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99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99화
198화. 뭐야? 짐승 새끼야?
섬뢰가 답답한 마음에 짜증을 부렸다.
“문주님, 일단은 제가 뇌문(雷文)의 도객들과 함께 막고 있겠습니다. 문주님께서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잠시 멈추시고 내력부터 회복하십시오.”
“…….”
뇌문의 도객.
이마에 번개 형상의 문신을 새긴 자들. 뇌문은 멋으로 새긴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입증하는 징표였다.
추상이 속해 있는 뇌령도문의 최정예이자 오랫동안 섬뢰와 함께 전쟁을 누벼 왔다는 징표.
추상의 표정에 섬뢰가 잠시 고민했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알겠다. 단 무리는 하지 마라. 빙동마령이라는 자들은 절대 하수가 아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섬뢰가 물러난 이후에도 전투는 치열하게 이어졌다. 마치 줄다리기라도 하듯이 밀고 당기는 접전이 계속되었다.
푹!
뇌문의 도객 중 하나이던 혼우의 가슴으로 쇠꼬챙이 하나가 솟아올랐다.
“혼우!”
빙동마령의 수좌 추련화를 상대하고 있던 추상의 눈이 부릅뜨였다.
오랫동안 그와 함께해 왔던 혼우의 죽음.
“끄으…….”
혼우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비틀거렸다.
“킥킥킥, 멍청한 새끼.”
혼우를 죽인 꼽추, 냉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다른 곳에서 나타나 뇌령도문의 무인들을 죽이고 있었다.
“이, 이런!”
추상이 당장에 그를 쫓아 공격하고 싶었지만 추련화가 좀처럼 그를 놔주지 않았다.
“젠장!”
지금은 자신의 동료를 걱정하고 죽은 이의 시신을 수습해 줄 정도로 여유롭지가 못했다.
추상은 추련화를 향해 세 줄기 검격을 뻗어 내고 뒤로 물러났다.
열기를 머금고 있는 뇌기와 빙마동의 괴인들이 내뿜는 극음의 기운은 상극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고하는 분명히 존재했다.
뇌령도문의 최정예라 할 수 있는 뇌문의 도객들은 뛰어난 자들이었으나 빙마동의 괴인들에 비해서 모자람이 있었다.
“젠장…… 문주님께서 물러난 것만으로 이런 차이가…….”
추상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반나절간 이어졌던 전투의 우세가 섬뢰가 후방으로 물러난 뒤 한 시진도 되지 않아 뒤집히고 있었다.
뇌령도문의 무인들이 입고 있는 피해가 조금씩 늘어났다.
전선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막으려 한다면 막을 수야 있을 것이다. 요 며칠 그랬던 것처럼 저들은 하루를 넘기지 않고 퇴각할 테지만 피해가 커지면 다음 전투가 어려워질 수 있었다.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뒤로 물러나 전선을 재정비한다!”
아랫입술을 거칠게 깨문 추상의 외침에 뇌령도문의 무인들이 전선을 유지한 채 뒤로 물러났다.
“뇌문의 도객들은 후위를 맡아라! 추격하는 적의 속도를 늦춘다!”
추상은 전선을 독려했다.
공격보다 더욱 뛰어나야 하는 것이 퇴각의 전술이었다.
공격할 때는 질풍처럼 몰아쳐야 했지만, 퇴각할 때는 만년 거석처럼 무겁게 물러나야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짜임새 있게 물러나야만 피해를 줄일 수가 있었다.
뚫리는 순간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테니까.
“귀찮게 하는 놈이군.”
근접전을 하고 있을 때보다 퇴각하는 뇌령도문의 무인들이 더욱 탄탄하게 느껴지자 빙동마령들의 수좌인 추련화가 신경질적으로 추상을 노려보았다.
빙동마령 다섯은 빙마동의 무인 오백을 이끌고 전선을 공격하고 있었다.
빙동마령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각자의 싸움으로 인해 돕기가 애매한 상황이었다.
빙동마령 한 사람에 서너명씩 들러붙은 뇌문의 도객들은 제법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
추련화만 해도 그들로 인해 추상을 좀처럼 죽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우세를 이어 가야만 했다.
병력을 잃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길목을 뚫어야만 했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추련화의 아미가 거칠게 일그러졌다.
