님과 북천대공께서 오신다. 우리 일천 빙마인들은 목숨을 걸고 중원으로 가는 길목을 열 것이다!”
“예! 동주님!”
빙동마령들을 비롯해 일천 빙마인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