뇌령도문의 무인들은 사력을 다해 막고 있었고 북해의 무인들은 최선을 다해 뚫고 있었다.
“좀 더 힘을 다해 밀어붙여라! 어떻게든 구멍을 뚫어야 한다! 빙마동주(氷魔洞主)께서 승전을 기다리고 계심을 잊지 말라!”
추련화는 외침과 함께 금강섬모를 한 움큼이나 뽑아내 던졌다.
슈슈슉!
한기를 머금은 비침이 전방을 향해 부채꼴 모양으로 쏘아져 나갔다.
“합!”
북해의 무인 둘을 베어 내던 추상은 칼을 풍차처럼 회전시켜 비침을 튕겨 내었다.
깡! 까가강!
마치 쇠붙이를 막은 것처럼 강한 반탄력이 전해져 왔다.
“크악!”
“으아악!”
추상이 막지 못한 비침이 박힌 무인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고 극음지기가 순식간에 퍼져 나가 쩍쩍 얼어붙은 채 쓰러졌다.
“망할 털복숭이 년이!”
취리릭!
수하들의 죽음에 분노한 추상이 추련화를 향해 달려들며 뇌기를 뿜어내었다.
추련화가 지면을 낮게 스치며 추상의 검기를 피해 내었다.
짜응!
칼과 주먹이 거친 충격음을 만들어 내며 부딪쳤다.
‘크윽!’
그녀의 주먹은 육편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칼에 조금의 상처를 입지 않았다.
더욱이 손아귀가 찢어질 만큼 강한 반탄력이 느껴졌다.
역시나 강하다.
“공격해 오기를 기다렸다. 이놈!”
뇌문의 도객들과 떨어져 전선에서 홀로 이탈해 버린 추상의 모습에 추련화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죽어라!”
추상이 멈칫하는 사이에 틈을 잡은 추련화가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만들어 훑어 왔다.
‘젠장!’
일순간 노기를 느끼고 전선을 벗어난 것이 실수였다. 추상은 급히 칼을 옆으로 치켜들며 그녀의 손을 막아갔다.
까아아앙!
뇌기를 가득 머금은 도가…….
찢겨 나갔다.
“크억!”
추련화의 날카로운 손톱은 칼을 찢어 낸 것도 모자라 추상의 가슴에 기다란 상처를 만들어 내었다.
“큭큭, 드디어 잡았구나!”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추상의 모습에 추련화의 눈동자에 시퍼런 살기가 솟구쳐 올랐다.
이걸로 끝이다.
추상은 전선의 중심이었다.
그가 퇴각하는 전선을 지휘하고 있었으니 그를 죽이고 나면 명령을 내릴 만한 자가 없었다.
후아악!
추련화가 추상을 찢어 버릴 것처럼 다시 한 번 공격했다.
그 순간.
쓔아아앙!
무언가 공기를 찢어발기며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위기감을 느낀 추련화가 추상을 향했던 공격을 멈추고 양팔을 교차했다.
따아아앙!
거친 충돌음과 함께 추련화의 몸이 몇 걸음이나 물러났다.
“……!”
날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금강섬모로 뒤덮인 팔이 시큰할 정도로 강한 충격이 있었는데…….
“봐, 내 말이 맞지? 휘보다 먼저 도착했잖아.”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
전장의 긴박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추련화가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는 뇌령도문의 방어선 뒤편에 한 떼의 인물들이 나타났다.
검은 피풍의를 입은 사내와 열 명의 무인.
“거, 희한하네. 짐승 새끼야 뭐야?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네?”
검은 피풍의의 사내 소청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활을 든 방효곤의 머리를 따악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그나저나 자신 있다며? 최강의 궁술은 개뿔이나. 이렇게 약할 줄 알았으면 그냥 창을 던져서 뚫어 버리는 건데…….”
소청의 타박에 방효곤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세가 좋지 못했습니다.”
“지랄하네. 확 그냥!”
소청이 단창을 움켜쥐고 위협하자 방효곤이 움찔하며 목을 움츠렸다.
전선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나타나는 순간 추련화는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싸웠던 인물들이 아니었다. 이질적이면서도 불안감을 주는 자들이었다.
“뭐 해?”
“예?”
“좌측 뚱땡이와 노인. 우측 애새끼…….”
소청이 손가락으로 지목하자 방효곤이 주저 없이 활시위를 당겼다.
소청의 명령이 떨어지면 곧바로 움직여야 했다. 지난 며칠간 몸으로 깨달은 진리였다.
한순간이라도 늦었다가는 무지막지한 매타작이 돌아온다.
찌이익-!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활에서 세 줄기 기운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방효곤의 얼굴에 절대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어렸다.
“쏴!”
소청의 외침과 함께 방효곤이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린 활시위를 놓았다.
피피피핑!
활을 따라 시선을 올리던 추련화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피해!”
그녀의 외침이 전장을 때리듯이 울리고 빙동마령 셋이 동시에 고개를 쳐들었다.
슈슈슉!
보이지 않는 세 줄기의 기운이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정확히 빙동마령들을 노렸다.
쩡! 쩌정! 파학!
거한과 노인은 막으며 물러났고 행동이 늦었던 아이는 어깻죽지를 강타당하고 땅바닥에 처박혔다.
“귀랑!”
추련화가 아이의 모습을 한 빙동마령, 귀랑을 향해 찢어지는 목소리를 내었다.
다행히 상처가 크지 않은 듯 귀랑이 일어났다.
공격을 당한 그들 셋이 전선에서 잠시 물러나는 순간 소청이 나지막하게 명령을 내렸다.
“소강, 악이군, 소혜, 언청연! 한 놈씩 맡아라! 서문란은 소혜를 돕는다.”
소청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섯이 무기를 뽑아 들고 전선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효곤! 소혜와 언청연을 엄호하면서 적들을 공격해.”
찌이익! 피피피핑!
명을 받은 소강 등이 전선에 끼어들고 방효곤이 계속해서 활시위를 당겼다.
“나머지는 아군을 도와 적을 공격해!”
소강 등이 나서기 시작하자 빙동마령 다섯으로 인해 우세를 잡아 가고 있던 북해의 무인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
갑작스럽게 끼어든 그들로 인해 전세가 뒤바뀌어 버리자 추련화의 눈이 씰룩거렸다.
급기야 어느새 전선을 넘어온 승혜가 추련화를 향해 매섭게 창을 뻗어 오고 있었다.
까아앙!
승혜의 공격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승혜의 창극은 추련화의 탄탄한 금강섬모를 뚫지 못했다.
그런데 뒤이어 들어오는 또 다른 여인, 서문란의 검격이 수십 개의 변화를 만들며 그녀를 노렸다.
‘이 망할 년들이!’
추련화는 승혜와 서문란의 공격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창과 검에서 등줄기에 소름을 돋아 올릴 정도로 싸늘한 살기와 독기가 느껴졌다.
거의 다 이긴 전투였다.
길목을 열고 곧장 대막으로 들어갈 참이었다.
하지만 의외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갈 판이었다.
“크아악!”
추련화가 뻗쳐 오른 화에 핏발이 잔뜩 돋아 오른 눈으로 승혜와 서문란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쩡! 쩌정!
치이익!
승혜와 서문란이 미끄러지듯 물러나는가 싶더니 곧바로 추련화의 상하단을 노리며 공격해 왔다.
이제껏 소청에게 당해 온 구타에 훈련되어 온 그녀들이었다.
추련화의 무공이 그녀들보다 조금 앞서기는 했지만, 소청의 구타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 같은 수준이었다.
그녀들은 공격을 최대한 작은 움직임으로 피해 내며 칼과 창으로 추련화를 봉쇄했다.
“크아악!”
추련화가 짜증을 부리며 극음지기를 잔뜩 끌어 올리자 대기가 쩍쩍 얼어붙기 시작했다.
피웅- 파앙!
하지만 이번에는 허공을 날아온 무형의 화살이 그녀의 공격을 방해했고 끓어오르던 극음지기의 맥을 잘라 버렸다.
“이런 망할 연놈들이!”
추련화가 분노로 인해 마구잡이로 주먹을 뻗어 내며 승혜와 서문란과 어우러지는 사이.
콰아앙!
측면에서 거웅이 소강의 천뢰충파를 얻어맞고 튕겨 나갔다.